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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은 태어나서 제주로 가고 사람은 태어나서 서울로 간다

by 정선생

울산에서 서울로 떠나는 유튜버와 지방대학생의 처지


코로나가 시작되고 나서 미국에서 유학하던 유튜버가 한국으로 돌아왔다. 한국의 여러 지역 가운데 울산으로 왔는데, 그가 왜 울산에 왔는지는 알 수 없다. 어쨌든 그는 울산의 주거공간에서 촬영을 하거나, 서울에 가서 촬영을 하기도 했다. 어제, 그는 자신의 인스타그램에서 2년 동안 머물던 울산을 벗어나 서울로 옮겨 가게 됐다는 소식을 전했다. 한편으로는 매우 서운한 일이었다.


그럼에도 이해는 됐다. 지방에서 유튜버로 성공(일)한다는 게 힘들 수 있어서라고 생각했다. 유튜브 영상 제작자가 실물을 제작하는 사람이 아니더라도 소비자(시청자)는 반드시 필요하다. 인터넷이 실제 공간을 초월하기 때문에 지방에서도 충분히 성공할 수 있다고 주장할 수도 있고, 실제로 그런 사람도 있다. 그렇지만 하나의 콘텐츠 역시 실제 환경에서 탄생할 수밖에 없다. 유튜버 본인이 살고 있는 지역이 매력적인 콘텐츠를 탄생시킬 만한 여건을 갖추고 있어야만 사람들을 끌어들일 수 있다. 다양하고 복잡하게 조직된 도시에서 생활하는 것이 콘텐츠 소재를 발굴하기에 유리하다.


울산대학교는 울산의 유일한 종합대학으로 여전히 전통적인 학문 분과를 유지하고 있다. 그 가운데 하나는 내가 졸업하고 일하고 있는 국어국문학부다. 이곳에는 한국 학생들이 공부하는 국어국문학전공과 외국인 유학생이 공부하는 한국어문학전공이 있다. 물론, 이 학과가 인기 있는 학과라고 말하기는 힘들다. 그 이유는 당연히 '졸업 후 진로'가 보장되지 않기 때문일 듯하다. 한국 학생들은 당연하고, 유학생들까지도 졸업 후 무엇을 해야 할지 막막해한다. 막연히 취업을 이야기하지만, 자신이 취득한 전공으로 어떤 직종을 가질 수 있을지 막막하기만 하다. 외국인의 경우 자신이 취득한 전공에 관련한 직업만을 가질 수 있다고 들었는데, 그래서 더 막막할 것만 같다.


물리 공간과 비 물리적 공간 모두에서 경험하는 지방의 현실


울산을 비롯한 많은 지방 도시들은 공업 위주로 경제성장을 해 왔다. 그마저도 공단이 들어설 수 있었을 때의 이야기인데, 그와 같은 개발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면 농업이나 관광업(을 포함하는 상업)으로 생계를 이어나가야 한다. 일본의 지방과도 상황이 비슷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어떤 이유에서건 인구 이동이 자유롭지 못한 상황이 벌어지면, 지역 경제는 마비되고 만다. 코로나 바이러스와 외교 갈등 같은 것이 여기에 포함될 듯하다.


공단을 조성하든, 다른 방법으로 경제 활동을 하든 소비자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점이 중요하다. 지방에는 거주하는 사람이 많지 않기 때문에 이곳으로 놀러 오는 사람들이나 다른 지역에 거주하는 사람들을 고객으로 삼을 수밖에 없다. 이를 위해서는 유통망 형성이 필요한데, 전단지 광고를 통해서는 근거리 유통망은 형성할 수 있겠지만, 보다 넓은 범위로 유통망을 형성하기가 어렵다. 광역 유통망을 형성하기 위해서는 인터넷에 의존해야 하는데, 인터넷 사용 능력을 갖춘 사람이 대체로 젊은 세대라고 했을 때, 그들이 지방에 많이 몰려있다고 말하기는 힘들다. 젊은이들은 이미 대학 진학과 동시에 수도권으로 이주했고, 행여 지방에서 대학을 다녔더라도 취업을 위해 수도권으로 나가는 경우가 많으니까 말이다. 더군다나 군 단위의 지역이라면 고령 인구가 더 많을 수밖에 없다. 인터넷 활용에 관한 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졌을 가능성도 낮다.


첨단 시설, 문화 공간, 편의 시설, 최신 유행은 모두 사람들이 많이 모인 대도시를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한국에서 서울은 바로 그러한 장소이며, 치열한 경쟁이 벌어지는 전장이기도 하다. 내가 어릴 때, 지방 사람들이 간혹 비판받는 경우는 치열하게 삶을 고민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는 점이었다. 지방 사람들은 정보에 뒤처지고, 유행을 모르며, 그로 인해 민첩하게 대응하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정치적으로도 보수집단을 지칭할 때는 언제나 지방이 떠오르고, 그중에서도 경제적으로 비교적 발달한 경상도가 언급되는 것도 비슷한 맥락일 수 있겠다.


지방에는 공장이나 원자력 발전소 같은 시설들이 들어서고는 한다. 아무리 지역 주민이 반대해도 그들의 '소수의견'은 묻히기 십상이다. 수도권과 일부 대도시의 주민들을 위해 지방에 거주하는 사람들의 권익은 쉽게 무시되거나, 후순위로 밀려난다. 차라리 무시된다면 좋을 것을, 언젠가는 적절한 보상이 주어지리라는 희망을 안겨주는 조처는 지방 주민들을 더욱 고통스럽게 만들 수 있다.


균형이라는 개념을 사용하는 것은 적절할까


우리는 쉽게 균형을 이야기하고, 쉽게 공평과 공정을 이야기한다. 그런 단어를 꺼내기 위해서는 그것을 실현하기 위한 대단한 각오가 서야 한다. 공정을 추구한다, 공정을 추구해야 한다고 말하면서 자신이 누리고 있는 삶의 일부분도 포기하지 못하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목격할 수 있다. 나 역시도 그렇고 말이다.


공정과 공평, 균형이라는 단어는 언제나 자기중심적이다. 내가 손해를 보지 않는 공정, 공평, 균형을 이야기할 수는 있지만, 내가 당신보다 많이 가지는 것은 불공평하기 때문에 내어 놓겠다고 말하는 사람을 만나는 건 대단히 어려운 일이다. 국가의 균형 발전을 이야기할 때에도 마찬가지다. 대한민국 전도를 펼쳐 놓고 전체적인 도시화 산업화를 비교해서 진행하는 균형발전은 그 속에서 살아가는 각 개인의 처지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모든 개인의 처지를 반영하여 균형 발전을 추구한다면, 너무 많은 시간과 비용이 들어갈 게 뻔하다. 이런 과정에서 어떤 지역을 얼마나 발전시켜야 하며, 과거에 많은 이익을 누렸지만 현재에는 분명 부족한 부분을 느끼고 있을 지역 사람들은 어떻게 대해야 할까를 모두 고려해야 하니까 말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지방 젊은이들이 서울로 올라간다. 서울에서 핑크빛 미래를 보장받을 수 없지만, 지역 균형 발전이라는 터무니없는 약속만을 믿고 있기에는 답이 없기 때문이다. 서울로 떠나는 젊은이도 지방에 남겠다는 젊은이도 모두 대단한 용기를 내었음을 부정할 수 없겠다.


꼰대가 되고 싶지 않지만, 입밖에 나오는 소리는 항상 꼰대 같다

내가 사랑하던 유튜버는 이제 울산이라는 지방 도시를 벗어나 서울로 떠난다. 서울은 대한민국의 거대한 블랙홀이다. 모든 것이 서울과 수도권에 집중되어 있다. 그곳으로 간 사람들은 그곳을 벗어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어쩌면, 벗어나지 않을 것이다.

기후변화에 대처하기 위한 개인의 노력은 큰 의미가 없다고 말했다고 한다. 전 세계가 나서서 거국적인 단합이 필요한데, 그것은 바로 더 이상의 성장을 멈추고 불필요한 소비를 조장하지 않으며, 선진국들이 후진국이나 개발도상국에게 친환경 기술과 자본을 충분히 지원해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쉽게 말하면, 주식, 코인, 부동산에 들러붙은 자본의 증식을 멈추고, 모든 세계가 느린 걸음으로 아니, 차라리 그늘에 앉아 그동안 흘린 땀을 닦으며 쉬자는 이야기다(https://youtu.be/sMjAroVIp0k).


어쩌면 지방 소멸, 균형발전, 수도권 집중화로 인한 여러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한 방법도 어쩌면 그것인지 모른다. 서울은 많은 것을 내려놓아야 하고, 지방은 서울을 향한 동경을 멈추어야 한다. 블랙홀은 폭발해야 한다. 그래서 그 안에 갇혔던 모든 물질들을 바깥으로 쏟아내야 한다. 대폭발이다. 새로운 천지를 창조하기 위한 폭발이다. 물론, 그 폭발로 인해 현실은 피폐해질 수도 있다. 당장은 말이다. 그러나 이 땅에서 살아갈 후 세대들을 위해서 희생이 필요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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