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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개연성 Dec 14. 2017

초콜릿 상자 같은 인생

<내 이름은 김삼순> 김삼순 역 김선아



네이트 판에 '헤어진 다음날'이라는 게시판이 있다(줄여서 헤다판). 레전드 판 게시물이 올라오기로 유명한 결혼/시집/친정 게시판만큼이나 핫한 게시판인데,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결시친이 뜨거운 감자라면, 헤다판은 바닷물에 젖은 미역만큼이나 착 가라앉아 있다. 게시판 이름처럼 이별 직후의 충격과 고통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 사람들이 상주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그곳에 올라오는 게시물은 아래와 같은 네 종류로 분류할 수 있다.


1. 나를 떠난 사람 돌아올까요?

: 눈물 없인 못 보는 그(그녀)를 기다리는 글. 못났던 자신을 반성하는 구구절절한 자기고백을 볼 수 있다.


2. 이 XXX야

: 온갖 욕이 난무하는 글. 당연한 얘기지만 엄청 안 좋게 헤어진 경우가 많다.


3. 사랑 별 거 아니다

: "나 엄청 힘들었었는데 시간 지나고 보니까 사랑? 그거 아무것도 아니더라. 다들 파이팅!"


4.  연락 그거 진짜 오더라

: 헤어지고 몇 달 만에 연락 왔다는 간증 글. 연락이 와서 재회까지 한 사람인 경우 기운을 얻어가려는 사람들의 댓글들이 우르르 달린다.


특히 3번이나 4번 유형의 게시물은 인기가 많다. 사람이 너무 힘들면, 이런 데에서라도 실낱같은 희망을 얻어야 하는 법이다. 그 희망이 그 사람을 잊는 건지 아니면 그 사람과 재회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크리스마스만 다가오면 생각나는,
최악의 이별


나도 헤다판에 상주했던 적이 있다. 바야흐로 대학교 2학년 때다. 12월에 고백을 받고 사귀기 시작해서 한 달 정도 불같은 연애를 했다. 그런데 어느 날 그가 갑자기 나를 카페로 불러내더니 눈물을 뚝뚝 흘리는 거 아닌가.


저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어요.


우리는 그때까지 존댓말을 쓰는 사이였다. 나는 내 귀를 의심했다.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다고? 알고 보니 크리스마스이브에 같이 영화를 본다고 했던 그 친구를 좋아하게 됐단다. 여자이긴 하지만 백 프로 친구라고, 내가 걔보다 훨씬 예쁘다고 해서 의심조차 안 했었다.


계속 듣자 하니 그가 나에게 거짓말 한 건 아니었다. 정말 아무 감정도 없었는데, 영화를 본 그 날 모종의 계기를 통해 좋아지게 된 거란다. 나는 어이가 없었지만 눈 앞에서 상대방이 눈물을 뚝뚝 흘리고 있으니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어서 그냥 알겠다고 했다. 슬픈 건 난데 왜 지가 운담. 남들은 내가 썅년인 줄 알았을 거다.


나는 <내 이름은 김삼순>의 한 장면을 떠올렸다. 김삼순도 크리스마스 당일, 남자친구가 바람을 피는 것을 발견하고 황당한 이별을 하게 된다.


"날 사랑하긴 했니? 날 사랑하긴 한 거야?" (김삼순)


"사랑했다. 사랑했다, 볼이 통통한 여자애를. 세계 최고의 파티쉐가 되겠다고 파리 시내의 베이커리란 베이커리는 다 찾아다니던 여자애를 사랑했어. 꿈 많고 열정적이고 활기차고 항상 달콤한 냄새를 묻히고 다니는 여자애를 사랑했다. 그런데, 내 사랑이 여기까지 인데, 왜 여기 까지냐고 보채면 나 어떡해야 하니? 미안하다. 여기 까지라서." (민현우)

(말은 또 겁나 잘함)


그 뒤 한 달 동안 내 상태는 최악이었다. 거의 매일같이 울었고, 마음이 너무 아팠다. 그 여자의 이름을 알아내서 매일 SNS를 스토킹 했다. 그의 말처럼 (내 입으로 말하기는 민망하지만) 그녀보다 내가 훨씬 예뻤다. 하지만 그 사실은 나의 괴로움을 오히려 증폭시켰는데, 대체 이 여자의 매력이 뭘까 궁금해 미칠 지경이 되었던 것이다. SNS만 봐서는 결코 알 수 없었다. 엄청난 덕후인 것은 확실했다. 무언가에 열중하는 모습이 매력적이었던 걸까? 일코(일반인 코스프레) 중이어서 그렇지 사실 나도 만만치 않은데..



그러다 하루는 학교 앞 버스정거장에서 그 여자를 딱 마주쳤다! 물론 그녀는 나를 못 알아봤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매일 그녀의 SNS를 스토킹 했기 때문에)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나는 다가가서 "저기요, OO 씨 아시죠? (의미심장한 웃음을 지으며) 제가 전 여자 친구인데요, 얘기 들었어요."라고 말 걸고 싶었지만 잘 참았다. 만약 그런 행동을 했다간 진짜 미친 X처럼 보였을 것이다.


곧 헤다판에 상주하며 나는 4번 유형의 글, 그러니까 연락이 와서 재회했다는 간증 글을 찾는 것에 몰두하는 나를 발견했다. 어쨌든 자기 발로 나를 떠난 사람이기 때문에 자기 발로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생각보다 많은 남자들이 헤어짐 약 한 달 후에 후폭풍이 와서 전 여자 친구에게 연락하는 듯했다. 그때까지는 절대 연락을 먼저 하면 안 된다는 것이 많은 이별 동지들의 조언이었다. 만약 그리움을 참지 못하고 먼저 연락한다면 십중팔구 '역시 얘는 나 없으면 안 되는구나'라고 생각한다고. 남자란 오만한 생명체라고 생각했다. 아무튼 나는 아주 잘 참았다. 그리고 한 달 정도 지난 어느 날, 드디어 전 남자 친구로부터 카톡이 왔다.


저 그 사람이랑 사귀게 됐어요.


아.


끝났구나.


나는 '네네'라고 답장을 보내려다 생각을 고쳐먹고 '네'라고 답장을 보냈다. 그 뒤로 우리는 다신 연락하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헤다판에 들어가는 것을 그만두었다.



이별에 대처하는 5번째 방법


유난히 추운 겨울이었다. 그리고 돌아온 봄은 유난히 따뜻하고 화사했다. 나는 동아리 단톡 방에서 정치대담회를 같이 보러 갈 사람을 찾고 있었는데, 어떤 사람에게서 자기도 가고 싶었던 거라며 카톡이 왔다. 얼굴이 하얗고 찹쌀떡 같은 사람이었다. 나보다 나이가 많았지만 웃는 얼굴이 꼭 어린아이 같았다. 웃을 때는 원래도 작은 눈이 더 가느다래 졌는데, 그 웃는 눈이 보기 좋았다. 나도 그와 있으면 자꾸 웃게 됐다. 우리는 연애를 시작했다. 불같은 연애는 아니었지만 편하고 유쾌한 연애였다. 마치 찹쌀떡처럼 말랑말랑했다.


깜빡하고 말하지 않은 게 있는데, 그 전 남자 친구는 개 사이코 혹은 변태였다. 디테일하게 말하면 프라이버시 침해일 것 같아서 참겠지만 아무튼 일반적인 사람은 아니었다. 이제와 생각해보면 그런 사람을 좋아한 내가 어이가 없을 정도다(그냥 잘생겨서 좋아했던 것 같다. 어린 시절의 철없던 나여! 물론 지금도 잘생긴 사람은 좋다). 하지만 나는 그를 나쁘게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매우 고맙게 생각한다. 저와 한 달 만에 아주 깔끔하게 헤어져주어서 진심으로 고맙습니다. 비록 조금 황당한 방식이었지만.


그 이별은 나에게 두 가지 후유증을 남겼다. 하나는 취향과 관련된 것인데, 원래는 좀 느끼한 사람을 좋아했던 것 같은데 이제는 기름기를 쏙 뺀 담백한 사람이 좋다. 다른 하나는 크리스마스만 다가오면 연애 감정이 부풀어 오르기는커녕 이별의 징조를 느낀다는 것이다. 실제로 내 연애를 통틀어보면 12월 즈음만 되면 이별의 위기가 찾아오곤 했다. 마치 크리스마스의 저주처럼.


하지만 그 트라우마를 능가하는 깨달음을 얻게 되었으니, 바로 아무리 힘든 이별도 시간이 지나고 보면 별 것 아니더라는 것이다. 이제와 서야 이렇게 글로 썰을 풀 정도지만 헤어진 직후는 정말 많이 힘들었다. 아무도 이 고통을 이해해주지 못할 것 같고, 마치 내가 멜로드라마의 비련의 여주인공 같았다.


그런데 이제와 생각해보니 멜로드라마가 아닌 코미디더라. 그때의 이별을 생각하면 어이없고 우스워서 웃음이 난다. 자조적인 웃음이 아니라, 모든 아픔을 잊고 객관적으로 상황을 볼 수 있게 되었을 때 나오는 '진짜' 웃음 말이다. 그리고 로맨틱 코미디는 모두가 알다시피 해피엔딩이다. 나에게 해피엔딩은 난데없이 굴러들어 온 찹쌀떡이었다.


오늘도 헤다판에 상주하는 과거의 나, 이별의 동지들에게 말하고 싶다. 헤다판의 가장 큰 함정은 이별의 슬픔에서 벗어난 사람은 헤다판에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물론 헤어짐의 아픔을 달래는 데에 헤다판만큼 좋은 건 거의 없다. 하지만 1~4번 유형의 글이 도움이 되지 않을 때, 이 글이 대안이 되면 좋겠다.



5. 연애의 장르는 본인이 정한다.

: 비극인 줄 알았던 드라마가 알고 보니 희극이었다는 글. 이별의 드라마를 찍게 된다면, 그때의 장르는 이왕이면 로코로.



P.S. <내 이름은 김삼순> 1화의 한 대사. 김삼순은 남자친구와 이별하고 새로운 레스토랑에서 파티쉐로 일하기 위해 면접을 본다.


"초콜릿 사온 그 상자. 특이한 것 같은데, 혹시 본인이 직접 만든 거예요?" (주방장)

"예. 제가 만든 초콜릿은 제가 만든 상자에 넣자는 게 제 원칙이거든요." (김삼순)

"왜요?" (주방장)

"초콜릿 상자에는 한 사람의 인생이 담겨 있거든요. <포레스트 검프>라는 영화 보셨죠? 거기 보면, 주인공 엄마가 말해요. 인생은 초콜릿 상자와 같은 거다. 네가 무엇을 집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제가 파티쉐가 된 건 정말 우연이었어요. 헌책방에 갔다가 별생각 없이 그 책을 집어 들었는데 그게 프랑스 과자에 대한 책이었어요. 그게 만약 병아리 감별사에 대한 책이었다면 저는 지금 병아리를 감별하고 있을지도 몰라요. 어쨌든 제가 무엇을 집느냐에 따라서 많은 게 달라지거든요. 아주 많이요." (김삼순)

"그럼 지금까지 집은 초콜릿은 다 맛있었나요?" (매니저)

"아뇨. 좋은 것도 있었고, 나쁜 것도 있었고. 뭐 하지만 어쩔 수 없잖아요. 그 상자는 제 거고, 어차피 제가 다 먹어야 하는 거니까요. 언제 어느 걸 먹느냐, 뭐 그 차이뿐이겠죠. 그렇지만 예전과 지금은 다를 거예요 아마. 예전에는 겁도 없이 아무거나 쑥쑥 집어먹고 그랬는데, 지금은 생각도 많이 하고 주저주저하며 고르겠죠. 어떤 건 쓴 럼주가 들어있다는 걸 이제는 알거든요. 바라는 게 있다면, 내가 가지고 있는 초콜릿 상자에 더 이상 쓴 럼주가 든 게 없었으면 좋겠다. 30년 동안 다 먹어치웠다. 그거예요." (김삼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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