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가 십 년을 관통했다는 건 특이한 사건인 게 분명하다. 이 시대에 적응을 안 한 채로 버텼다는 것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매거진 B 창간 10주년 기념 전시 토크 세션
Sesson One.
진행: 박은성 매거진 B 편집장 (이후 은)
토크: 조수용 매거진 B 발행인, 카카오 공동대표이사 (이후 조)
매거진 B의 운영 초기부터 “10년이 됐을 때”라는 이야기를 많이 했다. 원래대로라면 10년째 되는 해에 100호가 나왔어야 했다. 그 100호의 주제로 매거진 B를 다루자는 목표를 세웠었다. “표지에 B가 두 번 나오는 거 너무 멋있지 않겠냐. 그때 전시를 하면 너무 좋겠다. 거기까지 하고 폐간하는 간지겠다.” (웃음) 왜냐하면 그때는 다룰만한 브랜드가 100개나 있을 거라고 생각을 못 했다. 100호쯤 되면 소재가 고갈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있었다.
매거진 B를 만드는 과정을 거듭하며 '이렇게 브랜드가 많다니, 앞으로 꽤 오래 할 수 있겠다'라고 생각이 바뀌었다. 또 covid 때문에 계획에 차질이 생겨 10주년에 100호가 못 나왔다. 이래저래 기대했던 대로 된 것도 있고, 안 된 것도 있다. 하지만 덕분에 배운 것이나 경험한 것도 있었다.
조: 시작하고 꽤 한참 뒤이다. 시작하고서 한참 동안 10년을 간다는 게 꿈같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6년이 넘어가고부터는 ‘좀만 더 밀어붙이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최근 들어서는 더 확신이 생겼다. 근 2-3년 동안에 ‘우리도 모르는 대단한 무언가를 한 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게 됐다.
조: 정보화의 진보를 10년 단위로 많이 이야기한다. 인터넷 탄생하고 10년, 모바일 후 10년, 그리고 지금 또 지금의 10년. 그 10년이 메타버스 일지 뭐일지는 알 수 없지만, 10년 주기로 큰 변화의 시기를 겪고 있는 것은 맞다. 그렇게 봤을 때 미디어가 10년을 관통했다는 건 특이한 사건인 게 분명하다. 이 시대에 적응을 안 한 채로 버텼다는 것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매거진 B가 양면성을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가장 지금 같지 않을 때 가장 지금 같은 미디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모든 사업에서 기회가 있다. 모노클도 잡지의 형식을 갖고 있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여러 사업을 하고 있다.
조: 지금은 브랜드의 시대다. 브랜드가 정말 많다. 정신을 차릴 수 없는 수준이다. 우리가 쓰고 있는 소셜 미디어만 봐도 한 번에 보이는 브랜드 수가 너무 많다. 그 어느 때보다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때여서, 등대 같은 존재가 필요하다.
예를 들면 음악과 영화의 경우에도 어느 순간 콘텐츠가 급속하게 늘어나며 음악을 선곡하는 사람, 영화를 평론하는 사람이 등장했다. 그 전에는 존재하는 음악, 영화를 볼 수 있었다. 지금은 그게 불가능하다. 브랜드를 모두 경험하거나 공부하는 게 어렵기 때문에 지금 시대에 필요한 것은 한 번 정리해주는 중간 미디어가 필요하다. 매거진 B조차도 큰 의미에서 에디터이고, 지금이 그런 역할이 필요한 시점인 것 같다.
한편 손에 잡히는 물리적 미디어라는 점에서는 예전 그대로이다. 요즈음에는 '소유'라는 개념이 예전 같지 않다.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어서 메모리에 그 사진이 있으면 가진 건가? 그 사진을 지우면 잃어버린 건가? 소유한다는 것에 대한 개념이 굉장히 느슨해지고 있는 상황이다. 그런데 잡지는 무게가 있고, 손에 잡히기 때문에 예전의 성질을 잃지 않고 갖고 있다고 말한 것이다. 매거진 B는 과거 미디어의 물리적인 성질은 유지하면서 본질은 다른 레이어에 있다는 점에서 언밸런스하다.
어떤 사업이든간에, 앞서 30~50년 동안 계속해온 것이 있다면 지금이 무조건 기회라고 생각한다. 시대에 맞게 변화할 수 있는 근거가 있고,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면, 그게 무엇이든 간에 기회가 많은 것이다. '지난 30년 동안은 이렇게 해왔지만 지금은 바꿀 수 있을 것 같은데?'라는 생각에서 시작한 대표적인 사업이 위워크다. 부동산을 임대한다는 건 계속 그래 왔던 것이다. 위워크라는 사업도 엄밀히 말하면 부동산업이지만, 우리 주위의 부동산업 하는 사람은 없는 감각을 갖고 시작한 것이다.
조: 나 때문일 것 같다. 이 잡지는 처음에 기획했을 때 총량(100호)을 떠올리며 기획했다. 매거진 B가 특별히 표지를 신경 쓰는 것도 10년 뒤 전체가 모이는 장면을 상상했기 때문이다. 그랬기 때문에 계획한 정도의 양을 채우지 않을 때는 무언가 완성되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그러다 보니까 고집스러워졌던 것이다.
사실은 도중에 주변에서 많이 말렸다. 워낙에 비용 부담이 크고, 영문 병기라면 모를까 영문판과 한국판을 각각 낸다는 것이 비현실적이었기 때문이다. 그걸 끝까지 밀어붙인 건 무모한 면이 있었다.
다행히 내부에 오래된 팀원들은 워낙에 책 만다는 것 자체를 즐기는 사람들이어서 내가 계속 이대로 하자고 해도 그렇게까지 불행해하지 않았다. (일동 웃음)
조: 아까도 말했지만 매거진 B의 커버만 모아서 전시했을 때 커버가 집합되어 있는 모습의 느낌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커버뿐 아니라 매거진 B에서 다룬 브랜드의 제품이 모여있는 장면에 대한 판타지가 있었다. 서로 아무 상관이 없는 구글과 샤넬이 옆에 있는 것 말이다. 그건 전 세계 어디에도 없는 연결고리고, 그 고리를 만드는 것은 우리밖에 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낯선 조합이 하나의 시공간에 동시에 있는 상황이 너무 매력적일 것이라고 상상했다.
실제로 이곳에 전시된 브랜드 중 ‘격이 안 맞지 않나’ 생각하는 브랜드도 있었던 걸로 안다. 하지만 우리니까 할 수 있는 것이고, 그렇게 완성된 모습이 좋았다. 오브제로 놓여있는 모습이 하나하나는 아무 의미가 없다. 하지만 모여있는 것은 이 전시를 하는 동안에만 볼 수 있는 것이다.
만약 전시장의 규모가 더 크다면 브랜드들이 다 각자의 부스를 갖고 있으면 재밌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건 20주년 기념으로 하기로 하고.
조: 기대를 많이 하고 보면 서운했을 것도 같다. ‘얼마나 멋있을까?’하고 봤다면 ‘하다 만 것 같은데..?’라는 느낌이 들었을 수도 있다. 그런데 마지막 인터뷰 섹션에서 각 브랜드의 대표들이 직접적으로 매거진 B에 대해 거론하는 걸 보면서 마음이 울렁울렁했다.
첫 호(프라이탁)를 만들 때는 어떻게 프라이탁의 사람과 연결돼서 본사와 이야기할 수 있었다. 그런데 그건 운이 좋은 경우였고, 초반에는 브랜드에서 문전박대당한 상태에서 겨우 만든 책들이 꽤 있다. 잘 보면 창업자와 사장이 협조를 잘해준 책이 있고, 계속 사용자의 이야기가 나오는 책이 있다. (일동 웃음) 만약 협조를 받지 못하면 그 브랜드를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도 모아서 만들었다.
그런 시기가 있었는데, 어느새 블루보틀, 에이스호텔, 라파 같은 브랜드의 대표들이 매거진 B에 대해 우리보다 더 잘 설명해주시니 오랫동안 여운이 남았다.
조: 나는 지금이야 경영자로 일을 하고 있지만, 디자인을 공부했고 디자이너로 꽤 오래 살았다. 디자이너의 일이라는 게 누군가가 나에게 일을 오더하고 내가 일을 하면 그분의 컨펌이 끝나야 끝나는 것이다. 퀄리티도 돈을 많이 줘야지 좋게 나올 수 있고, 나 혼자 잘해서 되는 게 아니다. 마케팅 캠페인도 그렇고. 마케팅, 디자인에 관심이 있거나 관련 분야에서 일을 하는 분들은 무슨 말인지 알 것이다. 일을 하다 보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이런 관성에 몸에 푹 젖어 있을 가능성이 크다.
그런데 발행인으로서 잡지를 발행한다는 건 결정권을 가진 대상이 완전히 없어진 상태이다. 물론 편집장이 결정하지만, 편집장이 어느 순간 “이 브랜드를 다룰까요?”라고 물어보면 그건 내가 결정해야 한다. 아무도 물어볼 사람이 없다.
회사의 사장, 창업자도 그렇지만 잡지라는 것은 의사결정이라는 이슈가 매달 발생하는 것이다 보니 유난히 무게감이 뚜렷하다. 내 뒤에 뭐가 없는 느낌. 그래서 기분이 좋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서늘하기도 하다. 쉽게 말하면 뒷감당을 다 해야 한다는 의미다.
또 하나는 원래의 나보다 사람들이 나를 있어 보이게 여긴다. 지난달에 어느 외국 브랜드의 창업자 분이 한국에 왔다고 나를 초대해주셔서 함께 점심식사를 했다. 그 사람은 카카오도 모르고, 관심 없는 사람인데, 내가 매거진 B의 발행인이라서 부른 것이다. 그런 순간이 가끔 있다. 이번에 블루보틀 사장이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식당을 예약할 때 James@bluebottle.com으로 보내면 없던 자리가 생긴다고. 나는 그렇게 된 적은 없는데. (일동 웃음)
조: 나는 돈 많이 벌면 하고 싶은 것이 잡지였다. 그러면 여기 있는 분들이 "저도 돈을 많이 벌면 하고 싶은 게 잡지인데, 저도 할 수 있나요?"라고 물어볼 것 같다. 그렇게 묻는다면 나는 잡지라는 걸 생각하는 게 어느 정도인지에 대한 자기 기준에 대한 문제라고 생각한다. 이 정도의 브랜드, 사진이어야 잡지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서점의 잡지 코너에서 보면 ‘이렇게 만드는 거면 나도 할 수 있겠다'라는 생각이 드는 것도 있다. '일간 이슬아'처럼 매일 1편씩 글 쓰는 것만 가지고도 잡지를 시작할 수 있다. 잡지라는 것에 대한 기준을 내가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절대 못 갈 곳이기도 하고, 오늘부터 시작할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돈의 문제는 아니라고 볼 수 있다.
다만 꾸준히 할 수 있냐의 문제다. 이슬아 씨도 꾸준히 했으니까 지금에 온 것이다. 일주일 하다 관뒀다면 아무것도 아니었을 것이다. 굳이 덕목이라고 물어본다면 오랫동안 지속할 수 있는 힘인 것 같다. 절대 돈이 많다고 해서 되는 일이 아니다. 내 주위에 돈 많고 잡지 좋아하는 사람 많지만 절대 못한다. 중간에 지루해서, 겁먹어서, 등등.
조: 매거진 B를 창간하기 전, 지금은 없어진 잡지 중 굉장히 좋아하는 잡지가 있었다. <오프>라는 여행 잡지였다. 한 번에 한 곳의 여행지를 다뤘는데 그게 너무 좋았다. 발상 자체가 신선하다고 생각했다. 마지막 권을 보고 너무 좋다고 생각하고 연락해서 “내가 지금 구할 수 있는 호를 다 주세요”라고 했더니 8권을 줬다. 그걸 책장에 모두 꽂아놨는데 정말 보기 좋았다. 그래서 계속 발행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얼마 못 가 폐간됐다. 그 잡지가 굉장히 많은 힌트가 됐다.
집에 <월간 디자인>도 있고 <모노클>도 있고 많은 잡지가 다 있는데, 항상 시간이 지나면 스트레스를 받았다. 버리자니 아깝고, 가져가자니 애매하고. 이사 갈 때마다 고민하는 상황이 생겼다. 결국엔 다 버리게 됐다. 그게 마음이 안 좋았다. 그런 과월호에 대한 이슈가 있었다.
또 직업적인 것에도 관심이 많았다. 잡지 내용 중에서 기자가 정말 순수한 마음으로 쓸 수 있는 게 가능한 지면이 얼마나 될까 생각하면 늘 마음이 안 좋았다. 잡지를 읽다 보면 ‘이거 분명히 돈 받고 쓴 것 같은데?’하는 게 느껴진다. 마케팅이 싫다는 건 아니지만 온통 마케팅으로 범벅되어 있는 상황이, 유망하고 글 쓰고 싶어 하는 에디터와 디자이너에게 괴로운 일이라고 생각했다. 게다가 잡지사가 박봉으로 유명하다. 잡지사에서 일하는 분들과 이야기하면 항상 “이번 달만 마감하고 그만둬야지”라고 생각하는데 마감 후 며칠의 쉬는 시간이 주어질 때 그 타이밍을 놓쳐서 몇 년째 계속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고 싶어서 매거진 B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사실 매거진 B가 엄청 잘될 줄 알았다. 이렇게 만들면 되게 많이 팔릴 것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창업했을 때는 자금이 많지 않았을 때여서, 돈이 안될 걸 뻔히 알면서 시작할 수는 없었다. 그런데 소문으로는 잘 됐는데 실제로 수익이 생기기까지 굉장히 오래 걸려서 생각한 것과 다르다는 걸 알게 됐다. 사람들이 실제로 책을 사서 보는 숫자가 그렇게 많지 않다던가. 누군가를 처음 만나서 “매거진 B 너무 좋아해요!”라고 말하면 “정말로 사서 읽어보셨나요?”라고 물어본다. (일동 웃음) 사더라도 제대로 읽은 사람이 잘 없다. “읽어보셨어요?”라고 물어보면 “언젠가 읽어야 하는데.”라고 말한다. (일동 웃음)
조: 전통적인 개념에서의 잡지는 꼭 안 읽어도 된다. 사진 중심으로 보면 되니까. 처음 시작할 때는 ‘솔직히 다 안 읽을 거야. 잡지는 사진이지, 글을 뭐 읽겠어. 글을 읽어도 사진 밑에 있는 걸 읽겠지.’라고 생각했고 대부분 내가 얘기하는 정도로 하고 있을 것 같다. 그런데 사실 읽으면 괜찮은 글이 많다. 안타깝기는 하다. 단행본인 경우에는 사고 난 뒤 안 읽는 경우가 없는데, 잡지는 의외로 그 잡지사 다니는 사람도 안 읽는 경우가 많다. 자신이 쓴 기사만 읽고. (웃음) 이건 그냥 현실이다.
조: 카카오에서 일하다 보니 더 고민하는 부분이다. 잡지는 첫 번째 키워드는 ‘관점’인 것 같고, 두 번째는 ‘꾸준한&정기적인’인 것 같다. 두 가지만 있으면 뭐든지 미디어라고 부를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꼭 종이에 찍어서 만들지 않아도 관점이 일관되고, 그 관점으로 무언가가 꾸준히 나오고 있다면 그건 미디어다. 결국 잡지라는 것은 미디어다.
인터넷 언론사도, 브런치에 글을 쓰는 사람도, 유튜브에 어떤 영상을 꾸준히 올리는 사람도 미디어일 수 있다. 매거진 B는 미디어로 인정받고 있는데, 어떤 관점으로 꾸준히 하니까 미디어가 된 것이다. 그렇게 안 했으면 1-2달에 단행본을 한 권씩 내는 출판사가 되었을 것이다.
그런 관점에서 '카카오 뷰'라는 서비스를 만들기도 했다. '꼭 글을 써야 하나? 골라주기만 하면 안 돼?'라고 생각했다. 그것도 관점이 있고 꾸준함이 있으면 된다고 생각했다. 문제는 관점이 없거나 계속 흔들리거나 꾸준함이 없는 것이다. 그건 누가 봐도 자신이 일기 쓰는 것이지 미디어는 아니다.
미디어를 만들면 하루에 한 명씩이라도 독자가 늘어갈 것이라는 생각이 있다. 최문규 씨라고 <나의시선>이라는 블로그를 운영하는 분이 있다. 워낙에 물건 사서 써보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그분은 너무나도 일관된 관점으로 블로그를 꾸준히 쓴다. 그 꾸준한 관점이란 "너희들 이런 거 아니? 너희들 사봐라."라는 것이다. 약간의 잘난 척도 있고 강권도 있는데, 그게 밉지 않다. 그걸 너무 꾸준히 했더니 직업이 됐고 돈도 꽤 잘 번다.
현재 <나의시선>이라고 하는 블로그는 어마어마한 미디어다. 발뮤다라는 브랜드가 한국에 상륙할 때 최문규 씨와 협업해서 론칭했다. 그건 상당한 일이다. 발뮤다는 다른 누구도 아닌 최문규 씨에게 잘 보여야 한다. 그래서 신제품 만들면 가장 먼저 보내주고, 리뷰할 수 있게 하고, 가장 싸게 판매한다. 웬만한 백화점보다 강력한 유통채널이 된 것이다. 그런데 그게 하루아침에 되는 건 아니다. 한두 번 그랬으면 그저 허세 떤다고 했을 수도 있다. 꾸준함이 미디어의 존재를 만들어낸 것이다.
조: 불특정 다수가 좋아하는 브랜드와, 의식 있는 소수가 좋아하는 브랜드를 구분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해서 의식 있는 소수가 좋아하는 브랜드가 꼭 작은 브랜드여야 할 필요는 없다. 좋아하지만 이유가 없는 브랜드가 있고, 이유를 이야기할 수 있는 브랜드가 있다. 그 브랜드를 왜 좋아하는지 말할 수 있다는 건 그만큼 브랜드의 철학이 있다는 것이고, 큰 브랜드여도 철학이 있다면 후자에 속하는 것이다. 그 대표적인 브랜드로 늘 애플을 생각했다. 말도 안 되게 큰 기업임에도 불구하고 애플을 좋아하는 이유를 수도 없이 말할 수 있다. 한편 윈도우즈를 왜 좋아하는지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좋아하는 사람들이 "이래서 좋아"라고 이야기하는 브랜드를 찾아내고 관통하는 철학을 엮는 것이 B가 유지하고 싶었던 관점이다. 예를 들어 처음에 펜을 다룰 때 라미를 먼저 다뤘다. 만년필에서 가장 큰 브랜드는 몽블랑인데 몽블랑은 상당히 뒤에 나왔다. 사람들이 잘 모르는 비브람 같은 깔창 브랜드를 다룬다던지. 누구에게는 그게 중요한 브랜드가 아닐 수 있지만,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굉장히 중요하고, 왜 좋아하는지 말할 수 있다. 어디에서 배워서가 아니라, 그 브랜드가 늘 그래 왔기 때문에. 결국 브랜드가 크고 작고는 상관이 없었다. 그런 관점을 추구하다 보니 다루지 못한 브랜드가 아직 너무 많다.
조: 공통적으로 읽히는 몇 가지 포인트가 있었다. 첫 번째는 생각보다 대부분 꽤 늦게 창업했더라는 것. 많은 사람들이 2-30대 창업하지 않으면 직장을 다니다가 은퇴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제 40살이 됐는데 뭘 창업을 해, 그런 생각을 우리나라에서도 많이 하는 것 같다. 그런데 매거진 B에 나온 꽤 많은 브랜드가 60대, 70대에 창업한 것이다. 생각보다 시작의 시점이 그렇게 이르지 않구나. 새롭게 깨달았다.
두 번째는 브랜딩, 마케팅이라는 게 허상일 수도 있겠다는 것이었다. 브랜드의 창업자를 인터뷰했을 때 대다수가 마케팅이나 브랜딩을 안 한다거나 그런 부서가 아예 없다는 이야기를 했다. 브랜드가 좋아서 찾아갔는데 브랜딩 부서가 없다니. 사실 부서가 없는 게 아니라, 그 사람 자체가 브랜드였던 것이다.
JOH 회사를 창업하면서 브랜드 컨설팅 사업을 같이 했었다. 그 일을 하면서 '브랜드 컨설팅이 말이 되는 것인가? 내가 진심으로 컨설팅하더라도 저 브랜드가 입을 수 있는 옷을 주는 것인가?'라는 고민이 있었다. 카카오에서 일하면서도 브랜딩에 욕심을 버린 것이 많다. 다 알겠지만 카카오는 파운더가 있다. 그분이 갖고 있는 생각의 흐름이 곧 브랜드다. 아무리 밖에서 조수용이라는 사람이 브랜딩을 잘하는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본질은 바꿀 수 없다. 대부분의 브랜드가 그렇다고 생각한다. 브랜드를 누군가 만들어준다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걸 깨달았다.
또 하나는 궁극의 목적을 '아름다움'이라고 추상적인 것으로 두는 것의 멋있음이다. 숭고하다고 생각이 들 정도다. 왜 사냐고 물으면 우리는 "열심히 해서 돈 벌어야죠"라고 이야기하고 추상적인 것은 그다음인데, 이 브랜드들은 아름다움에 대한 집착이 컸다. 어떻게 보면 사치스러운 이야기다. 먹고살아야 하는데 아름다움이라니. 그런데 잘 보면 그 집착으로 사업을 일궈서 번성하고 있다. 이건 다른 목표 지점이구나 느꼈다.
나도 주변에 MBA 나와서 경영에 대해 이야기하는 사람이 많다. 대부분 사업 기획을 한다고 하면 숫자, 비즈니스 전략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매거진 B에서 다룬 브랜드는 대부분 "진짜 아름답냐?"같은 이야기를 한다. 뜬구름 잡는 이야기인 것 같지만 그것만큼 핵심이고, 본질적이고, 움직이는 힘을 가진 게 없는 것 같다. 그랬더니 사업이 되는 마법 같은 일을 보라.
매거진 B를 10년간 발행하면서 울림을 준 것들을 정리하면 아래와 같다.
1. 무엇을 시작하기에 언제든 늦은 때는 없다.
2. 브랜딩은 남이 해주지 못한다. 자신이 해야 한다.
3. 아름다움에 대한 집착
이것들이 나에게 새겨져 있어서 의사 결정하려 할 때 이 기준으로 스크리닝 하게 된다.
조: 나는 책 만드는 것 자체는 거의 관여하지 않는다. 책은 과정은 편집장님이나 내부 에디터가 생각이 진화하는 만큼 진화한다. 매거진 B의 내용으로만 보면 처음보다 많이 똑똑해지고 성숙해진 것 같다. 처음에는 일명 '똘끼'가 많았다. 지금은 꽤 자라서 똘끼보다 스마트함이 생긴 것 같다. 그 정도인 것 같다.
조: 확실한 건 자신만의 스타일을 견고하게 가진 고집스러운 사람은 아닌 것 같다. 어떤 것이든 받아들일 수 있는, 폭이 있는 사람.
B라는 사람은 성별도 치우치면 안 되고, 나이도 치우치면 안 되고, 호기심이 무한대로 열려있는 친구여야 한다. 항상 그런 스탠스를 유지하려고 한다. 똑같은 패션 브랜드를 다루더라도 우리도 잘 모르는 사이에 성향이 치우칠 수 있어서, 독자의 관점에서 뉴트럴 하게 보려고 노력한다. 한쪽이 옳다고 하는 대신 '이건 왜 이렇지? 이건 왜 좋지? 이건 왜 없어졌지?'라고 상황을 궁금해하고, 너무 나대고 싶어 하지는 않는. 이런 미디어가 너무 나대면 불편해진다. 여러분 정도 되는 사람들이 좋아하면 되지, 갑자기 너무 많은 사람들이 좋다고 하면 싫어진다. 보기 좋지만 너무 크지는 않은 느낌. 그 느낌을 유지하려 한다.
조: '어떤 브랜드를 고르면 안 되느냐'는 '어떤 브랜드를 고르냐'보다 더 어려운 질문 같다. 이렇게 비유해볼 수 있겠다. 도시 편을 만들 때, 어떤 도시를 고를 것이냐에 대한 고민이 있었다. 각각의 도시는 브랜드적인 특색을 갖고 있다. 그랬을 때 '도쿄보다는 교토다'라고 판단했다. 그건 도쿄가 아니어서라기보다는, 더 특색이 강하고 캐릭터가 분명한 도시가 교토였기 때문이다.
우리가 다뤘던 자동차 브랜드가 아우디, 포르셰, 미니인데 거기에 벤츠를 추가하는 게 맞나 틀리나 정도의 갈림길에 항상 놓이는 것 같다. 내 기준에서 벤츠는 아직 관통하는 철학이 느껴지지 않는다. 그런데 벤츠는 철학이 있다고 이야기한다. 있는 것도 같다. 그런데 소비자에게 그 느낌이 있는가? 임직원에게 그런 느낌이 있는가? 거기에 대해서는 '아직'이다. 하지만 나중에 다룰 수도 있다. (웃음)
브랜드를 판단할 때는 나의 느낌도 중요하지만 주위에 "이런 브랜드는 어떤 것 같아?"라고 물어봤을 때의 느낌을 중요하게 여긴다. 그때 아닌 느낌이 들 때가 있다. 캐나다구스라는 브랜드가 처음 나왔을 때 굉장히 쿨한 느낌이었고 사람들이 좋아했는데, 어느 시점이 지나니 너무 많은 사람이 입어서 선호가 떨어졌다. 브랜드는 그런 우여곡절을 계속 겪는 것 같다.
또 너무 좋은 브랜드인데 지역이 협소해서 탈락한 경우도 있다. 가능하면 글로벌 시장에서 어느 정도의 존재감을 가진 브랜드를 다루려고 한다. 그래서 조금 까다로운 부분도 있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에서는 많이 알려졌는데, 다른 나라에서 전혀 존재감 없으면 고민을 많이 하게 된다. 그리고 확실히 너무 마케팅에 열을 올리면 그것과 비례해서 아니라는 느낌이 있다.
조: 지나고 보니 가장 잘했다고 생각하는 결정은 처음부터 영문판을 함께 만든 것이다. 그것 때문에 도중에 후회도 했지만 아니었다면 정말 운이 없었겠다고 생각한다. 한글로 된 책으로 글로벌 브랜드의 대표가 인터뷰해줄 이유가 없다. 영문판을 함께 발행하는 건 무모했지만 시장을 넓게 보려 했다는 점에서 정말 잘한 일이었다고 생각한다.
중간에 개인적으로 힘들 때 '한글판을 만들지 말고 영문판만 만들까'라는 생각을 진지하게 했다. 한글판이 잘 안 팔렸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국에서 나온 회사인데 한글판이 없는 게 말이 되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보자, 가보자 하고 한 달 한 달을 버티던 시간이 있었다. 그때 포기하지 않았던 게 다행이다.
매거진 B를 한 달에 한 권 만들겠다는 규칙을 정했지만, 그 규칙을 지키는 게 버거웠다. 이 정도 퀄리티의 책을 한 달에 한 권씩 낸다는 건 사실 말도 안 되는 일이다. 한 달에 한 권이라는 게 가진 부담감은 굉장히 크다. 우리 편집팀이 고생을 정말 많이 했다. 어느 달에도 3권이 동시에 진행되고 있었다. 시작한 것, 진행 중인 것, 마감 중인 것. 지금은 covid 때문에 잠시 휴식기를 갖게 됐는데 덕분에 숨통이 트인 것 같다. 매달 한 권이 나와야 한다는 스트레스를 덜 수 있었다. 물론 지난 8년 동안 매달 만들었다는 이력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 쉴 수 있는 것이지만. 쉬는 동안 잡스 시리즈와 몇 가지 단행본을 만들었는데, 그게 중요한 변곡점이 되기도 했다.
조: 잡지를 계속 만드는 것만으로도 굉장히 큰 의미가 있지만 책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매거진 B가 가진 생각으로 공간도 만들 수 있고, 우리가 좋아하는 것들의 형상을 실제로 만들어서 선보일 수도 있다. 매거진 B의 현재 모습으로 2-30년 가도 좋겠지만 그건 일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너무 반복적인 삶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여기에서 오랫동안 일해온 누군가가 '패션 브랜드, 카페 브랜드, 공간 브랜드를 만들고 싶어'라고 생각했을 때 그 꿈을 실제로 펼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매거진이 매달 나오는 게 좋지만, 꼭 그게 아니더라도 매거진 B에서 일하는 분들이 그것 외에도 더 하고 싶은 것을 추구하는 여유를 가지면 좋겠다. 그게 자연인 조수용이라는 사람의 꿈이다.
특별 게스트: 박지윤, 가수, 전 B캐스트 진행
박: 최근엔 육아 때문에 바빴는데 오랜만에 전시에 오니 B캐스트 했던 기억도 나고 환기되어 좋았다. B캐스트 시즌1을 진행할 때는 매거진 B를 정말 좋아하고 있었는데 참여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 기뻤다. 그때는 매거진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고 배우는 자세였기 때문에 매일매일 마냥 즐거웠다. 지금 생각해보면 B캐스트가 아니면 만날 수 없는 사람들을 만나 삶의 이야기를 들으며 많이 배우고 힘을 얻었던 것 같다.
시즌2를 할 때는 회가 거듭할수록 많은 사람이 "B캐스트 잘 듣고 있어요"라고 이야기해줘서 놀랐다. 그동안 나 혼자 녹음해왔으니 체감하지 못했는데 'B캐스트를 듣고 있는 사람이 많구나. 혼자 하는 게 아니라 소통하고 있구나'를 느꼈었다.
박: 어쩌면 내가 편집부를 통틀어서 전권을 읽은 유일한 사람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대표님도 자신보다 더 열심히 읽는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 (웃음)
대표님도 앞서 말했지만, 매거진 B를 읽으며 앞에 다뤘던 브랜드와 뒤에 다뤘던 브랜드의 내용에 차이가 난다고 느꼈다. 판단하는 건 아니지만 처음에는 사용자들의 느낌이 주를 이뤘다면 뒤로 갈수록 창업자 분들의 이야기가 많다. 오늘 전시의 마지막 인터뷰 섹션을 보면서 많은 글로벌 브랜드의 창업자 분들이 매거진 B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듣고, 매거진 B를 바라보는 시선이 10년 사이에 달라졌구나를 많이 느꼈다. 10년의 세월 동안에 매거진 B가 이렇게 됐다는 게 정말 뿌듯하고, 만드신 분들은 감회가 남다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박: 너무 많다. 매번 읽을 때마다 좋은 브랜드를 다뤄서 기억에 많이 남았다. 프라이탁도 기억에 많이 남았다. 첫 호인데 창업자가 인터뷰했기 때문이다. 또 츠타야, 모노클, 샤넬. 그동안 그냥 샤넬이라고만 알았지 히스토리를 전혀 몰랐는데 히스토리를 알고 나니까 브랜드가 완전히 다르게 보였다. 매거진 B는 읽고 나면 그 브랜드의 이미지가 달라 보인다.
어떤 브랜드를 꼽기보다는 전체를 다 읽고 힘을 얻었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다. 창업자 분들이 마케팅을 어떻게 했는지 같은 이야기를 거창하게 할 것 같았지만, 대부분이 "자신이 정말 이것을 좋아해서 이 일을 꾸준히 했고, 돌아봤더니 이런 브랜드가 되었다"라고 이야기한다. 나는 너무 어렸을 때부터 일을 시작했고, 아무래도 그전에 만들어진 나의 이미지가 있기 때문에 내 일을 좋아해서 하는 게 사실상 어렵다고 생각했다.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하고 싶은 마음은 있었지만 다음 앨범을 내기 전에 할 수 있을까라는 고민이 있었다. B캐스트를 진행할 때도 개인적으로 음악에 대한 고민이 많았다. 그런데 B캐스트에서 창업자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힘을 얻었던 것 같다. 좋아하는 일을 조금이라도 계속할 수 있는 힘, 그것이 되게 중요하구나. 그렇게 용기를 얻었던 것 같다.
박: 저야 너무 좋죠. (웃음)
박: 주위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문자로 읽는 것은 집중해야 하고 시간을 내야 하는데, 귀로 듣는 것은 조금 더 편안하고 캐주얼한 느낌이 있는 것 같다. 차를 타고 가다가 들을 수도 있고, 운전하면서 들을 수도 있고. 그런 게 좋지 않았을까.
박: 코로나 때문에 잠시 쉬고 있지만, 앞으로도 계속 매거진 B가 만들어졌으면 좋겠다. 나도 같은 독자로서 응원하고 있다.
브랜드를 선정하는 기준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달라졌는지?
좋은 질문을 하는 방법?
매거진 B의 코로나 생존법?
이전에 다룬 브랜드를 다시 다룰 생각이 있는지?
10년 동안 기존의 틀을 깨거나 바꾸려는 시도가 있었는지?
잡지에 사용되는 이미지를 선택할 때 원칙이나 철칙이 있다면?
내지에서 내용을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도록 신경 쓰는 포인트가 있다면?
경영상의 이유로 '아름다움'을 추구하기 힘든 경우에는?
어떻게 현재의 어벤저스 팀을 꾸리게 되었는지?
조: 사회적인 것도 많이 보긴 하는데, 매거진 B가 너무 그런 쪽으로 가길 바라진 않는다. 브랜드 자체가 가지고 있는 속성은 사실 엄청나게 자본주의적이다. 브랜드는 자본주의의 꽃이다. 거기에 너무 많은 잣대를 들이대면 기준이 흐려진다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는 온라인 브랜드를 다룰 때 고민이 많았다. 에어비앤비, 인스타그램, 유튜브, 틱톡, 구글을 '브랜드'라고 부를 수 있을까? 그런데 지금 시대에서의 진정한 브랜드는 그런 것 아닌가 생각했고, 실제로 구글이나 에어비앤비 사무실을 실제로 방문했을 때 '그 어떤 회사보다도 브랜딩이 잘 된 기업이다'라는 느낌을 받았다. 구글을 브랜드로 이야기한 사람이 있을까? 틱톡이 '중국 회사가 만든 짧은 동영상 플랫폼'이라고 하는데, 브랜드 관점으로 본 사람이 있을까? 그런 호기심이 있었다. 모두가 아니라고 할 때 우리가 브랜드의 관점으로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개인적인 관심사의 변화도 영향을 미쳤다. DJI는 선전에 있는 중국의 드론 브랜드다. 관심 없는 사람은 한 번도 본 적 없는 브랜드이고, 중국 기업이 브랜드로 칭송받는다면 낯설지만, 굉장히 잘하고 있는 브랜드다. DJI는 그런 관점에서 유의미한 브랜드라고 생각한다.
은: 매거진 B는 개인적이 호불호와 관계없이 시대의 중심에서 자신의 가치나 철학을 잘 이야기하는 브랜드를 다룬다. 그래서 철저하게 개인적인 시각을 배제하는 훈련을 했다. 기존에 알고 있던 선입견이나 평판을 다 배제하고 브랜드를 알아간다. 이 브랜드를 처음 아는 거야, 처음 배워가는 거야. 이렇게 자신에게 주입시킨다.
에디터들도 마찬가지로 0부터 10까지 처음 배우는 느낌으로 자료를 조사한다. 만약 그 브랜드를 좋아하고 있더라도 감추려고 노력한다. 몰입해서 좋아했을 때보다, 거리를 두고 사람들이 이 브랜드를 어떻게 소비하고 있는지 바라보는 훈련을 했을 때 질문에 대한 인사이트를 얻을 수 있다.
조: 질문을 하는 기술, 질문의 깊이가 정말 중요하다. 인터뷰를 많이 당해본 입장으로서 물어보는 사람이 뭘 물어보느냐에 따라서 답변이 달라지기도 하지만 감정이 굉장히 달라진다는 것을 느꼈다. 질문을 잘하는 것은 대답을 잘하는 것만큼이나 중요하다. 창작만큼이나 중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김지수의 인터스텔라'라는 시리즈를 연재하는 조선일보의 김지수 인터뷰 전문 기자분이 인터뷰를 굉장히 잘하는 분이라고 생각한다. 그분과 인터뷰할 때 녹음을 안 하고 현장에서 써서 정말 놀라웠다. 그런데 나중에 발행된 글을 보니 내가 했던 말이 그대로 쓰여있었다. 자기가 생각하는 키워드만 적어두면 나중에 다시 재현이 된다고. 또 굉장히 많이 준비된 질문인 것이 느껴졌다.
질문하는 사람은 자신이 잘나 보이면 안 된다. 그러면 독자가 불편하다. 질문자가 아무도 안 읽어봤을 것 같은 어려운 책을 거론하면, 인터뷰하는 사람은 그 책을 읽었을지 모르겠지만, 그 책을 모르는 독자는 불편함을 느낀다. 지적 허세가 섞이는 것에 대해 불쾌함을 느끼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똑같은 질문을 해도 인터뷰어가 자신을 낮추면 불편함이 없다. 그런 게 질문하는 사람의 지혜다.
은: 나도 인터뷰 녹음을 내가 직접 듣고 풀려고 한다. 어시스턴트에게 맡겨도 되지만 내가 직접 들으면서 타이핑했을 때 어떤 게 내용이 핵심이고, 어떤 내용이 핵심이 아닌지 생각이 정리된다. 그래서 에디터들에게도 녹취는 직접 푸는 게 좋다고 이야기한다. 글 쓰는 행위는 핵심을 파악하기 위한 자신의 루틴이라는 생각이 든다. 어떤 걸 버리고 취해야 하는지에 대한 지혜가 필요하다.
조: covid 이후 출장을 못 가게 되고, 화상 인터뷰도 이상하지 않게 되었다. 현지 포토그래퍼와 일을 하거나 지금까지 쌓아놓은 각 나라의 통신원과 연락하며 작업한다. 예전이었으면 불편했을 텐데 지금은 오히려 더 편하다. 나만 하더라도 원격으로 회의를 하는 것이 처음에는 어색하다가, 어느 순간부터 편하다는 느낌이 들더라. 시대적으로 상황이 변해서 조금 더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된 것이다. 물론 만나는 것보다는 덜하지만, 이동의 시간도 없으니 유리한 점도 있는 것 같다. 비용도 많이 줄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적절하게 세상이 좋아지면 직접 가는 게 더 좋다고 생각한다. 직접 방문했을 때 오는 느낌이 다르기 때문이다. 이제까지 늘 실제로 가서 현장을 보고 느끼고 직접 만나서 대화하는 게 그 어느 잡지보다도 중요했다. 우리가 좋은 퀄리티의 콘텐츠를 만들 수 있는 이유가 거기에 있었다. 스노우피크 에디션을 만들 땐 본사에 직접 갔었는데 거기 분들과 저녁도 같이 먹고, 동네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도 보여주고, 사진작가와 함께 가서 틈틈이 얘기했다. 그게 애정으로 연결되며 콘텐츠가 완성되는 것이다. 그랬기 때문에 제작 비용이 많이 드는 잡지이기도 했다.
은: 편집부에서는 처음에는 너무나 패닉 상태였고 어떻게 해야 하냐는 고민도 많았다. 우리가 지속할 수 있는 잡지를 만들어온 건가 질문했었다. 그런데 오히려 큰 기회였다고 생각한다. 에디터들과 항상 전쟁과도 같은 시간을 보내다가 "매거진 B는 대체 무슨 이야기를 할 수 있는 매체지?" "매거진 B 말고 다른 매체를 하는 것이 맞을까?" "그동안 뭘 해보고 싶었어?"라고 서로 이야기할 수 있는 시간이 생겼고, 그걸 기반으로 확장할 수 있는 토양이 생겼다.
조: 브랜드에 대한 업데이트는 주기적으로 하겠다고 마음먹었다. 서울 편을 다시 발행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업데이트가 꼭 필요한 것은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원래 나오는 단행본이 절판되면 영원히 못 구하는 게 맞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업데이트해서 다시 발행하는 게 낫겠다고 생각한다.
서울 편은 고민 되게 많이 한 호다. 책등이 원래 검은색인데 업데이트판은 약간 더 밝은 회색이다. 기존 매거진과 나란히 꽂으면 검은색보다 조금 밝다. 그렇게 계획한 것이다. 지금은 세컨 에디션이지만 3호, 4호, 5호, 6호가 나올 수 있고, 그들도 모음이 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책등이 모여졌을 때 전체 씬이 그라데이션처럼 되는 것을 구상했다. 모두 검은색이면 헷갈리니까.
조: 나름 고민을 많이 하고 있다. 세컨 에디션에 대한 고민들, B캐스트처럼 음성에 대한 것들도 계속 고민하다 나왔던 레퍼런스였고, 직업이라는 것도 매거진 B에서는 품지 못했던 것이지만 하고 싶었던 것이다.
하지만 일단 지금은 이 포맷으로 조금 더 밀어붙여도 된다고 생각하고, 당장은 변화에 대해 생각하고 있지 않다. 아직 다루고 싶은 브랜드가 너무 많다. 개인적으로는 직업을 다루는 단행본에 대한 애착이 있고, 내용이 좋다고 생각한다. 브랜드는 결국 어떻게 살고 있는가에 대한 이야기고, 그것은 직업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해서, 매거진 B를 좋아하는 많은 팬들의 고민과 겹쳐 있다고 생각한다. 브랜드가 궁금하고, 직업이 궁금하고, 내가 궁금하고.
조: 표지로 그 브랜드를 정말 잘 표현하지만 막상 그 브랜드가 자신의 대표 이미지로는 쓰지 않을 것 같은 것을 선택한다. 예를 들어 포르셰의 경우, 옛날 포르셰를 수리하는 것을 찍은 스크린샷을 표지로 선택했다. 포르셰가 포르셰를 소개하는 책에 그런 이미지를 쓸 리 없다. 최신 포르셰, 멋있는 포르셰가 많이 있을 테니까. 그 브랜드스럽지만 너무 그렇지는 않은 이미지를 가져가고 싶고, 그게 B스러움의 연장선상이라고 본다. 아주 묘한 부분이긴 하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표지는 메종 마르지엘라다. 대부분 사진으로 끝내는데 그 호는 그래픽으로 풀작업을 했다. 메종 마르지엘라가 했던 해체주의의 생각을 담아서 책 내부를 관통한 것처럼 표현했었다.
아무래도 표지를 찍는 사진작가의 캐릭터가 조금씩 다르다 보니 호수에 맞게 작가가 선정된다. 이미지의 이미지가 이어져야 한다는 원칙을 갖고 있진 않다.
조: 전체적으로는 다큐멘터리라는 형식을 띄고 있어서 그렇게 느끼는 것 같다. 매거진 B를 보면 처음에는 사진으로 시작했다가, 인트로에서 뭔가 재밌는 이야기로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고, 중간에 누군가의 인터뷰에서 가장 중요한 핵심 이야기가 나오고, 사전적으로 브랜드를 정의하는 것으로 끝난다. 조금만 집중력이 있으면 앉은자리에서 인터뷰까지는 읽을 수 있다.
우리의 의도를 짧게 전달하고, 사진으로 보여주고, 인터뷰로 보여주고, 마지막에 팩트를 전달한다. 이런 흐름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많은 분들이 "왜 온라인으로는 안 해요?"라고 이야기하는데, 예전부터 기사가 클립으로 잘리는 순간이 어쩐지 서운했다. 순서대로 보면 좋을 텐데, 이것도 보면 좋을 텐데. 그래도 온라인에서 서비스가 어느 정도 갖춰지는 게 좋다고 생각해서 지금은 기사를 클립으로 제공하고 있다.
원래 처음 나오는 발행인의 글을 꽤 오래 썼다. 잡지에서 발행인의 글, 편집인의 글을 읽는 사람은 정말 없다. 대부분은 안 읽을 글이기 때문에 그걸 읽는 사람은 정말 교감하고 있는 수준이라고 생각해서 그 글에 애착이 많았다. 그 글만으로도 '읽어야겠다'라고 생각하게 만들고 싶기도 했다. 그런데 매번 쓰는 게 힘들기도 했다. 지금은 편집장님이 저보다 더 잘 써주고 계신다.
조: 나는 괴로워서 달래야 할 정도는 아니다. '내가 반드시 집착해야 하는 것'과 '그러면 안 되는 것' '그럴 필요 없는 것'을 직원으로서 구분하는 편이다. 카카오의 대표 이사지만 나도 직원이다. 카카오 창업자 분도 계시고, 많은 이해 당사자가 있기 때문에 내 멋대로 할 수는 없다. 조수용이라는 사람이 해야 하는 역할과 책임을 명확하게 하고, 거기에 있어서는 시간을 말도 안 되게 많이 쏟지만, 그렇게 하지 않아도 되는 것에는 집착하고 실망하지 않는다.
성향이 디자인을 좋아하고 아름다움을 좋아하지만, 그렇지 않은 것을 보면서 괴로워하지 않는다. 회사의 운명이자, 팔자이자, 브랜드다. 그 자체를 인정해야 한다.
내가 많이 하는 이야기가 있다. 카카오에 처음 갔는데 회의실에 있는 의자 뒷다리에 연두색 테니스공이 박혀 있었다. 끌려다닐 때 자국 나지 말라고. 지금 시대가 언제인데. 당연히 미관상도 좋지 않고, 누군가에게는 테러 수준이다. 그런데 그동안 아무도 불만이 없었다. 왜 그렇게 했냐고 총무팀에 물어보니 의자를 끌 때 타일이 벗겨져서 그렇게 테니스공을 박으니 괜찮더라고 답했다. 나는 그런 일은 충분히 감내할 수 있다. 그런 것에 스트레스받지 않는다. 나쁘다, 좋다가 아니라 그렇게 하는 게 '괜찮다'. 그렇게 하는 직원이 오히려 기특해 보일 수도 있고. 그게 회사의 컬처이자 본질이기 때문에 한심하게 보면 한도 끝도 없지만, 좋게 보면 귀여울 수도 있는 것이다. '이 시대를 장악하는 카카오에 이런 풋풋한 면이라니!'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조: 예전에 식당도 경영했던 적 있다. 셰프나 홀에서 서비스하는 친구를 만났을 때도 그렇고, 건축하는 친구를 만났을 때도 그렇고, 누가 하라고 해서 하는 게 아니라 자신의 마음대로 할 수 있다면 하고 싶은 게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했다. 그래서 이런 팀이 꾸려졌는지도 모르겠다. 어떻게 보면 복이 많다. 내가 노력을 해서 된 것은 아니다.
굳이 돌아보면 내가 하고 싶은 방향보다는 잡지를 만들어온 사람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방향으로 가기를 바랐다. 그걸 가장 바랐고, 이뤄졌던 것 같다. 발행인이 생각하는 방향이 있는데 그걸 이뤄내는 사람을 모은 게 아니라, 편집팀이 다 만들고 나는 방향에 대한 지시와 직언만 했던 것이다. 그래서 적은 인원으로 잘 만들지 않았나 생각한다.
잡지는 첫 번째 키워드는 ‘관점’인 것 같고, 두 번째는 ‘꾸준한&정기적인’인 것 같다. 두 가지만 있으면 뭐든지 미디어라고 부를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꼭 종이에 찍어서 만들지 않아도 관점이 일관되고, 그 관점으로 무언가가 꾸준히 나오고 있다면 그건 미디어다.
왜 사냐고 물으면 우리는 "열심히 해서 돈 벌어야죠"라고 이야기하고 추상적인 것은 그다음인데, 이 브랜드들은 아름다움에 대한 집착이 컸다. 어떻게 보면 사치스러운 이야기다. 먹고살아야 하는데 아름다움이라니. 그런데 잘 보면 그 집착으로 사업을 일궈서 번성하고 있다.
미디어가 10년을 관통했다는 건 특이한 사건인 게 분명하다. 이 시대에 적응을 안 한 채로 버텼다는 것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매거진이 매달 나오는 게 좋지만, 매거진 B에서 일하는 분들이 그것 외에도 더 하고 싶은 것을 추구하는 여유를 가지면 좋겠다. 그게 자연인 조수용이라는 사람의 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