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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onita Nov 15. 2016

멈춰있던 순간이 다시 뛰기 시작한다

#새하얀 추위 속에서 다시 깨어난 날

자코파네였다.

여행의 설렘을 다시금 피어오르게 한 곳,

그곳은 자코파네였다.     


여행의 슬럼프였을까.

그 말 자체가 어울리지 않는 것 같아

어떻게든 붙이고 싶지 않았건만

결국 슬럼프였던 걸까.     



가끔 눈 뜨는 것조차 무겁고

발걸음 하나 떼기도 벅찬 순간이 오면

그렇게 아무것도 하지 않고

충분한 휴식을 취하곤 했다.


적어놓은 일정들이 무색해질 만큼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이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무료하고 무거워지는 몸은

어찌할 수가 없었다.     


너무 쉬었던 탓이었을까.

다음 여행지에선 바쁘게 돌아다니면

조금 나아질까.     



그런 생각에 며칠은 쉬지 않고 바쁘게 돌아다녔다.

매일매일 찍은 사진들과

가계부 하나도 정리할 겨를 없이

하루가 멀다 하고 정신없는 바쁜 일정 속으로

나를 몰아넣곤 했다.     


이번에는 너무 무리를 했나 보다.

체력이 다 빠져나간 것처럼

글 하나 쓰기에도 힘이 부쳐온다.


도대체 뭐가 문제일까.

답답한 마음을 앉은 채 자코파네에 도착했다.

그곳에서 나는 다시 새로운 나와 마주했다.     


설렘을 잊어버린 나에게

처음 발걸음을 떼던 내가 다시 걸어온다.



여행이라는 시간이 너무 익숙해져 버린 나머지

여행이 주는 설렘을 잊어버린 탓이었다.     


새로운 곳으로 향하면서도

'여기선 이것도 먹고 저것도 해봐야지.

가만히 앉아 하늘도 바라보고,

공원에서 자전거도 타봐야지.'

그 여행지를 상상하며 꿈꾸던 모습들이

하나도 떠오르지 않던 나날이었다.   

  

어쩌면 의무감에 발걸음을 옮기고

음식을 먹고 하루를 보냈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가진 여행이라는 시간에 대한

설렘과 감사함을 잊어버리고

그저 당연한 하루를 또 살고 있었나 보다.



오랜만에 자코파네에서

설레는 마음을 앉은 채 눈을 떴다.

한겨울을 담은 듯 살갗을 에워싸는 추운 날씨에 있는 옷이라곤 얇은 옷 몇 벌이 전부임에도

오늘은 또 어디를 둘러볼지

머릿속은 온통 즐거운 상상으로 가득하다.     


'어제 지나오다 본 그 카페가 참 예뻐 보이던데.

거기서 와플을 하나 시키고, 따뜻한 커피 한 잔을 마셔야지!'

설레는 발걸음을 재촉한다.     



여행자에겐 설레는 마음이 초심이고 

여행을 움직이게 하는 가장 중요한 에너지가 된다.     


노란 불빛으로 뜨거워진

자코파네의 밤거리를 걷는다.

하나둘 빛나는 조명이 곳곳에 켜진 이곳의 밤은 더없이 눈부시고 따뜻하기만 하다.


문득 자코파네에 처음 발을 디디던

그날이 떠오른다.

갑작스러운 눈발에 행복하기만 했던 그때.

그 많던 눈들이 언제 내렸었는지도 모를 만큼

다 녹아 촉촉해진 거리를 걷는다.     

10월에 내린 하염없는 눈발은

나를 위한 선물이었을까.


하얗게 내리던 함박눈을 따라

지쳐있던 몸과 마음을 내려놓고

새로운 영혼의 힘을 얻었는지도 모르겠다.     


자코파네는 메마른 영혼을 촉촉이 적신다.

아름다운 거리의 불빛들은 멈춰있던 영혼을 다시 살아 숨 쉬게 한다.


그래서 삶이 견딜 수 없을 땐 항상 자코파네가 있나 보다.



어쩌면 여행뿐 아니라

우리는 가끔 너무 익숙해진 일상의 순간들에서도

설렘을 잊어버리고 사는지도 모른다.     


반복되는 어떤 것들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편안하고 익숙해지는 순간과 마주한다.

그리고 가끔은 익숙한 순간을 넘어

지루하고 무료한 모습으로 찾아오기도 한다.


그 익숙함은 곧 처음이 가져다주던 설렘을 무심히 덮어버린다.     



안타까운 것인지, 다행인 것인지는 몰라도

우린 어떤 상황이든 관계든 반복되는 것들 속에서 익숙해지며 살아갈 수밖에 없다.


다만, 내가 가진 반복되는 일상의

소중한 가치들을 놓치지 않기 위해선

익숙함이 지루함이 되지 않도록

처음의 설렘을 기억하는 연습을

해야 하는지도 모른다.   

  

결국 일상도 여행도 반복되는 삶에서 설렘을 잊어버리는 순간

지루해지는 순간과 마주치는 건 마찬가지일테니 말이다.     



어쩌면 나는 반복되는 여행과 일상의 균형을 어떻게 잡아야 할지 몰라 헤매었는지도 모른다.


그 균형을 맞춰가는 사이,

소리 없는 무료함과 지루함이

여행 속에 슬그머니 스며들는지도.

그렇게 여행이 주는 설렘을 조금씩 잊어버렸다.     


언제 또다시 배낭을 메고

지금처럼 오랜 시간을 떠나올 수 있을까.

지금이 아니면 아마도 아주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 할지도 모른다.

그런 하루를 너무 당연하게 살고 있었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갔을 때,

또 그곳의 하루를 살다 보면

어느새 반복되는 익숙한 일상 

가끔은 지루하고 따분한 시간들이

나를 찾아올지도 모른다.     

그럼 또다시 여행을 꿈꾸겠지.


여행을 꿈꾸며 다시금 물어봐야겠다.

익숙해져 버린 지금의 순간이 너에게 주었던 처음의 설렘을 기억하느냐고.     



처음 느꼈던 설렘을 다시 깨닫는 순간,

지루했던 일상은

새롭게 다시 깨어날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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