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CAREER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글쓰는 개연성 Oct 31. 2023

착한 사람의 문제점

일드 이직의 마왕님 후기


최근 회사 때문에 우는 낯선 사람을 위로할 일이 두 번이나 있었다. 둘 모두 주위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고 싶은데 그러지 못해 힘들어하고 있었다. 선한 의도 때문에 오히려 고통받는 것을 보면서 마음이 아팠다.


그들에게 왓차에서 볼 수 있는 일드 <이직의 마왕님>을 추천했다. 나도 보면서 여러 번 울었던, 일과 삶에 대해 따뜻하면서도 날카로운 메시지를 가진 드라마다. 직장 때문에 고통받는 사람들이 모두 이 드라마를 꼭 봤으면 좋겠다.




주인공인 회사원 치하루의 관계 키워드는 ‘필요’. 자신을 필요로 하는 사람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하여 매 순간 최선을 다하지만, 거기에 자신의 안위는 없다.


자신의 욕구나 본심은 감추고 항상 상대에게 맞추다, 결국 2년 반 동안의 직장 생활에서 갑질당하고, 상사에 대한 트라우마를 얻고, 사고로 미각까지 잃게 된다.


재취업을 준비하면서도 치하루의 마음가짐은 변하지 않는다. '이전 회사에서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 내가 한심하다. 내가 뭘 하고 싶은지 모르겠지만, 나를 필요로 하는 회사에 가서 최선을 다하고 싶다. 엄마 아빠의 기대에 부응하고 싶다.'


그런 마음가짐의 치하루에게 이직 에이전시의 커리어 어드바이저 쿠루스는 이렇게 묻는다.

“당신, 정말 그렇게 살아도 괜찮겠습니까?”

“그래요, 이게 내가 원하는 삶이에요” 치하루가 답하고.

쿠루스는 끝까지 본심을 말하지 않는 치하루를 보며 그녀의 마음을 부수기로 결심한다.


이직 면접 당일 쿠루스는 치하루를 전 직장에 데리고 간다. 자신의 기획안이 자기가 없어도 광고로 완성되어 상까지 탄걸 보고, 상사에게서 또 다시 모욕적인 말을 들은 치하루는 순간적으로 차도에 뛰어들려고 한다.


그때 나타난 쿠루스에게 치하루는 “왜 나에게 이런 행동을 하냐”고 울부짖는다.

쿠루스는 “내가 밉습니까? 그러면 나를 밀어버리세요”라고 말하며 차도에 선다. 치하루가 밀면 쿠루스는 차에 치여 죽을지도 모르는 일촉 즉발의 상황.



그러나 치하루는 결국 그렇게 하지 못한다.

대신 자신을 바꾸기로 한다.

이대로는 어느 회사를 가도 마찬가지일거라고, 이용만 되다가 버려질거라는 쿠루스의 말을 듣고,

변하고 싶다고 생각하게 된 것이다.




착한 사람들의 문제는 자신의 안위를 너무나 소홀히 여긴다는 것이다.

그러나 자신을 바꿀 생각을 하지 않는다. 아니 하지 못한다. 변하는 건 용기가 필요한 일이니까. 너무 큰 고통을 받을 때까지는.


고통은 치유로 가는 가장 직접적인 길이다. 지금까지의 내가 부서지고 나면 새로운 나로 가는 길이 보인다.


자신을 희생하면서 남을 위하는 것은 미덕이 아니다.

그건 죄악이다.

자신의 한 번 뿐인 삶을 타인의 눈치를 보느라 낭비하는 것이고, 타인에게 그릇된 자비를 베푸는 것이다.


치하루가 상사의 기대에 부응하려고 매번 최선을 다했기 때문에, 상사가 계속해서 갑질할 수 있었던 것이다.

치하루가 부모님의 기대에 부응하려고 매번 최선을 다했기 때문에, 그녀의 부모는 딸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고 돌볼 수 없었던 것이다. 부모로서 성장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릇된 자비는 자신을 비롯한 모두를 더 나쁜 길로 이끈다.




만약 타인을 구하는 방법이 그/그녀에게 고통을 주는 방법 뿐이라면 나는 그렇게 할 수 있을까?

상대의 마음을 부수고, 새로운 길을 보게 할 수 있을까?


고통이 심할 때 자신을 부수는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타인을 원망하고 탓한다. 자신을 바꾸는 대신 자신에게 고통을 준 상대를 죽이고 싶다고 생각한다. 인간은 나약하기 때문에 자신이 틀림을 받아들이는 것보다 타인을 원망하는 게 더 쉽다.


일부러 원한을 살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그렇게 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다만 내가 바라는 게 있다면, 누군가 나를 부수려고 할 때에 그것이 나의 삶을 더 나아지게 하는 것이라면, 기꺼이 진실을 직면하고 부서질 용기를 갖게 되기를.

부서질 각오를 할만큼 나의 삶을 사랑하기를.


그렇게 살다보면 의도하지 않아도 타인에게 영향을 미치고,

의도하지 않아도 진실을 직면하지 못하는 사람에게 고통을 주게 될 것이다.


나를 죽이지 못하는 고통은 나를 강하게 한다고, 부서질 때는 너무나 아팠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면 좋은 의도를 가지고 나를 부순 사람들에게 감사하다. 다만 감사한 마음은 나 혼자 간직하고 상대방에게 알리지는 않을 것 같다. 내가 나의 본심을 알았다면, 덕분에 스스로를 구원할 수 있었다면 그걸로 됐다. 아마 상대방도 그걸 원할 것이다. 자신이 부서질 각오를 하고 상대방을 부수는 누군가의 의도는 그토록 숭고한 것이다.


타인을 부수려면, 자신이 부서질 각오를 해야 한다.
차도에서 "나를 밀어버리세요"라고 말하는 쿠루스처럼.





함께 읽으면 좋은 글


촌스러운 사람들은 어디로 갔을까


일주일 내내 야근을 했다


매거진의 이전글 이직하고 5개월 만에 두 번째 퇴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