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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선생 Oct 10. 2023

안녕, 안경

안경을 쓰지 않고 살았다. 쓰지 않아도 되니까 쓰지 않고 살았다. 쓰지 않아도 된다는 건 내 생각이었다. 안과 의사나 검안사는 써야 한다고 말했다. 


안경 쓴 모습이 싫었다. 그것도 순전히 내 감정이다. 외모에 관한 콤플렉스가 작용한 것을 안다. 낮은 코와 높은 광대가 안경이라는 물건을 받아들이기에 부적합하다고 생각했다. 


아무도 내게 관심 없다는 걸 알았지만, 불편한 자리에 불편한 물건을 얹는다는 사실이 싫었다.


초등학생 4학년 때였는지, 5학년 6학년이었는지 정확히 모르겠다. 안경을 맞췄지만 쓰지 않았다. 중학교 고등학교 때도 마찬가지였다. 판서 내용이 흐릿흐릿 보이지 않았다. 안 보이면 안 썼다. 쓰면 보일 것을.


대학원에 들어가서 안경을 새로 맞췄다. 검안사는 눈 주위 근육의 힘이 좋은 것 같다. 용케 버티고 있다고 말했다. 맞춘 안경은 몇 번 쓰다가 말았다. 그 뒤로는 컴퓨터 작업을 할 때 몇 번 쓰기도 했다. 


난시다. 활자는 뭉개져 보이고, 비 오는 날이나 늦은 밤 운전하면 빛이 산란하여 어지럽기도 했다. 


나이 마흔에 마주한 검안사는 눈 관리를 전혀 하지 않고 살았던 나를 질책했다. 운전은 합니까(네), 2종입니까 1종입니까(1종입니다), 이 눈으로 운전할 수 있느냐(네), 할 수 있대도 다음 적성검사를 장담할 수 없다(아.) 등등. 


작은 눈 덕분에, 눈두덩이 안구를 압박해 준 덕분에 수월하게 볼 수 있다고도 했다. 무거운 중량을 들 때 두꺼운 벨트를 두르면 더 많은 힘을 낼 수 있는 뭐 그런 것 같았다. 아니면 애초에 눈이 작으니까 덜 찡그려도 되는, 그런 거? 


나를 두렵게 만든 건, 난시가 심하면 난독증으로 옮아갈 수도 있다는 이야기였다. 그 말을 듣고 사실 나도 책을 읽고 글 쓰고 강의하는 사람이라고 했다. 최근 들어 책 읽기가 쉽지 않았음을 고백했다. 문장을 놓치기 일쑤고, 한 단어에서 다음 단어로 옮아가기가 쉽지 않았다. 한 페이지를 겨우 읽기도 했다. 눈이 흐리니까 집중하지 못하고, 집중하려고 찡그리다 보니 피로가 쌓인단다. 눈이 나빠지는 건 뇌가 느끼는 피로감이 증가하는 것이라고 했다. 


검안사는 도수(到數)를 줘도 반응하지 않는 내 눈을 참담하게 생각했다. 0.8 이상의 도수에는 반응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0.9, 1.0을 얹어주면 밝게 보여야 하는데, 내 눈은 20년이 넘도록 찡그려 보는 데에 익숙해진 모양이었다. 약시(弱視)가 조금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그 와중에 아내의 잔소리가 걱정되는 걸 보면 나도 참 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안경테를 고르고 최고급으로 가지 않았음에도 비싸기만 한 렌즈를 고르고 왔다. 이제 남은 세월은 안경을 쓰고 지내야 한단다. 잘 때 빼고는 언제나 반드시 써야 하는 안경. 


안녕. 안경. 안녕. 안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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