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 이직을 경험하며 한 생각 중 쓸데없지만 기록해두고 싶은 것들.
작년 12월 28일이 마지막 근무일이었는데, 그 날은 마침 회사 전체의 송년회가 있는 날이었다. 그래서 오전 근무만 하고 다른 직원들과 함께 강남의 한 브루잉 술집으로 향했다.
이직은 여러모로 껄끄럽다. 이유야 어찌됐든 소속해있었던 곳을 자발적으로 나가는 것이고, 내가 나감으로 인해 팀에 많든 적든 피해를 입히는 것도 사실이기 때문이다. (물론 최대한 성실히 인수인계서를 작성하긴 했지만.) 그래서 나도 모르게 눈치를 많이 봤었나보다. 내 앞에 앉은 동료들이 웃으며 "긴장 좀 풀어요"라고 이야기했던 것을 보면 말이다.
송년회에서 점심 식사를 어느 정도 하고 나자, 대표님과 HR에서 한 명씩 불러 랜덤으로 번호를 뽑아 선물과 손편지를 전달하는 시간을 가졌다. 여러 랜덤 선물들을 준비해서 누가 어떤 것을 받아갈지 구경하는 것도 재밌었지만,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대표님의 손편지였다.
첫 커리어로 원티드를 선택해줘서 고맙습니다.
앞으로 가는 길에 멋진 동료와 경험들로 가득하길 기원할게요.
편지를 보고 대표님이 정말로 나의 앞으로의 커리어를 응원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덕분에 생애 첫 번째 이직이 아름다운 이별로 기억에 남을 것 같다. 고맙습니다.
이전 회사에 정이 많이 들었어서 퇴사하는 날 울 줄 알았는데 다행히 아무렇지도 않았다. 위에 언급한 왁자지껄한 송년회 분위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A님과 나는 들어온 시기도 비슷했지만 이직도 비슷한 시기에 했다. 다만 내가 일이주 정도 더 늦게 떠나기로 되어있었기 때문에 그녀가 가는 모습을 지켜봐야 했다. 마지막 출근날 DM으로 메시지를 받았는데(아마 팀원 한 명 한 명에게 메시지를 보낸 것 같다.) 그 메시지를 보고 무척 눈물이 나서, 나도 예상하지 못했던 상황에 깜짝 놀랐다. 왜냐하면 그렇게 친하거나 애틋한 사이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왜 이렇게 마음이 아플까?' 아마 나도 모르게 팀내에서 연차가 가장 많던 A님에게 많이 의지하고 있었나보다.
입사 동기라고 해봤자 나와 단지 비슷한 시기에 들어왔을 뿐, 경력도 직무도 달라서 상황이 다른 점도 많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기는, 단지 비슷한 시기에 입사해 모든 것이 낯선 처음의 순간부터 함께 적응하려고 노력한다는 이유만으로 심적으로 의지하고, 터놓게 되는 것 같다. 물론 그녀가 나와 같은 팀이어서 여러 우여곡절을 함께한 탓도 있을 것이다.
살면서 중요하게든 사소하게든 만나는 모든 사람들이 인연이지만 동기도 생각보다 중요한 인연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좋은 동기를 만나는 것도 복이다. 학교에서도, 직장에서도.
사실 나는 오지랖이 좀 넓은 편이다. 특히 타인의 장점을 잘 발견하는 편인데, 이것이 오지랖으로 발현되면 그 가치를 알아줄만한 타인과 연결해주려고 한다. 즉 주변 사람들에게 소개팅을 많이 주선한다. (과거에 태어났으면 중매쟁이가 되지 않았을까?) 이렇게 말하면 좋은 것처럼만 들리지만, 나의 시각이 너무 관대한 편이라 몇몇 친구들은 "더 이상 네가 주선하는 소개팅은 나가지 않겠다"고 선언했다(흥).
연결해주는 것을 좋아하는 오지랖은 HR 회사를 다니면서도 발휘되었다. 어떤 괜찮은 회사, 괜찮은 포지션을 발견할 때마다 친구들에게 적극적으로 추천해주는 식으로 말이다. '이 친구는 지금 회사보다 더 처우가 좋은 데를 다닐 수 있을 것 같은데'라는 의도 자체는 좋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막상 내가 이직할 때가 되자 남의 직장을 내멋대로 판단한 것이 실례였을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냐하면 당사자가 아닌 이상 회사의 실제 처우나 분위기, 그리고 그 속에서 상대방의 상황을 외부 사람이 정확히 알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것은 친구 A를 통해서였다. 나는 나와 비슷한 일을 하는 A가 더 좋은 대우를 받으며 일할 수 있다고 생각해 늘 안타까웠다. 그런데 이직하는 과정에서 A와 자주 회사에 대해 대화하면서 그녀의 회사를 재평가하게 되었다. 내가 지금 회사에서 느끼는 장점을 A의 회사가 갖고 있지 않은가 하면 단점을 A의 회사가 갖고 있었다. 이전까지는 내 직장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해본 적이 없어서 잘 알지 못한 것 뿐이었다. 그리고 처음으로 'A가 자기에게 잘 어울리는 곳을 선택해 갔구나'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어쩌면 각자에게 어울리는 직장은 따로 있나보다. 만약 그게 아니라고 생각하면 본인이 준비해 이직할 것이고 말이다(내가 한 것처럼). 역시 오지랖은 조금 자제해야겠다(라고 늘 결심하지만 잘 되진 않는다).
나는 바쁘게 일하는 것을 좋아하고, 늘 쉬고 싶다고 생각하면서도 막상 아무 것도 안 하면 불안해하는 스타일이다. 그래서일까? 돌이켜보면 지난 2년 동안 내내 쉬지 않고 일했다. 2017년에는 일 년 동안 세 곳에서 인턴을 했고, 2018년에는 상반기엔 학교를 다니며 회사를 출근했고, 하반기엔 졸업하고 바로 취업했으니 말이다. 무엇보다 인턴과 인턴 사이, 졸업과 취업 사이에 텀이 없었기 때문에 거의 쉰 날이 없다(2018년 초에 5주 동안 스페인 여행을 갔던 것 빼고는).
이번 이직도 마찬가지였다. 사실 좀 텀을 두고 싶었는데 어쩌다보니 딱 하루 쉬고 이직하게 되었다. 이전 회사에 12월 28일까지 근무하고, 다음 회사에 1월 2일부터 출근했으니 말이다. 말 그대로 전 회사에서 송년회를, 새 회사에서 시무식을 치뤘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나보다 오히려 주위 사람들이 더 '좀 쉬다 가지 그랬어'라며 안타까워했다. "너는 회사 옮길 때 잘 안 쉬더라"라는 말도 들었다.
물론 매번 어쩌다보니 이렇게 되어버린 것일 뿐, 나도 그러고 싶어서 그런 것이 아니다. 다만 쉬는 것을 별로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던 것은 사실이다. 아직 나이가 어리기 때문에 놀기보다 최대한 빨리, 많이 경험하고 싶다는 욕심이 있었다. 그래서 이전 회사에서는 매거진 일일 아르바이트를 하기 위해 휴가를 쓸 정도로 일 하는 것에 집착(?)했다.
그래도 막상 새로운 곳에서 일을 시작하고 나니까 아쉬운 마음이 든다. 그래서 미래에 두 번째 이직을 경험하게 된다면 꼭 한 달 이상 쉬어 가야겠다고 결심했다. 여행을 가거나 거창한 버킷리스트를 실현하기 위해서라기보다 새 회사에서 맡게 될 롤에 대해 공부하는 시간도 갖고, 평일에 빈둥거리는 여유도 만끽하고 싶어서다. 그때가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