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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선생 Oct 20. 2023

가을이긴 한가 봐요

수요일.

학교 일정을 마치고 도서관으로 향했다.

시를 쓰자고 열변할 때는 6명 정도는 나오셨는데, 정작 시를 쓰지 않기로 하자 2명밖에 나오지 않는 기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올해는 도서관과 인연이 없는가 보다 생각하면서 기운이 빠진다.


도서관에 들어서자 오랜 지지를 보내주시는 한 분께서

오늘 옷차림도 달라 보이고 총각 같다고 말씀하셨다.

그런 말을 듣고 기분이 좋아야 하는 게 정상일 것 같지만, 어떤 칭찬이든 들으면 긴장되고 부담을 느낀다.

원래 이런 성격이라 칭찬하는 사람이 되려 무안해질 수도 있는 상황.


나더러 총각 같다는 말을 들으면 좋지 않느냐고 물었다.

좋은 말인데, 뭐랄까, 저는 나이가 어리다는 게 그렇게 좋지 않다고 이야기했다.

적어도 우리 사회에서는 아직 어려 보이는 남자에게 존중이 부족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다른 한 분이 공감해 주셨다.


며칠 전.

동네 마트에 갔다.

아내와 아들을 따라나섰다.

끌고 다니는 장바구니를 가져갔다. 마트에 들어서자 계산대를 지키던 분이

죄송한데 마트 장바구니를 이용해 달라고 했다.

그래서 나는 아내에게 곧장 "누가 물건을 훔치는 모양이다"라고 말했다.

그 말을 내뱉는 순간부터 기분이 가라앉았다. 어릴 적 기억 때문이다.

 

6학년 때, 마찬가지로 내가 살던 동네에 새로 생긴 큰 마트에서 가방 검사를 당한 적이 있었다.

학교를 마치고 마트에 들어가서 내가 먹고 싶은 과자를 사러 갔다.

그렇게 큰 마트에 내가 원하는 과자가 없어서 그냥 돌아가려고 했다.

계산대 옆에 서 있던 아저씨가 곱지 않은 말투로 이리 와서 가방 내놓으라고 했다.

어른이 하는 말이니 순순히 가방을 내놓고, 뒤적거리는 과정을 지켜보았다.

기분이 좋지 않았다. 다행히 울지는 않았던 것 같다.


목요일.

아파트 뒷길에 있는 마트가 이번 주 일요일을 마지막으로 이별이라고 한다.

어머니가 자주 이용하던 마트.

아들과 산책하다 들르고는 했던 마트, 갑자기 쏟아지는 비를 피하러 들어가서 괜히 과자 하나를 사 왔던 마트가

이제는 없어진다는 거다.

상권이 좋지 않았다, 아무리 시골 아파트라도 아파트에 사는 젊은 사람은 마트 배달을 시키지 않느냐

그러니 아파트 옆에 있어도 수익이 시원찮았을 것이다는 등의 괜한 생각을 해 보았다.

 

마트가 없어지는 일은 별 것 아닐 수 있지만,

그로 인해 외로워질 많은 사람이 떠오른다.


다시 수요일.

학교에서 시상식이 있었다. 시상식 준비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

학부장님의 핀잔이 귀에 박힌다.

핀잔인지 장난인지 파악하지 못하겠는, 그러나 장난이라고 생각하기엔 공식적인 자리이기에

나는 지적이라고 생각했다.

정작 움직이는 사람은 동료들이었기에 미안한 마음이 크게 자리 잡았다.

미리 수상작을 가지고 왔더라면, 가용할 예산은 없었지만 그래도 미리 좀 꾸며 놓을 걸, 소개를 제대로 했다면

그리고 "말이 정말 많다"라는 말을 듣지 않도록 필요한 말만 할 걸. 여러 생각이 머리를 복잡하게 만들었다.


화요일 회의에서 너무 냉정하게 차갑게 손님들의 의견을 반박한 나의 모습이 후회스럽기도 했던 터라,

수요일의 내 모습도 큰 실책으로 느껴졌던 것 같다.


목요일.

수업 시간에 어쩌다 나온 '돈'이야기.


서울에서 친구가 왔다며 가봐야겠다고 말하는 어처구니없는 학생을 마주하며

내가 지금 뭐 하는 거지?라고 생각했다.

누구냐, 어디에서 왔냐, 몇 살이냐, 성별은 뭐냐, 무슨 용건으로 지금 만나야 하느냐를 묻는데

그 친구는 대답 대신 입을 다물려고 했다.

너무 괘씸했지만 화를 내지는 않았다. 그냥 가라고 했다. 성적으로 보상하면 그만이니까.

그렇게 떠나는 학생을 보면서, 서글펐다.

어쩌다 나온 '돈'이야기가 수업의 화두가 되고, 수업의 의미에 관해서도 이야기가 나왔다.

한국이라는 나라에서 외국인이 당하는 설움에 관해서 이야기해 보고

내가 직접 경험한 외국인을 향한 차별 사례를 이야기하면서 학점, 돈 이런 것 때문에 한국어를 전공하는 것이 아니라

불합리한 상황에 맞서서 자기 생각을 정확히 전달하고 저항하기 위한 도구를 얻는다는 마음으로

한국어로 읽고 말하고, 쓰는 것을 배우는 것이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모국어, 영어, 한국어를 하면 벌써 대항할 수 있는 국가나 사회, 사람도 대단히 늘어나니까.


뭐 그런 이야기를 듣고 제대로 이해하고 공부할 학생이 몇이나 될까 싶다.

시대가 변했고, 시대에 맞춰 나도 변해야지 뭐.


수업에 오지 않는 사람이 많다.

그 이유는 어떻든 내가 그들 마음에 제대로 자리잡지 못했기 때문이다.

내가 그들 마음에 자리잡지 못했다는 건, 내가 가르치는 내용이 그들 마음에 큰 감동을 주지 못했다는 이야기다.

수업에서 감동은 멋진 강의라거나 훌륭한 지식이 있어서 생기는 게 아니라,

내 삶이 그들 삶에 울림을 줄 때 생긴다고 생각한다.

이제 곧 문을 닫는 마트처럼, 나에게 감동을 주지 못해 공기 중을 배회하다 사라지는 총각 같다는 칭찬처럼,

바깥 손님이 회의 때 가져온 의견이 나를 불편하게 만든 것처럼...

나는 지금 울림을 주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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