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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선생 Nov 13. 2023

전도유망을 가로 막는 본말전도

  지난 주말에 있었던 토픽 시험으로 안부를 물으며 수업을 시작했다. 이번에 가짜 뉴스 관련 문제가 출제되었는데 대단히 어려웠다고 했다. 내용 구성이 쉽지 않았던 모양이다. 출제되었다는 그 문제에 관한 이런저런 이야기와 답안 작성을 시연해주었다. 그러다 보니 1교시가 훌쩍 지나갔다.     


  쉬는 시간에 한 학생이 기말시험 문제의 답안으로(나는 이미 기말시험 범위를 알려주었다) 연습한 글을 봐 달라고 했다. 그래도 시험 문제인데 미리 봐 달라고 해서 답을 외우면 안 되기 때문에 나중에 봐 주겠다고 이야기했다. 두세 문장 만드는 문제이니, 한국인인 남편에게 물어보면서 준비해도 되지 않느냐고도 했다. 그런데 남편이 늦게 들어와서 쉽지 않은 모양이었다. 그래서 일단 달라고 해서 봐 주었다.     


  대부분 한국어 작문 교재에는 상황별 사용 문법이나 표현이 제시된다. 학생들은 이런 예를 익혀서 글쓰기에 적용하는데, 문맥에 맞지 않게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예컨대, 앞의 내용과 반대되는 내용을 시작할 때 사용해야 하는 ‘반면에’를 부연 설명을 하는 데 사용하는 경우이다. “요즘 시대에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사람이 많다. 반면에 이를 너무 자주 사용하면 건강에도 좋지 않고, 집중력이 떨어질 수 있다”라는 식이다. 어떻게 보면 잘못되었다고 말하지 않아도 될 듯하지만, ‘많이 사용한다’의 반면이 ‘단점이 많다’는 아니기에 적절하지 않은 사용이다.


  예의 학생도 ‘반면에’ 사용에서 실수를 했기에 “반면에”를 없애는 것이 좋다고 말했고, 두 번째 보여준 것은 괜찮다고 말했다. 그런데 갑자기 눈물을 흘린다. 내가 본인에게 토픽 6급을 받을 수 없을 거라고 말했단다.     

 

  6년째 외국 학생들을 만나면서 기억에 남는 친구 몇 명이 있다. 그중에는 다른 친구들과 달리 성실하게 수업하고 그래서 한국어 실력도 좋았던 학생도 있다. 그런데 매번 자신의 작문 실력이 부족하다고, 발음이 이상해서 걱정이라고 교정을 좀 받고 싶은데 어떡하면 좋겠느냐고 질문했다. 한국인인 나도 한국어 발음이 정확하지 않고, 문법 실수도 있다. 심지어 외국어로 말하고 써야 한다면 더 많이 실수할 것이다. 그러니 완벽해지려고 애쓰면서 자신을 괴롭히지 말라. 충분히 잘하고 있다고 격려했다. 그러나 그 친구는 졸업할 때까지도 자신의 한국어 실력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다. 또 한국어를 잘했지만 6급을 취득하지 못하고 졸업한 친구도 있고, 일찍 6급을 취득해서 기고만장하다가 갈수록 한국어 실력이 떨어진 친구도 있었다.     


  이런 이야기를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해서, 자신은 토픽 6급을 받지 못할 것이라고 내가 말했다고 이해한 것이었다. 어이없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그 자신 없음에 답답하고 화가 났다. ‘화가 없는 것’으로 유명(?)했던 내가 이번에는 아주 크게 꾸짖었고, 강의실 분위기도 일순간 차분해졌다.      


  스마트폰 사용하면서 공부하고, 작문할 때마다 사전이나 번역 앱 사용하고, 토픽 등급만 신경 쓰고 이렇게 속상해할 거라면 ‘대학’에 다닐 이유가 있느냐, 학원에 가서 시험 치는 훈련만 받는 게 더 낫지 않느냐고 으름장을 놓았다. 심하게 말했지만 틀린 말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더군다나 모두에게 전해야 할 내용이기도 했다.      


  내가 서 있는 곳은 학원이 아닌 대학 강의실이다. 이곳에서 어학 점수를 관리해 주는 곳이 아니다. 처음에는 학생들 요구에 부응하며 토픽 문제 풀이도 해 주었지만, 이제는 하지 않는다. 한국어를 도구 삼아 정보를 얻고, 마찬가지로 한국어를 도구 삼아 정보를 생산할 힘을 기르는 것이 주된 목표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고학년이 되거나 대학원에 진학해서 한국과 한국어에 관한 깊이 있고 체계적인 이해를 얻는 것이 주요해진다. 그 다음에는 그것을 나만의 관점으로 소화해 내는 것이고 말이다.     


  토픽 점수는 한국어 실력을 검증하지만, 그것이 ‘실재’를 드러내지는 않는다고 생각한다. 나는 믿는다. 토픽 6급이라고 말하면서도 회화가 안 되는 친구가 많고, 글쓰기도 여전히 번역기 초고 수준으로 해내는 친구들을 많이 봤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나의 경험을 전달하면서 한국어에 관한 자신감을 가지라고 해도, 제발 그 점수에서 벗어나서 자유롭고 즐겁게 공부하자고 해도 잘되지 않는 모양이다.      


  이런 일이 있으면 ‘통역’, ‘번역’이나 ‘한국어 교육’을 하고 싶다는 그들의 목적이 의심스러워진다. 토픽 점수에만 집중하여 자신을 판단하고, 한국어 공부도 시험 문제 유형에 맞춘 형식으로만 한다면, 그들이 원하는 꿈을 얻을 수 있는 것일까? 내가 아는 분들은 적어도 ‘이것만’ 집중해서 공부하지는 않았을 것 같다. 한국어를 향한 열정과 자신감에 따르는 부수적인 결과일 뿐이다. 부수적인 결과를 중심에 두고, 자신의 열정과 자신감을 채점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그 마음이다. 부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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