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히 철들 수 없는 아들이 이미 아버지가 되어 버렸다
참을성 없는 아들을 보면 참을 수 없다. 이렇게 말하는 나 자신은 이미 자기모순에 빠져 있다. ‘참을성 없음’을 싫어하는 사람이 결국 ‘참지 못한다’는 말이기 때문이다. 참을성 없는 인간이 참을성 없는 인간을 징벌할 수 있을까. 부자가 빈자를 혐오하는 것보다, 부자를 비난하는 일이 힘든 것만큼 말이다.
아들 녀석은 어린이집에 가지 않는다. 몇 년 전에 어린이집에서 일어나는 안 좋은 일들 때문에 웬만하면 늦게 보내려고 마음먹었다. 아내 역시 마음속으로도 ‘완전히’ 동의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표면적으로는 공감하고 동의했다. 그러나 주변에서는 어린이집에 빨리 보내야 하지 않느냐, 늦게 보내면 좋을 게 없다, 보내면 좋다, 개인 시간도 가질 수 있다는 말을 줄곧 해왔다. 그들의 말을 들으면서 자신의 가치관을 전염시키는 데서 기쁨을 찾으려는 욕망을 느꼈고, 그래서 대강 맞장구를 치며 흘려들었다. 지금도 내 생각엔 변함이 없지만, 뭔가 힘든 건 사실이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내가 철저하게 규칙에 얽매여 살아왔던 인간이기에 그렇다.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군대까지 나는 규칙을 어겨서 혼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교칙과 규율을 항상 지키고 칭찬받기를 좋아했다. 아마 어릴 적부터 아버지에게 험하게 자라서 그런 모양일 수도 있다.
근대 이후의 사회는 철저한 공간적 구획과 시간적 계획에 따라 작동하는 거대한 기계다. 푸코를 들먹일 필요도 없이, 학교나 감옥, 군대와 마찬가지로 집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도 사회적으로 약속된 계획에 따라 진행되어야 한다. 가정은 국가라는 부대에 보낼 군인을 양성하는 훈련소다. 하루 세끼를 챙겨 먹고, 낮잠은 몇 분 동안 자고, 밤잠은 몇 시간 동안 자고, 텔레비전은 얼마나 보고, 장난감을 얼마나 가져 놀 것인지를 결정하고 이를 따르도록 교육해야 한다. 그래야만 가정의 아이는 사회의 패턴에도 익숙하게 참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어린이집에 빨리 보내라고 말하는 사람들의 입장도 이와 다르지 않다. 사회와 국가의 훌륭한 일원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지금부터 빨리 동료들과 어울리며 경쟁하고 그 속에서 살아남는 법을 익혀야 한다. 요즘 어린이들의 입에서 어른들은 차마 상상하지도 못할 말들을 경험하는 것도 사실 그 때문일 것이다. 그 상상할 수도 없는 말이란 예전 동시나 동화에서 보는 것과 같은 순수함이 아니라, 어른들도 이럴 수 있을까 싶을 정도의 때 묻은 말들이다. 어린이집이 잘못이 아니라, 어린이집에 있는 다양한 아이들의 영향을 받아서 그렇게 될 것이다. 초등학교에 들어가면 더 심하고 말이다.
발명왕이라고 소개되는 에디슨은 어릴 적에 학교에 적응하지 못했다고 했다. 보편교육의 체계에 자신의 사고와 흥미를 맞출 수 없었기 때문이다. 에디슨의 어머니가 위대했던 이유는 아이에게 학교에 맞추기를 강요하지 않고, 집으로 데려야 그가 원하는 방식대로 배우게 했다는 데 있다. 그러나 우리는 그렇지 않다. 텔레비전에 소개되는 일부 영재들의 부모라면 몰라도 보통 부모들은 아이에게 규율과 도덕에 맞추도록 강요한다. 그리고 자신은 육아 교본에 충실한 육아를 실행하려고 노력한다.
그 이유도 간단하다. 우리 사회가 발전해온 역사를 살펴보면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다. 전쟁으로 폐허가 된 국토를 재건하고, 하루빨리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모든 시간을 바쳤다. 나를 생각할 시간은 없었고, 오직 국가가 정상화되기 위해 희생하도록 강요당했다. 우리 부모가 그렇게 살아왔다.
이제는 먹고사는 문제는 대체로 해결되었다. 굶어 죽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러나 우리 마음의 속도는 전혀 느려지지(여유로워지지) 않았다. 먹고사는 문제가 해결되면 더 맛있는 것을 먹고 싶고, 한국의 맛집을 모두 섭렵했다면 외국으로 나가서 새로운 음식을 먹으려 한다. 비를 피할 수 있는 지붕과 바람을 막아줄 벽만 있으면 족하다고 생각했지만, 넓은 집, 더 넓은 집, 기왕이면 이름 있는 집을 찾아 나선다. 빨리 달릴 수도 없는 도로 위를 최고 속도와 출력이 얼마나 좋으냐, 주차할 공간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얼마나 많은 사람을 태우고 짐을 실을 수 있는지를 따져가며 자동차를 구매한다.
이 모든 욕망은 돈을 요구하고, 돈은 실체가 아닌 추상적 수치로 존재하기에 그 위력을 실감하지 못하고 빚만 늘어난다. 늘어난 빚은 보이지도 않는 세계에서 나의 목을 조르고, 숨통을 트기 위해 밤낮없이 일해야 하기도 한다. 돈의 위력을 느낄 수 있는 때는 단 한순간일지도 모른다. 법원에서 서류가 날아올 때 말이다.
사회의 구조가 잘못된 탓도 크지만, 사회 구성원의 책임도 없지는 않으리라. 개인이 모두 자본의 본성을 각성한다면, 사회는 변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마르크스가 예언한 자본주의의 최종단계로서 공산주의는 결코 도래할 수 없었다. 마르크스는 인간의 욕망이라는 변수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
이렇게 말하는 나도 이른바 ‘이백충’이다. 연봉 2400만 원을 받는다고 계약서에 적혀 있다. 12개월로 나눠서 월급을 받되 세금을 제외하면 한 달에 190만 원 정도를 손에 넣는다. 이 돈이면 크게 할 수 있는 것도 없다. 아파트 대출금, 10년 된 자동차의 보험료와 기름값 그리고 각종 수리비, 아이 먹을 것 입을 것, 우리가 먹을 것 입을 것, 경조사와 우발적인 사고에 대한 비상금을 모두 충당하기에 190만 원이라는 금액은 정말 보잘것없다. 갖고 싶은 물건은 말할 것도 없고 말이다. 먹고살 수는 있지만, 그 외의 욕망을 충족하기는 힘들다.
이런 상황에서도 나는 행복하다고 생각했다(정신승리). 그리고 불안하긴 하지만 꽤 만족스럽게 산다고 생각했다(자기 합리화). 아이에게도 그런 부모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지만, 아들의 천진난만함을 감당하기엔 나 역시 대한민국의 30대 남자였던 모양이다. 다섯 살 여섯 살이 되어도 엄마에게 기대고, 다른 사람을 두려워하고, 말도 잘못하고, 심지어 스스로 무엇을 하기도 무서워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하는데, 사회적 기준으로는 뒤처지고 방치된 아이처럼 여겨질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같은 것 말이다.
어릴 적 아버지에게 호되고 혼났던 이유는 놀랍게도 지금 나의 아들과 같다. 변덕을 부리고, 고집을 부리고, 들어주지 않으면 울고, 타이르든 단호하게 말하든 일단 거절당하면 소리 지르고 울고를 반복하는 모습. 하고 싶은 것이 있어도 말하지 않고 울기만 하는, 친구들과 어른들을 마주하면 부끄러워서 혹은 무서워서 제대로 인사하지도 놀지도 못하는 아이. 융통성도 없어서 심부름 하나 제대로 못 했던 아이. 그 부족한 아이의 모습이 지금 내 아들에게서 보인다.
아들을 나와 다르게 만들려고 해도 결국 이 아이는 나를 닮을 것이라는 사실을 안다. 아주 조금 다른 변종일 수는 있지만, 결국 이 아이는 정용호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내 마음속에 있는 부족한 아이조차 제대로 다스리지 못하고 있다. 모든 평범한 혹은 열등한 인간이 그러하듯, 나의 열등함을 아들에게 투사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아들이 어느 장소에 있느냐는 중요하지 않을 것만 같다. 내가 만들어낸 내 아들의 상[相]을 버리는 일이 핵심이다. 시급하다. 힘들다면 내가 집을 떠나는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더 자주 일을 만들고, 바빠져야 한다는 결론. 우리 아버지 세대들의 삶을 따라야 한다는 결론.
나이가 들수록 아버지가 이해된다. 엄마가 될 수 없는 고전적 아버지들은 어쩌면 그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그토록 집 밖으로 직장으로 끊임없이 나갔는지도 모른다. 아버지가 우리의 가족이라는 사실은 오직 먹고살 수 있는 돈을 벌어주는 것으로 증명되고, 더는 ‘쓸모없는 노동력’이 되어 가족의 일원으로 돌아올 때는, 적응하기조차 힘들 만큼 지치고 낯선 모습이 되어버리는, 그런 고전적 아버지들 말이다.
인간은 적응하며 사는 동물이라고는 하지만, 나와 닮은 아들의 모습을 교정하기 위해 애쓰는 일이 과연 보람찬 일이냐는 확신이 없다. 대신 아들이 아들의 모습 그대로도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일이 더 중요할 텐데 말이다. 그러나 사회는 너무 크고, 변화할지도 몰라서, 그래서 ‘소시민(소심인)’인 나는 이 작고 작은 아이를 교정하려고 온갖 힘을 허비하고 있다. 그것은 슬픈 이야기다. 영웅이 되지 못하는 초라한 아버지의 삶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