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중심 디자인 방법론이 필요한 이유
하루는, 본가를 가기 위해서 양재역에서 강남대로를 따라 이동하는 중에 조금 언짢은 기분이 든 적이 있다. 아주 사소한 트집일 수도 있겠지만, 너무나도 기본적인 배려조차 없는 모습에 참지 못하고 사진을 찍어뒀었다. 나중에 브런치에라도 고자질(?)하려고.
이 사진을 보면 왜 언짢았는지를 금방 눈치챌 수 있을 것이다.
1. 자전거 도로
자전거는 도로법상 차로 분류가 된다. 자전거 도로를 만들고, 눈에 띄게 칠해 놓은 것 까지는 참 좋았는데, 자전거 도로 때문에 인도는 자동차와 자전차, 두 차로 사이에 위치하게 되어 버렸고,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두 차로 사이를 걸어야 하는 현상이 발생하게 된다. 본능적으로, 사람들은 인도보다는 빨갛게 칠해져 있고, 걷기 편해 보이는 자전거 도로위를 걷게 된다.
2. 자동차/오토바이의 인도주차
빌딩 앞에 주차되어 있는 차는 어디로 올라온걸까? 얼핏보아도 차가 올라올 수 있는 진입로는 보이질 않는다. 어느새인가 우리는 빌딩의 바로 앞은 당연히 빌딩을 방문한 차량의 주차공간으로 인식을 하게 되었고, 인도를 점유하거나 이동하는 것의 위험에 대해서는 너무 무뎌져버렸다. 오토바이(전동이륜차)가 인도 위를 달리는 것쯤은, 당연시하게 되었다.
3. 자전거 도로 내의 진입 차단 봉
어쩌면 이 자전거 도로는 설계부터 실제로 자전거의 이동량이 많지 않다는 것을 염두하고 설계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전거를 위한 도로라면, 특히 어두운 밤에는 저 진입 차단 봉이 자전거 운전자에게 최악의 장애물이 될 수 있을거란 생각이 들었다.
자전거 운전자들이 편하고 안전하게 도심에서 라이딩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자전거 도로의 명확한 기능적인 목적이긴 하지만, 도시 설계라는 공공 디자인의 영역임을 감안하면, 사람이 최우선으로 배려받지 못한 것은 정말 아쉽기만 하다. 도시에 살아가는 한 구성원이 되어, 자전거를 타면서 누구로부터 배려받아야 하고, 누구를 배려해야 하는지 정도만 생각을 했어도 자전거 도로의 설계는 좀 더 사람 중심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다. (창의적인 사람처럼 보이지 않아서 이딴런식으로 설계한 것일까, 하는 생각도 든다.)
며칠뒤, 회사 출근하면서 찍은 사진이다. 마음은 여전히 불편하다. 골목이긴 하지만, 인도가 없어서 사람들은 차도로 걸어다닌다. 인도는 건물에 따라 있는 곳도 있고 없는 곳도 있어서 안전을 보장받으며 걸을 수 있는 상태가 아니다. 그나마 조금 남아 있는 인도마저 주차장으로 용도 변경된지는 오래다.
간혹, 건물 앞에 충분한 폭의 인도와 주차장을 마련해 놓은 건물도 있다. 하지만 인도는 주차된 차량에 의해 점거 당한 상태이고, 주차장은, 누굴 위해 공간을 확보해 놓은 것인지, 바리케이트가 쳐져 있다. 이런 상황을 그나마 다행이라고 해야 하는건지 잘 모르겠다.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간단하다.
건물을 기준으로, 가장 안쪽은 인도, 자전거도로, 주/정차공간, 그리고 도로의 순이 항상 지켜질 수 있도록 가이드를 마련하고, 설계/감리 시에 이 가이드를 명확하게 준수하면 된다. 해결책이랄 것도 없이 너무나 기본적인 내용이다. 가이드를 마련하고 준수해야 하는 것도, 도시는 사람이 살아가는 공간이기 때문에 무엇보다 사람이 우선 고려되어야 한다는 것도 말이다. 근데 그렇지 않기 때문에, 인간 중심 디자인 방법론이 각광을 받는 것일 수도 있다는 아이러니한 결론에 이르기도 한다.
사람들은 IDEO에서 시작되어 여러 디자인 에이전시에서 사용하고, 발전하면서 유행이 된 디자인 방법론을 도입하면, 엄청 창의적인 서비스와 해결책이 나올 것이라 기대를 한다. 그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디자이너들은 디자인 방법론의 온갖 가능성을 언급하며, 세상에서 듣도 보도 못한 창의적인 해결책을 들고 나타나 현혹하며 자신의 아이디어를 선택해주길 설파한다. 문제는, 이런 창의적인 해결책은 종종 논리적 배경 (도출과정)이 배제되어 강한 공감을 얻어내기 힘들 뿐만 아니라, 실제 적용 과정도 쉽지 않은 경우가 많이 있다.
디자인 방법론의 시작은, 진짜 문제가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파악하는데서 시작하고, 왜 해결해야 하는지를 명확하게 인지하는데서 시작을 해야 한다. 반드시 이윤창출이라는 목적을 고려해야 하는, 기업 내에서 행해지는 디자인 방법론과는 달리 이윤 창출이 배제된 공공 분야에 디자인 방법론을 적용한 성공 사례들이 더 많이 언급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일 것이다.
기업체가 제공하는 서비스 분야가 아닌, 최소한 이윤을 추구하지 않는 공공분야에서만이라도 부디 과시를 위한 행정이 아닌, 사람을 위한 디자인의 좋은 사례들이 많이 나왔으면 하는 바램이다. 그리고, 방법론에 취약한 국내에서도 많은 논의가 이뤄져 우리에게 걸맞는 방법론으로 발전해나갔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