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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선생 Oct 25. 2023

나는 누군가를 추천할 자격이 있는가

누군가를 추천하는 일이 쉬운 일은 아니다. 추천서를 받아본 적은 한 번도 없다. 추천서를 써 주고는 있다. 그렇지만 내가 써 주는 추천서라는 게 대단한 역할을 하지는 않을 듯하다. 지원자가 작성한 자기소개서, 이력서, 각종 증명서에 따라서 당락이 결정되겠기에.


추천서 자체가 대단한 효력을 발휘한다고 말할 수는 없어도 신원보증 역할은 한다고 볼 수 있다. 그렇더라도 나 자신이 그만한 명예나 권위를 가지지 못했으므로, 여타 추천서와 달리 내가 쓰는 추천서 그다지 위력적이지 않으리라. 믿을만한 사람의 신원보장이라면 모를까, 한국 사회에서 일개인에 불과한 내가 쓰는 추천서로야.


오랜만에 졸업한 학생 한 명이 추천서를 부탁했다. 당연하게도 외국인인데, 이 친구는 나의 추천서가 없어도 어디든 합격할 학생이다. 이미 졸업한 후(이미 그전부터 제안을 받아서) 모 중소기업에서 번역일을 하고 있었다. 다만 국내에서는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이 학생이 한국에 머물며 공부할만한 사람인가를 확인받으려는 것처럼 보인다.


추천서에서는 언제나 지원자와의 관계를 묻는다. 얼마나 알고 지냈는지, 어떤 관계로 알고 지냈는지를 묻는다. 그리고 지원자의 장점이나 단점, 각종 능력치를 평가하여 표에 기입한다. 마지막 부분에는 이 학생을 평가하는 데 도움이 될 만한 여러 정보를 제공하는 항목이 있다. 자기소개서 하나 제대로 써 보지 못한 내가 다른 사람을 소개하며 추천하는 글을 쓴다는 게 아이러니하다.


어떤 사람이 좋은지 좋지 않은지를 판단하는 것은 쉽지 않다. 더군다나 추천하는 이유가 그 회사나 학교에서 요구하는 능력치와 맞닿아 있다고 장담할 수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가 이 사람을 추천한다는 사실만으로도 그를 향한 마음의 문이 조금 더 쉽게 열릴 수 있다.


여기까지는 추천서의 효용성을 생각해 본 것인데, 내가 진짜 생각하는 문제는 추천서를 쓰는 사람과 추천서를 부탁한 사람의 관계를 이 서류가 실질적으로 증명할 수 있느냐는 점이다.


보통은 개인적으로 친밀도가 충분하지 않은 경우 추천서 작성에 관한 부탁을 거절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추천인이 거부할 권리가 별로 없어 보인다. 눈앞에 서 있는 청년의 미래를 결정하는 일이다 보니, 신중하게 작성할 수는 있어도 아예 써 주지 않겠다고 거절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심지어 인사도 제대로 갖추지 않고 불쑥 당신은 나의 지도교수이니 추천서를 작성해 주세요라는 투의 부탁이면 더더욱 거절하고 싶어 진다.


그럼에도 이미 이 사회에서 어떤 자리든 점유하고 있는 자가 자신이 잘 모른다는 이유만으로 행정적으로는 책임을 다할 의무가 존재하는 듯한 청년을 모른 채 할 수도 없다. 그래서 잘 모르는 학생이 추천서를 청탁해 오면 간단한 면담이라도 해서 파악한 정보를 바탕으로 이 학생을 추천할 이유를 만들어내고는 한다. 직접 찾아오기 힘들다고 하면 온라인으로라도 대화를 진행하여 근거를 마련한다.


어떤 사람과의 관계는 보통 TMI로 이루어진다. 잉여 정보를 나누지 않고는 누군가와 관계를 맺었다고 말할 수 없다. 그래서일까, 추천서를 업무로서 처리하고 있는 나 자신은 아무와도 관계 맺지 않은 듯 고독감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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