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학 석사를 마친 H의 고민
"저는 이번에 사회학과 석사과정을 졸업했어요. 지금은 공부를 더 할지 취업을 할지 고민 중입니다. 정확히 어떤 직무를 해야겠다, 어느 영역에서 일을 해야겠다는 결심은 아직 없어요. 그런데 저는 어느 길이 되었든, 특정 이슈를 발굴하고 기획하고 자료를 수집하고 글로 전달하는 일을 하고 싶습니다. 자료를 수집하는 과정에서 인터뷰를 하거나 현장 연구를 하는 등 사람을 만나는 일이 수반되면 더 좋을 것 같아요! 그럼 계속 공부하지 왜 취업하려고 하냐고 물어보시면, 대학원에 있으면서 돈도 안 받고 영혼을 갈아 넣는 일이 힘들어서 회의감을 느꼈어요..
그래서 지금은 만약에 취업을 하면 돈 벌기랑 멀어 보이는 사회학 베이스를 가진 내가 어떤 일을 할 수 있을까가 가장 큰 고민이에요. 다만 취업준비를 한 번도 해본 적이 없고, 경영학 수업도 들어본 적도 없고, 인턴 경험도 전무해서 정확히 내가 하고 싶은 일이 현실 세계에서 무엇일지 너무 감이 안 잡혀요. 굳이 전문 에디터가 되고 싶다거나 미디어 쪽에 종사하고 싶은 건 아니거든요. 그래서 제가 하고 싶은 일이 너무 막연하고 나이브하다는 생각도 들고, 감이 안 잡혀서 이것저것 탐색하는 중이에요.
그러다가 콘텐츠 마케팅이라는 직무를 알게 되었고, 그러한 일은 주로 스타트업 쪽에서 많이 필요로 한다는 이야기를 들어서 스타트업에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또, 저는 스스로의 성장도 중요하게 생각하는 편이어서 사람들이랑 으쌰 으쌰 하면서 회사와 함께 성장하는 느낌이 들었으면 좋겠거든요. 개씨님은 어떤 계기를 통해 문화인류학과에서 현재의 커리어를 쌓게 되었나요? 또 지금 회사에서 정확하게 어떠한 종류의 일을 하고 있고, 만족도가 어떤가요? 스타트업계의 워라밸, 직업 안정성, 복지 등도 궁금합니다."
안녕 H! 정말 오랜만이다. 먼저 이렇게 연락을 줘서 고마워. 이전에 함께 교지를 하던 때에 차분하고 논리적이던 네 모습이 생각나네. 석사를 마친 것도 축하해. (고생 많았어ㅠㅠ)
'하고 싶은 일이 너무 막연하고 나이브하다'라는 고민이 공감이 많이 된다. 나도 글쓰기를 커리어로 가져가고 싶지만 언론사나 출판사는 가고 싶지 않던 때에 그런 마음이었거든. 언론사는 언론고시를 준비할 자신이 없었고, 출판 업계는 사양 산업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 대안을 계속 고민했지만 아는 게 없으니 막연하게 느껴졌던 것 같아. 그러다 우연히 스타트업에서 일을 시작했고 말이야.
콘텐츠 마케팅과 스타트업에 관해 네게 해주고 싶은 말을 세 가지 정도로 정리해봤어.
콘텐츠를 만드는 일을 계속 해왔지만, 나도 사실 최근에서야 공부를 통해 콘텐츠 마케팅이 뭔지 정확히 알게 된 것 같아. 막연하게 '이런 것일 것이다'라고 생각하고 있을 때와 '이런 것이다'라고 아는 것은 꽤나 다르더라고. 미리 이 분야에 대해 공부해두면 실제로 이 일이 무엇을 하는 일인지 감을 잡고, 더 나아가 이 업무가 나에게 잘 맞을지 가늠하는 데에 도움이 많이 될 거야. 아래는 내가 공부하면서 읽은 책인데, 이 책들을 읽으면서 업무에 대한 막연함을 조금이나마 탈피하면 좋겠다.
에픽 콘텐츠 마케팅 - 조 풀리지 저
킬링 마케팅 - 조 풀리지, 로버트 로즈 저
스타트업 사람들의 경향성에 대해 나도 곰곰이 생각해봤는데 (사람 있는 곳은 다 마찬가지겠지만) 너무 다양해서 한 가지의 말로 정의하기가 참 어렵더라고. 그래도 두드러지는 경향성을 정리하자면 두 가지 정도인 것 같아.
먼저 새로운 것을 접하고 공부하는 것을 좋아한다는 것. 모든 업계가 마찬가지겠지만, 특히 스타트업 업계라고 불리는 IT 업계는 트렌드가 굉장히 빠르게 변해. 그래서 끊임없이 새롭게 출시되는 기술에 대해 배워야 하고, 더 나아가 빠르게 실행할 수 있는 능력도 있어야 돼.
유행을 따라가기 위해 계속 공부한다는 게 가볍게 느껴질 수도 있을 것 같아. 그런데 새로운 기술을 배우는 것만큼이나 더 중요한 건 본질을 꿰뚫어 보는 능력이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IT 업계에서 트렌드가 변하는 주기가 더 빨랐고, 개발자들이 지금보다 더 유행에 민감했으며, 신기술이 출시될 때마다 사람들이 그것을 따라가기에 급급했어. 하지만 이렇게 새로 출시된 기술들이 모두 다 살아남은 것은 아니기 때문에(소위 거품이 꺼진다고 하지 - 암호화폐의 붐이 얼마나 빨리 꺼졌는지 기억해?) 이제는 좀 더 기술을 볼 수 있는 안목이 필요하게 된 거지.
최신 기술을 따라가기 급급한 개발 태도를 풍자하는 단어인 HDD(Hype Driven Development)
개발뿐 아니라 마케팅에서도 기술의 발전에 따라 계속해서 새로운 트렌드가 끊임없이 생기고 또 사라지고 있기 때문에 (특히 퍼포먼스 마케팅에서는 배워야 될 기술이 정말 많아, 페이스북과 구글 광고도 계속 변화하고 있고) 새로운 것을 익히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에게 잘 맞을 것 같아. 반대로 어떤 한 가지 방식을 고수하는 사람에게는 힘들 수도 있겠지?
두 번째는 자신만의 기준이 확실한 사람이라는 것. 스타트업이라는 어떻게 보면 아직은 새로운, 생소한 선택지를 선택한 자신만의 분명한 이유가 있어야 해. 설사 그게 언어로 정확히 표현할 수 없는 것이라고 하더라도 말이야.
여름님의 브런치 글에 대기업에 어울리는 사람과 스타트업에 어울리는 사람을 비교했는데, 스타트업에 어울리는 사람은 이런 사람이라고 하더라고: 목소리가 큰 사람, 회사에서 즐거움을 찾는 사람, 대체 불가능한 사람이 되고 싶은 사람. 이걸 다른 말로 하면 '개성이 뚜렷한 사람'인 것 같아. 대기업에서는 개성이 뚜렷하면 좋지 않은 시선으로 보는 경우가 많지만 스타트업은 정 반대야. 자기 생각이 뚜렷한 사람을 더 선호하지. 그런 사람일수록 회사에서 자신의 의견을 말하는 데에 주저하지 않고, 그러면서 조직의 성장에 기여하니까. 순응하는 사람보다는 주도적인 사람이 잘 맞아. 반대로 '순응하고 안정적인 성향'이 스타트업에서 일하면 계속해서 자신의 의견을 말해야 하는 상황에 스트레스받을 수도 있어.
대기업과 스타트업의 가장 큰 차이 중 하나는 대기업은 이미 체계가 완성된 곳이고 스타트업은 이제 막 그 체계를 만들어가는 곳이라는 점이야. 어떻게 보면 스타트업의 자유로움은 이런 '체계 없음'에서 온다고 할 수 있어. 장점은 대기업의 이해할 수 없는, 불합리하다고 느껴지는 제도들은 거의 없다는 것. 설사 신입 직원이라고 하더라도 나의 의견이 조직에 반영되고, 그로 인해 다수의 구성원이 동의하는 합리적이고 선진적인 조직 문화가 가능하다는 것. 단점은 체계를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부딪힘이 많을 거라는 것. 만약 자신만의 기준이 확실하다면 회사가 성장하는 데에 필수 불가결한 이런저런 어려움을 극복하는 데에 힘이 될 거야.
직접 경험해보기 전에는 모르는 것들이 있는데 특히 스타트업이 그런 것 같아. 내가 어떤 계기를 통해 문화인류학과에서 현재의 커리어를 쌓게 되었는지가 궁금하다고 했는데, 나는 많이 생각하지 않고 일단 부딪혀봤던 것 같아. 이전에 수업에서 교수님이 "특히 취업에 있어서 사실과 다른 잘못된 신화myth가 너무 많다"라는 말을 했었는데 그게 정말 와 닿았었거든. 취업하기 전에 나도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듣고 (대기업은 꼰대가 많다더라, 스타트업은 워라밸이 안 지켜진다더라 등등) 겁을 먹는 경우가 많았는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내가 들었던 부정적인 이야기들이 전부 당사자에게 서가 아니라 건너 건너 들은 것이더라고. 어쩌면 이것들이 전부 전해 내려 오는 '신화'와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어.
실제로 잡지사에서 인턴을 하면서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환경이 그렇게 열악하지 않다는 것을 알았어. 사람들도 좋았고 말이야. (물론 내가 운이 좋았던 걸 수도 있지만) 그렇다 보니 더 용기가 생겨서 이것저것 경험해보자고 마음을 먹었던 것 같아. 단지 '글을 쓰고 싶다'라고 생각해서 글 쓰는 일이면 닥치는 대로 인턴 생활을 했고, 그중 가장 잘 맞는 곳에서 커리어를 시작했는데 그게 하필이면 스타트업이었던 거지.
네가 보내준 이력서를 보니 인턴 경험이 없다는 게 아쉽긴 하지만, 그래도 학내에서 이런저런 다양한 경험을 했고 충분히 좋은 인재라는 것을 누구라도 짐작할만한 것 같아. 그러니 시작도 하기 전에 겁먹지 마. 사실은, 이제 실제로 비즈니스의 현장에 뛰어들어서 네가 좋은 인재라는 것을 증명할 일만 남은 거야. 스스로를 믿고 부딪혀보길 바라! 무엇보다 너에게는 언제나 '공부'라는 돌아갈 곳이 있잖아?
워라밸 - 내가 커리어를 시작했던 스타트업은 야근이 거의 없는 곳이었어. 하지만 회사마다 천차만별이니 잘 알아보는 게 좋아. 가장 좋은 건 그 회사에 다니는 사람을 찾아서 직접 물어보는 거야.
그런데 앞서 말했던 '계속 공부해야 한다'는 점 때문에 워라밸이 크게 의미가 없을 수도 있어. 스타트업에서는 일과 삶이 완벽히 분리되기가 어렵고, 실제로 퇴근 후에도 스터디를 하거나 네트워킹을 하는 등 일의 연장선상에서 무언가를 하는 경우가 많아. 자신의 직업 정체성을 삶 정체성과 동일시하게 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기도 하고.
직업 안정성 - 이것도 직군마다 천차만별인데, 정확히 무엇을 불안해하는 건지 알아야 더 구체적으로 대답해줄 수 있을 것 같아. 솔직히 말하자면 정말로 안정성을 바란다면 공무원이나 전문직을 준비해야 하지 않을까?
복지 - 마찬가지로 회사마다 천차만별이야. 회사의 JD(Job Description)을 참고하길 바래. 그리고 막상 일을 시작하면 왠만한 복지는 생각보다 크게 중요하지 않더라고. 중요한 것은 워라밸과 연봉인 것 같아. 개인적으로 연봉은 '최소 3천은 받아라'라고 생각하는데, 어디까지나 개인 의견이니 참고만 해. 크레딧잡 같은 사이트를 통해 회사의 연봉 수준을 비교적 정확히 유추할 수 있어.
주위 사람들 중 나에게 스타트업이나 콘텐츠, 글쓰기 관련 직무에 대해 물어보고자 하는 사람이 있어서 '개씨의 고민상담'을 시작한다. 나의 작은 경험과 지식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질문이 있는 사람은 메일 보내주길! (작가에게 메일 보내기는 브런치 프로필에서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