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서 살인

2화:누명

by 김정걸

저 정도로 정교하고 예술적인 건축물은 최소한 한 달 정도는 족히 걸리는 것이 정상임에도 불구하고 그 2층 건물은 겨우 한나절 만에 세워졌다.

그저께 일요일 오후 조용한 동네에 두 대의 8톤 트럭이 한 떼의 사람들과 난데없이 나타났었다. 몇 년 동안 놀리고 있던 공터에서 뜬금없이 들려오는 요란한 엔진 소리 때문에 동네 주민이 몇 명이 창문 밖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몇 년 동안 건물을 짓지 않아서 공터에 온갖 쓰레기만 점점 산처럼 늘어가는 바람에 공터 주변의 집주인들이 불평을 많이 하던 참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건축자재를 가득 싣고 동네로 들어오는 8톤 트럭의 움직임을 지켜보는 주민들의 얼굴에는 기대감이 가득 찼다. 그들은 며칠 동안 소음에 시달려도 참을 만하다는 얼굴빛으로 낯선 사람들을 환영했다.

그런데 8톤 트럭에서 분주하게 건축자재를 내리는 사람들의 옷차림이 참으로 특이했다. 마치 우주센터에서 근무하는 기술자 같은 복장을 한 그들은 한결같이 검은 선글라스를 착용하고 있어 단순한 노무자라기보다는 정보기관의 요원들처럼 보였다.

옷차림새에 어울리지 않게 그들은 8톤 트럭이 쏟아낸 엄청난 물량의 건축자재들을 일사불란하면서도 노련하게 조립해 나갔다. 구경 나온 동네 사람들에게는 일체 눈길 한번 안 주고 검은 선글라스들은 레고 장난감을 즐기는 아이들처럼 묵묵히 조립에만 열중했다, 그 결과 서너 시간 만에 황량했던 공터에 이국적인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2층 건물이 웅장한 자태를 드러냈다.

주변의 우중충한 집들을 한없이 초라하게 만든 건물이 완성되자마자 선글라스들은 올 때처럼 말 한마디 없이 8톤 트럭을 타고는 한꺼번에 어디론가 사라졌다. 동네 주민들은 서너 시간 만에 자신들의 집을 초라하게 만든 건물의 주인이 누구인지 궁금해서 죽을 판이라 다들 동네 어귀에 서서 낯선 승용차만 들어서면 고개를 쭉 빼고 쳐다보았다.

그러나 며칠이 지나도 2층 건물의 주인은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그리고 밤에도 건물에 불이 켜지지 않았다. 그저 괴괴한 어둠에 잠겨 있었다. 그래서 혹자는 집주인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기 꺼리는 사람이거나 새벽에 몰래 들락거리는 비밀 요원 같은 사람일 거라고 막연히 추측했다. 그러나 밤이 되어도 사람 드나드는 기척이 전혀 없었다.

“...!”

아무리 아름다운 집도 사람의 훈기가 없으면 차츰 흉가로 바뀌는 법이다. 이국적인 분위기가 오히려 음산한 기운을 증대시키면서 동네 사람들도 차츰 그 집에 가까이 가는 것을 꺼렸다.

대신 주인 없는 집을 금방 알아본 철없는 동네 아이들이 몰려가 그 집의 1층 벽에다 온갖 낙서를 마음 놓고 써대기 시작했다. 일부 생각 없는 취객들은 담장에 방뇨하다가 아이들이 땅바닥에 버린 백묵을 집어 들고 낙서를 신나게 휘갈겼다.


(하필 우리 집 앞에 저런 흉가가 들어섰는지 몰라. 쯧)

인협은 이층 집의 창문을 훑어보다가 섬뜩한 느낌에 얼른 시선을 내리고 벽을 바라보았다. 벽에는 주인의 감시가 없는 탓인지 더욱 늘어난 온갖 낙서들이 가득 차 있다. 그 낙서들만이 불 꺼진 집에서 찾을 수 유일한 사람의 흔적이었다.

하여튼 인협이 분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사건 현장으로 다시 돌아가려고 할 때 대로로 연결된 큰 소방도로에서 한 중년 신사가 모습을 드러냈다.

”아? 안녕하세요?”

중년 신사는 금방 인협을 알아보고는 인사를 했다. 인협의 집에서 서너 집 건너 있는 가문 빌라 3층에 사는 모 대학교 교수 노수현이었다.

“네, 오늘은 좀 늦으셨네요?”

“네. 지방에서 개최된 세미나에 다녀오는 길입니다."

50대 중반의 점잖은 노수현은 동양학 분야에서 권위 있는 학자라는 소문이 나 있었다. 노수현은 인협에게 사람 좋아 보이는 미소를 지으며 살갑게 덧붙였다.

“오늘도 밤늦게까지 순찰하시는군요.”

“혹시 오던 길에 수상한 자 못 보셨나요?”

“아니요. 무슨 일이 있나요?”

“아닙니다.”

인협은 신수가 훤한 노수현과 대면하자 갑자기 야간 순찰을 하는 자신의 처지가 초라하게 느껴져 그와 길게 이야기하고 싫지 않았다.

“그럼 수고하세요.”

노수현도 더 이상 관심을 보이지 않고 인협에게 짧게 인사하고는 어깨를 양쪽으로 흔들거리며 자기 집 쪽으로 터벅터벅 걸어갔다.

30분 후 정인협의 신고를 받고 남부 경찰서에서 형사들과 감식반 요원들이 대거 몰려왔다. 그들은 시커먼 재 속에서 타다만 피해자의 뼈를 채집하고 사진 촬영하느라고 한바탕 북새통을 이루었다. 그들을 갈색 트렌치코트를 걸치고 콧수염을 길러서 성질 까다롭게 생긴 40대 초반의 남자가 지휘하고 있었다. 강력계의 황금산 반장이었다.

그는 현장을 이리저리 꼼꼼히 살펴보더니 이윽고 인협에게 다가왔다.

“강력계 황금산 반장입니다. 사건을 처음 목격하고 신고하신 분이라고요.”

“네. 새벽에 순찰하다가 목격했습니다.”

“순찰요? 방범대원이십니까?”

“아니요. 제가 그냥 원해서 하고 있습니다.”

“그냥요?”

인협에게 반문하던 황금산은 뭔가 개운치 않다는 표정을 짓더니 다시 질문을 던졌다.

“그럼 혹시 저 끔찍한 방화를 저지른 범인을 목격하셨나요?”

“네.”

“그래요?”

황금산 반장의 눈빛이 반짝하고 빛났다.

“그자에 대해서 좀 더 자세하게 말씀해 주시죠.”

“그런데 그놈의 모양이 좀 이상했어요?”

“이상해요?”

“네. 그놈은 뼈만 앙상하게 남았는데 얼굴과 아랫배만 볼록 튀어나왔어요. 더욱 놀라운 것은 그놈의 몸에 불이 붙었는데도 불구하고 그자는 전혀 고통스러워하지 않더라고요.”

“에이, 그럴 리가요?”

황금산 반장은 대번에 인협의 말을 믿으려 하지 않았다.

“아닙니다. 제가 이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다니까요! 그 해골 인간이 여자를 태우던 불 속에서 뛰쳐나오더니 저쪽으로 도망갔어요.”

“목격자 당신은 그냥 놔두고?”

황 반장은 얼른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으로 그에게 반문했다.

“해골 인간이 워낙 급했나 보지요.”

인협이 추측하듯이 대답하자 황금산 반장은 고개를 갸우뚱했다.

“해골 인간이라?”

“네. 해골만 남았으니까요.”

“흠, 사람이 그 상태에서도 살 수 있을까요? 당신이 뭔가 잘못 본 것 아니에요?”

“아니에요! 저도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했었죠. 하지만 모든 게 정녕코 사실입니다.”

“최초의 목격자가 해골 인간 운운하면서 추측성 발언을 자꾸 하면 진술 자체가 모두 신뢰성을 잃습니다.”

“추측이 아니라니까요! 현실이라고요!”

답답한 인협이 목에 핏대를 세우며 강조했지만, 황 반장은 여전히 인협의 증언이 너무 황당하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혹시 그자 말고 다른 사람은 없었어요?”

“아니요. 새벽 1시를 넘은 시각이라 다른 행인은 없었어요. 그 해골 인간만이 있었을 뿐이죠.”

“아니면 정인협 씨하고요.”

황금산 반장은 인협에게 묘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나는 목격자이고 방화 살해범은 그 해골 인간이에요.”

“자꾸 황당무계한 인물을 거론하시는데 혹시 다른 이유라도 있나요?”

의구심이 가득한 시선으로 되묻는 황금산 반장의 눈빛이 어느새 상당히 날카로워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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