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CAREER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글쓰는 개연성 Mar 10. 2019

카피라이팅과 퍼스널 브랜딩

 



시작은 우연이었다. 설 연휴 직전의 출근일, 연휴 동안 읽을 책을 회사의 책장에서 가져갔다. 그 책이 탁정언의 <기획의 99%는 컨셉이다>였다. 아무 생각 없이 가져간 책이었는데 결과적으로 영감을 정말 많이 얻었다. 그리고 카피라이팅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카피를 쓰는 것에 대해 이전부터 관심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콘텐츠를 제작하고 발행하려면 카피를 쓸 일이 많다보니), 카피 쓰기에 대해 어렵다고 느끼면서도 진지하게 고민해본 적은 없다. 왜 그랬나 돌이켜보면 그런 일에는 어느 정도 타고난 감이 작용하지 않을까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런데 탁정언의 <기획의 99%는 컨셉이다>을 읽으며 카피라이팅에 법칙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법칙의 바탕에는 '컨셉'이 있었다.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언어화’에 대한 것이었다. 일단 컨셉을 발견하고 나면 그것을 언어화해야 한다. 그 언어는 누구나 이해하기 쉬운 것이면서, 동시에 새롭다는 느낌이 들어야 한다. 어려운 언어를 쓴 카피, 진부한 컨셉은 사람들을 설득할 수 없다. 하지만 쉬운 언어를 쓰면서도 새로운 컨셉을 전달한다면 사람들은 저절로 거기에 이끌릴 것이다.


이에 동의가 되면서 한편으로 좀 놀란 것이, 내가 대학교 때 썼던 본의 아니게 히트친 글이 내가 글을 잘 써서가 아니라 컨셉을 잘 도출해서였다는 것을 깨달아서다. 예를 들어 <라이언 신드롬>은 20대를 눈물 위에서 울고 있는 라이온에 비유했고, <한국 사람들은 어떻게 다들 옷을 잘 입을까?>는 개개인의 다양성을 마카롱에 비유했다. 그 시절 이후 그렇게 좋은 글을 못 쓰는 건 내 글쓰기 실력이 나아지지 않아서가 아니라 그냥 일을 시작하고 바빠져서 새로운 컨셉이나 인사이트를 도출해낼만큼 고민할 시간이 없었기 때문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안도가 되기도, 씁쓸하기도 했다.)




내가 카피라이팅에 대해 다시 생각한 것은 어제 친구와 오랜만에 가진 술자리에서였다. 우리는 SNS와 실제와의 괴리에 대해 이야기했다. 친구는, 자신이 오프라인에서 만나면 매력적인 사람인데 SNS에서 보여지는 자신은 그렇지 않다는 게 고민 아닌 고민이었다. 너무 공감된 것이 나 역시 완전히 같은 고민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솔직히 인기가 없는 것 자체가 문제라기보다는 내가 스스로 보고 있는 나의 모습이 사실은 틀렸을수도 있겠다는 것이 문제였다. 내가 생각하는 매력들, 장점들. 그런 것이 단지 내 착각이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문득 들 때가 있다.


그런데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그 친구는 내가 보기에 틀림없이 매력적인 사람이기 때문이다. 이건 SNS 팔로워, 좋아요 숫자와 전혀 상관 없이 ‘너무나 명백한’ 사실이었다. 반면 나는 온라인에서 유명한데 실제로는 그정도로 매력적이지 않은 사람도 많이 알고 있다. 사실 나는 한참 전부터 디지털에서 보여지는 것과 실제와는 거의 연관이 없다고 믿고 있다. 온라인에서 자신을 잘 보여주는 것은 사실 별개의 능력이다. 그런 능력은 타고났을 수도, 연습한 것일수도 있다(이 능력을 ‘퍼스널 브랜딩 능력’이라고 하겠다). 나는 그 능력에 나름의 리스펙트를 갖고 있는데, 자기를 지속해서 어떤 방식으로 잘 보여주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종종, 아니 자주 실제보다 자신을 보여주지 못하는 사람들이 그것에 대해 고민하고 자존감이 떨어질 때, 혹은 그가 지닌 가치만큼 인정받지 못할 때 조금 슬프다. 물론 자기의 가치를 SNS에서의 인기로 판단하기는 너무 쉽다. 수치로 바로바로 드러나기 때문이다. 친구가 좋아요를 200개 받았는데, 내 글이 좋아요를 하나도 못 받으면 위축된다. 하지만 사실 그건 글의 문제라기보다는 퍼스널 브랜딩의 문제일 가능성이 크다.


컨셉에서 중요한 것은 ‘언어화’다. 아무리 좋은 컨셉을 발견했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적절한 언어로 옮겨 사람들에게 전달하지 않는다면 끝내 알려지지 않는다. 어쩌면 온라인에서 실제보다 자신의 가치를 드러내지 못하는 사람들은, 자기라는 컨셉을 언어화할 방법을 찾지 못해서일 수도 있다. 마치 어떤 상품이 굉장히 좋은 상품인데 카피를 잘 못 써서 알려지지 못하고 조용히 사라지는 것처럼 말이다. 모르긴 몰라도 이런 상품이 정말 많지 않을까?


물론 퍼스널 브랜딩이 잘 되기 위해서는 실제로 그 사람에게 어떤 매력과 장점이 있어야 할 것이다. 아무리 카피라이터의 능력이 뛰어나도 상품이 별로면 팔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그런데 내가 보기엔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장점을 언어화하지 못해서 그런 것을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타인의 장점을 잘 발견하는 것이 내가 생각하는 나의 가장 큰 장점이다. 최근 생긴 목표는 내가 발견한 타인의 장점을 어떤 방식으로든 표현해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것이다. 내가 생각하기에 멋진 사람이, 그 스스로도 자신이 멋진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자신을 마음껏 뽐낼 수 있다면 좋겠다. 이런 생각을 하면 가슴이 뛰는데, 그건 아마도 내가 인터뷰하는 것을 좋아하는 것과 같은 맥락일 것 같다. 숨겨진 혹은 외면되었던 가치를 발견하고 드러내는 것은 얼마나 의미있는 일인지! 그래서 브랜딩 공부도 카피라이팅 공부도 재미있다. 그리고 그 대상이 상품이나 서비스가 아닌 사람이 된다면 정말 멋질 것 같다.




보여지는 것을 얼마나 신뢰해야할까? 전부 사실은 아니고, 전부 거짓도 아니다. 넷플릭스 블랙미러 시리즈 중 이런 괴리를 잘 보여준 <시즌 3-1. 추락>.


매거진의 이전글 이직할 때 참고한 글 리스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