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나, 너, 우리를 사랑하자!

by 세정

사랑, 소망, 믿음 그중에 제일은 사랑이다. 성경에 나오는 말이다. 왜 사랑을 제일로 꼽았을까? 필자는 사랑이 믿음과 소망의 뿌리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인간은 강한 자가 약한 자를 잡아먹는 약육강식의 관계 속에서 살고 있다. 그래서 인간은 불가피하게 죄를 짓는다. 생존을 위해 다른 존재를 공격한다. 죄를 짓고 살 수밖에 없는 나를 인정하고 사랑해야 소망과 믿음의 역사를 만들어갈 수 있다. 사랑은 잘잘못을 따지지 않는 것이다. 나에게 잘해주던 잘해주지 않던 받아주는 것이 사랑이다. 사랑하면 관심이 많이 가고 힘들고 어려울 때나 즐겁고 기쁠 때나 같이 보듬어주면서 그 감정을 같이 나눈다.


제일 먼저 사랑해야 하는 대상은 ‘나’이다.

자신의 현재 모습을 수용하는 것은 변화의 시작이다. 현재의 나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머리가 좋든 안 좋던, 얼굴이 잘 생겼던 못 생겼던, 집안이 부유하던 가난하던, 부모님이 자상하던 인색하던 그 자체의 현실을 받아들이는 것이 사랑이다. 자신이 불쌍하고 애처로워 보이는가? “힘들겠구나!”머리를 쓰다듬어주고 가슴을 어루만져주면서 감정을 나누면 내 속 깊숙한 곳에 숨어있던 진정한 ‘나’를 발견할 수 있다. 태어날 때 가지고 나온 그 무엇 순수한 자아를 발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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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자아(自我)를 발견하기 위해서는 태어나 차곡차곡 쌓인 껍질을 하나하나 벗겨나가야 한다. 자신을 진정으로 사랑하면 교육받고 환경에 영향을 받으며 이성에 의해 가려진 껍질을 벗겨 본질적인 나의 핵심가치를 발견할 수 있다. 나를 괴롭히는 문제의 뒤에는 숨겨진 욕구가 있다. 자신을 현재의 모습 그대로 수용하고 사랑하면 그 숨겨진 욕구를 볼 수 있다.


문제 욕구.bmp


사람은 태어나서 주어진 경제적, 심리적, 사회적 환경이 불우하여 슬픔과 우울 속에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성장하면서 맺은 가족, 친구들로부터 부정적인 비난을 받고 수치심과 분노와 증오 속에 사는 사람도 있다. 주어진 환경이 자신을 괴롭히도록 나둬서는 안 된다. 긍정적인 경험에 대해서는 주관적인 몰입을 하되 부정적 경험은 객관화시켜야 한다. 그렇게 하는 방법으로 영화관 기법이란 것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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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앞에 영화 스크린을 그려서 자신의 부정적 경험을 밖으로 끄집어내서 멀리서 바라보는 것이다. 영화를 보는 것처럼. 우리가 영화를 볼 때 주인공과 같은 감정이 되어 슬퍼하고 괴로워하지만 영화관을 나오면 그런 감정에서 쉽게 벗어날 수 있다. 영화 이야기는 영화일 뿐이지 자신이 아니기 때문에 그렇게 할 수 있다. 이처럼 자신의 과거 경험도 한 편의 영화로 바라보게 되면 자신의 과거 경험에 몰입되어 슬픔에 빠져 허우적대지 않을 수 있다. 과거의 경험을 객관화해서 보게 되면 그 경험에서 교훈을 발견하고 더 나은 삶을 위해 노력할 수 있는 에너지를 얻을 수 있다. 미워하는 사람들과도 관계를 회복할 수 있어 그들과 협력하는 관계로 발전시킬 수 있다. 적어도 미움에 빠져 감정에너지를 소모하지 않아 오롯이 자신의 에너지를 자신의 성장과 행복을 이루는데 바칠 수 있다.


다음으로 사랑해야 하는 대상은 ‘남’이다.

태어나서 우리는 남과 관계를 맺으며 산다. 부모, 형제, 친척, 친구, 동료, 선배, 후배 인연을 맺으며 산다. 이런 인연들로 인해 감정적인 갈등에 빠진다. 극단적으로 가까운 사람을 폭행하고 살해하는 경우도 있다. 남을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지 모범을 보여주신 분은 예수님이다. ‘오른뺨을 때리면 왼 뺨을 내어주라.’ 자신에게 해를 끼친 대상을 사랑하는 것은 보통사람들에게 어렵다. 인연과 관계를 할 때 공격적인 말로 서로를 물어뜯는 경우가 있다. 상대의 말과 행동으로 자존심에 상처가 나서 그렇게 된다. 상대방이 내 자존심에 상처를 낼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자존심은 태어나면서 가지고 태어난다. 자존심은 상대방이 만들어주는 것도 아니고 상처를 낼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필자도 사람인지라 나를 비난하는 욕을 들으면 마음이 상한다. 그렇지만 이내 ‘나에게 욕한 사람이 교육받지 못해 저렇게 말하는구나!’ 이렇게 생각할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원래 저렇게 조속한 사람이 아니라 ‘주어진 환경이 폭력적이고 빈곤한 삶이었기에 생존을 위해 남을 물어뜯어야만 해서 저렇게 되었구나!’이런 측은한 마음이 든다. 나를 공격하는 사람에게도 감정적으로 충돌하지 않고 그 사람 존재를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 감정적으로 흥분되어 있으면 대상을 깊이 관찰할 수 없다. 상대방의 존재와 탁월함을 발견할 수 없다. 다른 사람을 사랑의 눈으로 바라보면 그들의 타고난 재능을 발견할 수 있다. 다른 사람의 타고난 재능을 발견하고 그들과 협력할 수 있는 능력은 취업을 하던 창업을 하던 매우 중요하다. 큰 성과는 혼자서는 이루어낼 수 없다. 다른 사람들과 같이 힘을 모아야만 더 나은 세상을 만들 수 있는 제품과 서비스를 만들 수 있다.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취업과 창업에서 성공하는데 중요한 이유이다.


마지막으로 사랑해야 하는 대상은 ‘우리’이다.

우리는 가족, 친척, 친구, 회사, 마을, 국가, 세계, 우주로 넓은 대상이다. 사랑하는 우리의 대상이 커지면 커질수록 더 큰 성과를 이룰 수 있다. 아프리카의 어린아이들이 굶주리고 있는 것이 마음이 아픈가? 공해로 찌던 지구의 환경문제로 마음이 답답한가? 경제적으로 부유하지 않아 고생하는 가족과 친척 들 때문에 마음이 힘든가? 당신이 사랑하는 ‘우리’의 범위가 크면 클수록 당신은 높이 성장할 것이다. 옛날에는 욕구가 점차 생존->관계->성장->돈->권력->명예->기여의 높은 단계로 성장한다고 했지만 지금은 욕구가 점차적으로 성장하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기여의 욕구를 실현할 수 있다고 한다. ‘나’보다 ‘남’과 ‘우리’를 먼저 생각하는 기여는 어쩌면 그 이전 단계의 욕구를 실현하게 하는 중요한 요인이기도 하다.


가장 큰 비전은 ‘우리’가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큰 비전은 현재의 시련을 극복하고 끈기 있게 나의 능력을 발휘하도록 하는 에너지다. 지금 눈으로 보는 것처럼 생생하게 큰 비전을 구체적으로 그릴 수 있으면 오늘 힘들고 어렵지만 열심히 노력할 수 있는 힘이 생긴다. 비전을 향해 가는 과정에서 행복을 만끽한다. 비전을 이루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삶 속에서 이미 행복을 이루게 된다. 비전이 안 이루어진다 해도 상관없지 않은가? 난 이미 행복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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