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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onita Nov 29. 2016

예술과 공연이 거리를 채우는 밤

#63. 스페인 바르셀로나 몬주익 분수쇼

바르셀로나의 거리로 나왔다.

수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거리에는

언제나 활기찬 분위기가 가득하다.    

 

오늘은 람블라스 거리를 건너 앙헬거리를 지나

고딕지구 골목길을 걸어보기 위해 길을 나선다.     

오후 4시가 넘어가니 날씨가 꽤나 선선하다.


사람들이 북적이는 거리 한가운데서 여럿이 모여 거리공연을 펼치고 있다.

흥겨운 노랫소리만큼이나 공연을 하는 순간을 즐기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해 보인다.     

내가 행복할 때, 그 모습을 바라보는 사람까지도 행복해지는 것처럼

행복은 따뜻한 온기를 전염시킨다.     


쇼핑거리인 앙헬거리를 지나다

저렴한 로컬 브랜드 매장에 들어갔다.

가벼운 외투가 있어 걸쳐보고는 거울 앞에서 이리저리 보던 그때,

내 앞에 서있던 그녀가 고개를 끄덕이며 웃어 보인다. 잘 어울리니 걱정 말라는 듯한 눈치였다.     


그러고는 본인도 몇 가지 입어보더니

도통 색상을 고르기가 어려운 모양이다.

어떤 게 더 잘 어울리는지 골라주기를 바라며

내 앞으로 다가온다.


나는 선뜻 그녀와 잘 어울리는 진한 네이비 컬러를 골라주고는 웃어 보였다.

서로에게 엄지를 번쩍 들어 올리며

기분 좋은 쇼핑을 마치고 나온다.      

이상하게도 기분이 좋았다.

전혀 모르는 남이지만,

뚜렷하게 어떤 대화를 남긴 것도 아니지만,

눈빛과 느낌만으로도

우리는 서로에게 든든한 지원군이 되어준 셈이었다.     


살아가다 보면 가끔은 혼자 어떤 결정을 내리는 것에 있어 분명하지 않을 때가 있다.

그럴 땐 누구라도 나에게 조언을 해주기를 기다리곤 한다.


작고 사소한 것들 일지라도 손을 건네주기 위해선  어느 정도의 용기가 필요한지도 모른다.     

조금만 용기를 내면,

조금만 더 손을 내밀면,

그 따뜻한 손을 잡기 위해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이 꽤나 많다는 걸 알 수 있다.     


가끔은 작고 사소한 용기들을 내보는 건 어떨까.

때론 먼저 다가와주는 것만으로도

큰 위안이 되기도 하니 말이다.     

쇼핑거리를 지나 걸어가다 보니 작은 골목길 사이에 츄러스가게가 하나 보인다.

한국인들에게 꽤나 유명한 탓에 사장님은 유창한 한국말을 구사하고 계셨다.

'오리지널 츄러스 100g에 2유로! 설탕?!'


흡사 한국을 떠올리게 하는 가게 안의 풍경이었지만 츄러스의 맛만큼은 한국에서 경험해보지 못할 감동이었다.    

 

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한

달콤하게 녹아내리는 츄러스의 식감에 빠져

100g을 눈 깜짝할 새 먹어버리고는 다시 길을 걷는다.     

고딕지구에 다다르자 아기자기한 가게들이 시선을 끌어당긴다.

다양한 소품들과 재미난 장난감들까지

어른들의 동심을 꺼내기에 충분한 알록달록한 물건들이 빼곡하다.   

  

아름다운 그림을 파는 곳들도 있고

독특한 액자를 걸어놓은 곳들도 있다.

거리 하나하나가 예술이고 작품인 이곳이 바로 고딕지구이다.     

걷다가 문득 눈에 띄게 반짝이는 가게가 있어 들어가 본다.

천장에는 장난감 기차가 칙칙폭폭 레일 위를 달리고 있다.

머리 위를 지나가는 기차를 따라 내 작은 동심도 바르셀로나를 달리고 있었다.     


어느 곳 하나 빠질 것 없이 각자의 개성이 잔뜩 묻어난 가게들은 스페인의 매력을 한층 진하게 만든다.

어딜 가나 자신만의 색감이 짙은 곳은 오래오래 기억에 남는 법이다.     

이곳저곳을 둘러보며 걷다 보니 어느새 밤이 다가왔다.

꽤나 어두워진 거리는 곳곳에 밝혀진 가로등 불빛으로 더욱 낭만적인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아름다운 고딕지구의 거리를 뒤로하고

금토일에만 펼쳐지는 몬주익 분수쇼를 보기 위해 걸음을 옮긴다.

지하철을 타고 에스파냐 광장으로 나오자

저 멀리서부터 이미 수많은 사람들이 거리를 메우고 있었다.

넘쳐나는 인파를 비집고 가까이 가는 것조차 쉽지가 않다.

미처 이렇게나 규모가 큰 분수쇼였으리라 생각하지 못한 탓에 결국 분수 앞에 빼곡하게 자리를 잡은 사람들에 밀려 다리 위쪽으로 올라가 보기로 한다.     


다리로 위로 올라가니 드디어 아름답고 웅장한 분수쇼가 시작된다.

오색찬란한 빛깔의 조명을 받아 하늘 높이 솟아오르는 분수는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한 장관을 그려내고 있었다.

가끔은 구름이 피어나기도 하고

용암이 터지기도 하고

하늘 높이 올라가기도 하고

폭죽이 터지기도 하는

분수쇼의 매력에 빠져 한참을 멍하니 바라본다.     


다양한 빛깔의 조명에 물드는 분수는 매번 색다른 모습으로 우리의 눈을 즐겁게 만들었다.

그에 맞게 울려 퍼지는 노랫소리마저 달콤하게 맴돌고 있다.    

잔잔한 클래식이 더해지니 낭만적인 몬주익 분수쇼는 점점 절정으로 향한다.


노래와 조명과 분수의 모양이 마치 희로애락을 담은 하나의 순수예술 공연펼치고 있는 것만 같다.

이렇게나 황홀한 공연을 아무런 대가도 없이 보고 있다는 사실이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세계 3대 분수쇼로 꼽히는 장관이 눈 앞에 펼고 있는 황홀한 순간을 어찌 잊으랴.

1시간가량 넋을 놓고 바라 본 분수쇼를 뒤로하고 집으로 가기 위해 다리를 내려온다.


다리 밑에선 또 다른 거리공연이 펼쳐지고 있었다.

바이올린과 기타 그리고 베이스가 어우러지는 색다른 음색은 눈과 귀를 사로잡고 내 발걸음을 사로잡았다.     


이렇게나 아름다운 소리가 또 있을까.

3가지의 악기가 어우러지는 하모니는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달콤했다.

무심코 걸어가는 사람들의 발걸음을 하염없이 묶어두고 있는 걸 보면 더이상 말이 필요없다는 뜻이다. 

3곡을 연달아 듣고 나서야 아쉬운 발걸음을 뗀다.

하루 종일 걷고 또 걸었건만

오늘은 도통 힘이 드는지를 모르겠다.     

아마도 기분 좋은 순간을 하루 온종일 채워 넣었기 때문이 아닐까.

눈도 귀도 오늘은 하루 종일 호사를 누린 것만 같다.

    

여행과 변화를 사랑하는 사람은
생명을 가진 사람이다.

- 리하르트 바그너


여행을 하고 있는 지금,

살아있다는 사실이 가슴 깊이 느껴지는 순간이다.

아니, 살아있다는 사실에 대한 감사함이 깊숙히 파고드는 순간이다.

     

어쩌면 나는 매번 여행을 통해

또 다른 삶의 이유를 찾아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크고 거창한 이유에서부터

작고 소박한 이유에 이르기까지

우리가 살아가야 할 이유는 아무래도 끝이 없다.     

때론 편안하고 여유로운 하루 끝에서

가끔은 짜릿하고 황홀한 시간들을 만끽하면서

채워지는 경험의 한 순간 순간들은

내 삶의 이유를 살찌운다.     

내가 살아가야 할 이유가

오늘도 하나 더 늘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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