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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개연성 Apr 12. 2019

일주일 내내 야근을 했다

이번 주는 일주일 내내 야근을 했다. 사회생활을 시작하고서 처음 있는 일이다. 최근 몇 주 동안 계속 야근이 잦았던 것은 사실이지만, 내내 야근을 한 것은 처음이다. 일주일의 마지막 날인 금요일에 급하게 적는 이번 주의 소회다.



1. 사람들이 왜 워라밸에 집착하는지 알겠다


삼일 연속 야근하고 나니 스스로가 피폐해진 것이 느껴졌다. 방금 거울을 봤는데 다크서클도 장난 아니다. 야근 때문에 저녁 약속도 모두 캔슬해야 했고, 밤에 집에 도착하면 바로 씻고 잠이 들어서 '내 시간'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사실 이전 회사는 '야근 없는 스타트업'이었기에 야근할 일이 거의 없었다. 지금 회사로 옮기면서 야근이 많으리란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 정도야 하면 되지'라고 가볍게 생각했었다. 그 당시의 나는 실력적으로 성장하는 것이 더 우선이었기 때문에 일을 몇 시간 하는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그런데 실제로 엄청난 야근을 경험하고 나니, 사람들이 왜 워라밸에 집착하는지 알 것 같다. 사람이 피폐해진다. 며칠 사이에 이전의 활기찬 나의 모습은 온데간데 없어진 것이 그 증거이다.



2. 야근을 한다고 생산성이 좋아지진 않는다


더 큰 문제는 이건데, 늦게까지 일 한다고 해서 생산성이 더 좋아지진 않는 것 같다. 저녁을 먹고 오면 일에 도저히 집중이 안된다. 퇴근 시간인 오후 6시까지가 일에 집중할 수 있는 한계인가 싶을 만큼 그 이후의 집중력은 현저히 떨어진다. (사람의 하루 집중력이 8시간으로 정해져 있는 것도 아닐 텐데 왜?)


사실 가장 좋은 건 근무 시간에 효율적으로 일하는 것일 테다. 실제로 내가 아는 조직 문화가 앞서가는 스타트업에서는 생산성의 이유로 야근을 지양하기도 한다. "높은 생산성을 유지하기 위해 야근 대신 충분한 수면을 취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근무 시간 중에 효율적으로 일해서 야근하지 않을 수 있을까? 내가 너무 많은 업무 로드에 힘들어하자 마케터인 친구 JannaBanana가 협업 툴 트렐로Trello를 추천해줘서 이번 주부터 사용해봤는데, 확실히 정리해가며 일을 하니 스트레스도 덜 받고 일도 더 효율적으로 할 수 있었다. (나처럼 업무를 정리하는 데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면 트렐로 사용을 강추한다. 직관적이라서 사용하기도 쉽다.)



3. 주니어로서 겪는 어려움에 대하여


생산성 도구를 사용하는 것 외에도 중간중간 휴식을 취한다던지, 업무 프로세스를 만든다던지 업무의 효율성을 높이는 다양한 방법이 있겠지만, 아무래도 근본적인 해결책은 내가 더 일을 잘하는 사람이 되는 것 같다. 아직 컨설턴트로서 일을 시작한 지가 얼마 되지 않아서 스스로가 많이 서투르다고 느낀다. 그리고 사실 야근 자체보다도 이런 스스로의 모자람을 느끼는 것이 이번 주 내내 나를 괴롭힌 요인이었다.


빠르게 가는 길은 없다고, 초반에는 누구나 이런 좌충우돌을 겪을 거라고 스스로를 위로해봐도 우울하긴 마찬가지였다. 아침에 출근하기 싫었던 건 업무가 싫어서도, 회사 동료가 싫어서도 아니고 출근하고 나서 하루 종일 고생하고 또 야근을 해야 하는 스스로의 모습이 상상되어서였다.


스타트업, 인하우스에서 에이전시로. 몸 담고 있는 환경이 급변한 것도 내가 어려움을 겪는 요인이다. 에이전시에서는 옷차림부터 파트너사를 대하는 것까지, 어느 것 하나 이전과 같은 것이 없었다. 이전에는 매일 편하게 입고 다녔는데 이제는 아침마다 옷차림도 신경 써야 하고, 클라이언트를 대하는 건 또 어찌나 스킬이 필요한지.


정말 애쓰고 있었는데 커뮤니케이션하는 과정에서 영문도 모른 채 혼나고 푸대접받은 날에는, 너무 속상해서 화장실에서 엉엉 울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내가 컨설턴트라는 직함과 맞지 않나?'라는 생각도 들었다. 콘텐츠 에디터가 열심히 콘텐츠를 만들고 그 과정을 즐기는 것으로 족했다면, 컨설턴트는 그것을 '엣지 있게' 보여주고 '명확하게' 커뮤니케이션할 줄 알아야 했다. 그런 것을 하기에 나는 너무 말랑말랑한 사람이 아닌가.


이런 생각을 하다가도 내가 가장 좋아하는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의 한 장면이 떠오르기도 했다. 영화에서 유명 잡지사 런웨이에 입사한 앤디는 옷차림이나 외모 때문에 (촌스럽게 입고 66 사이즈라는 이유로) 어딜 가도 무시당하고, 그런 업계와 업계의 사람들에 분노한다. 어느 날 그녀의 상사인 편집장 미란다에 대한 분노가 폭발해 그나마 그녀에게 호의적이었던 스타일링 디렉터 나이젤에게 가서 불만을 털어놓는데, 그때 나이젤이 앤디에게 한 일침이 압권이다.


앤디: 그녀는 나를 싫어해, 나이젤.


나이젤: 그건 내 문제가 아닌데.


앤디: (무시하고) 내가 여기서 뭐를 더 할 수 있을지 모르겠어. 내가 뭔가 제대로 하면 알아차리지조차 못해. 고맙다는 말조차도 안 한다고. 그런데 내가 뭔가 잘못하면, 바로 악마로 변해.


나이젤: 그럼 그만둬.


앤디: 뭐?


나이젤: 그만둬.


앤디: 그만두라고?


나이젤: 네 직업을 대신할 다른 여자애를 5분 안에 구할 수 있어. 심지어 이 일을 정말 원하는 애로.


앤디: 아니, 그만두고 싶지는 않아. 그건 공평하지 않아.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은, 알잖아, 그냥 조금 더 존중받기를 바란다고.. 내가 이렇게 죽도록 노력하는 것에 대해서 말이야.


나이젤: 앤디, 장난치지 마. 너는 노력하고 있지 않아. 너는 찡찡대고 있지. 내가 무슨 말을 하기를 기대해? 내가 "불쌍한 앤디, 미란다가 너를 괴롭히는구나. 불쌍한 앤디, 불쌍한 앤디"라고 하기를 바라? 미란다는 그냥 자기 일을 하는 거야. 네가 세기의 예술가를 만들었던 곳에서 일하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겠어? 핼스튼, 칼 라거펠트, 오스카르 데라렌타. 그들이 한 것, 그들이 창조한 것은 예술보다 더 대단한 거야. 우린 지금 그들의 영향력 안에 살고 있거든. 음, 물론 너는 예외인 것 같지만. 넌 이게 그냥 잡지 같지? 이건 '그냥 잡지'가 아니야. 이건 빛나는 희망의 상징.. 뭐랄까.. 그래. 여섯 형제와 함께 작은 섬에서 자란 소년이, 축구 연습에 가는 척하면서 사실은 바느질 수업에 가고, 밤새도록 몰래 손전등 빛으로 런웨이 매거진을 읽는다고 생각해봐. 넌 얼마나 많은 레전드가 이 매체를 지나쳐갔는지 모르지. 그리고 더 끔찍한 건, 넌 신경도 안 써.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간절히 원하는 이 일을 너는 그냥 '버티기 위해' 하기 때문이지. 그리고 지금은 왜 미란다가 네 이마에 키스하고, 일과의 마지막에 네 이름표에 금색 별 스티커를 붙여주지 않는지 궁금하다고. 이쁜아, 꿈 깨.


"Wake up, sweetheart"하며 펜으로 앤디의 머리를 콕 찌르는데 그게 참 다정하면서 잔인하다.


사실 이 장면은 영화를 통틀어 (미란다가 앤디한테 일침 하는 장면과 함께 - 이건 워낙 유명한 장면이라 다들 알 것이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장면이다. 미란다가 이 말을 듣고 충격을 받은 것이 업무를 대하는 태도를 바꾸고, 결국 미란다에게 제대로 인정받게 되는 터닝포인트가 되기 때문이다. 나이젤의 말처럼 이전까지는 그저 '버티기 위해' 했다면, 이 일침을 기점으로 그녀는 이 업계를 더 이상 비웃지 않고 업계의 일부가 되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하고 공부한다. 그런 그녀의 노력이 인정받는 과정이 어찌 통쾌하지 않겠는가(이 영화의 결말을 생각하면 더더욱 그렇다).


어쩌면 나 역시 이전 업계에서의 기준으로 새로운 회사를 판단하고, 그저 '버티고 있었던' 것은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나에게도 누군가의 일침이 필요한 것이 아닐까? 아니, 혹시 그렇다고 해도 그 순간이 지금은 아니다. 일단 이번 주는 집에 가서 푹 쉬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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