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bonita Mar 29. 2017

그날 밤 우리는 그 별 아래서

#아빠의 등이 보고싶던 날


별빛이 흐른다.

황량한 사막 한가운데 별빛이 쏟아진다.
나는 그저 멍하니 바라보다
결국 눈이 멀어버릴 것만 같았다.
    
마치 실수로 모아놓은 별들을 이 밤에 다 쏟아버린 건 아닌지
소리 없는 반짝임만이 고요한 사막의 밤을 빼곡하게 채운다.   



칠레의 밤하늘을 올려다본 적 있나요?


밤하늘을 수놓은 사막의 별들은 난생처음 보는 별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별이 살아 움직인다는 느낌이 이런 걸 말하는 걸까.
별 주위를 둘러싼 푸른빛이 밤하늘 사이사이로 옅게 스며 나와 
마치 별이라곤 믿을 수 없을 신비로움을 머금은 채 영롱하게 반짝이고 있었다.
    
온 하늘에 별빛바다를 이루며 어두운 밤을 눈부시게 가득 채운 별들은
아무렇지 않게 들어 올린 고개가 무색하도록 나를 휘감아버렸다.
 
까만 하늘이 보이지도 않을 만큼 반짝이는 별들로 가득 채워진 저 커다란 스크린은
그 어떤 드라마보다 그 어떤 멜로 영화보다 

사랑스럽고 달콤했으며 더욱 뜨거웠다.     


언제부터였을까.
별을 이토록 사랑하게 된 것은.
어두운 밤이면 자꾸만 별을 찾아 고개를 들게 되는 것은.   


어린 시절, 늦은 밤 시골에서 올라오는 날이면

잠도 주무시지 못하고 운전을 하시던 아빠의 넓은 등을 지나 
창가에 맺혀있던 반짝이는 별 하나에 마음을 빼앗겨버린 그때부터였을까.
    
난생처음, 고요한 산자락이 드리워진 곳에 자그마한 텐트를 치고
어둠이 짙게 깔린 밤 아래 누워선 

가장 밝은 별을 찾아 하염없이 밤하늘을 헤던 그때부터였을까. 

    


어느 순간부터
아주 조용하고 고요한 밤이 찾아올 때면,
슬며시 불빛들이 모두 잠에 들 때면,
나는 어김없이 고개를 들어 어두컴컴해진 밤하늘을 바라본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던 까만 밤하늘엔
어느새 별들이 하나둘 고개를 내민다.   

눈앞에 나타난 별들을 새고 있다 보면
그 옆에서 또 다른 별이, 그리고 또 다른 별이
계속해서 어두운 밤하늘을 차례로 밝힌다.


부끄럽게 숨죽이고 있던 별들마저 끝없는 기다림에 속절없이 빛을 발산한다.
비로소 그 밤하늘은 그제야 밤의 역할을 찾는다. 


가장 어두운 곳에서야 밝게 빛나는 별처럼,
어두운 밤하늘로 온통 까맣게 채워진 세상에서
조그맣게 빛나는 별들은 더욱 고맙고 눈부시다.

 

 -

칠레 아타카마 사막에 도착한 첫날, 

어느새 까맣게 물든 하루가 아쉬워
별 투어를 나가기 전 무심코 호스텔 문을 열었다. 


그 순간 내 목소리는 맥없이 힘을 잃었고,
내 발걸음은 어디로 향해야 할지 몰라 길을 잃었고,
하늘을 올려다보던 내 두 눈만이 멍하니 별 앞에 멈추었다.
      
나는 한참을 서서 그 별빛들을 두 눈에 담았다.
하얀 별들을 감싸는 푸른빛이 좋아 그저 한참을 하늘만 바라봤다.
아무것도 없는 메마른 사막의 밤 위를 
수억 개의 별들이 모인 은하계가 조용히 수놓고 있었다.

별들의 움직임을 서서히 느껴본다.
이곳이 사막인지 천국인지 나는 전혀 구분할 수가 없었다.



수많은 별빛들을 따라가는 이 밤,
나는 이미 지구가 아닌 전혀 다른 행성에 와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잠겼다.   


이토록 뭉클한 별들의 세상은 태어나서 처음이었으므로.
지금이 밤인지 낮인지조차 알 수 없을 만큼 환하게 빛나는 별빛은 처음이었으므로.
어쩌면 나는 오늘 이곳에서야 그토록 사랑한다던 별을 처음 만나게 되었는지도 몰랐으므로.
그토록 찬란한 이 순간, 이곳엔 오로지 밤과 별과 우리가 전부였으므로.
    
나는 이대로 잠시 별들에 기대고 싶어 졌다.
이 자리에 누워 그대로 별들을 덮고 눈을 감고 싶을 뿐이었다.
    
별들에 기대어 또 다른 우주를 만끽하던 그때,
또 다른 별이 있는 곳으로 데려다 줄 버스가 도착했고
나는 떨리는 마음으로 버스에 올랐다.
    
얼마 지나지 않아 버스 창밖은 온통 칠흑 같은 어둠으로 물들었다.
이내 버스가 멈추자 모두가 밖으로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고개를 들었다.
아니, 고개를 들 필요도 없었다.
이미 땅 끝까지 내려온 별들은 고개를 들기도 전에
나를 향해 반짝이고 있었으니.


연말이면 거리마다 채워지는 따스한 조명과 불빛들처럼
별들은 새까만 밤하늘에 더없이 푸르고 따스한 별빛을 채워 넣고 있었다.


200억 개의 별들이 모인 아름다운 은하수가 하늘을 지나는 사이,
별들은 계속해서 내 발끝 가까이 다가오고 있었다.

 

수많은 별들에 정신을 놓고 있던 사이, 

모두가 하나둘 자리를 잡고 앉기 시작했다.
곧 별들의 이야기가 시작될 예정이었다.


그 순간, 나는 지금 그 어디에서도 두 번 다시 상영되지 않을 

황홀한 영화의 한 장면을 보고 있는 것만 같았다.


머리 위엔 한없이 반짝이는 별들이 쏟아질 듯 하늘을 채우고 있었고,
그 앞에선 모두가 오롯이 별빛에 의존한 채 귓가에 닿는 별들의 이야기에 빠져들고 있었고,
한 손엔 그 무엇보다 달콤한 와인 한 잔이 들려있었으므로.
    
이건 분명 두 번 다시는 보지 못할 가장 아름다운 영화의 한 장면이었다.
이곳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상영될 우리만의 영화에 조금 더 깊이 빠져들었다.
    


단언컨대 흙으로 뒤덮인 황량한 사막은
세상에서 가장 밝게 빛나는 별을 만날 수 있는 곳이다.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을 것만 같은 

오로지 끝없는 적막만이 감도는 사막의 밤하늘엔
그 어떤 기대도, 상상도 뛰어넘어 모두의 눈을 의심케 할 

가장 아름다운 별들이 빛나고 있으니 말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저 머리 위에 놓인 하늘만 바라보았건만
나는 자꾸만 심장이 쿵쾅거렸다.
나는 자꾸만 눈물이 맺힐 것 같았다.
 
까만 밤하늘의 별들은 유독 그리운 것들을 담아낸다.
미안하고 사랑하는 것들을 유독 오래도록 꺼내놓는다.
    
아름답고 영롱하게 반짝이는 별 하나에
지난날의 부끄럽고 못난 모습을 걸어보기도 하고,
여태 전하지 못한 가슴 깊이 묻어둔 말을 새삼 꺼내보기도 하고,
사랑하는 사람들의 얼굴을 떨리는 손으로 놓아보기도 하고,
잊을 수 없는 지난 여행의 따스했던 순간들도 조심스레 걸어본다.



어쩌면 나는 아무런 조건도 없이 언제나 빛나고 있는 별들에게
자꾸만 내 마음을 털어놓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흔들렸던 지난날에 위로와

꿋꿋하게 내디딘 오늘이란 용기와
앞으로 마주할 미치도록 무모한 뜨거움을
별들에게 나는 또다시 건네받고 싶었는지도 말이다.


괜스레 까만 밤하늘에 반짝이는 별들을 보고 있으면,
마치 내가 걷고 있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답답한 어둠 속에서도
어디선가 환하게 빛나는 별이 나타나 

이 길을 밝혀 줄 것만 같아 그렇게 별을 사랑했나 보다.


어두운 밤을 밝히는 별빛이 

내 안에서도 끝없이 반짝이고 있을 것만 같아서 말이다.



가끔은 구름에 모습이 가려지고
가끔은 어두움에 빛이 사그라져도
별은 늘 항상 그 자리에서 이토록 환하게 빛나고 있었으리라.
항상 그 자리에서 나를 향해 밝게 비추고 있었으리라.   


수많은 별들이 새까만 밤하늘을 걷어내는 이 밤,

별들이 건네는 달콤한 위로에 취하는 이 밤,
나는 조금 더 오래 하늘을 올려다보았고
나는 조금 더 오래 눈을 떼지 못했다.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끝없이 반짝이는 별들에
살며시 나의 이야기를 건네본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