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피소드 1 : 취업과 창업
김태열은 침대에 누워 아내의 부드러운 피부에서 전해지는 사랑의 에너지를 온몸으로 받아들였다. 그러고 나서 눈을 떴다. 창밖에는 벌써 아침 햇살이 아기 웃음처럼 밝게 퍼져 있었다. 숨을 깊이 들이마셔 본다. 여느 때 같으면 출근을 서둘러야 하지만 오늘은 그럴 필요가 없었다. 그래, 정말 잘 한 거야. 그는 흡족한 미소를 띠며 다시 한번 숨을 깊이 빨아들였다.
영겁의 시간에 걸쳐 우주를 맴돌던 따뜻하고 생명력 넘치는 한 줄기 바람이 그의 몸속으로 들어오는 듯했다. 김태열은 그 바람의 미세한 줄기들을 낱낱이 헤아리기라도 하겠다는 듯이 호흡에 집중했다. 그 안에는 필경 기나긴 우주의 역사가 있을 것이었다.
콧구멍으로 들어온 바람은 목구멍을 거쳐 폐부 깊숙이 들어앉아 그의 가슴 근육을 단단하게 팽창시켰다. 폐부에 가득 찬 우주의 바람은 큰 덩어리를 이루는가 싶더니 이내 산산이 부서지며 몸 구석구석으로 퍼져나갔다. 심장, 위장, 췌장, 십이지장, 대장을 지나 오장육부를 하나하나 거치며 퍼져나가더니 다시 의식의 중심자리로 모여들어 새로운 덩어리가 되었다. 빛이 되었다. 빛은 점점 커지고 밝아져서 우주의 거대한 에너지로 되돌아갔다.
그는 영문도 모르고 잠든 아내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말하나 마나 아내는 반대할 것이 뻔했다. 잔주름이 부쩍 더 생겨 보이는 아내의 착한 눈매를 보며 오늘은 기필코 얘기를 해야겠다고 다짐했다. 한 번 더 호흡을 가다듬는다.
우주의 에너지는 속도를 더하며 머리, 앞이마, 눈, 귀, 코, 입으로 휘돌듯이 내려간다. 양팔로 흩어지고 다시 손가락을 맴돌다가 옆구리를 간질이듯이 미끄러져 내려와 가슴과 배를 어루만지고 배를 타고 엉덩이를 거쳐 허벅지와 장딴지로 질주한 뒤 스키선수가 나는 듯 발목과 발등을 미끄러져 발가락 끝에 머무른다. 거기서 에너지는 나의 온몸을 해부하듯 되돌아 나오며 내 몸에 남아 있는 모든 부정적인 감정을 깨끗이 청소하듯 거두어서 밖으로 실어낸다.
행복했다. 오늘 이렇게 살아 숨 쉴 수 있는 기쁨을 누릴 수 있어서 감사합니다. 김태열은 자신도 모르게 나지막이 내뱉었다. 지난 몇 년간의 세월을 기억하며 달콤한 미소를 지었다.
김태열은 소위 SKY라 불리는 명문대학에서 컴퓨터공학을 전공하고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했다. 그가 대학을 졸업한 해는 뉴밀레니엄이 막 시작되는 2000년이었다. 우리나라는 90년대 말 IMF 경제위기가 몰고 온 뒤숭숭하고 어수선한 분위기를 하루빨리 벗어나 새로운 기회를 찾으려 발버둥 치며 노력하고 있었다. IMF 경제위기 때 대학을 졸업한 선배들은 취업을 하지 못해 곤혹을 치렀지만 그가 대학을 졸업한 2000년에는 사정이 달랐다. IMF 위기를 성공적으로 극복하고 컴퓨터, 반도체, 디스플레이, 핸드폰 등으로 대표되는 IT산업이 벤처 붐을 타고 호황을 누리며 성장하고 있었다. 우수한 학생들이 대체로 그러하듯 졸업 후 그는 정해진 코스처럼 IT(Information Telecommunication) 분야의 대기업 연구소에 입사했다.
입사하자마자 그는 R&D 분야에서 두각을 보였다. 개발한 제품마다 소비자들의 찬사를 받았다. 동료들보다 진급도 빨리 하고 연봉도 크게 뛰었다. 모든 것이 잘 풀려나갔으며, 모두가 부러워했다.
일은 엉뚱한 데서 터졌다. 김태열은 회사에서 개발하던 통신기기 제품 개발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현재의 제품과는 다른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착안하게 되었다. 그는 자기가 직접 회사를 만들어 개발하면 지금의 연봉보다 몇 배, 아니 몇십 배는 많은 돈을 벌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는 인사고과 점수도 좋은 데다 굵직굵직한 성과를 냈기 때문에 연말이면 동료들보다 더 많은 인센티브를 받았다. 그러나 자신의 노력에 비하면 항상 부족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동료들보다 훨씬 많긴 해도 만족할 정도는 아니었다. 더구나 자신이 계발한 제품으로 인해 회사는 엄청난 이익을 보고 있었다. 자신이 받는 인센티브는 거기에 비하면 푼돈이었다.
그는 마음이 급해졌다. 내가 왜 이렇게 개고생 해서 회사만 좋은 일 시키는지 알 수가 없었다. 이것은 결코 공평한 처사가 아니었다. 바로 그때 불현듯 떠오른 생각이 창업이었다. 차라리 회사를 만들어서 자신이 직접 회사를 운영하면 대박이 날 것이라는 데 생각이 미치자 갑자기 마음이 조급해졌다. 연봉이 올라가자 아내도 무슨 바람을 탔는지 요즘 유행하는 타운하우스가 어떠냐고 은근히 이사하고 싶은 의중을 내비쳤다. 창업만 하면 까짓것, 타운하우스쯤은 몇 개라도 가질 수 있었다. 깐깐한 최 팀장의 지시 따윈 받지 않아도 될 뿐 아니라 시기와 질투를 보내는 동기들을 당장 내 밑으로 끌어올 수도 있었다.
당장 이것저것 알아볼 것이 너무나 많았다. 여기저기 사람들도 만나야 했다. 더러는 미리 다짐을 받을 필요가 있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를 이해하지 못했다. 극히 몇 명을 빼고는 모두가 말렸다. 회사를 끼고 있으니 잘 나가지 회사 나오면 끈 떨어진 연이나 마찬가지라는 게 주된 이유였다. 사람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이미 바람이 들어갈 대로 들어간 김태열의 의지를 꺾을 수는 없었다. 창업에 꽂힌 그의 마음을 돌리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들은 내가 잘 되는 것이 싫은 거야. 지금도 봐. 겉으로는 날 선망하고 부러워하면서도 내가 없는 자리에서는 깎아내리기에 여념이 없잖아. 회사에서도 내가 성공하면 손실이 이만저만이 아닐걸. 이 정도 작은 파고를 못 넘고서야 무슨 회사를 차려. 말도 안 되지!’
김태열은 자신의 생각을 이렇게 정리하며 마음을 굳게 먹었다. 아내도 처음에는 반대하겠지만 결국엔 내 편이 되어줄 거야. 암, 그렇고말고! 그게 부부 아닌가. 그 사이 창밖의 햇살은 아기의 볼처럼 통통하게 살이 올라 있었다.
그래, 한 번 하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