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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onita Nov 17. 2016

사랑스러운 난쟁이가 살아 숨 쉬는 마을

#56. 폴란드 브로츠와프

브로츠와프 버스정류장에 내려 짐을 챙긴다.

제법 깜깜해진 탓에 숙소까지 타고 갈 택시 하나도 쉽게 잡히지가 않는다.     

저 멀리 반대편에서 운 좋게 멈춰 서 준 택시 덕분에 늦지 않게 숙소로 향할 수 있었다.


자기 몸만 한 배낭에

무거운 캐리어까지 들고 있으니

뭔가 오랜 여행을 하는 듯한 느낌이 풍겼는지도 모르겠다.     


유럽을 돌며 여행을 하고 있느냐고 물어보시는 택시 아저씨.

1년간의 세계여행을 떠나와 폴란드 곳곳을 여행하게 된 이야기를 풀어놓다 보니

어느새 집 앞에 도착했다.


숙소를 주거 단지 안에 잡아놓은 탓일까.

도착과 함께 약간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시며 말씀을 건네신다.

"주소는 이곳이 맞지만 여긴 호텔이 아니에요,

다시 한번 확인해보겠어요?" 

걱정을 한가득 담은 눈빛과 함께

확인해보기를 재촉하셨다.


혹여라도 늦은 시간에 어렵사리 잡은 택시마저 제대로 도착하지 못할까 염려하심이 분명했다.

나는 친구 집을 빌린 거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된다며 기사 아저씨에게 환하게 웃어 보였다.

그제야 다행이라는 듯 웃으시며

마지막 작별 인사를 건네신다.

"Good luck!" 


기분 좋게 헤어지고는 생각보다 어두운 골목을 걸으며 번지수를 가늠하던 때였다.

택시에서 내린 지 불과 얼마 되지 않은 짧은 시간이었다.

뒤에서 누군가 다가오더니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묻는다.

"혹시 도움이 필요한가요?"


번지수가 쉽사리 눈에 들어오지 않던 차에

주소를 보여드리며 이 집을 찾고 싶다고 말하자

가만히 번지수를 보던 그녀는 미소와 함께

해맑은 인사를 덧붙였다.

"어, 반가워요! 내 이웃이네요. 

로 옆집 이웃요!"     

우연히도 예약해 둔 숙소의 바로 옆집 이웃을 만났던 것이다.

선뜻 짐까지 들어주시며 어두운 골목길을 조심해야 한다는 당부도 잊지 않으셨다.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무사히 집까지 도착했다.


이렇게 따뜻하고 고마운 사람들을 만나다니.     

의 안전과 여행을 걱정해주고 응원해주는 사람들을 따라 따뜻한 브로츠와프에

첫 발을 닿았다.     

도착한 집에서 기다리고 있던 호스트는

샴페인 한 병을 선물로 건네며

즐거운 여행이 되기를 바래주었다.

     

아침이 밝자 부랴부랴 설레는 발걸음을 앞세우며 밖으로 나온다. 

아쉽게도 날씨는 설레는 내 마음과는 상관없이 뿌연 하늘을 꺼내놓고 있었다.


아무렴 이곳에 있는 동안 흐린 날만 이어진다는 기상예보에 따라 일찌감치 날씨에 대한 미련은 버려두기로 했다.     

폴란드의 아픈 역사 때문일까.

뿌연 하늘이 브로츠와프를 덮고 있기 때문일까.

아름답고 화사한 파스텔톤의 건물들이 약간의 쓸쓸함과 슬픔을 담고 있는 것만 같다.


아름답고 화려한 건물 뒤에 숨은 슬픈 그림자가 흐린 날씨 탓에 더욱 짙게 드리워졌나 보다.     


어쩌면 흐린 날의 브로츠와프를 보길 잘했는지도 모르겠다.

흐린 날에라야 조금 더 진실된 브로츠와프

마주할 수 있을지도 모르니 말이다.

알록달록한 건물들이 세워진 널따란 올드타운을 감상하며 거닌다.

천천히 둘러보며 걷던 그때,

문득 발아래 무언가가 눈에 들어온다.

푸른빛의 자그마한 것,

바로 난쟁이다.    

 

브로츠와프의 반공산주의를 기념하며

만들어지기 시작한 난쟁이는

이제 어느덧 400개가 훌쩍 넘어 브로츠와프를 상징하는 랜드마크로 자리 잡았다.     


각각의 이야기가 담겨있는 난쟁이들은

그 스토리를 품고 있는 곳곳에 자리하고 있다.

하나하나 생동감 넘치는 표정과 자세들이

어찌나 사랑스러운지.

나도 모르게 브로츠와프에 머무는 내내

난쟁이들을 모조리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사는 곳에 남아있는 작은 요정, 난쟁이들.

익살스러운 표정 때문일까.

생동감 넘치는 몸짓 때문일까.


왠지 난쟁이들이 살고 있는 이곳은

어두운 밤이 되고 사람들이 하나둘 집으로 돌아가고 나면

난쟁이들만의 작은 축제가 열릴 것만 같다.     


사람들을 피해 숨어있던 곳곳의 난쟁이들이 하나같이 나와 이 도시에 머무는 사람들의 밤을 지켜주기 위해 펼쳐지는 작은 요정들의 달콤한 밤의 축제 말이다.     

몇 개의 난쟁이들을 만나자

이제 본격적으로 땅을 보고 걷기 시작한다.

혹여나 사랑스러운 난쟁이를 하나라도 놓칠까 싶어

걸었던 곳을 다시 걷기도 하고

지나쳐온 곳을 되돌아보며 한참을 걷는다.


이렇게 천천히 내 발밑을 보며 걸었던 적이

얼마 만일까.     

새삼 어릴 적 추억이 떠오른다.

유치원에서 소풍을 가던 날이면

항상 빠지지 않던 보물찾기.


하얀 종이에 적힌 보물을 찾기 위해

공원 곳곳을 돌아다니며

설레고 들뜬 마음으로 쪽지를 찾아 헤매던

그 모습이 어쩜 지금의 모습과 너무도 닮았다.          

마치 어릴 적 그 시절로 돌아간 것처럼

나에겐 난쟁이 외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것처럼

그것만을 위해 아무런 조건도 없이

모든 열정을 불태우고 있다.                                        

                                    


브로츠와프를 한참 걸었다.

우연히 마주치는 난쟁이들을 볼 때마다 반가운 마음과 기쁜 마음이 한데 섞여

발을 동동 구르기까지 한다.


가끔 멀리 있는 난쟁이를 보고 다가가다 날갯짓하는 비둘기였음을 알고

흠칫 놀라기도 하지만 난쟁이를 찾는 발걸음은 멈출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생각보다 작은 데다 금방 눈에 띄지 않아

모르고 지나치는 사람들도 꽤나 많은 듯싶다.

직접 걸어서 그곳까지 닿지 않으면 난쟁이는 쉽게 나타나지 않는다.

그래서 난쟁이 찾기가 더욱 매력적 인지도 모르겠다.          

근처 인포메이션에 들어가 쟁이 지도를 하나 샀다.

하루를 꼬박 돌고도 얼마나 많은 난쟁이들이 남았는지 볼 겸 지도를 펼쳤다.


곳곳에 숨어있는 난쟁이들을 다 찾을 수는 없지만

보물지도라도 손에 넣은 것처럼 동선을 따라 찾아다니는 재미는 또 다른 쾌감을 안겨준다.     


어쩌면 어렵사리 찾아낸 난쟁이들을

지도에 표시하며 열심히 돌아다닌 내 발걸음을 위한 기록을 남겨두고 싶기도 했다.    

작고 아담한 난쟁이 동상 하나가

이렇게나 큰 행복을 가져다 준다는 사실이

그저 신기할 따름이다.


난쟁이를 찾는 것만큼이나

이번에 찾은 난쟁이는 또 어떤 이야기를 담고 있을지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 재미가

하루가 멀다 하고 난쟁이를 만나기 위해

걸음을 옮기게 만드는 이유가 아닐까.

난쟁이를 찾는 일은 뉘엿뉘엿 어둠에

난쟁이들이 몸을 숨기자 그제야 끝이 났다.     

지친 다리를 이끌고 집으로 돌아가던 길

멀리서 아련한 노랫소리가 들려온다.


꽤 먼 거리였음에도 애잔하고 구슬픈 그 목소리가 귓가에 강하게 꽂힌다.

그 소리를 따라 걷다 보니 어느새 거리공연 앞까지 다다랐다.     


여행을 떠나오면 갑작스레 마주치는 훌륭한 거리공연들이 여행의 농도를 더 짙게 만든다.

이런 공연은 찾아 들을래야 쉽게 찾을 수도 없다.

이 거리와 이 불빛 아래에서만 들을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연주.

우연히 내가 가장 좋아하는 노래가 흘러나오는 날이면 그 행복은 배가된다.

복권에 당첨이라도 된 듯,

놀란 눈을 뜨며 행복하게 그 앞에 서서

조용히 나만을 위한 공연인 듯 감상에 젖어든다.     


그런 밤이면,

내가 걷고 있는 거리 곳곳이

가장 아름다운 무대가 된다.    

 

가로등 불빛이 짙게 드리워진

브로츠와프의 거리에서

추위도 잊은 채 달콤한 노랫소리에 취하고 있으니

행복한 순간이 별게 아니구나라는 생각이 밀려온다.     



- 똑똑똑

집으로 돌아와 잠시 쉬고 있 때

누군가 현관문을 두드린다.

올 사람이 없을 텐데 하며 문을 열자

전날 밤에 마주친 옆집 그녀가 환하게 웃으며 무언가를 건넨다.

이건 난쟁이들의 역사가 담긴 난쟁이 책이 아닌가!     


오전에 집을 나서며

지난 밤 도와 호의에 고마움을 표현하고자

작은 선물과 함께 쪽지를 적어

문고리에 걸어두고 나왔다.

아마도 그 선물에 대한 답례일 듯싶었다.                                      

브로츠와프도 자신도 좋은 기억으로 남아

오랫동안 잊지 않기를 바란다며

손수 키스마크까지 찍은 쪽지와 함께

난쟁이의 이야기가 담긴 책을 건다.


이런 걸 바라고 베푼 마음이 아니었건만,

작은 호의에도 정성스레 보답해주는 마음

그저 감사하고 고마울 뿐이었다.     

낯선 곳에서 만난 이웃.

이웃이라는 말이 이토록 따뜻했을까.

이토록 기분 좋은 뭉클함을 주는 단어였을까.     


당당히 이웃이라 말할 수 있는

그 어떤 연대감으로 묶일 수 있었던 이유는

서로에게 전해준 작은 진심 때문이었으리라.     

도와주고 싶었던 마음,

그리고 그 도움에 감사함을 표하고 싶었던 마음,

그 마음에 또 한 번

고마움을 전하고픈 마음들이 모여

우리는 서로의 마음으로 묶인

가장 가까운 이웃이 되어있었다.     

전혀 낯선 곳에서 함께 웃으며 하루를 시작하고, 지나가다 안부를 물을 수 있는

이웃이 생겼다는 사실이

그렇게나 낭만적일 수가 없었다.


그건 브로츠와프에서의 하루하루가

더 짙은 일상이 되어가고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브로츠와프를 떠나는 날까지도 우리는 서로를 기억하겠다며 한참을 아쉬워했다.

언젠간 다시 브로츠와프를 오는 날,

그땐 더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자며

그리고 그날을 반드시 기다리겠다며

헤어지는 아쉬움을 달랬다.     

사랑스러운 난쟁이들이

마을을 지키는 브로츠와프.

사랑스러운 난쟁이들 만큼이나

사람을 사랑할 줄 아는 브로츠와프.


리는 그렇게 사랑을 했고, 사랑을 나누며

잊지 못할 브로츠와프를 새겨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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