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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onita Feb 15. 2017

너는 왜 세계여행을 떠난 거야?

# 일상같은 여행을 꿈꾸는 여행자의 넋두리


어김없이 한 해가 지나고

또다시 한 해가 찾아든다.     


그리고 우린 어김없이 한 해를 되돌아보고

또다시 마주할 한 해를 위해 새로운 계획들을 채워 넣는다.     


운동하기, 한달에 책 한권 읽기,

저축하기, 자격증 따기, 여행 가기 등.

새해가 되면 약간의 차이를 제외하고

모두가 비슷한 목표를 담아 적어보는 계획들이 이지만

거창하지도 특별어려울 것도 없는

평범하고 그럴싸한 계획인 탓인지

누구나 쉽사리 동그라미로 채우지 못하는 계획들이기도 하다.     


연초만 되면 호기롭게 적어 내려갔던 계획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 길지 않은 시간이 지에 따라 생각보다 쉽게 시들어간다.     

다 같이 자정을 보내며 종소리를 듣고

새로운 한 해를 밝히는 밝은 달 밑에서

떨리는 마음으로 소원을 빌었던 그날 밤이

불과 몇 달 전이건만,

우리는 여전히 그날의 열정을 불태우며

굳은 의지로 계획한 것들을 채워가고 있을까.

혹은 또다시 반복되는 똑같은 하루에 묻혀

가뭄 같은 평일 속에 꽃피는 주말만을 기다리며 살고 있을까.



지금쯤 다시 한번 묻고 싶다.
당신의 계획은 안녕하신가요?


그 해 연말, 나도 어김없이 다른 해들과 크게 다를 바 없는 계획들을 적어내려 갔다.

- 한 달에 30만원 더 저축하기

- 토익 스피킹 공부하기

- 일주일에 3회 이상 운동하기


적어놓고 보니,

돈과 건강 그리고 안정적인 미래를 위해 현재의 상황을 저축해야 하는 것들 뿐이었다.

그럼에도 꾸역꾸역 현재를 저축하며 보낸 한해의 마지막에 섰던 날

모든 계획을 100% 완벽히 달성하지 못했던 탓이었을까,

결국 그것들이 만들어낸 변화는 실로 미미했다.


그리고 그들은 아무런 양심의 가책도 느끼지 못하고 자연스레 그다음 해의

새로운 계획인 것처럼 포장되어 다시 내 앞에 나타났다.


그렇게 의미 없이 반복되는 계획들에 내 안의 양심이 반기를 들어 올릴 때쯤,

나는 다시금 깨끗한 다이어리의 첫 장을 펴 용기를 내어,

이전에 한 번도 적어본 적 없는 새로운 계획을 적었다.


지금이 아니면 그 어느 때로도 미룰 수 없을 계획.

그리고 그것 외에 어떠한 다른 계획도 존재하지 않았다.

오로지 이것뿐이었다.


1. 세계여행


여행이 필요하다는 생각과 동시에 들었던 생각은

이 계획이 이루어지는 순간,

내가 오랜 시간 계획하고 준비한 미래와 시간이

정확히 정반대로 뒤집어져버릴 것이라는 것이었다.


지금처럼 회사를 다니며 안정적으로 연차를 채우고, 승진을 하고

매달 받는 월급에서 차곡차곡 모아둔 돈으로 결혼자금을 준비하고

5년 뒤엔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실은 이 정도의 미래까지 생각하다 보면

결국 그 마지막 모습은 늘 희미해져 버리고 말았다.

'과연 내가 그때까지 회사를 다니고 있을까?'

'이곳에서 나는 과연 행복한 결혼, 행복한 엄마, 행복한 나 자신을 놓지않고 살 수 있을까?'

이런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며

내 미래의 모습을 지독하리만치 질질 붙잡아 끌어놓을때면

결국 열심히 노력하며 현재를 저축해놓은 보람이

겨우 이정도의 막막한 미래를 위해서인가라는 의문으로 무참히 되돌아왔다.


결국엔 지금의 모습에서조차 뚜렷한 미래의 그림을 찾지 못했기에

나는 무모할지 모를 이 계획에 더욱 힘을 불어넣을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이렇게 가나 저렇게 가나 앞으로의 미래를 알 수 없는 건 마찬가지라면

이왕이면 힘든 현재를 꾹꾹 눌러가며 막막한 미래를 기다리는 것보단

지금이라도 행복할 수 있는 길을 걸으며

내가 바라는 미래를 직접 만들어가는 게 낫다는 결론에 다다른 것이다.


결국 나는 결혼을 위해 차곡차곡 모았던 내 청춘 자금을 모조리 여행에 쏟아붓기로 했다.

눈물, 콧물, 땀방울까지 녹아들어 간 이 돈을 어딘가에 써야만 한다면

남들에게 보이기엔 한없이 안전한 미래이지만

실상 내 앞날엔 어떤 보장도 없는 선택보다는

남들에겐 불안해 보일지 모르지만

이보다 더 확실한 기회가 없다는 확신이 드는 선택에 투자를 하기로 말이다.



똑딱똑딱.
시계는 언제나 정확하게
그리고 같은 속도로 움직였다.

그렇게 시간이 아무런 의심도 남기지 않은 채 하염없이 흐르는 사이
내 일상은 소리 없이 무너지고 있었다.


여느때와 다를 바 없는 아침이었다.

어김없이 어두컴컴한 새벽에 잘 떠지지 않는 눈으로 꾸역꾸역 화장을 하고

매일 같은 사람들이 타고 있는 지하철에 몸을 실었다.

도대체 왜 출근 준비만 끝났을 뿐인데 몸은 하염없이 무거워지기만 하는지.

무거워지는 걸음을 따라 도통 마음도 가벼울 날이 없었다.     


모두가 똑같은 표정으로 출근을 하는 이 시간,

나 혼자만 이렇게 힘들고 고된 하루를 살고 있는 건지 묻고 싶었다.

'힘든 게 당연한 건가요?'

'무조건 참고 억지로 견디면 조금 나아지요?'

'잠시 멈춰서겠다는 건 견디지 못해 나약하다는 밖엔 되지 않는 건가요?'

'우리는 왜, 무엇 때문에, 무엇을 위해, 누구를 위해 쉬지 못하고 달려야만 하는 건가요?'     


그 순간, 행복한 마음으로 출근하길 바라는 건

정신 나간 바람일지도 모른다는 누군가의 우스갯소리가 귓가에 맴돌았다.

그 말이 맞는 거라면 표정도 없이 시체처럼 지하철에 기대어 회사로 향하는 나는

제대로 된 정신이 들어있는 건지 그것 또한 의문이었다.     



난 무엇을 위해 이토록 껍데기뿐인 하루를

이렇게나 열심히 그리고 꿋꿋이 버티며 살아야 하는지 모르는 나날이었다.     

그리고 그걸 알려줄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어쩌면 그 답을 알고 있는 사람조차 없었을지 모른다.     


근성이 없다니까, 어려서 아직 세상을 잘 모른다니까.

뚜렷하고 명백한 미래가 없으면, 확실한 방향을 말하지 못하면

결국엔 도망이라는 말로밖에는 설명할 수 없을 테니까.

어차피 세상사는 게 다 똑같아서, 결국엔 다시 돌아오게 돼 있어서

그럴 거라면 후회하지 말고 버티라는 말 밖에는 그들도 해줄 수 있는 말이 없었다.  

   


목적 없이 쳇바퀴처럼 돌아가는 하루에

보이지 않는 미래를 기다리며 살아야 한다는 건

분명 아니라고 말하고 있는 현실을 애써 눈감아버리는,

아닌 걸 알면서도 나 스스로에게 괜찮다며 최면을 걸고 있는 짓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불현듯 머리를 꽝하고 내리쳤다.     


오늘 점심은 무엇을 먹을지,

월급을 받으면 무엇부터 살지,

이토록 지극히 현실적이고 사소한 고민 외에는 별다른 고민을 해본적도 없어서

내 발 밑 외에는 아무것도 보이지도 않는

좁은 곳에 시간을 허비하며

로봇처럼 움직이고 있는 내가 너무도 낯설었다.


그렇게 나는 생각하는 대로 사는 사람이 아닌, 그저 살아지는 대로 생각하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었다.     



특별히 엄청난 시련에 처한 건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지금이 내 생의 최고의 순간인 것도 아니었다.

딱히 불행하지도 그렇다고 행복하지도 않은 그런 상태.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미적지근한 상태일 뿐이었다.


이렇게 별다른 감흥도 없는 하루를 차곡차곡 채워 넣는다고 한들

내 인생을 바꿔줄 만한 어떤 변화가 일어날 것 같지도 않았다.     


어제와 똑같이 살면서 다른 미래를 기대하는 것은 정신병 초기증세다. - 아인슈타인


나에겐 분명 변화가 필요했다.

하지만 정확히 어떤 변화를 필요로 하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럼에도 그 변화가 뚜렷하게 보일 때까지 기다리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내가 뛰지 않으면 그 어떤 변화도, 기회도, 순간도 잡을 수 없을 테니 말이다.     


나는 부딪혀보고 싶었다.

사실은 그것 외에는 방법이 없었다.

나조차도 내 방향을 몰랐으니까.   

  

그래서 조금 용기를 내고 싶었다.

지금 당장 잃어버리는 직장, 연봉, 안정적인 하루는

그 뒤에 찾아올 그 어떤 순간보다 감히 값질 수 없었다.

나라는 사람은 단지 어느 회사를 다니는 누구, 얼마는 버는 기계가 아니었으니 말이다.  

   


용기는 머리로 생각할 때 나오는 것이 아니다.
어떤 선택을 향해 첫 발을 내디뎠을 때,
그 다음 발걸음을 움직여주기 위해
용기가 발휘된다.
    

사실은 조금 더 격하게 나 자신에게 깨우쳐 주고 싶었다.

지금이 아니라면 앞으로도 아니라는 걸.

지금 떠날 수 없다면 앞으로도 떠날 수 없을 거란 걸.

지금 무너지는 일상을 바로잡지 않으면

영원히 내 일상은 다시 일으킬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걸.     


그래서 결심했다.

더 이상 나 자신에게, 그리고 내 미래에 비겁해지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회사를 떠나 무너져가는 내 일상에 여행이란 최선의 처방전을 내렸다.     



왜 세계여행이야?
여행하면 뭐가 나와?


모두가 묻는 질문이었다.

사실은 나에게도 묻고 싶은 질문이었다.

나는 왜 세계여행이어야만 했는지.     

여행을 한다고 직장이 생기는 것도, 돈이 들어오는 것도 아니었으니.

돈과 시간 그리고 많은 안정적인 것들을 포기하며 떠난 여행에서

어쩌면 난 아무것도 변하지 않은 채 돌아올지도 몰랐다.     


그럼에도 나는 여행이어야만 했다.

내 모든 기회와 바꿔도 아깝지 않을 수 있는 건 오직 여행뿐이었다.     

내 웃음이 얼마나 아름다웠는지,

내 눈물이 얼마나 소박한 것이었는지.

내가 얼마나 여린 사람이었는지,

때론 얼마나 독하고 무서운 사람이었는지.

얼마나 겁이 많고 걱정이 많고 그만큼 사랑이 많은 사람이었는지.


내가 가진 가능성과 경쟁력을 찾기 위해서라는 거창한 표현이 아니어도

아무런 가림막없이 내가 좋아할 수 있는 시간,

순전히 웃고 떠들 수 있는 시간,

마음껏 쉬고, 후회하고, 밤을 지새우고,

깊은 생각에 오래 잠겨볼 수 있는 시간은

오직 여행에서만 허락될 테니 말이다.     


비로소 우린 떠났을 때야 아무것에도 구애받지 않는 진정한 내 하루를,

내 인생을 걸어볼 수 있을 테니 말이다.   


  

"100% 준비되기를 기다리겠다"는 말은
"영원히 시작조차 하지 않겠다"는 말이다.


무너진 내 일상을 다시 붙잡기 위해,

오랜 시간 감추어버린 나와 다시 마주하기 위해,

먼 미래가 아닌 지금의 행복을 지키기 위해,

언제나 정해진 선택과 성공만을 바라는 사회에

반드시 그게 아니어도 괜찮다고 말해주기 위해,

가만히 앉아 정답이 나타나기만을 기다리는 바보 같은 모습을 벗어던졌다.


그리고 무거운 배낭을 어깨에 걸치고 두 발을 힘차게 내디뎠다.     

나와 마찬가지로 하루가 멀다 하고 열심히 달리기만 했던 누군가에게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가기 위해 새로운 인생의 시작을 준비하는 누군가에게     

잠시나마 쉬어갈 수 있는 쉼표가,

괜찮다며 힘을 실어줄 용기가.

모진 세상에 지치고 베인 마음을 닦아 줄 소소한 위로가 되어주길 바라면서 말이다.


영영 무지개는 일곱 색깔뿐이라고
개미는 머리, 가슴, 배로만 나뉜다고
믿고 살기엔
인생은 너무 다채롭고 스펙터클 하다.

- '1cm'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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