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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승용 Sep 02. 2020

남해각 오픈이 코 앞이다

남해대교

남해대교와 남해각에 얽힌 남해도민의 기억을 발굴한지 9개월이 흘렀고 지금은 '어부의 집밥' 이라는 남해 향토음식 발굴을 위해 할머니들 인터뷰를 다니고 있다. 할머니들과 한 참 이야기를 나누다 잠시 흐름이 끊길 때 쯤 


"남해대교 개통할 때 가보셨어요?" 


라고 물으면 얼굴에 화색이 돌면서 남해대교에 놀러갔던 이야기들을 하나씩 풀어 놓는다. 거제도에서 미조로 시집온 할머니는 경남호 타고 미조로 시집왔는데 다음 해에는 다리건너 친정에 갔다고 말하기도 하고 남해대교 보고 왔다고 시아버지한테 말하니 "기둥(현수재)이 몇개드노?" 라고 물어봐서 진땀을 흘렸다는 말도 한다. 남해도민 남녀노소 누구에게 물어도 남해대교에 대한 기억은 모두 하나씩 가지고 있다. 어르신들은 섬에서 육지로 바뀌었을 때의 그 벅찬 감정과 남해도의 경제발전. 장년층에게는 공부와 취업을 위해 도시로 떠날 때 다리를 건너는 마음과 고향에 계신 부모님을 뵈러 올 때 마주하는 빨간주탑을 보며 느끼는 '안도감' '어머니를 만날 수 있다는 기대감' , 청년층에게는 어린이날, 소풍날 남해대교, 남해각 가서 말도 타고 배도 탔던 추억을 이야기 한다. 기억을 공유하는 장소 또는 건축물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지역의 동질감 형성에 기여한다. 남해대교가 그렇다. 남해대교를 1973년에 개통했으니 어느 새 50여년이 흘렀다. 초기에는 남해대교 건설을 통한 남해도의 사회경제적 변화를 주로 이야기 했었다. 이제는 남해대교가 남해도에 끼친 사회문화적 영향도 할 수 있는 시간이 흘렀다. 

남해각

그런 이야기의 생산과 소비를 할 수 있는 공간으로 남해대교와 비슷한 시기에 태어나 곁에 살아온 남해각을 재생하고 있다. 1970년대 경제개발의 흐름 속 탄생한 우리나라 최초의 현수교라는 상징적 건조물과 지역의 경제적 부흥. 1990년대부터 도시화와 산업구조의 변화로 인한 지역의 쇠퇴. 그리고 2020년 '재생' 이라는 시대적 흐름 속 문화와 예술을 통한 지역재생. 이런 역사적 흐름 속에 남해대교와 남해각이 우뚝 서 있다. 남해라는 지역만의 이야기가 아닌 우리나라 전체의 흐름과 맞닿아 있는 것이다. 


남해대교와 남해각이 가지는 '사회문화적 가치'를 시각적으로도 이어내기 위해 건축가와 공간 디자이너가 부단히도 서울과 남해를 오가며 시공사와 행정을 설득하고 합의하며 나아가고 있다. 그 '가치' 를 존중하고 알기에 "사서고생"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 시대적 요구와 흐름에 끌려 남해를 자꾸 찾아와 우리를 설득하고 있는 것이다. 남해대교는 일본의 기술자가 남해에 상주하며 현대건설과 함께 만든 합작품으로 국제 프로젝트였다. 남해각은 그 당시 대기업 해태가 관광산업으로 진출하기 위해 북쪽에는 임진각 남쪽에는 남해각을 조성한 것이다. 2020년 재생에 있어서도 동대문디자인플라자 실시설계와 조성 경험이 있는 건축가, 공간 디자이너가 주도하고 국제적 활동을 하는 미술, 음악, 건축분야의 작가들이 남해를 주제로 만든 작품을 개관전시에 출품했다. 


남해각 오픈이 코 앞이다. 남해각은 남해라는 지역 프로젝트이기도 하지만 외부 전문가의 기술과 관점이 반영되어 지역 밖 수 많은 개인들도 공감하며 우리들의 이야기를 소비하러 오는 곳이 되어야 한다. 건축과 디자인, 브랜딩은 국제적 활동 경험이 있는 전문가들이 진행하고 그 속의 내용은 남해, 우리의 이야기를 채우자. 시작이 그랬고 50년이 지난 지금 재생도 그런 방향으로 가고 있다.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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