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책임을 책임지다
일이 너무 안 맞다
얼떨결에 시작한 나의 첫 직업, 시스템 엔지니어 일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고 느낀 감정이었다.
허나 모든 일은 시작이 어려운 법.
흔히 듣기에도 일은 원래 시발시발하면서 참아가며 하는 거라 들었다.
지금 느끼는 고통도 익숙해져 가리라 확신한 지 2년이 채 되지 않아서
이 일이 확실히 맞지 않다는 확신을 얻었다.
'퇴사'라는 키워드를 떠올리자마자 마음의 고통이 사라지는 경험을 했다.
기껏 취직한 첫 직장을 단순히 힘들다고 그만두는 건 너무 책임감 없다 느껴졌으나
추가적으로 몇 달 더 고민해 봤지만 뾰족한 수는 나타나지 않았고
이런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마음이 점점 커져 퇴사를 하게 되었다.
그 뒤에는 무엇을 할지 생각해 내서 실행에 옮겨야헀는데
그것보다 조금 쉬고 싶었다.
어찌 보면 다음 레이스를 시작하기 전에 휴식기간을 얻은 셈이라 생각하니
지금 아니면 하기 어려운 것을 하고 싶었고
그것이 한 달 살기였다.
장소는 일본으로 정했다.
태국이나 베트남 같은 물가 저렴하고 이국적인 곳으로 갈까 싶기도 했는데
내가 살아보고 싶은 곳이 가장 의미가 있을 것 같았다.
일본.
나는 오타쿠다
누군가는 해리포터 영화와 책을 읽으며 마법이 존재하는 영국에서의 삶을 꿈꾼다면
내 경우에는 학생땐 부활동을 하고 문화제를 하며, 성인이 되어서는 편의점에서 맥주와 데워먹는 안주를 사서 하얀 비닐에 넣고 털레털레 집으로 돌아가는 삶을 동경했었다.
나에게는 그게 판타지였다.
여기저기 다니지 않더라도 일본에 살고 있는 사람들 사이에 섞여서
밥을 먹고 걷고 쉬어보자
내가 평소 원하던 삶 속에 들어가면 또 다른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들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바람
큰 기대까지는 하지 않았다.
어린 시절 생각했던, 삶에 대한 깨달음을 주고 인생을 바꾸는 멋진 여행은
몇 번 비행기를 타보니 그리 쉽게 경험하지 못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런 마음으로 시작한 한 달 살기는
생각보다 나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다.
이 글은 정말 수십 번 쓰다 말다를 반복했다.
기왕 쓰는 거 내가 경험한 내용을 멋들어진 교훈처럼 모든 사람에게 전해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허나 느끼는 건 정말 개인적인 거고 애초에 그런 능력도 없기에
그저 있었던 일을 담담하게 시간에 따라 적어보려 한다.
그럼에도 본격적으로 글을 시작하기 전에
한 달 살기를 하면서 느꼈던 것들을 적어보자면
대체로 사람이란 호의를 표시하면 호의로 돌려주며
쓸모없다 생각한 능력이나 기술은 정말 의외의 곳에서 눈부시게 발휘되기도 하며
가능성과 기회는 움직일수록 많이 보인다는 것을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