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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개연성 May 02. 2019

직장 내 드레스코드

스타트업 vs 에이전시


스타트업에서 에이전시로 이직하고 처음 몇 달간 (사실 아직까지도) 내가 가장 놀랐던 건 사람들의 옷차림이었다. 사람들이 옷을 너무 잘 입는다.


이런 느낌으로 아주 세련되게 입는다.


생각해보면 진작 예상했어야했다. 디자인 회사, 브랜딩 회사, 컨설팅 회사이므로 보여지는 스타일이 중요할 수밖에 없다. 또 굳이 업종 때문이 아니더라도, 클라이언트를 상대하는 에이전시는 대게 옷차림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뒤늦게야 알게 되었다. 한때 PR 대행사에 다녔던 마케터 지인에게서 구두를 안 신고 가면 혼나곤 했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깜짝 놀랐다.


문제는 내가 직장 내 옷차림이 자유롭다 못해 충격적일만큼 프리한 스타트업에서 커리어를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이전 회사와 지금 회사는 CEO의 스타일부터 무척 차이가 난다. 이전 직장의 대표님은 회사의 로고가 박힌 티셔츠나 맨투맨을 애용했다. 평소에 옷차림에 신경쓴다는 인상을 전혀 받지 못했는데, IT업계의 특성상 그런 점이 미덕으로 여겨졌던 것 같다. (매일 똑같은 옷만 입은 스티브 잡스를 보라. 물론 그는 브랜딩의 천재였지만) 반면 지금 회사의 대표님은 정말이지 스타일리시하다. 셔츠며, 벨트며 입는 것 하나 하나가 다 명품 같다. 실제로 명품일 것이고. 아마 그런 것이 이 업계에서 대표로서의 자질일 것이다. 취향과 안목.


사실 나는 패션과 스타일에 관심이 많다. 쇼핑도 즐겨 하는 편이다. 다만 나의 평소 스타일로 말할 것 같으면 캐주얼, 캐주얼, 무조건 캐주얼이다. 약간 유니크하거나 페미닌한 디테일을 좋아하긴 하지만 일단 옷은 편해야한다는 생각이 있어서 조금이라도 불편한 셔츠나 정장, 구두 같은 것은 딱 질색이다. 어느 정도냐면 졸업할 때에 정장을 입기 싫어서 졸업 사진을 안 찍었다(포멀한 옷은 나의 평소 스타일과 너무 동떨어지고, 또 나와 안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그런 나로서는 이직 후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문제에 봉착하게 된다. 출근할 때 입을 옷이 없다. 그래서 이직하고 첫 한두 달은 셔츠 따위를 엄청 많이 샀다. 셔츠 값으로만 수십 만원을 쓸 정도였다. 이렇게 샀어도 여전히 편한 옷이 좋고, 나도 모르게 평소 스타일처럼 입고 출근하고 있긴 하지만(다행히 뭐라고 하는 사람은 아직 없었다) 이래도 되나 싶고 괜히 눈치가 보이는 게 사실이다.



스타트업의 드레스코드


이전 직장에서 옷차림이 대체 얼마나 프리했냐고 묻는다면. 슬리퍼를 신고 출근하는 사람도 있었고, 운동용 레깅스를 입고 출근하는 사람도 있었다. 또 몇 달에 한 번씩 머리를 휘황찬란한 색으로 염색하고 오는 사람도 있었다: 분홍색, 파란색, 초록색 등등. 옷차림의 프리한 정도도 사실 직군바이직군이긴 한데, 특히 개발자 직군은 거의 항상! 후드티에 청바지를 입었다. 그외 운영팀, 마케팅팀 등 비즈니스 직군은 셔츠나 블라우스 정도는 입었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캐주얼한 룩인 경우가 많았다. (물론 포멀한 스타일을 좋아하는 사람은 예외로 치고)


예시를 보여주기 위해 과거 직장에서 나의 출근룩을 준비했다. 나는 편한 옷차림에 컬러 혹은 디테일로 포인트 주는 것을 좋아한다. 이렇게 편하게 (!) 입고 출근해도 아무도 신경쓰지 않을 정도로 자유로운 분위기였다. 이제와서 생각해보면 스타트업이기에 가능했던 분위기였던 것 같다.




에이전시의 드레스코드


이직한 뒤 가장 많이 들었던 표현, 또 의문을 불러일으켰던 표현은 '엣지있다'는 말이다. 대체 엣지있다는 것은 뭘까, 나는 과연 엣지있는 사람일까 같은 고민을 많이 했다. 브랜드 컨설팅 회사에 다니는 지금, 동료들이 참 세련되었다는 생각을 종종 한다. 그리고 때때로 바로 그런 점 때문에 내가 컨설턴트라는 직함에 어울리지 않은 건 아닐까 걱정도 된다. 나는 굳이 말하자면 세련되었다기보다 센스있는 사람이고, 엣지있다기보다 둥글둥글한 사람이다.


아무튼 그런 사람들이 많은 지금 회사의 드레스코드는, 앞서 말했듯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비즈니스 혹은 비즈니스 캐주얼이 정도다. 그게 뭔지 스타일이기 때문에 한 문장으로 정의하기는 어렵지만 개인적인 정의로 비즈니스 캐주얼은 블라우스나 셔츠가 기본이 되는 룩이다. 가령 니트를 입어도 안에 셔츠를 받쳐 입는다.


비즈니스 캐주얼을 설명한 일러스트


이직한 뒤 앞서 말했듯이 셔츠와 블라우스도 많이 사고, 나름 노력했는데도 스타일이 쉽게 바뀌지 않았다. 왜 그럴까 궁금했는데 우연히 읽은 글을 통해 '첫 직장의 경험 때문이구나'라는 것을 알게 됐다. 첫 직장에서 배운 많은 것들이 생각보다 여러 방면으로 나에게 지속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 같다.


먼저 중요한 요소는 첫 직장이다. 첫 직장을 어느 회사에서 어떻게 일하는지를 배운게 그 사람의 업무 역량을 좌우한다는 것과 마찬가지로, 첫 직장에서 배운 패션 센스가 그 사람의 스타일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한다.


직장인의 패션에 대한 생각


마케터의 스타일에 대한 안혜령 님의 글에서는 특히 마지막 문단의 "마케터에게 스타일은 무시해도 괜찮은 것이 아니다."라는 말이 나의 마음을 아프게 찔렀다. 마음만 같아서는 '겉모습이 아닌 실력이 중요해'라고 외치고 싶지만, 사실 겉모습도 어느정도 중요하다는 것을 나도 알고 있다. 특히 마케터나 컨설턴트 같은 업은 더더욱.


마케터의 퍼스널 브랜드 : 스타일


이전에 대학 시절에 나와 함께 에디터를 준비하던 후배가 있었다. 수업 중 왜 에디터가 되고 싶냐는 교수님의 질문에 "내가 좋아하는 옷을 입고 싶어서"라고 말하는 그녀를 보며 '어떻게 저런 게 직무를 선택하는 이유가 될 수 있지?'라고 생각했었는데, 요즈음 그게 무슨 의미인지 알 것 같다. 아침에 일어나서 어떤 옷을 입는지는 생각보다 나의 마음가짐, 행동 등 일상의 작은 것들에 영향을 많이 미친다. 셔츠를 전혀 입지 않았던 내가 셔츠를 즐겨입게 될 때 즈음에는 아마도 이전과는 조금 다른 이미지와 성향의 사람이 되어있을 것이다.


(스타트업이나 에이전시가 아닌 에디터를 선택했다면 또 그 업의 다른 드레스코드가 있었을 것이다. 트렌디해야 한다던지. 이렇게 업마다 다른 드레스코드를 생각하는 것이 꽤 재밌다. 혹시 본인의 사례가 있다면 댓글로 공유해주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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