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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이두씨 May 26. 2022

#1. 맑고 청명한 6월의 어느 날

2021년 6월 13일

점심 즈음 되니, 햇살이 뜨겁다.


"날이 참 좋구나."


6월의 여느 날과 같이 햇살이 촤라락 대지를 때리는 느낌이 참 좋았다. 전날 중국집에서 양갈비와 함께 때려부은 연태고량주 때문에 불편한 속과는 달리, 날씨는 더없이 쾌청했다.  


어제는 연구원에 새로 입사한 신입 박사님을 환영하기 위해 조촐한 저녁식사 자리가 늦게까지 지속되었다. 어느덧 연구원에 입사한지 10여년이 되고보니, 나는 '주니어' 테를 벗고 '시니어'로 나아가는 중이었고, 나보다 두살밖에 어리지 않은 신입박사는 적잖은 나이를 뒤로하고, 이제 막 주니어로 입사한 친구였기에 연구원의 선배로서 조촐한 환영식을 마련해 주었다. 코로나19로 인한 인원제약으로 소수의 인원이 자리한 저녁식사 자리가 그리 격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식사시간이 지속될 수록 기억나는 것보다는 기억나지 않는 부분이 많다는 것은 어제 마신 고량주의 병수가 적지 않았음을 알려주고 있었다.


국책연구기관에서 일한다는 의무로 인해, 우리가족은 태어나서 평생자란 서울을 뒤로하고 2019년 말에  '세종특별자치시'로 이주하였다. 2017년, 내가 일하는 연구원이 세종시로 이전하면서 근 3년여를 통근버스로 서울-세종을 오가며 출퇴근을 지속하였으나, 망가지는 몸과 정신을 더이상 감내하기 어려워 결국 '강제이주'를 결정하였다. 내 아내는 전형적인 '서울러'(Seouler) 였기 때문에, 세종시의 일상이 그리 달갑지만은 않았지만, 그나마 다행인것은 아내의 직장도 세종시와 그리 멀지 않은 대전이라는 이유로 우리가 처해져있는 현실을 수긍해 가는 중이었다.  


세종시는 아무것도 없는 허허벌판에 만들어진 신도시였기 때문에, 여전히 부족한 면이 많았다. 잘 만들어진 아파트와 보행로와는 별개로 요즘 젊은이들이 즐길만한 것들이 절대적으로 부족하였다. 특히 쇼핑과 즐길거리, 먹을거리 등을 복합적으로 제공해주는 '멀티플렉스'에 익숙한 요즘 사람들의 욕구를 채워주기에는 부족한 면이 많았다.


세종시에도 그러한 공간을 조성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몇몇 구역에 조성된 복합 쇼핑몰은 공실률의 비중이 입점률의 비중보다 컷고 이는 다소 삭막해 보일정도였으니, 가끔 사진을 찍어보면, 영화배우 윌 스미스의 영화 '나는 전설이다'(I AM LEGEND) 처럼 아무도 살지 않는 도시를 상상하게끔 하였다. 그마저도 이주를 결정한 2019년 말부터 코로나19가 전 세계를 강타하는 바람에, 세종시는 더욱 사람살지 않는 도시같은 느낌이 들었다.


이러한 이유로 우리 가족은 종종 세종보다 사람구경하기 좋은 대전의 쇼핑몰을 찾았다. 얼마전 개장한 대전의 모 아울렛은 쇼핑, 식사도 좋았지만, 무엇보다 아이들이 뛰어놀수 있는 넓은 '키즈카페'가 있었기 때문에, 육아에 허덕이는 부모들이 적잖은 비용을 지불하고 아이들을 잠시 위탁할 수 있는 이점을 제공하였다.


그날도 여느날과 마찬가지로 대전 아울렛을 찾은 나는 불편한 속을 달래기 위해 식사를 마친 뒤, 아이들을 키즈카페에 '집어넣고', 제일 위층의 야외 테라스에서 커피 한잔을 주문해 2차 해장에 돌입한 상황이었다. 대한민국의 술마시는 40대 남성이 그렇듯, 아내의 눈치를 조심스럽게 살펴보던 나는 '날이 좋다'는 분위기 전환용 멘트를 아내에게 투척하고, 분위기를 살폈다. 아내가 갑자기 생각난 듯 질문을 던졌다.


"그런데 아버지 생신 준비는 어떻게 준비되고 있는거야?"


2021년, 그해 7월 1일은 아버지의 칠순이 있는 날이었다. 1952년 5월 22일생이신 아버지는 2021년에 한국나이로 칠순이 되셨고, 그해 음력 5월 22일은 양력으로 7월 1일이었다. 환갑이 만나이로 치루는 것과 달리 칠순은 한국나이로 치루기 때문에, 우리 부부는 아버지의 칠순잔치를 준비중이었다. 요즘같은 시대에 '잔치'라는 단어를 쓰는 것도 우습고, 코로나로 인해 많은 인원을 받아주는 식당도 없어서 조촐하지만 귀티나게 준비하고 싶었다.  


부모님은 여전히 서울에 거주하고 계셨기 때문에, 서울의 모 호텔 뷔페를 예약했다. 당시 코로나로 인한 집합인원 제약의 숫자가 정확히 기억이 나진 않지만, 그 제약을 지키기 위해서 호텔측과 다수의 전화통화를 주고 받았다. 뷔페의 비용을 줄이는 최선의 방법은 포털사이트를 통해 예약을 하는 것 이었는데, 내 아내는 그녀의 명석한 두뇌를 십분활용한 우리집의 '기재부장관'으로서 이런 것에는 도가 텃기 때문에 이에 대해 나는 전적으로 일임하였다.


"일단 호텔예약은 숫자에 맞게 했는데, 어머니가 가족사진 찍자고 하셨잖아."
"그래... 그건 동생이랑 한번 상의해봐야 할것 같은데?"


내가 결혼해서 분가를 한것이 2013년 1월,  우리 부부가 두 아이를 출산한것이 각각 2013년 말, 2015년 말이니, 2015년에 이르러서 나와 아내, 두 딸아이와 아버지, 어머니, 여동생을 합한 7명의 직계존비속으로 이루어진 기족이 만들어졌다. 아직 미혼인 여동생이 언제 결혼을 할지는 몰랐지만, 가족사진이라는 변변한 그림은 내가 초등학생 시절이었던 30여년전 사진이 전부였고, 7인의 가족이 모두 모인 사진은 전무했으니, 부모님 입장에서는 절반이상 완성된 가족의 그림을 한장의 사진에 옮기고 싶으셨던 것 같다.

 

장남으로서 부담해야 하는 칠순잔치의 비용을 고려할때, 사진비용은 차녀인 여동생에게 부담시켜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랜만에 동생한테 전화를 걸었다. 짧은 신호음이 울린후에 여동생이 전화를 받았다.


"응...여보세요?"
"응. [동생]아. 오빤데, 전화되지? 아빠 생신 때문에, 그러는데.."
"응... 이야기 해."
"오빠가 호텔예약은 알아서 할건데, 엄마가 사진찍자고 하셨잖아? 사진은 아무래도 동네 근처에서 찍어야 될 거 같아서, 니가 예약좀 해줄 수 있나?"


동생이 잠시 머뭇했다. 귀찮아서 그런가? 속으로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어.. 근데.. 오빠."
"어?"
"지금.. 칠순이 중요한게 아닌거 같아서.."


응? 지금 이게 무슨 소리지?


"뭔 소리야?"  
"아빠가 아프시다고 했잖아. 그게 생각보다 심각한거 같아. 근데 아빠는 병원에도 안 가시려고 하고..."


몇 주 됐나? 아버지가 몸이 좀 불편하시다고 했다. 평소 그 흔한 감기조차 걸리지 않으셨던 것을 생각하면, 이제 나이가 나이인 만큼 몸이 쇠약해 지셨나했다. 우리네 아버지가 그렇듯, 아버지는 병원에 가시는데 무관심하셨다. 무엇보다 병원에 돈 쓰는 것을 아까워 하셨고, 병원 가실 시간에 하루라도 더 일거리를 찾아 헤매셨다. 그런 아버지가 가벼운 감기몸살 같아 동네 병원을 들락날락 하셨다는 이야기는 전해 들었었다. 나는 다 나으신줄 알았지. 동생이 이렇게 말한것에는 이유가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어떻게 안 좋으신데?"
"몸이 전체적으로 노랗고, 눈도 그.. 황달..끼가 조금 있으셔. 배도 불룩한게... 근데 아빠는 괜찮다고만 하고... 이제는 거동도 조금 불편하신거 같아. 딱 봐도 정상적이지는 않으셔."


노랗다고? 황달? 배가 나와? 생각치 못한 단어들이 수화기를 넘어 전해왔다. 거동이 불편하시다고? 내 생각과는 많이 다른데... 호텔뷔페 값 몇백만원, 사진을 찍기위한 스튜디오 비용 등 숫자로 가득했던 머릿속이 갑자기 까매졌다. 불편한 속은 더 불편해졌다. '별일 아닐꺼야. 별일 아닐거야' 불편한 단어와는 다르게 나의 뇌는 별일 아니라는 말을 되뇌었다.


...


우리 모두의 바램과 달리...

이날로 부터 1년을 채우지 못한 2022년 5월 7일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2년이 흐른 뒤에, 지금에서야 이 글을 엮어 책으로 출간했습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 드립니다. 

https://bookk.co.kr/bookStore/66332918fc0d5301c78a2ed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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