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담췌'. 간, 담도, 췌장의 줄임말인 '간담췌'는 모두 복부의 내장과 관련한 기관을 일컫는다. '하얀거탑', '슬기로운 의사생활' 등 다수의 의학드라마에서는 이 '간담췌외과'가 등장하는데, 하얀거탑의 장준혁('김명민' 분), 슬기로운 의사생활의 이익준('조정석' 분)은 이 간담췌외과의 교수로 등장해 신들린 연기를 보여주었다. 주로 뛰어난 의술을 가진 천재적인 의사가 간담췌외과의 교수로 등장하는 것은 간, 담도, 췌장을 다루는 것이 결코 쉽지 않은 것임을 의미하리라.
이 기관에 발생하는 암은 모두 높지 않은 '5년 생존율'을 가지는 무서운 암들이다. 많은 분들이 평소 간암, 췌장암에 대한 이야기는 다양한 매체를 통해 접해보셨을 것이라 생각된다. 술을 많이 드시는 분이나 스트레스를 많이 받으시는 분들은 '간 건강 조심하라.'며 안부를 전하셨을 테고, 극악의 생존율로 유명한 '췌장암'의 경우 멀리 애플의 '스티브 잡스'나, 우리나라 월드컵 영웅인 '유상철' 전 감독의 경우로 많이 조명되면서 사람들의 뇌리에 깊이 남아있다.
평소에 음주를 즐겨하시던 덕에 아버지의 몸에 무리가 왔을 때, 우리는 처음 '간암'을 의심했었다. 아버지가 병원에 입원하시면서 나는 스마트폰을 켜고 간암에 대해서 한동안 구글링을 했다. '혹시 내가 간을 이식해야 한다면, 할 수 있을까?'와 같은 쉽지 않은 결정을 미리 상상해 보면서 말이다.
상대적으로 많이 알려진 간암, 췌장암에 비해 이름도 생경한 '담도암'의 존재를 아버지의 병환을 통해 처음 알게 되었다. 더 정확히는 이런 기관이 있는지도 몰랐다. '담도'는 간에서 만들어지는 담즙을 받아 십이지장으로 보내는 작은 기관인데, 이 기관에 악성종양이 만들어지는 경우 담도암이 된다. 더욱이 놀라운 것은 담도암의 경우 그 원인을 알 수 없다고 했다. 죽을지도 모르는 병인데 그 원인을 알 수 없다니...
담도암의 존재는 알았는데, 그러면 그 예후가 어떠한지 알아봐야 했다.
'28%.'
내가 찾아본 가장 높은 5년 생존율의 수치가 그 '28%'였다. 3명 중 1명이 채 살아남지 못하는... 담도암은 췌장암 다음으로 낮은 생존율을 보이는 극악의 암 중 하나였다. 아이러니하게도 앞서 이야기했던 하얀거탑의 간담췌 의사였던 장준혁은 본인의 야망이 절정에 다다를 무렵 이 담도암으로 생을 마감했다. 당시 하얀거탑의 PD는 장준혁의 사인을 담도암(담관암)으로 정한 것에 대해 다음과 같이 인터뷰했다.
'... 간암은 흔한 암이어서 배제됐다. 치료가 힘들고 사전 자각 증상이 없는 것이 담관암으로 낙점된 배경이다(배익현 PD)...' -중앙라이프. 2007.3.13. "드라마 속 의사들이 걸린 병" 발췌-
나의 '그래도 아닐 거야'하는 예상과는 다르게, 아버지의 암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 상대적으로 큰 느낌이 없었다. 그것이 이미 어느 정도는 암을 예상했었기 때문인지, 아니면 회사에서 업무 중에 전화로 암 판정을 들었기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냥 그랬다. 아마도 막연히 그 28%의 사례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강했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