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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선생 Nov 21. 2023

이상한 취식

  캠퍼스 내 나무들이 나뭇잎을 떨구어내고 있다. 귀에 무언가를 꽂은 채 낙엽처럼 저마다 갈 길을 가는 청년들이 보인다. 삼삼오오 모여서 다니는 사람들은 대체로 교직원이나 교수들이다. 따뜻한 음식을 함께 나누기 힘든 시절인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혼자 먹는 음식이 꼭 차가워야 한다고 생각하지도 않을 세대일 것이다.


  수업 시간. 냉랭해서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다. 중앙에서 통제하는 히터를 켜고 수업을 했다. 공기 탓이라고 생각했지만, 학생들의 표정 때문이었던 것 같다. “오늘은 다들 기분이 가라앉았네요?”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는 학생들. 몇십 명이나 되는 대형 강의라면 모를까, 10명밖에 안 되는 외국인 유학생이 그렇게 솔직한 표정으로 앉아 있으면 당황스러웠다. 내가 뭘 잘못했을까? 평소처럼 수업을 시작했는데. 두 명이 결석해서 그런 걸까? 그렇다고 해도 이렇게까지? 온갖 생각이 든다. 어떻든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공간이, 이렇게 차가운 분위기로 일관될 수 있다니 놀랍기만 했다.


  “모모 씨, 오늘 기분 괜찮아요?”


  “네, 괜찮아요.”


  나는 그 말을 곧이듣지 않았다. 그러다가 문득, 그래 정말 개인적인 일이 있어서 기운이 나지 않을 수도 있겠지 생각하며 다시 수업 진행에 집중했다.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기 때문이다.      


  배달된 피자를 받자마자 뚜껑을 열고 먹는 모습도 좋아하지만, 다 식어 비스킷처럼 뻣뻣해진 피자 한 조각을 베어 무는 모습이 매혹적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배달된 지 몇 시간이 지나 식어버린 햄버거, 냉장고에 넣어 두었던 탕수육을 먹는 일, 다 식은 국에 뜨거운 밥 한 주걱을 말아서 먹기를 좋아한다.


  차가운 음식은 혼자 밥 먹기를 싫어하는 나에게 고마운 존재다. 뜨거운 음식은 냄새를 더 멀리 빠르게 전파한다. “저 여기서 혼자 밥 먹고 있어요”라는 메시지를, 알고 싶어 하지도 않는 사람에게까지 전달하는 것이 실례고 생각한다. 보통 이런 경우 아무도 네게 관심이 없다고 말하겠지만, 나에게 관심이 없다고 해도 불쾌한 감정을 느낄 가능성까지 없지는 않으니까.     


  연구실에서 혼자 밥을 먹는 일이 많다. 밥 먹을 사람이 없어서이기도 하고 시간이 잘 맞지 않기도 하고 혼자 있고 싶을 때가 있어서이기도 하다. 여러 이유로 연구실에서 혼자 밥 먹는 일이 많다. 혼자 먹기 위해서 식당을 가는 분들도 많다. 나는 용맹한(?)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연구실에서 혼자 밥을 먹는다.


  내 이름이 적힌 연구실은 (적어도 계약기간 동안) 내 공간이므로 누군가의 눈치를 볼 필요 없이 내가 할 일을 하면 된다. 그럼에도 나는 ‘내 방에서’ ‘내가’ 밥을 먹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고, 심지어 ‘밥을 먹고 있는가 보다’라는 의식조차 하게 만들고 싶지 않다. 그럴 때 도움이 되는 음식이 바로 ‘식은 음식’이다. ‘식은 음식’은 냄새를 빠르게 멀리 전달하지 못한다. 아이스크림 향기에 이끌려 아이스크림 가게에 가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 김밥집에서 김밥을 사는 것보다, 편의점 냉장고에 들어 있는 김밥을 좋아한다. 전자레인지로 따뜻하게 데운 것도 싫어한다. 눅눅한 김도 싫지만, 따뜻한 상태가 되는 것이 더 싫다.


  사실 외로움을 느끼기 싫다면 좋아하는 사람과 음식을 나누면 된다. 그러나 그럴 기회가 없을 때는 차가운 음식을 먹는 편이 차라리 낫다. 차가운 음식은 내 고독을 누군가 눈치채지 못하게 만들기 때문이며, 그로 인해 빠르게 외로움에서 벗어나도록 도와준다. 혹은 영화에서 본, 차갑게 식은 남은 피자를 집어 먹는 연구원처럼, 나의 외로움은 단지 바쁘기 때문이라는 핑계도 마련되는 듯하다.      


  요즘은 혼자 밥 먹는 시간이 많이 없었다. 잘 먹고 다녔다는 말인데, 강의 이외에 일이 많을 때는 보통 밥 먹는 자리가 마련되기 때문이다. 함께 일하는-심지어 함께 하면 즐거운-사람들과 밥을 같이 먹는 일이 많았다.   


  끓어올랐던 내 일상도 한숨 죽는 모양이다. 다시 혼자 밥을 먹어야 하는 시간이다. 나는 언제나처럼, 컵라면에 뜨거운 물을 붓고 20분 남짓을 내버려 둘 것이다. 차갑게는 몰라도 충분히 식고 불어 터질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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