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피소드 2. 실패
김태열은 안전한 직장을 다녔기 때문에 아이들 교육과 여유로운 생활을 하는데 월급의 대부분을 지출했다. 그러다 보니 저축해둔 돈이 많지 않았다. 창업자금 준비도 없이 덜컥 사표를 낸 것이다. 막상 회사를 그만두고 모아두었던 돈으로 생활비를 지출하면서 저축했던 돈이 바닥나기 시작했다. 아내의 걱정이 커갔다.
김태열은 이미 기업에서 성공한 프로젝트를 수행한 이력이 있기 때문에 자신의 아이디어로 창업하면 쉽게 투자를 받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통신기기 시장을 확 바꿀 수 있는 혁신적인 아이디어 아닌가? 아이디어를 사업화하기 위한 사업계획서를 만들어 대학 선배로부터 소개받은 벤처캐피털을 방문했다. 그는 열정을 쏟아부어 아이디어의 효용성과 가치를 설명했다. 그런데 벤처캐피털의 투자심사역은 그의 사업계획서에 특별한 관심을 주지 않았다. 제품의 아이디어는 신선하지만 새로운 제품에 대한 소비자들의 반응이 어떨지 확신할 수 없다면서 투자를 할 수 없다는 것이다.
“벤처캐피털도 회사예요. 수익을 남겨야 하는 회사라는 뜻이죠. 위험이 있으면 투자를 잘 하지 않습니다. 위험이 없다는 확신이 있어야 투자를 합니다. 아이디어를 가진 분들은 자신의 아이디어가 굉장하다고 생각하지만 정작 사업에 실패하는 사례가 많거든요……”
벤처캐피털이 아이디어만 좋으면 투자할 것이라는 순진한 생각을 했다는 자신의 무력감에 기분이 불쾌했다. 그는 아이디어의 가치를 몰라주는 벤처캐피털의 투자심사역이 괘심 했다.
“두고 보라지! 반드시 성공해서 후회하게 만들어주겠다!”
투자를 받지 못한 채 시간이 지나가면서 그는 계속 초조해졌다. 자신의 아이디어로 다른 누군가가 먼저 사업화하면 어쩌나 조바심이 났다. 평생 교직생활을 하고 정년퇴직을 하고 퇴직금을 받은 부모님이 생각났다. 그는 성공하면 호강시켜드리겠다며 제품을 개발할 수 있는 자금을 빌려달라고 부모님을 졸랐다. 안전한 직장에서 회사를 나온 아들이 못마땅했지만 아들 이기는 부모 없다고 노후자금으로 가지고 있던 퇴직금을 아들에게 주었다. 제품 개발 예산에 대한 예측이 잘못되어 개발자금이 부족하자 투자를 받기 위해 백방으로 뛰었지만 여전히 투자자들은 냉담했다. 제품 개발하느라 이미 투자했던 부모님의 퇴직금마저 날릴 상황이 되었다. 급기야 형, 누나 등 친척들을 찾아가 곧 사업이 성공할 거라며 돈을 빌려달라고 부탁했다. 정보통신 분야에 대한 전문지식이 없는 지인들은 사업 가능성을 예측할 수 없어 돈을 빌려준다는 게 내키지 않았지만 김태열의 간절한 부탁을 거절할 수 없어서 돈을 빌려주었다. 어렵게 구한 돈으로 마침내 기대하던 제품 생산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
김태열은 제품이 출시되기만 하면 사람들이 환호하며 주문이 쇄도할 거라고 기대했다. 제품을 완성하고 용산에 있는 상가에 들고 가면서 그는 벅찬 기대감에 손이 떨렸다. 처음에 그의 고생에 보상이라도 하듯 고객들은 찬사를 쏟아냈다. 주문을 모두 소화할 수 없을 정도로 제품들이 팔려나갔다. 그러나 대기업에서 유사한 제품들을 생산하고 대대적인 마케팅을 하면서 고객들은 대기업 제품을 구매하기 시작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제품에 하자가 발견되면서 고객들의 반응은 점차 식어갔고 매출은 급격하게 줄어들었다. 급기야 사무실의 임대료가 밀려 건물주는 사무실을 비워달라는 재촉을 하고 직원들 월급을 몇 개월째 못 주는 상황이 되었다. 열정으로 같이 시작한 사업이었지만 월급이 몇 개월째 밀리자 직원들은 언제 우리가 비전을 같이 한 동료였냐는 듯이 살길을 찾아 뿔뿔이 흩어졌다.
“완전한 실패다!”
가족을 볼 낯이 없었다. 부모님, 형, 누나 모두에게 경제적인 피해를 입혔다. 노후생활자금인 부모님의 퇴직금을 날려버린 죄책감이 컸다. 부모님 여행도 보내드리고 아내와 두 아들 행복하게 해주고 싶었는데…. 아내는 대기업에서 편하게 살 수 있었는데 괜히 욕심부리다가 망했다며 사업의 실패로 마음이 상한 그의 가슴에 비수를 꽂아대었다. 아이들도 그동안 편하게 지내왔기 때문에 사업의 실패로 인한 빈궁한 삶에 대해 불평이 많았다. 사업의 실패뿐만 아니라 가족들로부터의 외면은 정말 참기 어려웠다. 그는 도피하고 싶었다. 죽음을 떠올렸다.
“여행 좀 다녀올게. 미안해! 사랑해!” 아내에게 마지막 메모를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