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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순항중인 김씨 Aug 11. 2023

공항에서 만난 손님 첫 번째, 욕설 그리고 화해?

김씨의 항공이야기

큰 키와 큰 덩치의 그 손님은 왜 내게 소리를 지르고 욕을 그렇게나 했을까


"따르릉~따르릉"


"네, OOO입니다."


"매니져님, 방금 도착한 XXXX편 손님께서 항공기 지연으로 불만을 접수하시고 계신데 남자직원 나오라고 하십니다. 심각한 것 같습니다."


남.자.직.원.


느낌이 왔다. 강력하다. 긴장되고 극도의 스트레스가 몰려오지만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그리고 바로 달려가야 한다. 직감적으로 느꼈다. 나는 바로 사무실을 박차고 나와 빠른 걸음으로 또각또각 구두 뒤꿈치 부딪히는 소리를 내며 국내선 도착장으로 향했다.


보인다. 한눈에 저분인 걸 느꼈다. 


"안녕하세요, XX항공 매니져 OOO입니다."


손님은 약 185cm 정도의 키에 90kg 족히 넘어 보이는 큰 체격이셨고, 얼굴이 붉으신 것으로 보아 약주를 하신 것 같았다. 

처음부터 기선제압을 하시기 위해서인지 큰 소리를 내시며 항공기가 지연돼서 시외버스를 놓쳤다고 보상을 하라고 말씀하셨다. 


아주 정확한 시간을 기억할 수 없지만 대략 이렇다. 실제와 오차는 1,2분 정도로 생각한다.

손님이 타신 비행편은 제주에서 김포로 오는 항공편이다. 


제주에서 21시 출발인데 21시 12분에 출발했다. 

김포에 22시 10분 도착인데 22시 13분에 도착했다. 

손님은 22시 20분에 출발하는 의정부(예시)행 시외버스를 예약하셨다.


제주에서 항공기 탑승은 지연 없이 정상적으로 이루어졌다. 

그런데 제주공항은 항공기 트래픽이 심하다. 활주로로 가기까지 앞에 밀린 항공기가 많아서 순서를 기다려야 한다. 지연 없이 탑승하고 항공기 문을 닫아도 앞에 항공기가 밀려 있으면 순서를 받고 기다린 뒤 순서가 되면 항공기는 유도로를 통해 활주로로 나간다. 손님이 타신 항공편은 그 이유로 12분 지연 출발을 했다. 

그렇게 항공기 교통 통제가 잘 된 상태로 출발하여 실제 운항 중에는 운항시간을 줄여서 김포에는 3분 지연 도착하게 되었다. 손님이 타신 항공기는 다행히 버스를 타고 청사로 오는 리모트(remote)주기장이 아닌 탑승교 스팟(spot)으로 도착했다.


항공기가 정시인 22시 10분에 도착을 했다고 하더라도, (도착 시간은 공항 착륙시간이다.) 활주로에 착륙해서 아무런 방해, 멈춤 없이 탑승교로 들어온다고 하더라도 최소 3분 정도가 소요된다. 그리고 탑승교를 항공기에 접현시키고 기내승무원과 지상직원 확인까지 약 2분이 소요된다. 문이 열리면 22시 15분. 맨 앞열에 앉아 있고 위탁수하물이 없다고 가정하고 국내선 1층 시외버스 탑승게이트까지 전력질주를 하면 약 3분 정도가 걸려 22시 18분에 도착해 버스를 탈 수도 있으셨을 수 도 있다. 

하지만 아쉽게도 3분의 지연도착이 있었고, 손님은 항공기 가운데 좌석에 앉으셨고 내리셔서 뛰지도 앉으셨다. 그리고 바로 직원을 찾아 버스를 놓쳤다며 남자직원을 불러오라고 말씀하셨다.


그렇게 내가 서있다.


"손님, 정말 죄송합니다. 제주출발 지연은 공항사정에 의한 트래픽 문제로 발생하였으나, 김포에는 3분 지연도착하였고 항공기 도착 후 소요되는 시간을 감안하면 예약하신 버스시간은 탑승하시기에 어려움이 있.."


강렬한 욕설이 날아왔다. 게다가 목청이 정말 크셨다. 뒤에 청원 경찰분이 계셨으나 다가오시려고 하지 않으셨다. 손님은 바닥에 침을 뱉으셨다. 여러 차례.


손님은 김포에서 의정부까지의 택시비를 원하셨다. 대략 4만원정도 비용이다. 4만원이란 돈이 크고 작음을 떠나서 회사의 과실이 없고, 타당한 사유가 없으면 회사비용처리는 사실상 어렵다. 그래도 그 정도 비용은 재량으로 처리가 가능은 했지만 이런 상황은 재발하게 되면 나중에 더 큰 어려움이 되고 다른 지점에서 김포지점은 해줬다는 식으로 말씀하시게 되면 동료들이 더 힘들어진다.

그런 것도 있지만 이미 수많은 욕설과 내 주위에 침을 하도 뱉으셔서 나도 오기가 생겼다.


'절대 안 해주리라..'


약 20분간 서로 같은 말을 반복적으로 주고받았다.

나도 지쳐갔다. 거의 23시가 되어가고 있다. 나는 내일도 출근을 해야 하는데...


손님이 갑자기 담배를 피우러 가신다고 한다. 나는 담배를 피우진 않지만 따라갔다. 조금 화가 누그러지신 것 같았다. 목소리를 깔고 말씀하셨다.


"집이 어디예요?"


"OO구" 입니다."


"그럼 나 태우고 택시 타고 가요"


"손님, 죄송합니다. 지금 바로 이동하시면 지하철로 가실 수 있으십니다."


"나 지하철 못 타, 잘 몰라." 손님은 40대 초반이셨다. 지하철을 2번 갈아타면 댁까지 가실 수 있었다. 

그런데 시간이 23시 10분. 나는 속이 타들어갔다. 지하철이 끊길 수 있기 때문이다.

다시 손님이 말씀하셨다.


"아니, 무슨 항공사 직원 돈도 많은데 택시 타고 같이 가요, OO구까지만 가면 나는 거기서 내려서 내가 알아서 갈게."


방향이 같은 곳이었고 OO구와 손님댁은 택시로 1만원~1만5천원 정도였다.

나의 오기가 꺾일 뻔도 했지만 다시 불타올랐고 마지막 승부수를 띄웠다.


"손님, 저 코로나 때문에 2년 넘게 쉬었습니다. 돈 없습니다. 제가 지하철로 같이 모시겠습니다. 지금 바로 출발하시면 됩니다. 더 늦으면 지하철 끊깁니다."


손님도 느끼신 것 같다. '아.. 이놈은 진짜 택시를 안탈 놈이구나.'


23시 20분. 김포공항에서 지하철로 이동했다.

나는 가방에 있는 잔돈으로 손님 티켓을 끊어드렸다. 

그리고 우리는 공항철도에 몸을 실었다.

조금 전까지 내게 쌍욕을 하시던 손님과 나는 나란히 의자에 앉았다. 


정적...


"OO구 어디 학교 나왔어요?" 한결 부드러워진 손님의 목소리.


"XX고등학교 나왔습니다." 간단한 호구조사를 통해 손님도 학창 시절에 OO구에서 중학교를 다녔음을 알았고, 손님은 더 부드러워지셨다. 그리고 나이와 결혼 여부를 물으셨다.


환승을 하고 다시 어색한 상황이 이어지고 마지막 환승구간..


손님이 웃으며 이제 가보라고 하신다. 거기서 손님의 목적지까지는 10분 정도였다. 나는 다시 오기가 발동해서 끝까지 데려다 드리고 생색을 내볼까도 생각했지만, 이미 자정이 넘은 상황이고 내일 출근을 생각하면 그럴 수 없었다. 예의상 한번 거절하고 끝까지 바래다 드린다고 말하고 두 번째에는 바로 승낙하고 돌아섰다.


"조심히 들어가십시오, 손님."


화가 나거나 하지 않았다.

다만 너무 힘들고 지쳤다.

여름이었고 나는 속옷까지 땀으로 젖었다. 


십여 년 중에 만난 분들 중에 손에 꼽는 손님이었던 것 같다.

그래도 다행이다라고 생각했다. 다른 직원들이 겪지 않아서.


잘 계시죠 손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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