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옥에서 온 채식 지향인
비건은 내게 목표다. 5월에 2주간 완전 채식에 도전했고 그 뒤로 비건 지향으로 살고 있다. '지향', 추구하는 목표가 거기 있고 의식이 거기로 향한다는 뜻이다. 2주간의 도전은 끝났고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는 동물성 식품을 섭취한다. 나는 흠결 많은 인간이기에 친구들과 술에 취해 기억을 잃고 고기만두 넣은 너구리를 먹기도 하고 엄마가 준 젓갈이 들어간 김치도 먹고 가끔 치킨이 생각나기도 한다.(놀랍게도 아직 치킨은 한 번도 안 먹음) 그 외 가능한 상황에서는 되도록 지키려고 노력하고 웬만하면 내 돈 주고는 소비하지 않는다. 채식을 통해 주변과 나를 조금 더 또렷이 볼 수 있게 되었다. 이제는 결코 전처럼 돌아갈 수 없게 됐다. 영향을 알아버렸기 때문에 만약 다시 돌아가더라도 전처럼 먹지는 못할 것이다. 2주 간의 완전채식을 하며 느낀 몇 가지 생각들과 3개월 간 채식을 지향하며 지속한 경험을 함께 다듬어 올린다.
1. 환대받지 못하는 소수자
어떤 이유에서 채식을 하든 그들은 소수자다. 나의 속성은 대체로 주류에 속한다. 남자고 이성애자이며 대기업, 직장인이고 젊고 아픈 곳 없이 건강하다. 표준 정도의 체중에 알러지도 없어서 아무거나 먹을 수 있는 사람이다. 채식을 한 뒤 오랜만에 개인의 선호를 검증받아야 하거나 설명해야 하는 경험을 했다. 주변인들이 소수자를 대할 때의 자세를 볼 수 있게 되는 건 덤이다.
사람은 자신의 속성이 일반적이거나 옳은 것이라고 생각하고 나 이외의 삶에 대해서는 쉽게 적의를 표하거나 조롱한다. 비건은 아니지만 맛있겠다는 반응을 보여주는 사람도 있었지만 대체로 뭔가 잘못되었다거나 극단적이라거나 설명을 요구하거나 검증하려는 태도를 보인다.(님들한테 권유한 것도 아닌데…?) 타인과 식사를 할 때는 폐를 끼치지 않기 위해 굳이 내 소수 취향을 밝히지 않거나 그냥 원하는 대로 가시라고 한다. 그렇게 불가피한 외식을 하는 경우 동물성 식품을 제외하면 대체적으로 흰쌀밥과 염장 채소(장아찌 류) 혹은 그냥 채소 샐러드로만 이뤄진 ‘형편없는 밥상’을 받아보게 된다.
해보면 안다. 채식 식당 거의 없고 채식 옵션을 가진 식당도 거의 없다. 한국에서 채식을 실천하기에 구조적 난관이 크다. 너무 먹을 게 없을 때는 그냥 상에 놓인 걸 먹는다. 그럼 비건 아니시냐며 또 왜 먹냐며 어깃장을 놓는다. 욕이 차오른다. 비건은 맛 모르냐? 그럴 거면 형편없는 밥상 안 받아보게 먼저 배려를 해주든지 어쩌라고..? 이렇듯 일부 육식인에 대한 나의 너그러운 배려는 무용하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앞으로 무례한 이들에게 배려나 침묵은 없을 예정이다. 수요가 늘고 선택할 수 있는 옵션을 가진 식당이 늘어나면서 서로 배려해주면 해결될 일이지만 다양성 최악 한국에서는 아직 갈 길은 멀다. 페미니즘 갖고도 설왕설래하는 모양이니 채식주의자를 환대할 여유까지는 없겠지.
(어깃장러들은 다이어트라든지 금연이라든지 어떤 개인적 성취와 목표를 좇는 이들 옆에 항상 있는 암적인 존재다. “이거 못 먹는 거 아니에요? 탄수화물 먹으면 안되지 않아요?” 걱정 혹은 배려해주는 척하지만 어깃장러들은 사실 아무것도 모르고, 나만큼의 고민과 갈등을 겪어본 적도 없고, 전문가도 아니며, 심지어 내가 뭘 먹든지 관심 없고 그냥 아무말이나 하거나 남의 실패를 즐길 뿐이다. 개인적인 목표로 향할 때 완벽과 실패는 본인이 추구하고 감당해야 하는 것이다. 목표의 추구는 언제나 좌충우돌 하면서 나아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2. 단백질 신화
채식에 도전하기로 마음먹으면서 가장 크게 고민했던 지점이다. 나는 2+3 분할 루틴으로 주 5일 웨이트 트레이닝, 그 후 20분 이상의 유산소를 4년째 하는 중이다. 체중의 1.3배 정도 그램수의 단백질 섭취로 고단백 저탄수 식단을 몇 년간 유지해오는 중이었다. 쉽고 빠르게 얻을 수 있는 닭가슴살을 매일 달고 살았다. 매 끼니 덩어리 고기나 생선은 필수였다. 다년간의 식단관리를 통해 내가 원하는 만큼의 체지방률을 유지했고 체력적으로 전혀 문제가 없어 보였다. 그러나 육식 기반의 고단백 식단은 동물성 지방과 콜레스테롤 등 불필요한 부산물을 너무 많이 섭취하게 된다. 높은 콜레스테롤 수치를 몇 년간 유지했고 고단백으로 인해 신장에도 부담이 가는 게 신장 수치로 드러났다. 외적으로는 건강해 보였는데 매년 건강검진 때마다 숫자는 그게 아니라고 말했다.
현대사회에서 동물성 단백질은 신화에 가깝다. 운동을 전혀 하지 않는 사람조차도 동물성 단백질의 신화에 빠져있으니 기가 찬다. 동물성 단백질이 효율적인 건 맞다. 그러나 영양적으로 문제가 없지 않고 너무 많이 자주 먹는다. ‘고기=단백질’이라는 공식 이면에 단백질 외에 함께 먹고 있는 게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나는 채식이 우월하다고 생각한다기보다는 고기의 장점이 과하게 부풀려져 있고, 위험성은 세련되게 감춰지고 있다고 느꼈다. 곡류, 콩류, 브로콜리, 버섯 등 식물성 단백질의 다양성과 탁월함도 주목받아 마땅하다.
모든 식단은 장점을 지니고 있으며 그에 따르는 리스크를 지니고 있다. 한때 유행했던 저탄고지나 원푸드, 존다이어트, 대중적인 고단백 식단 모두 마찬가지다.(원푸드 빼고 다 해 봤다) 채식, 육식, 잡식 모두 충분히 영양적으로 잘 통제되어 대규모로 검증되고 실험된 식단은 적다. 채식도 거기에서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에 맹신하고 싶지는 않았다. 최대한 영양적으로 세심한 검토를 통해서 실시했다. 1일 칼로리와 단백질 섭취량을 정하고 영양소와 다양성을 고려해 곡물, 콩류, 채소, 과일을 모두 포함한 식물성 고단백 식단을 구성했다. 모르는 게 너무 많아 꽤 등한시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장점이 많다. 속이 가볍고 더부룩하지 않다. 장 활동이 개선되었다. 가스에서 냄새가 사라졌다.(TMI) 웨이트트레이닝과 유산소를 할 때도 몸이 가볍고 전혀 무리가 없었다. 채식을 몸에 적용해 본 이후 영양적인 관점이 바뀌었다. 동물성 식품을 먹게 되더라도 이전처럼 메인으로 덩어리를 놓거나 많은 양을 먹지 않는다. 나의 메인은 이제 식물 기반이 됐고 잘 먹고 잘 사는 중이다.
3. 완벽할 수 없음
내가 채식을 하기로 마음먹고 가장 공감했던 이유는 환경적 이유였다. 이렇게 동물성 식품을 많이 먹는 것이 지속 가능한가. 대충 더듬어 생각해봐도 아니다. 인류 멸망의 조건은 인류가 될 가능성이 크다고 한다. 지구는 망가지고 있고 코로나19도 육식의 문제에서 자유롭지 않다. 사실 운동과 몸 관리를 핑계로 닭가슴살을 씹으며, 알면서도 꽤 오랫동안 외면해왔었다. 하지만 몇 개의 콘텐츠를 보게 되고 알게 된 뒤 확실히 달라졌다. 후손을 볼 생각은 없지만 살아있는 동안에라도 망가지는 걸 늦추는 데에 보탬이 되고 싶다.
물론 완벽할 수 없다는 걸 안다. 나는 인간으로 태어나 꾸준히 지구를 소모시키는 중이다. 화석연료를 쓰는 자동차를 운전하고, 더우면 에어컨을 틀고, 즐겨먹는 식물성 단백질 공급원인 낫또는 플라스틱과 비닐로 꼼꼼히 포장되어있다. 어쨌든 여긴 나와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사는 곳이니까 조금 더 나은 방향으로 유지됐으면 했다. 빨대를 안 쓴지는 꽤 오래됐고 최대한 대중교통, 선풍기를 이용하려는 편이지만 빨대 외에는 어느 것 하나 완벽에는 못 미치는 인간이다. 그런데 채식을 해서 영향을 덜 미치겠다고?
그래서 처음 완전 채식을 했을 때는 죄책감이 많이 들었다. 2주간 채식을 하긴 했지만 아무것도 완벽한 게 없고, 나의 소비 중 일부는 필수적으로 쓰레기를 생산하는 데 쓰이고, 그 와중에 치킨과 돈가스가 당기는 나를 보며 어느 날엔 환멸이 들어 잠을 설친 적도 있었다. 당기는 게 당연하지, 30년 넘게 그렇게 자라온 걸 어쩌겠어. 어쨌든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려 하는 나를 내가 예뻐해 주는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고 스스로를 너무 옥죄지 않으려 한다. 방향성을 잘 좇으려 매번의 선택에 조심하고 고민할 뿐이다. 100%는 불가능하겠지만 그 불가능함이 계속 지향할 수 있게 만드는 원동력 아닐까.
누군가를 변화시키거나 교조하려고 쓴 글은 아니다. 어차피 다들 별 관심 없는 거 안다. 이렇게 사는 거 쉽지 않고 피곤할 때도 있고, 그만큼 에너지가 있어야 할 수 있는 일이다. 다만 그렇기에 적의를 갖고 검증하거나 훼방을 놓으려는 사람에게 바치는 글이다. 나는 그런 사람들에게는 지지 않고, 어떤 변화는 완벽하지 않아도 아주 작은 데서 시작하니까 어디가서 그 변화의 에너지를 자르지 말라는 뜻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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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김한민 작가의 아무튼, 비건
다큐: 넷플릭스 콘텐츠 몸을 죽이는 자본의 밥상(what the health), 게임체인져스, 칼보다포크
레시피북: 베지테리언 레시피(타카시마 료야)
식당 찾기 앱: 채식한끼
콘텐츠는 아니지만 식물성 프로틴 파우더: 로우퓨전 식물성 프로틴
아래는 짝과 내가 직접 만들어 먹은 음식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