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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선생 Mar 29. 2023

서로를 닮고 싶은 가상과 현실

생성형 인공지능(AI) 시대에 관한 단상 (1)

  인공지능이 나날이 발전하고 있다. 챗 GPT의 경우 아직까지 말도 안 되는 질문에 관한 답을 창작하는 문제가 있기는 하지만, 정신을 끝까지 집중하지 않으면 잘못된 부분이 전혀 없을 정도로 완벽한 문장 구사력을 발휘한다고 들었다. 그림 영역에서도 마찬가지인데, 실제 인물의 사진과 다를 바 없는 그림을 만들어 낸다. 인터넷에 있는 수 조 단위의 정보를 활용한 창작이니만큼, 인간이 이미 경험한 수준, 혹은 경험할 수 있는 수준을 뛰어넘는 작품 창작이 가능하다는 의미일 듯하다.


  수업 시간에도 학생들은 한국어로 된 교재를 자신의 모국어로 번역해서 과제를 수행한다. 예전에는 사전을 찾는 정도였는데, 번역 프로그램이 날로 발달하면서 사진을 찍어서 보여주면 아예 통째로 번역을 해 준다. 이와 같은 프로그램을 활용하면 앞으로 어학 공부를 굳이 할 필요가 없을 것 같고, 통역이나 번역을 가르치는 학과도 위기를 맞을 것 같다.


  하지만 번역가를 꿈꾼다는 한 학생에게 물어보니, 인공지능에는 감정이 없다며 자신이 꿈꾸는 직업으로서 번역가가 인공지능 시대에도 여전히 유용할 수 있음을 믿는 것 같았다. 이런 생각은 내가 보기에 '건강'하다. 한편으로는 '걱정'이 되지만.


  인공지능의 글쓰기는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수 조에 달하는 인터넷 자료를 바탕으로 학습하고 이루어진다. 예컨대 인간이 질문을 하면, 인공지능은 자신이 보유한 데이터를 찾아보고 학습하여 단순한 정보를 제공하거나, 의견을 제시하거나, 대안이나 문제제기까지 해낸다. 쉽게 말하면, 이른바 학자나 연구자가 수행하는 작업을 인공지능이 순식간에 해 낸다는 말이다. 몇십 년에 걸친 연구, 평생을 바쳐 발견한 이론 같은 게 무의미해진다는 말처럼 들리기도 한다.


  그러나 한 전문가가 하는 말은 좀 달랐다. 인공지능에게는 '원천 지식'이 필요하다. 인공지능의 '원천 지식'은 대체로 '인터넷에 존재하는 방대한 데이터'이다. 이런 자료를 생성하고 공유하는 홈페이지는 트래픽(접속량)에 따라 존폐가 결정된다. 인공지능은 자신이 내놓은 답변이 어떤 데이터를 참조했는지 밝힌다고 하는데, 사용자가 진위를 파악하기 위해 원천 지식이 있는 홈페이지를 방문하지 않는다면 어떨까? 해당 홈페이지를 방문하는 사람이 줄어들면 트래픽이 감소하는 것이고, 방문자가 줄어들면 홈페이지는 문을 닫게 된다. 손님이 없는 가게가 폐업하는 것과 같다. 성업하던 가게(홈페이지)가 문을 닫으면, 인간이 만든 창작물을 제공할 장소 하나가 사라지는 것과 같다. 그럼 인공지능은 인간이 만든 창작물을 활용하지 못하고, 인공지능이 만들어낸 자료들을 무한히 복제한다.


  해당 전문가는 이런 식으로 만들어진 자료의 질을 담보하기 힘들므로, 인간의 창작이 없으면 인공지능 산업도 자연히 침체될 수밖에 없다고 예상했다. 결국 인공지능이 발전하는 만큼, 인간의 창작 활동을 위한 법적 조치들이 마련되어야 한다는 말이었다.


  동시에 인공지능의 저작권 문제도 심각해 보였다. 요즘 인터넷에는 인공지능으로 그렸다고 말하는 그림들이 상당히 많이 떠돈다. 그런데 사실 그 인공지능 그림들은 이미 어딘가에서 봤던, SNS 계정에서 봤던 모습과 매우 흡사하다. 그 이유는 앞에서 말한 과정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이미 인터넷에 올라와 있는 사진과 그림을 학습(모방)하여 자신이 그것을 따라 그리는 것이거나 기존 사진과 그림을 절묘하게 조합하여 만들기 때문에 그런 그림이 우리를 헷갈리게 만든다.


  문제는 이런 그림들은 저작권을 가지지 못한다는 사실인데, 인공지능 그림의 저작권을 보호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https://it.donga.com/101806/


  앞서 말한 것처럼 인공지능이 그린 그림은 앞의 데이터를 활용해서 제작한다. 물론, 인간의 예술활동도 이런 과정을 거칠 수밖에 없다. 훌륭한 작품을 감상하고 모방하고, 자신만의 예술 세계를 구축한다. 그러나 인간의 경우, 특정 작가와 매우 흡사한 작품을 만들어내면, '모작' '가품' '위작'과 같은 비난을 받으며 저작권 소송에 휘말릴 수 있다. 그러나 인공지능의 경우, 명령어를 입력한 인간과 제작을 수행한 인공지능 프로그램이 불일치하고, 그림을 만들도록 명령한 사람에게 책임을 묻는다고 해도 실제 창작에 가담하지 않았으므로 저작권을 침해할 의도가 있었다는 걸 증명하기가 힘들다. 동시에 인공지능이 그린 그림이 저작권을 가진다는 건, 그 그림이 다른 인공지능에 의해 침해되는 상황을 막고 싶다는 의미를 내포한다. 다른 그림을 모방(학습)하여 만든 그림이 다른 인공지능에게 모방(학습)되기를 원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모순적으로 들릴 수밖에 없다. 그렇게 따지만, 인간이 그렸든 인공지능이 그렸든 세상 모든 작품에 저작권을 주거나 주지 않거나 결정해야 할 것 같다.  


  만약, 이러한 인공지능 작품에 저작권을 부여해야 한다고 말한다면 기존의 저작권 개념이 흔들릴 것은 물론이고, '작가의 개성', '자신만의 예술 세계' 따위의 개념도 무의미해질 수 있겠다. 인간이 참조할 수 있는 데이터의 양은 인공지능이 참조하는 데이터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협소하다. 따라서 인간의 작품이 누군가와 닮았다고 말하는 것과 인공지능의 작품이 누군가와 닮았다고 말하는 것은 완전한 차이가 있다. 세상 전체를 모방한 작품은 표절이 아닌 것일까? 만약 표절이라면 어떤 것을 표절했을까? 정확하게 표절한 내용을 특정할 수 없으므로 그 작품은 표절이 아닌 것일까? 인공지능은 표절이 아닌 학습한 내용으로써 그림을 그렸기 때문에 정당한 걸까?(오마주?)


  그보다 한 가지 놀라운 것은, 우리가 SNS에서 자주 접하는 인공지능 '미녀'들이 실제와 헷갈린다고 말하는 것 자체다(https://science.ytn.co.kr/program/view.php?mcd=0082&key=202301311653286078: 이 뉴스에서는 '불쾌한 골짜기(불편한 골짜기)' 효과는 인간과 완벽하게 닮아서 구분이 불가능해지면 해소된다고 말한다). 인공지능이 현실을 참조했다면,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수많은 여성의 이미지'가 바로 '인공지능이 만들어낸 그 모습'과 같다는 의미가 아닌가? 지나치게 큰 가슴과 지나치게 가는 허리, 지나치게 큰 엉덩이와 지나치게 선명한 이목구비를 가진 그런 여성의 이미지들. 이 모습이 마치 진짜 사람인 줄 알았다고 말하는 모습이라는 사실이 놀랍기만 하다. 하기는, 텔레비전이나 인터넷에서 유명하다고 말하는 '사람'의 모습이 저런 모습이기도 하지만 말이다.


  남성의 경우도 크게 다르지 않다. 현재에도 그렇지만, 과거 80년대에 활동했던 남성 보디빌더들이 스테로이드를 맞아가며 상상할 수 없는 크기의 근육을 만들던 것도 생각난다. 내가 사랑하는 수많은 할리우드 배우들이 그런 식으로 운동을 했었고, 그런 식으로 근육을 만들었다고 알고 있다. 지금도 게임이나 애니메이션에서나 봤을 법한 근육질 몸매를 만들어 뽐내는 남성들을 쉽게 본다. 혹은 근육=체중과 연관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굉장히 야리야리한 허리에 굉장히 큰 가슴과 어깨, 팔뚝을 가진 남성을 볼 수도 있다.


  물론, 그들(남성과 여성 모두)이 어떻게 '그런 몸'을 만들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또 어떻게 그런 모습으로 보일 수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사실 그것이 그들의 '찐' 노력이라고 하더라도), 이미 그들은 외형적으로는 인공지능 그림이었던 셈이다. 그러한 남성과 여성의 사진이, 또 그런 비범한 신체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미디어 산업의 내용들이 인공지능 그림의 원천 자료(지식)이니까 말이다. 


  인공지능은 현실처럼 보이기 위해 발전하고, 사람들은 인공지능처럼 보이기 위해 노력하는 이상한 삶. <매트릭스>의 네오가 해킹한 자료를 보관하던 책 시뮬라시옹의 저자 쟝 보드리야르가 말했던 시뮬라크르의 세상, 진짜와 가짜가 구분되지 않는 세상, 아니 진짜와 가짜를 나누는 것 자체가 무의미한 세상이 정말 시작되고 있다. 아니 이미 시작됐었고, 우리는 진짜 그런 곳에 살고 있었다. 어떻게 살아야 인간다운 것일까?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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