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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onita Nov 07. 2016

때론 고요하게 그리고 묵직하게

#49. 폴란드 크라쿠프

폴란드는 예정에 없던 나라였다.

여행을 떠나오기 전 시간이 된다면

한 번쯤 들러보고 싶은 곳이었지만

예정된 일정이 빠듯한 탓에

하는 수 없이 제외해둔 터였다.

    

다행인지, 크로아티아의 생각보다

높은 물가에 놀라 줄이고 줄인 일정 덕분에

시간에 꽤나 여유가 생겼다.     

스페인으로 넘어가기 전,

헝가리에서  폴란드로 향하는 버스에 몸을 싣는다.

슬로바키아를 지나 폴란드 크라쿠프에 도착했다.     


익히 관광지가 되어버린 곳이 아닌

새롭고 낯선 이름의 도시들에 들어설 때면

알 수 없는 희열과 쾌감이 솟구친다.


곳에선 또 어떤 낯섦과 마주칠지.

어떤 동네가 나만의 익숙한 놀이터가 될지.

아무것도 예상할 수 없는 상상은

오히려 더 큰 설렘과 두근거리는 심장을 가져다준다.     

알록달록한 건물들이 빼곡히 붙어있는

아름다운 골목을 지나,

세련되고 현대적인 건물들이 자리한 동네에 도착했다.    

 

부랴부랴 집에 올라가 짐을 풀고 밖을 바라보니 넓은 창밖으로 강이 보인다.

언뜻 느끼기에도 평온하고 한적한 여유로움이

한껏 무르익어 있다.     


간단히 짐을 풀고서 구시가지로 향했다.

걸어서 20분이면 간다는 호스트에 말에

햇살이 반짝이는 오후 크라쿠프를 걷는다.


창가에서 바라보던 강도 걸어보고

다리도 건너보고 골목도 거닐어보며

크라쿠프에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고 있다.     

우연히 골목을 지나다가 발견한

화려한 색색깔의 디저트가 한가득 담긴

쇼케이스를 보고는 나도 모르게

가게 안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디저트라면 사족을 못 쓰는 사람도 아니건만,

아름다운 디저트는 보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지는 묘한 매력을 가지고 있다.


따뜻한 아메리카노 한잔에

달콤한 케이크 한 조각과 초콜릿 하나를 집는다.

바삭한 쿠키 안에 담긴 고소하고 부드러운 크림이 입안에서 사르륵 녹아내린다.

정말 디저트에 목숨 거는 사람이 아닌데,

이렇게나 맛있다.     

케이크 위에 앙증맞게 꽂혀있는 스포이드 하나.

이 안에 시큼털털한 레드와인이 들어있다.

예상치 못한 달콤한 낮술에 웃음이 새어나온다.


세상 로맨틱한 디저트라며

이미 마음이 빼앗겨 버린 지 오래다.

단돈 6천원에 이렇게 호화로운

디저트 파티를 즐기게 될 줄이야.

헝가리보다도 물가가 더 저렴하다는 말이

역시나 틀린 말이 아니었나 보다.


기분 좋은 달콤함이 남은 입 안을

커피로 마무리하고는 다시 밖으로 나선다.     

조용하고 상쾌한 공기가 하늘을 가득 채우고 있다.

따사로운 햇살에 모두가 겉옷을 벗고 가벼운 마음으로 거리를 걷는다.


구시가지 입구에서 들리는

아름다운 연주를 들으며 걷다 보니

어느새 메인 광장에 다다랐다.

넓디넓은 광장이 구시가지를 한 아름 품고 있다.

오늘 같이 햇살이 반짝이는 날,

한쪽에서는 피에로가 춤을 추기도 하고

한쪽에선 오케스트라의

고급스러운 연주가 울려 퍼진다.     


어느 것을 즐기든

크라쿠프에서는 행복하지 않을 수가 없다.     

잠시 광장 벤치에 앉아

여유를 즐기는 사람들의 모습을 바라본다.


해맑은 미소를 띠며 아이스크림을 먹고 있는 아이.

이토록 행복한 감정이

고스란히 얼굴에 담길 수 있을까.

그 행복을 보고있는 것만으로도

무엇보다 달콤한 지금 이 순간을

우리 모두는 느낄 수 있다.


행복에 잠긴 아이의 모습처럼

지금 내 얼굴에도

잠시나마 거짓없는 순수한 행복이 놓여있으리라.

  

고개를 돌리니 한쪽 길가에

파스텔톤의 건물들이 나란히 줄지어 서있다.

빈틈 하나 없이 건물과 건물 사이가 맞닿아있는

그 모습이 단정하고 깔끔한 크라쿠프의 모습과

참 닮아있다.          

그 옆엔 크라쿠프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물이라

성모 마리아 성당이 보인다.

다행히도 표가 매진되기 전 입장권을 사고

성당 안으로 들어섰다.     


엄청난 크기에 한 번 놀라고,

웅장한 분위기에 한 번 놀라고,

그 정교함에 또 한 번 놀란다.


크라쿠프 시민들의 모금으로 세워진 제단이기에

그 존경스러움이 더 배가 되는 듯하다.

엄숙하고 경건한 분위기에 맞춰 예의를 갖추고 성당 안을 둘러본다.     

여전히 뜨거운 햇살이 비추는 오후.

마치 중세시대를 떠올리게 하듯

한껏 멋을 부린 하얀 마차가

커다란 말굽소리를 내며

한가롭고 평온한 거리를 지나간다.  

   

크라쿠프는 이전의 화려한 도시들과는

느낌이 사뭇 다르다.

겉으로 보여지는 화려하고 번쩍이는

그 무엇들이 아닌,

군더더기 없는 담백한 아름다움에서 풍겨져 나오는

웅장함과 묵직함이 크라쿠프만의 매력이라

말하고 싶다.

크라쿠프에 도착하는 순간,

이상하게도 복잡하고 무거웠던 마음이

조금씩 놓이기 시작했다.


요란스럽고 분주한 화려함에서 벗어나

담담하게 그 자리에서 빛을 내고 있는

고요한 아름다움이

어지러웠던 마음을 내려놓게 했으리라.     

어지럽게 번쩍이는 불빛에

정신을 었다가

고요하고 잔잔한 무언가에 이끌려

다시금 고개를 들어 올린다.


그렇게 크라쿠프와 마주했다.



         ⓒ 2016. bonita All Rights Reserv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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