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다녔던 삼일회계법인에서는 어느 정도 연차가 되면, 4주 동안 영어만 주구장창 공부하는 코스에 보내주는 프로그램이 있었다. 용인에 있는 현대인재개발원(현대자동차그룹 인재개발원 마북캠퍼스)이라는 곳에서 숙식하면서 하루에 8시간씩 외국인 강사와 영어만 하는 그런 프로그램이다.
사실 그 프로그램에서 영어를 어떻게 해 보겠다는 사람은 거의 없다. 모두들 긴 휴가를 떠나는 설레는 기분으로 그곳을 간다. 그리고 또 하나, 사람들은 그곳에서 골프를 처음 시작한다.
현대인재개발원은 한성CC 근처에 있었고, 한성CC 근처에는 실내골프연습장이 하나 있었는데, 우리 법인의 회계사들은 거의가 그 연습장 동문이나 마찬가지였다.
나도 후배 회계사에게 이끌려 그 연습장에 등록했다. 솔직히 골프 같은 거 하기 싫었다. 돈도 많이 들 것 같았고, 시간도 많이 빼앗길 것 같았고, 무엇보다 집에서 눈치 줄 것이 뻔한 취미를 가지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그 연습장을 가지 않고는 저녁에 할 일이 없았다. 그 프로그램에 참여한 회계사들 중에서 나와 친한 애들은 모두 등록을 했던 것이다. 그렇다고 나 혼자 방에 처박혀 영어 공부로 저녁 시간을 보내기에는 상당히 찝찝한 구석이 있었다.
그래서 하는 수 없이 그 연습장에 등록을 했다. 지금 생각하면, 내 인생의 큰 행복 하나를 얻은 것이지만, 그 당시는 "이런 제기랄"의 시작이었다.
이틀째 되는 날, 다른 애들 똑딱이 할 때, 나는 하프스윙을 하고 있었다. 지금이야 그게 하프스윙쯤 되었다고 생각하는 것이고, 그 당시는 하프스윙인지 몰랐다.
프로가 하프스윙을 가르쳐 준 것은 아니고, 첫날 했던 똑딱이가 지겨워서 채를 좀 더 높이 들고 힘껏 쳐 본 것일 뿐이었다. 연습장 벽에서 나는 소리가 좀 커져서 기분이 좋았다.
연습장 프로가 그런 나를 우연히 보고서는, "십 년만 일찍 시작하셨으면, 프로 되셨겠어요."라고 이야기해 주었다. 정말 뿌듯했다. 그리고, 많이 아쉬웠다. 공부같이 재미없는 거 하지 말고 골프나 일찍 할 것을...
하지만, 골프를 배워본 사람들은 알 것이다.
저 멘트...
정말 몸치가 아닌 이상...
누구나 한 번씩은 비슷한 말을 듣는다는 것을.
"우리 프로가 나보고 재능이 있데!"
"나보고 정말 아깝데, 어릴 때 시작했으면 지금은 한국에 없었을 거라나."
"나같이 빨리 느는 사람 처음 봤다더라."
요즘도,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애들이 내게 저런 말을 하면서 우쭐해하는 걸 보면, 2006년의 내가 생각이 나서 얼굴이 뜨거워진다.
나는 그런 애들의 들뜬 말에 대해 두 종류의 답변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 답변으로 내가 그 사람을 어떻게 느끼고 있는지를 판단할 수 있다.
"딴 데 가서 절대 그런 말 하고 다니지 마라 !!!" - 친한 녀석
"그러게.. 아쉽다 정말." - 아직은 편하지 않은 사람
여하튼, 나는 그 연습장에 엿새 정도 나갔던 걸로 기억한다. 인재개발원에서 저녁 먹고 6시 반쯤 내려가서, 연습장 문 닫을 때까지 정말 열심히 휘둘렀다.
연습장 프로는 그렇게 하면 몸도 폼도 다 엉망 된다고 차근차근하라고 했지만, 어찌 되었든 간에.. 나는 7번 아이언으로 풀스윙까지 할 수 있게 되었다. 프로가 풀스윙을 가르쳐준 것은 아니고, 그냥 백스윙이 점점 커지더니 어느새 풀스윙이 되어버린 것이다. 10개 치면 반 정도는 뻥뻥 소리 나는 것이, 속이 다 후련할 정도였다.
그리고, 더 이상 연습장에 갈 수 없는 날이 와 버렸다.
왼손 새끼손가락이 구부러지지 않았다. 가는 막대기를 왼손으로 빡 쥐고선 너무 많이 휘둘렀기 때문이다. 뜨거운 물에 10분 정도 담가서 오른손으로 꼼지락거려 주면 펴지기는 하는데, 여간 번거로운 일이 아니었다.
대학교 때 검도 할 때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기에, 이 상태가 심해지면 얼마나 힘든지 알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