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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선생 Sep 12. 2023

어른스러운 어린이와 애만도 못한 어른

나는 오늘 나잇값을 했는가?

어른스럽다는 건 뭘까. 사전에는 "어린아이의 말이나 행동이 의젓하고 어른 같은 데가 있다"라고 돼 있다. 어른스러울 수 있으려면 어른이 아니어야 한다는 이상한 조건이 필요하다. 어른은 어른답기만 할 수 있으니 말이다. 그래서 어른스럽다는 나보다 어린 사람에게서 뜻밖의 의젓함을 발견할 때 어른스럽다고 말한다.


의젓함은 뭘까. 사전에는 "말이나 행동이 점잖고 무게가 있다"라고 돼 있다. 점잖다는 건 "언행이나 몸가짐이 묵중하고 음전하다", "품격이 속되지 않고 고상하다", "됨됨이가 품위 있고 의젓하다"라고 돼 있다. 정확하게는 모르겠으나 이른바 감정적으로 쉽게 요동하지 않고, 생각이 깊어서 행동이 급하지 않을 때, 또한 자신이 결정한 행동에 책임을 질 때 의젓하다고 말하고는 한다.


어린이는 어리석음과 관계가 있다. 어리석다는 "슬기롭지 못하고 둔하다"는 의미이고, 슬기롭지 못함은 "바르게 판별하고 일을 잘 처리해 나가는 능력, 지혜"로서 슬기를 가지지 못했음을 가리킨다.


과거에 슬기롭게 일을 처리하는 능력은 나이가 듦으로써 이루어졌을 가능성이 높다. 공부를 하든 농사를 짓든 장사를 하든 자신이 경험할 수 있는 양이 공간과 시간에 제약을 받았던 과거에는 나이가 들면서 내가 갈 수 있는 장소와 시간의 폭과 길이가 넓어지고 길어질 때에만 슬기를 배울 수 있었다.


지금은 나이가 어리든 나이가 많든 마음만 먹으면 다양한 공간과 시간을 얼마든지 경험할 수 있다. 물론 과거에도 가능했다. 도서관은 백 년 전의 기록을 보관하고 있었지만, 그것은 장소의 제약을 받았다. 도서관이 없는 장소에서는 그 지식을 접하기 힘들었지만 도서관이 있는 장소라면 충분히 가능했다. 도서관이 있지만 장서의 양은 정해져 있으므로 자신이 사는 지역에 있는 도서관이 그 책을 확보하지 못했다면 지식을 습득할 수 없었을 것이다. 심지어 내가 사는 장소에 도서관이 있고 장서도 충분히 갖춘 곳이라고 하더라도 다양한 사정으로 도서관을 출입하지 못해 그 내용을 접하고 습득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지금은 지식의 권위가 반드시 도서관에만 있지 않고, 인터넷의 다양한 공간에서 접할 수 있다. 물론, 진위 여부가 문제 되고 있지만, 팩트가 아닌 사리를 분별하는 힘 정도라면 어떤 종류의 정보든 간에 논리적인 사고를 하는 재료로 작용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어린아이가 어디선가 접한 지식으로 어른과 대화를 나눌 수 있고, 그 대화에서 이길 수도 있다. 질 수도 있지만 어른과의 대화에서 지는 경험은 또 다른 지식으로 나아갈 가능성을 안겨줄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어린아이라고 하더라도 어른과 대화(토론이나 논쟁)가 (이론적으로는) 충분히 가능한 시대가 되었다는 것이다.


너무 어리지 않은, 그러니까 고등학생 이상의 청소년(대학생을 포함한다)이라면 슬기로움을 내보일 가능성이 더욱 커질 수 있다. 그가 지닌 슬기는 언제나 상대적으로 평가된다. 나이가 많고 지식의 범위가 넓고 깊은 사람에게는 덜 슬기로운 사람이 될 것이다. 쉽게 말해 어리석어 보일 수 있다. 그러나 나이가 많더라도 지식의 범위가 좁고 얕은 사람에게는 상대적으로 슬기롭게 보일 수 있다. 나이가 어린 사람이지만 지식의 범위가 넓고 깊은 사람에게는 덜 슬기롭고, 나이가 어리지만 지식의 범위가 좁고 얕은 사람에게는 마찬가지로 더욱 슬기롭게 보일 것이다.


이런 상대적인 평가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나이가 어린 사람은 아직 배울 것이 많이 남았고, 충분히 영글지 않았다고 생각하곤 한다. 그리고 나이가 많은 사람에게서 뜻밖의 어린아이 같은 모습을 보면 더욱 크게 실망하곤 한다. 나잇값을 못한다는 느낌과 함께 말이다.


그러고 보면 나이에 맞는 말과 행동, 그리고 사고와 감정을 드러낸다는 것은 나이가 갖는 권위에 권태를 내보이는 지금 이 시대에도 여전히 유효하게만 보인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는 말이다. 나이가 들어도 여전히 어리석은 나 같은 사람은 말할 것도 없고 말이다. 오히려, 어릴 때는 어른스러워 보인다던 내가, 나이가 들어갈수록 어리석어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런 것 같다. 그래서 어린이와 어른, 어리석음과 어른스러움에 관한 판단들이 자꾸만 신경 쓰이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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