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서 살인

1화:해골인간

by 김정걸

2025년 1월 서울로부터 40여 km 정도 떨어진 남쪽에 자리 잡은 어느 소도시의 겨울밤, 미국발 금융위기로 인해 졸지에 백수가 되어버린 39세의 정인협은 오늘도 밤늦은 시각 동네 야간 순찰에 나섰다. 그가 어릴 적부터 살아온 동네는 신흥 아파트와 오래된 단독주택들이 기묘하게 어울려 사는 곳이었다.

소방도로에 얼어붙은 잔설들이 내뿜어내는 한기와 찬바람이 어울려 겨울밤의 수은주는 한없이 내려갔지만, 그의 마음만은 훈훈했다. 며칠 전에 면접을 본 대기업에서 합격 통지서가 날아오기만 하면 이제 수년째 이어오던 야간 순찰도 그만둘 작정이었다.

질문을 던져놓고 잔뜩 긴장한 인협이 답변을 할 때마다 미소를 머금으면서 긍정적으로 고개를 끄떡거려 주시던 면접관들의 모습에서 그는 아주 좋은 느낌을 받았다. 특히나 ‘좋아! 좋아!’를 연발하던 사장님은 드디어 그를 기나긴 실직의 고통스러운 나락에서 구해줄 수호천사로 다가왔었다.

“……!”

그런데 순찰 중에 문득 쳐다본 달이 조금 이상했다. 모양새는 보름달이었지만 붉은 기운을 머금고 있어서 그런지 겨울 밤거리는 밝지 않고 어둠침침하다. 오히려 잔설의 반사광이 더 밝았다.

뭔가 안 좋은 일이 발생할 것처럼 불길했다. 경험상 이런 날은 정신을 바짝 차리지 않으면 언제 어디서 봉변을 당할지 모른다. 그는 운동화 끈을 다시 단단히 매며 다소 들떠있던 마음도 단속했다. 성원 아파트의 소방도로 옆에 줄지어 있는 단독주택들을 따라 본격적으로 순찰하다가 인협은 문득 휴대폰을 흘끔 바라보았다.

어느덧 새벽 1시가 넘었다. 아파트를 끼고 돌아가는 긴 골목길은 꽤 괴괴했다. 밤늦게까지 술 퍼마시고 비틀거리며 귀가하던 간덩이가 부은 남편들도 오늘따라 모습이 코빼기도 보이지 않는다.

“아아!”

그때였다. 아파트 북쪽의 후미진 골목에서 애처로운 여자의 비명이 겨울밤의 정적을 한순간에 깨트린 것은.

“아니, 이게 무슨 소리야,”

왠지 모를 불안감에 주변을 긴장된 눈빛으로 살피며 걷던 인협은 흠칫 놀라며 비명이 나는 곳으로 몸을 돌렸다. 마침 그는 약간 높은 언덕배기에 있었기 때문에 주변의 상황이 한눈에 내려다보였다. 커다랗게 떠진 그의 눈에 아파트 옆 소방도로에서 커다란 불덩어리가 넘실거리는 것이 보였다. 그는 단순한 화재로 여기고 그곳으로 후다닥 달려갔다.

“아, 저런,”

그런데 현장에 도착해 보니 이미 산처럼 커진 화염 속에서 두 사람이 서로 엉켜서 몸부림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화염의 열기가 어찌나 뜨겁던지 인협은 가까이 다가갈 수가 없었다. 그래도 그는 다급한 마음에 불을 끌 무언가를 찾으려고 주변을 두리번거렸으나 아무것도 찾을 수 없었다. 급한 김에 그가 ‘불이야’ 하고 고함을 지르는 순간 뜨거운 화염 속에서 사람 하나가 후다닥 튀어나왔다.

“......!”

남자로 보이는 사람은 이글거리는 커다란 불덩어리를 온몸에 달고 있었다. 그런데도 놀랍게도 남자는 전혀 비명을 지르지 않았다. 단말마의 비명은 화염 속에서 허우적거리는 여자가 지르는 것이었다. 남자는 한없이 아까운 표정으로 불 속의 여자를 가만히 지켜보고 있을 뿐이다. 너무도 이상한 광경에 인협이 잠시 주춤하고 있는 사이에 화염은 순식간에 여자의 비명을 완전히 삼켜버렸다.

여전히 불덩어리를 달고 있는 남자는 화염 속에서 여자가 완전히 타버리자, 마치 아까운 장난감을 잃어버린 아이처럼 몸을 뒤틀며 무섭게 포효했다. 곁에서 두려운 시선으로 쳐다보며 덜덜 떨고 있는 인협을 전혀 의식하지 못하는 행동이었다.

“세상에!”

삽시간에 벌어진 끔찍한 광경에 그만 얼이 빠져 있던 인협은 간신히 정신을 가다듬고 화염 속에 갇혀 있는 남자에게 엉거주춤 말을 건넸다.

“이봐요, 괜, 괜찮아요?”

인협의 말을 비로소 인식했는지 불덩어리가 서서히 그를 향해 돌아섰다. 동시에 불덩어리의 기세도 약해지면서 속에 갇혔던 남자의 형상이 확실하게 보였다.

남자의 형상은 강렬한 화염에 의해서 다 녹아 버렸는지 거의 해골만 남은 앙상한 모습이었다. 그러나 남자의 머리와 배는 동그란 형태를 아직도 유지하고 있었다.

마치 시궁창 쥐를 닮은 두 눈은 검은빛을 내뿜고 있으며, 몇 가락 안 되는 갈색 머리카락은 기이하게도 거대한 뜨거운 불 속에서도 타지 않고 조용히 나부끼고 있다.

징그럽게 생긴 얼굴로 인협을 노려보던 남자는 갑자기 아귀와 같은 커다란 입을 쩍 벌려 그를 위협했다. 깜짝 놀란 인협이 뒤로 물러서자 남자는 갑자기 몸을 돌려 소방도로 위쪽 언덕을 향해 도주하려 했다.

“이봐, 거기서!”

인협이 거의 해골만 남은 듯한 남자의 팔을 겁 없이 재빨리 붙잡자, 그자는 귀찮다는 듯이 오른팔로 인협의 손목을 세게 내리쳤다. 마치 강철망치로 얻어맞는 듯한 격심한 통증을 느낀 인협은 자신도 모르게 손을 놓고 말았다. 그 사이에 해골 인간은 언덕으로 도망쳤다. 하지만 인협은 축 늘어진 팔을 부여잡고 서둘러 남자의 뒤를 쫓았다. 그의 집이 있는 방향이었다.

“감히 내 순찰 구역에서 이상한 짓을 해?”

지금 정체를 알 수 없는 해골 인간이 인협이 거의 2년 동안 야간 순찰로 이룩해 놓은 범죄 무풍지대를 송두리째 무너뜨리고 도주한 것이었다.

처음에 그는 실직했을 때 주위 사람들은 그에게 많은 걱정과 위로를 해주었다. 곧 좋아질 거라고, 그러나 나중에 그것이 진심이라기보다 남의 불행을 통해 자기의 행복을 확인하려는 사람들의 거짓 위로로 느껴지면서 인협은 사람들과의 만남을 기피했다.

그는 해가 떨어지면 박쥐처럼 그의 방에서 기어 나와 어두워진 아파트 주변을 어슬렁거렸다. 하지만 일정한 시간으로 동네를 순찰하면서 그는 전에 보지 못했던 동네의 구석구석을 자연히 깊이 관찰하게 되었다. 시간대별로 다르게 출퇴근하는 다양한 사람들의 얼굴들도 익히게 되었다. 그는 곧 동네에서 배회하는 낯설고 수상한 사람들을 구별해 낼 수 있는 경지까지 이르게 되었다. 수상한 자들은 곧 인협에 의해서 추방되었고 자연히 동네 사람들도 그런 그를 차츰 방범대원 정도로 인정해 주었다.

그의 순찰 덕에 주민들이 범죄의 공포에서 벗어나 편안하게 잠든다고 생각하자 인협은 한없이 뿌듯함을 느꼈다. 자신은 어둠 속에서 좌절하고 방황하는 백수가 아니라 동네를 지키는 수호천사였다. 물론 그의 수호천사론에는 자신의 쓸모를 필사적으로 찾아내려는 눈물겨운 자기 합리화였다. 하지만 그것마저도 없었으면 그는 서러운 실업자 시대를 단 하루도 살아갈 수 없을 것이다.

그런 까닭에 인협은 새로운 직장에 취업했다는 환상에 빠진 듯 쓸데없이 밤마실을 하지 말라는 노모의 핀잔에도 불구하고 하루도 동네 순찰을 게을리하지 않았었다. 그렇게 해서 그가 피땀 흘려 이루어놓은 범죄 무풍지대에서 심상치 않은 사건이 벌어지려 하는 것이다.

“거기 서!”

그의 사명감은 무서웠다. 그가 골목길이 쩌렁쩌렁 울리도록 고함을 지르고 그 해골 인간을 추적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해골 인간은 금방이라도 부러질 것 같은 가냘픈 몸매와는 어울리지 않게 번개와 같은 속도로 빠르게 도망쳤다. 하지만 인협이 골목길의 지름길을 잘 아는 터라 해골 인간은 그의 추적에서 멀리 벗어나지 못했다. 인협이 헐레벌떡 지름길을 돌아 다시 남쪽으로 난 주택가 골목길을 유심히 살펴보니 커다란 밝은 불빛이 출렁이며 커브 길을 막 돌고 있는 해골 인간의 모습이 보였다. 인협은 해골 인간과 다시 마주칠 경우를 대비하여 마침 땅바닥에 뒹굴고 있던 단단한 각목을 하나 주워 들었다.

그러나 인협이 각목을 앞세우고 비호같이 커브 길을 돌아가 보니 해골 인간은 어디론가 종적을 감추고 말았다.

“이놈이 어디로 사라졌지?”

해골 인간을 놓친 곳 바로 왼쪽은 인협이 살고 있는 3층 단독 주택이고 맞은편에는 노란색 2층 건물이 하나 들어서 있다.

우중충하고 멋대가리 없는 주택들이 줄지어 있는 동네 한가운데 유독 눈에 띄는 2층 건물.

마치 동화에서나 나올 법한 건축 양식을 흉내 낸 듯한 2층 건물의 벽은 모두 파스텔 색조의 노란색으로 칠해져 있다. 담장 없이 소방도로와 맞닿은 1층에 만들어진 큰 대문, 오른쪽에 붙어있는 작은 출입문 그리고 2층에 나란히 달린 세 개의 창문도 모두 아치형으로 되어 있어서 건물은 전체적으로 예술적인 감각을 물씬 풍겼다. 거기다가 가파르게 치솟은 연녹색 지붕과 가운데에 설치된 굴뚝은 건물의 핵심이었다. 그런 예술적인 풍경에도 불구하고 불 꺼진 2층 건물에는 왠지 음산한 분위기가 가득 차 있었다.

“대체 이 자식이 어디로 사라졌지?”

행방이 묘연한 해골 인간이 혹시나 2층 건물의 창가 어디에서 숨어 자신을 비웃고 있을 것 같은 생각에 인협은 노란색 건물 전체를 다시 꼼꼼히 살펴보았다.

황량했던 동네를 예술적인 거리로 바꾸어준 2층 건물을 인협이 유독 수상한 곳으로 꼽는 이유는 집의 탄생에서부터 비롯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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