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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onita Oct 19. 2016

오래된 다리 그리고 그림 같은 풍경

#22.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모스타르

두브로브니크에서 국경을 3번 넘어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의 모스타르에 도착했다.

작고 아담한 도시라고는 생각했지만 생각보다 휑한 모습에 첫대면은 그저 당황스러웠다.     


마중을 나온 호스트 덕분에 편하게 집에 도착해 짐을 풀고 어김없이 지친 몸을 이끈 채 곧장 올드타운으로 향한다.     


모스타르는 올드타운을 벗어나면 한적하고 조용한 도시이다.

올드타운 입구에 다다라서야 하나둘 여행객들이 눈에 들어온다.     

올드타운으로 가는 길, 거리 곳곳에 신기한 광경이 펼쳐진다.     


아주 오랜 세월의 흔적이 엿보이는 건물들이

곳곳마다 방치된 채 덩그러니 남아있다.     

양 옆에 세워진 현대적인 건물들과는 너무도 달라

그 모습이 신기해 자꾸만 시선을 끌어당긴다.     


박물관도 유적지도 아닌,

보수공사도 제대로 시작되지 않아 낡고 허물어진  뼈대만 앙상하게 남아있는 건물들.

자세히 들여다보니 건물마다 벽 곳곳에 커다란 자국들이 있다.

알고 보니 유고 내전 당시 폭격을 맞아

건물 곳곳에 총알 자국들이 지워지지 않는 흔적으로 남았다고 한다.     


20년이 넘은 전쟁의 흔적이 아직도 그대로 남아있다는 것이 새삼 놀랍고 이상하다.     


하루라도 빨리 건물을 다시 짓거나

무너진 곳들을 보수해야 하지 않나 싶었다.


그런 생각이 들 무렵 거리 곳곳에 어렴풋이 새겨진 문구가 눈에 들어온다.     

DON'T FORGET.


그 당시의 가슴 아픈 쓰라린 상처를

두고두고 잊지 않기 위해 아직까지도 그 모습을 간직하고 있었으리라.     

아프고 힘든 상처도 그렇게 꿋꿋히 품어내고 있었던 것이었으리라.


그저 작고 아담한 도시라고만 생각했건만,

아픈 상처를 안고 있는 모습을 마주하니 그곳을 바라보는 마음이 조금은 숙연해진다.

거리마다 남겨진 쓰라린 흔적들이 보는 내내 가슴을 짠하게 만들었다.     


총격의 피해가 고스란히 남아있는 거리들을 뒤로한 채, 조금 더 걷다 보올드타운으로 보이는 입구가 나타난다.

올드타운으로 들어가는 길목에 다다르자 매끈한 돌길이 어김없이 올드타운으로 향하는 발걸음을 환영해준다.     

굽이진 좁은 골목길을 따라 올라가다보면

양 옆에 늘어선 상점에서 팔고있는 아기자기하고 화려한 공예품들을 만나기도 한다.


작지만 묘하게 이끌리는 골목길을 지나면

드디어 모스타르의 상징인 오래된 다리,

스타리 모스트가 자태를 드러낸다.     

화려하고 시끌벅적한 모습이 아닌

고요하고 잔잔하지만 묵직한 모습이

모스타르에 와있음을 감나게 해주는 듯하다.     


천천히 오래된 다리 쪽으로 걸어가 본다.

다리 위로 올라서면 앞뒤로 펼쳐진 네레트바 강이

높은 산과 어우러져 경치를 한층 신비롭게 만든다.     


참, 신기하다.

오색찬란한 건물도 아니고, 오래된 다리 하나와 흐르는 강뿐임에도 직접 눈앞에서 보는 이 감동은 말로 다 표현할 수가 없다.


수많은 아름다운 사진으로도 이 묘한 짜릿함을 전부 담아낼 수가 없다.     

내 두 발로 서서, 내 두 눈으로 바라보는

이 순간에서야 느낄 수 있기에

우리는 매번 이렇게 여행을 떠나오나 보다.

가만히 서서 불어오는 가벼운 바람을 맞으며,

물줄기를 따라 흐르는 강과 그 너머올드타운을 바라본다.


이 모습을 보기 위해서라면

나는 언제고 모스타르로 향하겠다.  

짧은 올드타운을 둘러보고는 다리가 잘 보이는 담벼락에 올라앉는다.

저녁이 되자 바람이 더욱 시원하게 불어온다.


금세 하늘이 해를 가리면 다리에도 노란 불빛서서히 불을 밝힌다.     

그림 같은 풍경을 감상하는 이때,

때마침 뒤에서 달콤한 노랫소리가 들려온다.


계단에 앉아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르는 한 남자.

거칠면서도 부드럽고 잔잔한 목소리가 눈앞에 펼쳐진 모스타르와 너무도 잘 어울린다.


노래를 들으며 노을 진 오래된 다리를 바라보고 있으니 힘들고 지쳤던 여행의 피로가 눈 녹듯 사라지는 것만 같다.

이 풍경에 취해 마음까지 잔잔하게 흘러내리고 만다.  


어쩜 우린 지금을 만나기 위해,

이 순간과 마주하기 위해,

그토록 달렸던걸 아닐까.

지금 이 순간이라면 말이다.

  

노래가 끝나자 두 손뼉을 힘껏 마주친다.

돈 주고도 들을 수 없는 아름다운 노래에 대한 보답이 되길 바라며 있는 힘껏 진심을 담아 박수를 보낸다.

지금은 내가 가진 모든 것을 써야 할 것만 같다.

두 눈으로 이 곳을 담고

온몸으로 이 아름다움을 느끼고

온 마음으로 그 즐거움을 표현하는 것.     

나는 오늘 모스타르에서

남김없이 모든 아름다움을 보고, 느끼고,

전하고 있다.



       ⓒ 2016. bonita All Rights Reserv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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