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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정 Aug 15. 2019

詩 콘텐츠의 가능성

멀티미디어 시 플랫폼이 개발되기를 기대하며

구글에서 시집 판매량으로 검색해보면 "올해 한국시집 판매량 505% 늘어" 서울신문 기사가 눈에 띈다


학창 시절, 연애할 때는 애인에게 쓰는 편지에 시인의 감성을 빌려 나의 사랑을 표현하곤 했다. 그러나 직장에 다니면서부터 시집을 사지 않았다. 치열한 경쟁 속에서 감성보다는 이성으로 살았다. 나만 시를 잊고 살고 있었나? 정말 우리나라 사람들은 시를 많이 읽고 있는 것일까? 궁금해졌다.


시인을 만난 것은 우연이었다. 친구와 광화문에서 약속이 있어 볼만한 전시회가 있나 찾다가 사과를 들고 한복을 입은 여인의 포스트가 눈에 들어왔다. 사과를 테마로 한 사진 전시회였다. 약속 장소와 가까워 조금 일찍 광화문에 들러 전시관에 들렀다. 사진작가는 '지루한 일상에 불타는 구두를 던져라" 시집으로 유명한 베스트셀러 시인이었다. 시인과의 짧은 대화가 인연이 되어 시인의 시집 낭송회에 초대되어 갔다. 조그만 책방에서 시인의 시를 팬들이 읽고 시인의 이야기를 듣는 모임이었다. 그날 밤 시에 푹 빠져 '베개 같은 시인' 이란 제목의 시를 지었다. 


늦은 밤 문득.


그림을 그리고 싶었지만

사과꽃 향기 스민

빨강 캔버스에 

시를 쓰는 시인을 그려봅니다


괴로움 집착 버려 

앙증맞은 60년 세월

칡흙같은 아픔으로 

멍이든 꽃이기에 

당신은 나의 위로가 되어요


삶에 지쳐 허덕일 땐

머리 맡에 두고 싶고 

외로움에 질퍽인 땐 

가슴으로 안고 싶어요


밤을 지샌 고단함에 

발이 퉁퉁 부은 날엔

새카만 발 밑에 둘거에요


죽어라 사랑했지만

세상이 외면할 땐 

이유없이 때릴지도 모릅니다


곤히 잠든 나에게서 

버림받아 뒹굴어도 

매일 밤 어김없이 

나의 곁에 있어주세요


그대는 

불면의 나의 밤을

속삭이며 위로하는 

베개같은 시인입니다. 


성인이 되고 난 이후로는 처음으로 시를 쓰본 것 같다. 그 날 이후 출퇴근 길에 시를 붙들고 생각에 빠져든다. 3월 말에 시인을 만나서 줄곧 시를 지어 브런치에 '울림' 이란 메거진에 올리고 있다. 지금까지 67편의 시를 썼으니 거의 2~3일에 한 편의 시를 쓴 셈이다. 시를 배워 본 적도 없고 시를 많이 읽어보지도 않아 시를 어떻게 써야 하는지 모르지만 마음에 떠오르는 글귀를 붙잡고 몇 시간, 며칠을 몰입하다 시가 완성되었을 때의 재미가 좋아 시를 짓고 있다.


시를 배워보지 않은 필자의 시에 대한 생각은 이렇다.


시는 자기 안과 밖의 세상을 돋보기를 대고 관찰하듯 깊이 보는 것이다. 무수히 많은 장면이 자기 안과 밖에 있는데 그중에 하나의 장면에 몰입하는 과정이다. 그냥 지나쳐버릴 장면에서 재미와 의미를 발견하는 과정이다. 이러한 과정은 콘텐츠의 핵심이다. 시를 짓는 훈련은 좋은 콘텐츠를 만들 수 있는 힘을 길러준다. 누구나 똑같은 장면을 보아도 다르게 그 장면을 시로 표현할 수 있다. '나무 위의 새가 있다'라는 의미도 재미도 없는 사실을 설명하는 글은 콘텐츠로서는 가치가 없다. '나무 위의 새가 외롭게 울고 있다' 라거나 '나무 위의 새가 흥겹게 노래한다'라는 시인의 주관적 감정이 배어있어 콘텐츠로서의 가치가 있다. 시를 짓는 연습을 하면 세상에 대한 자기만의 해석을 할 수 있다. 주관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세상을 해석할 수 있는 눈을 가진 사람은 콘텐츠를 잘 만들 수 있는 힘이 있다.


시는 춤과 같다. 음악에 맞추어 춤을 추듯 운율에 맞추어 시가 읽힌다. 시를 따라 읽다 보면 기분이 좋아지는 것은 글 속에서 춤을 추기 때문이다. 늘려서 쓰는 산문과 달리 복잡한 문장을 짧게 표현해내기 때문에 글을 읽으면 늘어지지 않고 경쾌함이 느껴진다. 춤을 추면 어깨에서 흥이 온몸으로 전해져 기분이 업 되듯 시를 읽어도 춤을 추는 효과가 나는 듯하다.  사람이 많은 곳에서 춤을 추는 것은 쉽지 않은데 시를 읽는 것만으로도 그런 기분을 느낄 수 있으니 시는 언제 어디서나 즐길 수 있는 춤이다.


시를 읽는 사람은 순수하고 행복하다. 이런 순수는 남에게 피해를 주는 일을 하지 않는 건전한 시민이 되게 한다. 시는 맑고 깨끗하다. 시를 읽고 자란 아이는 절대 나쁜 어른이 되지 않는다는 말을 시인에게서 들었다. 깨끗한 공기와 음식을 먹으면 건강한 몸을 가지듯 맑고 깨끗한 시를 먹으면 정신과 마음이 건강해지기 때문이다. 서정시, 서경시, 서사시, 참여시 등 다양한 종류의 시를 읽으면 행복과 성장 모두를 이룰 수 있다. 


우리나라가 콘텐츠 분야에서 나름 선전하고 있는 것은 오랫동안 시를 사랑했던 민족이었기 때문은 아닐까? 사사람들이 만나서 시를 주고받으며 생각과 감정을 나누는 문화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다양한 분야에서 세계적인 명사를 배출하게 한 원동력이 되었을 것이다.


시에 대해 관심이 생기면서 친구들이나 회사 동료, 업무로 만나는 사람들에게 시집을 최근에 산 적이 있는지 물어보았다. 언론 보도로는 시집 판매가 증가하고 있다고 했는데 내가 만난 수 십 명의 사람 중에 시집을 산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다. 요즘 시를 읽어주는 콘텐츠를 네이버, 유튜브 플랫폼, 자체 앱을 통해 서비스하는 사례가 등장했다. 멀티미디어 환경에 익숙한 현대인들이 텍스트, 텍스트+오디오 시 콘텐츠에 대해 큰 관심을 보이지 않는 것 같다. 시장의 주목을 받을 정도로 시 오디오 서비스는 성장하고 있다. 


지하철 안전 스크린에 시를 붙여 시민들에게 서비스하기도 하고 시가 들어있는 시 항아리를 지하철 역에 비치하고 시민들이 시를 하나씩 가져가도록 하는 서비스도 있다. 어떤 도시에는 시 자판기가 있어서 시민들이 무료로 시를 읽도록 장려하고 있다. 시민들이 시를 많이 읽도록 하기 위한 다양한 시도가 되고 있지만 여전히 시는과거의 명성을 되찾지 못하고 있다. 


유튜브와 같이 동영상 콘텐츠를 쉽게 소비할 수 있는 환경에서 텍스트, 텍스트+오디오 콘텐츠 소비가 일어날까? 필자의 대답은 NO이다. 요즘 아이들은 말하고 글을 읽기 전부터 스마트폰으로 동영상을 보고 자란다. 따라서 시도 동영상으로 만들어져야 한다. 누구나 시에 소리, 이미지, 동영상을 입혀 멀티미디어 콘텐츠로 제작하기 쉬운 제작환경을 제공해주어야 한다. 시를 멀티미디어로 만들 수 있는 환경이 구축되고 누구나 시를 짓고 시를 읽는 문화가 만들어진다면 우리나라는 콘텐츠 산업에서 강자로 부상할 수도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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