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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개연성 Jan 07. 2018

너는 팜므파탈은 안 돼

루피는 카카오에서 어시스턴트를 할 때 만난 친구이다(이름이 루피인 건 카카오에서는 모두 영어 이름을 쓰기 때문이다). 루피는 단연 독특한 사람이었다. 보통 사람은 제아무리 지식이 많다고 해도 넓고 얕게 알거나, 좁고 깊게 알기 마련인데 루피는 넓고 깊게 알았다. 어떤 주제가 나와도 방대한 지식을 자랑했다! 오죽하면 별명이 '걸어 다니는 백과사전'이었다.


하루는 팜므파탈 여배우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는데, 마침 그 자리에 있던 루피가 팜므파탈의 어원과 관련된 그리스 신화를 말해주어 그녀의 끝을 알 수 없는 지식에 모두가 혀를 내둘렀다. "사랑의 여신인 아프로디테는 나른한 그리움의 여신인 히메로스를 데리고 다녀서 자신이 원하는 사람에게 보낸다고 해요. 그리움은 그렇다고 쳐도, 나른함은 무얼 의미하는 걸까요? 그래서 팜므파탈인 여배우들은 다 졸린 눈을 하고 있는 걸까요?"


팜므파탈 하면 에바 그린. 확실히 졸린 눈을 하고 있다.


무엇보다 루피를 인기인으로 만든 요인은 별자리와 사주였다. 루피는 별자리와 사주를 잘 알뿐 아니라 다른 사람의 것도 요청을 받으면 기꺼이 봐주었다. 그리고 재미로 요청한 것 치고는 놀랄 만큼 잘 맞았다. 곧, 독실한 기독교 한 명 빼고, 팀의 모든 어시가 그녀에게 별자리 혹은 사주를 보게 되었다.


나도 봤냐고? 물론이다. 사실 나도 별자리나 사주 같은 것을 아주 좋아한다. 그렇다고 다른 사람 것을 봐줄 만큼 잘 아는 건 아니지만 내 것은 많이 찾아봤다. 내 사주에서 아는 것은 오행(나무, 불, 물, 땅, 금) 중 나무, 즉 목이 강한 사주라는 것이었다. 목은 왕성한 생명력을 상징하며, 목이 강하면 추진력이 강하고 이전에 없던 것을 개척하려는 경향이 있다고 했다.


나는 내가 나무인 게 맘에 들었다. 전부터 없던 세계를 왕성한 의욕으로 개척해 만든 사람을 동경해왔기 때문이다. 일례로 내가 존경하는 우리 과의 지도교수 조한혜정 선생님은 한국의 1세대 페미니스트이자 문화인류학과의 창시자인 동시에 대안 교육의 시초인 하자센터를 만들었다.


나는 조한혜정 선생님을 볼 때마다 소나무를 떠올렸다. 그 소나무가 어찌나 크고 튼튼한지 하나의 울창한 숲을 이루어냈다. 나 역시 그런 종류의 대안을 만들고 싶었다. 그렇게 큰 소나무는 못되지만, 작은 소나무는 될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숲은 아니더라도 동산 정도는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소나무는 멋있다


그런데 루피가 내 사주를 보더니 나무는 나무인데 갑목이 아닌 을목이라고 했다. 즉 소나무가 아니라, 꽃나무라고. 꽃나무이기 때문에 원치 않는 가지치기(?)를 당해야 하고, 주위에 있는 큰 나무들을 동경한다고 했다.


내가 꽃나무라는 데에 어찌나 우울해했는지 루피가 일주일 넘게 상냥하게 달래주었다. "꽃나무도 좋아요"라며 을목의 좋은 점을 알려준 것이다. 하지만 내겐 별로 의미가 없었다. 남들은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지만, 난 용맹한 개척자가 되고 싶었다. 꽃나무라는 것을 알게 된 순간 그동안 가지고 있던 쑥쑥 뻗어 나가는 소나무로의 내 이미지는 순식간에 박살 나고 대신 가지치기당하는 정원 속 나무가 자리 잡았다..




그러고 보니 내 이미지가 박살난 순간이 또 있다. 카카오에서 한 번은 열 명 정도 되는 어시들끼리 술자리를 가졌는데, 술자리가 파할 무렵 한창 무르익은 분위기로 지하철을 타러 가는 길 "사실 내 매력은 섹시함이다"는 말에 모두의 비웃음을 샀다(지금 생각해도 다들 너무하다). 팜므파탈이 될 거라는 말에 동료 에디가 단호히 "너는 팜므파탈은 안 돼"라고 말해서 받은 충격이 아직 생생하다. 에디의 말로는 "팜므파탈이 되려면 비밀이 많아 보여야 하는데 일단 너는 너무 솔직하다"라고. 내 비장의 무기인 눈웃음을 보여주었지만 (학창 시절 거울 보며 연습한 것이다) 돌아온 것은 박장대소였다. 며칠 뒤 친한 친구를 만나 항변하며 다시 한번 내 눈웃음을 보여줬다가 "그건 눈웃음이 아니라 눈 경련이야"라는 비수를 맞았다. 이쯤 되면 인정해야 했다. 나는 팜므파탈과 거리가 먼 사람이라는 것을.


소나무와 팜므파탈의 공통점은 내가 아닌 것, 하지만 될 수 있다고 믿었던 것이라는 점이다. 일례로 나는 남이 뭐라 하든 내 매력이 섹시함이라고 믿고 있으며, 팜므파탈이 되기 위해 열심히 탐구하고 노력해왔다. 친한 친구에게 혹은 그냥 편한 사람에게 뜬금없이 "어떻게 하면 팜므파탈이 될 수 있을까?"라고 물어보는 사람이 있다면 그건 아마도 나다. (에디는 "팜므파탈이 되려고 노력하는 것부터가 팜므파탈이 아니라는 증거다"라는 돌직구를 날렸다.) 가장 최근에는 회사의 친한 개발자에게 같은 질문을 했는데, 그는 "팜므파탈인 사람은 쿨한 척하는 게 아니라 진짜 쿨해야 하고, 언제나 조금은 짜증이 나있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그 대답을 듣고 조금 좌절했는데 쿨한 것은 할 수 있으나 짜증이 나 있는 건 나와 정말 어울리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굳이 말하자면 언제나 행복한 사람이다.




이 이야기는 현재진행형이다. 다만 내가 꽃나무라는 것과 팜므파탈과 거리가 멀다는 것을 알고 난 후 몇 개월이 지난 지금은, 전보다 체념하고 이왕이면 좋은 쪽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이를테면 꽃나무라서 주위에 사람이 많이 모인다던가. 팜므파탈과는 거리가 먼 대신 솔직해서 오해를 살 일이 없다던가.


물론 나는 변함없이 소나무와 팜므파탈을 동경할 것이다. 어떤 것을 동경하는 건 내 맘대로 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또 동경하는 것이 되려는 부질없는 노력도 계속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단은 현실을 직시하는 편이 낫다고 결론 내렸다.




한창 우울해하던 어느 날, 루피가 내게 책 속의 한 구절을 보내줬다.


인생은 하나의 불안을 다른 불안으로 대체하고, 하나의 욕망을 다른 욕망으로 대체하는 과정으로 보인다. 그렇다고 불안을 극복하거나 욕망을 채우려고 노력하지 말아야 한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노력은 하더라도 우리의 목표들이 약속하는 수준이 불안 해소와 평안에 이를 수 없다는 것쯤은 알고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선망을 멈추지 못한다면, 엉뚱한 것을 선망하느라 우리 삶의 얼마나 많은 시간을 소비할 것인가.
불안, 알랭 드 보통


루피의 메시지를 받고 든 생각이 두 가지 있다. 하나는 알랭 드 보통의 말처럼 인생 자체가 불안과 욕망이 연속이라는 생각이었다. 내가 유별난 게 아니라, 다들 그렇구나. 다른 하나는 루피에 대한 고마움이었다. 우리는 저말 좋은 친구인데, 나는 루피의 상냥함을 루피는 나의 솔직함을 좋아한다. 스스로가 아니더라도 -소나무가 아니고, 팜므파탈도 아니지만 바로 그 이유로- 타인이 나를 좋아해 준다면 그냥 생긴 대로 사는 것이 나쁘지 않은 것 같다는 생각이 -아주 잠깐 동안- 들었다.



이런 큰 꽃나무라면 괜찮을 것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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