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연초를 떠들썩하게 했던 사건이 있었다.
사실 사건이 발생한 것은 작년의 일이지만, 연휴에 코로나 19 집합 금지로 대부분 집에 있던 사람들이 '그것이 알고 싶다'를 보게 되고, 너무도 충격적인 내용 때문에 온라인 상으로 일파만파 퍼졌기에 이슈화 될 수 있었던 이른바, '정인이 사건'.
사실 연말 즈음 뉴스에 보도되면서, 다른 작은 시사프로에서도 정인이 사건을 꽤나 다루었었다. 거의 비슷한 내용이었고, 여전히 충격적이었고, 묻혀서는 안 되는 사건이었는데, 이렇게 크게 이슈화되어 사실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인스타그램에서 얘기했듯이 역시나 무분별한 챌린지나 해쉬태그를 자기 사업에 이용하는 사람들이 나타났고, 굿즈까지 제작한 창의적인 인간도 있었다.
해쉬태그나 챌린지는 하지 않았지만, 작게나마 도움이 가능할 것 같다고 판단된 진정서 접수는 했다. 위탁가정에 있을 때 아이의 웃음이 너무도 밝았지만, 그에 반해 입양가정에서의 모습이 너무도 참담했는데 그 모습에 뭐라도 해주고 싶었달까.
나에게는 지우려야 지울 수 없는 기억이 하나 있다.
미국 유학시절, 첫째를 낳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때, 2시간 취침 - 기저귀 교체 - 2시간 취침 - 분유(혹은 모유) 먹이기의 굴레에 들어가 너무나도 힘들었던 때, 새벽에 아이가 깨면 번갈아가며 분유를 먹이거나 기저귀를 갈고 나서 재우곤 했는데, 그날따라 분유도 배불리 먹고, 기저귀도 문제없고, 열도 안 나고, 전혀 아이 컨디션에 문제가 없는 새벽이었는데도 불구하고 울며 불며 잠을 자지 않는 것이었다.
첫째는 갓난쟁이일 때 정말이지 세상 날카로운 아이여서, 삼칠일 지나고 교회에 갔을 때, 그 갓난쟁이가 엄마 아빠품을 어찌 감별해 내는지 교회 어르신 품에 안기자 마자 미친 듯이 울곤 하는 그런 아가였다.
어쨌든, 가장 힘든 새벽 4시경, 아이를 안고 아무리 재워도 잠이 들 생각조차 하지 않고, 나는 몇 시간 후 학교 수업에 가야 하고, 아이 엄마는 또 너무 반대로 세상 평온하게 자고 있고, 하여튼 잠결에 성질이 폭발하여 소리를 지르며 안고 있던 아이를 침대에 던져 버렸다..라고 표현했지만 사실상 한 10cm 위에서 침대의 푹신한 이불 위로 내려놓았다. 하지만, 팩트는 10cm일지언정 그 당시 내 느낌은 아이를 집어던진 것과 같았고, 동시에 '아, 나는 쓰레기 같은 부모구나... 내 피곤함과 짜증 때문에 이 갓난아이를 집어던지는 덜된 인간이구나' 엄청난 자괴감과 충격에 휩싸였었다.
그 날 이후로 둘째, 셋째까지 아가들이 얼마나 짜증을 내건 나는 더 이상 화를 낼 수가 없었다. 아가들이 우는 데는 이유가 있고, 그게 아가들의 유일한 감정표출 방법이니까. 물론 훈육이 가능한 나이가 되는 순간, 나는 아이들을 열심을 다해 혼내고는 있다.
작은 아가들이었다.
버려지고, 돌봐지고, 학대당하고, 죽임 당할 때까지 그 모든 것 짧은 인생의 과정 중에 아가가 선택할 수 있었던 것은 아무것도 없는. 아가의 웃음과 눈물에는 각기 이유가 있었지만, 아가의 고단하고 괴로운 짧은 생애를 만든 무책임한 어른들의 행위에는 이유가 없었다.
자신의 무정함과 무능력함을 아가들에게 풀지 마라.
그리고 이미 그랬다면, 천벌을 받아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