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 딸이 중학교 졸업을 했다.
코로나 19 때문에 졸업식은 Zoom을 통해서 집에서 하고, 졸업장과 기념사진을 찍으러 잠시 학교에 가는 방법으로 졸업식이 진행이 되었다. 얼마 전에는 새로 입학하는 고등학교의 교복을 맞추러 갔는데, 사실 등교를 안 하고 있는 가운데 이제 교복이 무슨 필요인가 생각을 하다가, 그래도 내 첫 고등학교 교복 맞추던 날을 생각해 보면 어쨌든 새로운 학교라는 것에 대한 기대감이 가장 커지는 하나의 의식이란 생각에 꼰대 같은 생각을 집어넣었다.
나의 중학교 졸업식을 기억해 보면, 당시에 유행하던 아이템들을 온몸에 갈아 넣었었다.
우리 때는 중학교 때까지 자유복이었기 때문에 등교할 때마다 옷 입는 것 때문에 참 고민을 많이 했다. 졸업식 날은 어머니 아버지와 고모도 와주셨고, 나는 장국영 머리를 롤빗으로 신나게 만들고 무스와 스프레이를 미친 듯이 머리에 뿌리고 고정시켰다. 진회색 터틀넥에 갈색 사파리 재킷을 입고, 당시 아버지의 일본인 친구가 보내주었던 리바이스 501을 입고, 갈색 랜드로버 구두를 신었다. 얼마나 고민해서 입었으면 아직도 기억이 날까. (훗날 고등학교 졸업식 날은 파코라반 4 버튼 블랙 슈트에 무크 구두를 신었었다)
각 반에서 졸업장을 받고, 내가 유일하게 받을 수 있었던 상장인 개근상을 받았다. 같은 동네에서 사는 친구들이랑 대부분 국민학교, 중학교 생활을 함께 보냈지만, 고등학교는 대부분 이곳저곳으로 흩어져서 가게 되었기 때문에 아쉬운 마음에 졸업식이 끝나고도 이 친구, 저 친구 잡아서 사진을 정말 많이 찍었었다.
당시에는 고등학교부터 교복을 입게 되었었는데, 학교 앞 교복집에서 재킷 사이즈를 고르고, 바지를 고르고, 기장을 줄이는 그 과정들이 참으로 신기했다. 그 와중에 바지는 그 당시 유행과 동떨어지게 너무나 펄럭였었는데, 아주 소심하게, 교문 앞에서 학주 선생님께 걸리지 않을 정도로만 줄였던 기억이 있다. 물론 2학년 올라가면서 걸릴 랑 말랑 마지노선으로 다시 줄였지만.
교과서를 받으러 가던 날은 '뉴키즈 온 더 블록'의 내한 공연이 있는 날이었다. 그 날이 크게 기억에 남지는 않았지만 교과서가 너무나 많아서 버스 타고 오는 길이 매우 힘들었었고, '뉴키즈 온 더 블록' 공연장에서 사고가 나서 사람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갈 수도 없었지만) 안 가길 잘했다는 생각을 했던 기억이 있다.
아이들에게 계속해서 뭐든 좋으니 하고 싶은 것을 찾아 꿈을 가지라고 말했다.
나 같은 경우 꿈을 의외로 쉽게 찾아 그것만 보고 가려고 했지만 아버지의 반대라는 난관에 중도에 꿈을 잃고 나서 성인이 되고 나서도 한참 동안 힘들게 지냈던 시간들 때문에 더 아이들에게 꿈을 '강요'하게 되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런 말 조차도 부모의 권위의식에서 오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딸아이는 공부에 관심이 별로 없고, 무언가 만들고, 그리고, 꾸미기를 좋아한다. 예전의 나와 같다. 다만 예전의 나는 그것이 꿈이 되어서 이루어 보려다가 하지 못했고, 아이는 좋아는 하지만 이것을 꿈으로 갖고 싶지는 않은데, 부모가 꿈으로 가져가라며 강요하는 것이 달랐다.
아빠로서, 딸아이의 중학교 졸업을 축하하며, 무엇을 하든지 행복하고 건강하게 살아갔으면 좋겠다.
그리고, 나의 부모님이 그랬던 것처럼 그것을 잘 해낼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다. 그것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