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승용 Aug 15. 2020

이웃집 젊은이

삼동면 시문마을

내 고향 하동에 물난리가 났고 엄마-친구들에게 전화를 돌렸다. 화개장터에 사는 1년 후배인 병기가 연락이 닿지 않았다. 화개 윗동네에 사는 친구와 통화가 되어 물어보니,


"병기가 119 오기 전에 사람 많이 구했다."


병기는 화개에서 나고 자라 혼자 계신 엄마 곁에서 '집배원'을 하며 살아간다. 내가 남해로 왔을 때 가장 먼저 달려와 온갖 힘쓸일을 도와준 친구이고, 별볼일 없는 이벤트를 할 때도 퇴근하고 달려와 자리를 채워주곤 했다. 첫해 여름에는 선풍기 하나 없이 전시장과 카페에서 사람들을 맞이 했는데 그게 마음에 걸렸는지 선풍기 3대를 택배로 보내주었다. 전화로 뭔 이런 걸 보내냐고 말하니, 


"형님, 나도 더워서 가기 싫더라."


우체국을 비정규직으로 들어가서 택배 업무를 보며 정규직 전환을 기대했는데 몇년이 가도 번번이 밀리자 불안한 마음을 토로 했던 그렁그렁한 눈빛이 선하다. 그러다 1년 후 정규직 전환 면접을 보고 돌아오면서 전화하며 기쁨 보다는 떨리는 안도의 목소리를 들었던 소리가 선명하다. 그렇게 몇년이 흘러 지금은 시골에서 캠핑, 자전거, 드론, 낚시와 같은 취미생활을 하며 살고 있다. 


이번 폭우에 화개 계곡물이 강으로 빠져나가지 못하고 역류하여 장터를 덥쳤고 병기는 소형 낚시고무보트를 띄워 '어르신'들을 구하러 다녔고 분주히 움직여 미쳐 건물에서 나오지 못한 사람들을 안전한 곳으로 옮겼다. '배'를 보유한 곳은 하동 소방서라서 화개까지 오는데 족히 30분은 걸리는데 그 30-40분 동안 이런 일들을 한 것이다.

작은 시골 마을에는 '이웃집 젊은이들'이 사회 안전망이다. 촌각을 다투는 상황에서 국가가 지역의 작은 마을까지 손을 뻗치기에는 한계가 있다. 젊은이들이 지역으로 돌아와야만 하는 이유이다. 당위적이지만 강요하거나 보상을 하며 유혹해서는 안되고 스스로 자연스럽게 돌아와 살고 싶은 마음이 들 수 있도록 먼저 온 젊은이들이 재밌고 매력적으로 살아가야 한다.


마침 오늘 병기와 친구들이 남해로 온다. 라디오 생방까지 출연해서 '서울말'을 흉내내느라 고생했다고 하는데 오면 한 참 놀리며 문어 좀 삶아서 맥주를 한 잔 해야겠다.

작가의 이전글 울고 싶을 때도 오는 곳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