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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onita Nov 06. 2016

찬란하게 빛나는 세체니 다리

#47. 헝가리 부다페스트 야경

9월 말, 헝가리의 날씨는 차갑다.

살짝 서늘한 바람이 공기와 공기 사이를 비집고 무심하게 들어온다.    

 

헝가리에서 만큼은 무엇보다

밤을 흘려보내선 안 된다.

야경이 아름다운 도시인만큼

낮보다 밤이 훨씬 낭만적이고 아름다운 분위기를 뿜어내니 말이다.   

  

하루에 한 번 찾아오는 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어두컴컴해

헝가리의 밤을 걷는다.     

부다왕궁에 올라서서 보는 야경을 눈에 담기 위해 노란색 트램을 타고

부다페스트의 도심을 지나간다.


언제 봐도 헝가리의 작고 아담한 노란 트램은

부다페스트 도시의 한 장면을

한층 아름답게 만들어 놓는다.


도심 한가운데 놓인 철로 위를 달리는

작은 노란색 트램을 보고 있으면

그냥 그렇게 아무런 이유 없 기분이 좋아진다.     

조그만 트램에

내 마음을 실어 나르기라도 하는 걸까.

트램이 지나가는 길목에 잠시 멈춰 서서는

낡은 소리를 내며 달리는 부다페스트의 거리를 멍하니 바라본다.    

 

오래전에 봤던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흑백영화에서 봤던 열차가

마치 저 트램처럼 노란색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하며 흘러가는 영화의 한 장면을

두 눈에 담은 채 발걸음을 옮긴다.     

트램 창밖으로 보이는 세체니 다리와 부다왕궁.

조금 서둘러 나온다고 나왔건만,

이미 부다페스트엔 황금빛 물결이 하나둘

채워지고 있었다.


벌써 촉촉이 젖은 낭만이 한껏 차오른 그 광경을 도저히 바라보고 지나칠 수가 없었다.

무작정 트램에서 내렸다.

내려서 바라 본 세체니 다리와 부다페스트의 하늘은 너무도 아름다웠다.     


나는 이런 밤하늘이 좋다.

아주 까맣게 채워진 밤보다

어둠이 미처 다 내려앉기 직전의 푸르스름한 밤. 

그 밤하늘 아래 빛나는 불빛들은 왠지 모르게

조금 더 짙은 설렘과 긴장을 품은 채

빛나고 있는 것만 같다.


조금만 더 지나면 온 하늘이

까맣게 변해버릴 테니까.    

 

시간이 없다.

결국 부다왕궁에 오르는 것을 포기하고

금의 밤하늘을 선택하기로 했다.   

  

무엇이 더 나을지 고민하기에 앞서,

나는 지금 세체니 다리를 건너지 않으면

안 될 것만 같았다.


어둠이 다 내려앉아버리기 전에

이 밤하늘을 두 눈에 담지 않으면

안 될 것만 같았다.


그저 멍하니 서서

이 순간을 지켜봐야할 것만 같았다.

그게 내 선택의 이유였다.

노랗게 물든 부다왕궁을 바라보다

세체니 다리를 건넌다.

차들이 정신없이 지나가는 다리 한가운데를

걷다가 문득 뒤를 돌아본다.


눈부신 황금물결로 채워진 왕궁과

그 아래 늘어선 반짝이는 가로등,

그리고 들뜨기도, 설레기도 한 모습으로

이 다리를 건너는 사람들까지.

     

이보다 아름다운 야경이 또 있을까.

모두가 행복할 것만 같은 밤이다.     

세체니 다리를 걸어 나와 강이 잘 내다보이는

다리 아래로 향했다.

강가 건너편으로 아름다운 부다페스트의 야경이 한없이 펼쳐진다.


어둑어둑해지는 밤마저도 무색해지는 순간이다.     

바쁘게 움직이는 차들,

강 위를 떠다니는 수많은 유람선

이곳저곳을 걸어 다니는 사람들.


정신없이 바쁘게 움직이는 시간 속에서 부다페스트는 한없이 강렬하게 빛고 있다.     

마치 모든 것들이 결국

이곳으로 오게 될 것처럼.

그렇게 모든 중심을 안은 채 하염없이 빛나고 있다.     


나 또한 결국은 돌고 돌아

이 자리에 멈춰있는 것처럼,

결국에 우린 이 빛나는 순간을 보기 위해

그렇게 달렸나 보다.   

  

아무 말 없이 반짝이는 부다페스트의 밤이

화려한 불빛 속에서 가만히 지고 있다.



         ⓒ 2016. bonita All Rights Reserv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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