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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훈 Apr 24. 2021

좋소의 추억

사무치는 그 이름, 좋소


언론고시를 1년 쯤 준비했던 때였다. SBS 면접에서 광탈한 애들끼리 서로의 글을 크리틱해주는 스터디를 매주 해왔는데 서로 딱히 건들 게 없어질 무렵 그 애들은 PD가 되었다. 오랫동안 하려고 했던 일을 버리고 다른 진로를 바꿔 이 시험을 준비하게 된 거라 절실히 PD가 되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뭐라도 되는 게 목표였고 걔들이 PD 사원증을 손에 쥘 무렵 나도 뭐라도 되겠지 싶었다. 이것저것 써보던 중 채용공고가 재밌어보였던 한 스타트업에 지원해 입사하게 됐다. Start up 말이야 번지르르하지만 중소기업일 뿐이다. 요즘은 좋소라는 말로 중소기업을 희화한다. 좋소의 설움은 다녀본 사람만이 안다. 떠오른다. 좋소의 추억이.



분위기는 좋음

내가 다녔던 곳은 당시 흥하던, 사용자가 꽤 많은 IT 서비스였다. 성장하던 IT 스타트업답게 분위기는 좋았다. 또래들끼리 있으면 서로 공유하는 개그나, 느끼는 고충들이 비슷하니까. 말로만 수평적인 거 말고 진짜 수평적인 게 몸으로 느껴진다. 미국 팀 인턴이었던 리얼 뉴요커들이 한국에서 인턴 생활을 했던 적도 있었다. 걔들 데리고 투어 시켜준다고 주말에 소주도 먹으러가고 노래방도 가고 그랬다.(너무 좋아함) 그런 분위기는 그 이후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되려 또래들끼리 있으니 나이가 조금 있는 시니어 멤버분들이 소외되는 것처럼 보였는데 언어적으로 어울리지 못하며, 일반 회사처럼 따라다니는 후배도 없고, 직급이 없어 꼰대짓도 못하니 정말 외로웠겠다 싶었다.


돌아이 총량 보존의 법칙

중소기업은 작다. 그러다보니 확률적으로 이상한 자를 경험할 가능성이 높다. 수평적이고 마냥 아름다워 보이는 곳에는 이상한 분위기를 조성하는 직원들도 있었으니 본인의 업무 퍼포먼스를 통해 회사에서 애정결핍을 채우려는 자였다. 작디 작은 패권을 가지고 다른 직원들을 자기 입맛대로 쥐고 흔드는 데에 재미를 느끼는 듯 했다. 일적인 영역과 사적인 영역을 가리지 않고 안하무인 아무 말이나 내뱉던 그에게 말 조심하시죠,라고 한 뒤로 그 자는 내게 말을 걸지 않았다. 다른 많은 직원들은 그 자와 말 안 섞을 수 있는 비법이 뭐냐며 내게 조언을 구해왔고 그때마다 진심으로 상담을 해줬다. 더 큰 회사로 와서 다양한 경험을 한 지금에 와서 돌아보면 그 자는 다른 곳에서는 쉬이 찾아볼 수 없는 전무후무 역대급 인물이었다.


혼자서도 잘 할거야

회사의 업무 문화는 합리적이었다. 일은 본인이 만들고 회사는 실패를 받아들여준다. 큰 돈이 드는 거 아닌 이상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알아서 빠르게 시도하고 커리어는 알아서 챙긴다. 못 한다고 뭐라 하는 사람 없지만 잘 해도 뭐 없다. 보고 배울 사람 역시 없다. 6개월만에 이직 결심이 들었다. 하지만 일천한 경력에 받아주는 데가 없을 거라는 건 상상으로도 알 수 있었다. 뭐라도 일 다운 일을 더해서 나를 가치있는 상품으로 만들어 여기를 나가고 싶었다. 에디터, 서비스 운영, 마케팅, 제휴, 광고 영업, 광고 운영, 광고 콘텐츠 제작. 스타트업에서 했던 일들이다. 닥치는대로 일을 모았다. 해온 일들은 이 업계에 대한 나의 이해도를 많이 올려두었지만 전문성 없어보이는 커리어를 만들었다. 이직할 때는 저 중 몇 개만 압축시켜 뾰족해보이게 포장을 하느라 애먹었다.


캐시냐 스톡옵션이냐

통유리로 둘러쌓인 회의실에서 그런 질문을 받은 적 있다. 너는 캐시니 스톡이니? 마치 이 회사에 대한 믿음을 시험해보는 듯한 질문. 나는 얼마전 구매한 차량 할부가 있다며 민망한 듯 캐시라고 웃으며 얘기했고 상대의 얼굴에서는 희미하게 경멸이 보이는 듯 했다. 제휴 업무를 하다보면 스타트업 대표들을 직접 만날 일들이 생긴다. 술자리에서 직원들에 대해 얘기하는 그들에게서 비슷한 표정을 본 것도 같다. 직원으로 일해보지 않은 사장들에게서는 현실과 동떨어진 인식이 자주 보인다. 가령 우리가 살면서 필요한 캐시 흐름들이 있지 않나. 월세, 전세보증금, 모바일 요금, 보험료 등 숨만 쉬어도 나가는 그런 것들이 우리에게 있다는 걸 잘 모르는 듯 하다. 사실 빠듯한 살림살이에 캐시가 전부다. 무엇보다 회사원은 연봉으로 자기 몸값을 말한다. 스톡옵션은 거기에 플러스 동기부여 해주는 요소여야지 직원의 충성도를 가늠하는 도구로 쓰여선 안 된다.


시그널

스타트업은 회사의 성장과 나의 성장이 정비례의 상관관계에 있을 때 의미가 있다. 어째 일을 더 하면 할수록 회사는 성장이 보이지 않았다. 합당한 보상도 주어지지 않았다. 명품 브랜드와의 광고 계약으로 5천만원의 계약을 따냈던 날, 과자와 컵라면, 햇반, 참치 등이 놓인 회사 키친에서는 햇반이 슬그머니 자취를 감췄다. 나갈 때가 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요즘 회사들이 내세우는 업무기기 최신 맥북 제공, 연차 15일 제공, 스낵바 등 노동자가 받아 마땅한 권리를 복지로 포장한 가짜 복지마저도 유지가 안 되고 있는 곳이라면 아주 확실한 퇴사 시그널이다. 그 외 퇴사 시그널로는 지난 달 퇴사한 동료의 연봉, 이번 주 퇴사한 동료의 연봉, 어제 퇴사한 동료의 연봉 같은 것들이 있다.


아마추어리즘

퇴사한지 4년이 지난 지금도 나에게 이전 회사의 채용공고를 보내주는 사람들이 간혹 있다. 지원해보라는 시시한 농담은 아니고 채용 사이트 및 채용 공고 이미지에 내 얼굴 사진이 있어서 놀라서 보내준 것이다. 초상 사용에 대해 경고를 하거나, 고소미를 먹일까 고민했지만, 옛 정으로 그냥 넘어가고 있다. 많은 스타트업에서 기본적인 법적 이슈들을 챙기지 않는다. 인사시스템이 없는 건 안에서 새는 거니까 그렇다쳐도 개인정보, 초상권, 저작권 등 법적 이슈들을 방치하는 건 큰 리스크인데 아무도 문제의식을 갖지 않는다. 이는 직원을 대할 때나 사용자를 대할 때나 큰 차이가 없는데 알고 있음에도 작은 회사인데 눈에 띄지도 않으니 별 일 있겠어, 문제 삼아 봤자 나만 피곤하지,라는 식의 아마추어적인 인식이 팽배하다. 하지만 IT 기업에서 개인정보이슈는 치명적이기 때문에 한 방에 고꾸라질수도 있음을 좋소가 알았으면 한다.


이직

사실 나는 우리 서비스를 좋아했고 잘 될 거라 믿었다. 하지만 회사는 폭넓은 내외부 운영에서 오는 사용자 보이스를 반영해주지 않았다. 그래서 차라리 내가 서비스 기획자가 되어 서비스를 만들고 싶었다. 마침 그 무렵 내 커리어와 잘 맞는 채용공고가 있었다. 똑똑한 시니어 두분께 많은 조언을 구했고, 1년 8개월 만에 운좋게 비교적 크고 탄탄한 회사로 이직을 할 수 있었다.


동료들도 하나 둘 다른 곳으로 떠났다. 네이버, 카카오, 토스 등 국내 유수의 IT기업 곳곳에 이전 직장 동료들이 있으니 오랜만에 만난 분들과는 취업사관학교였다며 우스갯소리를 하기도 한다. 좋소, 좋았던 것도 많지만 깔 것도 많아서 그 때 얘기만 하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 Start up을 탈출한 이후 그 때보다 살림살이가 많이 나아졌다. IT 업계의 처우가 좋아질수록 좋소의 추억이 새삼 사무치는 건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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