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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선생 Nov 30. 2023

호칭과 존칭, 반말과 평어, 그리고 경어

그는 대학원에서 공부할 때는 '형 동생'하면서 강의를 하고 어느 학교에 전임으로 취직이라도 한 뒤에는 서로를 '선생님'이라고 부르는 상황이 어색하다는 이야기를 했다.-언젠가 회식 자리에서 누나라고 불렀다가 누나가 뭐냐는 따끔한 지적을 들었던 한 사람도 생각이 난다.-


그런 그가 내게 선물해 준 책에 '형'이라고 썼다. 단 한 번도 형이라고 부른 적 없었고, 그럴 기회도 없던 나에게 그는 형이라는 이름을 써 주었다. 다른 책에는 '선생'이라고 썼던 것 같다. 대화를 할 때도 내 '이름'을 부르기도, '정 선생'이라고 부르기도 하는 그. 한 번도 선배, 형(형님)이라는 이름으로 부르지 않아서 이제는 그렇게 부를 수 없는 그에게서(언젠가 서울에서 가끔 연락을 해 오면 선배님이라고 불렀던 것 같지만, 결국 업계 동료로 비로소 긴 대화를 시작했으니 그는 '선생님'이다.) 내 이름이 들려오면 정겨운 기분을 느낀다. 아래에 위치할 때 편안함을 느끼는 게 변태적인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내가 선생님이라고 부르는 사람을 형, 오빠, 언니, 누나라고 부르는 사람을 만나면, 혹은 그런 사람들과 섞여 있으면 어색함을 느낀다. 내가 가지지 못하는 호칭. 그 호칭은 나와 그 사람의 관계를 드러내고, 내가 부르지 못하는 호칭으로만 가능한 관계가 때로는 부러울 때도 있다.


그러나 나는 모두를 선생님이라고 부르는 것이 편하다.


때로는 말끝을 흐리며 반말을 섞을 때도 있는데, 주로 반응(리액션)을 나타내는 표현이다. 그렇다고 내가 그들을 만만하게 보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다양한 부분에서 나보다 '윗사람'이고, 그렇기 때문에 '형(님)'으로 부르든, '누나'로 부르든 '선배'로 부르든 '선생님'으로 부르든 그들과 맺는 관계의 기본 속성에는 반하지 않는다. 다만 나의 사회적 성격 자체가 깐족거림이라, 반말이 섞이는 일이 있다. 


학생들에게도 마찬가지다. 나는 기본적으로 존댓말을 쓴다. 존댓말이라고 해 봐야, 반말에 '-요'를 붙이는 꼴이지만. 코로나 이후부터는 이름에 ~군, ~씨라고 부르는 게 편해졌다. 학생회 등에서 직책을 맡으면 회장님, 부회장님, 조교님과 같이 부른다. 물론, 반말을 섞어서 쓸 때도 있다.  


'평어'라는 개념을 만들어 길동아, 흥부야라는 식으로 부르지 말고 이름만 부르면서 반말을 하자는(길동, 오늘 멋졌어) 주장을 펼치는 철학자도 있고, 일부 기업에서는 직급을 대폭 축소하고 호칭도 이니셜이나 닉네임으로 바꾼다고 하는 요즘이다. 모두가 반말을 하면서(물론, 그들은 '평어'가 '반말'과는 전혀 다르다고 이야기한다. 평어 문화가 정착되고 평어의 형식을 고안해 내야 한다는 주장도 포함된다) 사는 세상이 꼭 평등하고 원만한 상호존중의 사회를 만드는 데 이바지할 것이라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들이 예시로 삼는, 한국의 국가대표 감독을 맡았던 외국인 감독이 처음 한국에 와서 지시한 내용 가운데 하나가 이름과 반말로 소통하라는 것이었음은, 축구 경기와 같이 긴박한 상황에 한한 효율성을 가져올지도 모른다.


모든 관계를 효율적인 업무 진행으로만 바라본다면, '평어' 사용은 상당한 효율성을 가져올지도 모르겠다. 존댓말을 하면서 급박한 사안을 처리하기란 쉽지 않아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간의 삶이란 그토록 급박한 사건의 연속으로만 채워지지는 않는다. 오히려 너무 빠른 속도와 그 속도의 증가로 인해 벌어지는 다양한 문제들(이를 테면, "도둑맞은 집중력" 문제 같은 것)을 해결하기 위해서라도 서로에게 느린 속도로 존칭과 경어를 사용하며 여유롭게 관계 맺어나갈 필요성을 알려야 하지 않을까.


이런 상황을 보면서 모두가 존댓말을 쓰자는 이야기는 왜 하지 않는가 의아하지만, 그러한 주장이 지향하는 바는 무엇인지 알겠다. 결국 상호존중이 아닌가. 존중은 다른 게 아니다. 서로가 원하는 거리를 인정해 주는 것이다. 혼자 있고 싶을 때는 홀로 있음의 자유를 인정해 주며 기다리는 것이고, 함께 하고 싶을 때는 기꺼이 내 곁에 자리를 내어주는 관계를 만들어 가자는 것일 테다. 기왕이면 존중과 존경이 묻어나는 언어가 고루 퍼짐으로써 이루어지는 상호존중이 좋을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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