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서 살인

3화:불길한 낙서

by 김정걸


“다른 이유? 당연히 없죠. 난 그냥 본 대로 얘기한 것뿐이니까요.”

기분이 나빠진 인협이 약간 언성을 높이자 노련한 황 반장은 슬쩍 다른 질문으로 넘어갔다.

“아참, 지금 놀고 계신다고 하셨나요?”

“놀고 있다니요? 지금 취업 준비 중입니다.”

“혹시 어디 정해진 곳이라도 있나요?”

“아직 그건 아니고요. 며칠 전 면접을 본 곳이 있는데 잘될 것 같다는 말이죠.”

인협은 애써 밝은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흠, 실직 상태가 얼마나 오래되었습니까?”

황 반장의 질문이 점점 심문처럼 바뀌고 있었다.

“한 2년 됩니다.”

인협이 찡그린 얼굴로 내뱉듯이 대답하자, 황금산 반장은 얼른 정중하게 고개 숙이고 변명했다.

“수사상 의례적으로 하는 질문이니 특별하게 여기실 필요 없습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그의 눈에는 여전히 의구심이 가득했다. 황 반장의 상투적인 말투에 마침내 감정이 상한 인협은 볼멘소리를 내뱉었다.

“요즘 같은 경제난에 실업자가 어디 나뿐입니까? ”

“이런, 단단히 기분이 상하셨군요. 그러나 사건이 완전히 해결되기 전까지는 모든 사람이 용의 선상에 오르는 점 양해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수사반장이 마지막 던진 말이 영 찜찜했다. 인협은 만약 자기가 반듯한 직장에라도 다니고 있다면 이놈이 지금처럼 대뜸 의혹의 눈초리를 자기에게 던질까 하는 생각이 들자, 새삼 서러운 기분이 들었다. 그가 불편한 기색으로 황 반장의 변명을 선뜻 수긍하지 않지 않고 있을 때 감식반 요원이 황 반장에게 다가와 보고했다.

“피해자는 30대의 여성으로 파악되었습니다.”

“여자라고?”

“네, 유골의 뼈 구조로 봐서 틀림없습니다.”

“나이는?”

“다 타버려서 정밀 분석을 해야 알 것 같습니다.”

감식반 요원이 자신 있는 대답을 못 하자, 황금산 반장은 그가 수거해 온 뼛조각을 들여다보며 물었다.

“그런데 말이야. 보통 사람이 저 정도까지 타버리려면 시간이 꽤 많이 걸리지?”

“네. 서너 시간 정도 필요하지요.”

“그런데 피해자는 30분 안에 완전히 다 타버렸어. 최초로 목격한 시간과 화재 종료 시각을 계산해 보면 30분도 안 돼.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하지?”

“저도 그게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혹시 다른 곳에서 여자를 소각시키고 여기에다 버린 것 아닐까?”

황 반장이 감식반원에게 따지듯이 묻고는 정인협이 입고 있는 잠바를 흘끔 쳐다본다. 처음부터 그를 주목하고 있었던 탓에 그의 잠바에서 불에 그슬린 듯한 부분이 금방 눈에 들어왔다.

“그런 것 같지는 않습니다. 처음 불이 발화된 지점이 이곳이 틀림없습니다.”

감식반원은 검게 그을린 소방도로의 바닥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황 반장의 추리에 이견을 달았다.

“다른 곳에서 살인하고 증거를 없애기 위해서 소각했다면 유골을 굳이 이런 공공장소에 버릴 바보는 없겠죠?”

감식반원의 소견은 상당히 설득력이 있었지만, 황 반장은 자신의 추리에 대한 미련을 여전히 버리지 못했다.

“그러겠지?”

그는 감식반원에게 가볍게 수긍하고는 현장에서 탐문수사를 하던 형사들을 모두 불러들였다.

“자네들은 사람을 순식간에 태워버릴 수 있는 고성능 화염방사기 같은 것이 시중에 유통되고 있는지 알아봐!”

“네.”

형사들이 일사불란하게 대답하고 제자리로 돌아가자, 황 반장은 다시 인협을 불렀다.

“이제 수사 시작이니 당분간 휴대폰을 계속 켜 놓고 계시기를 부탁드립니다.

부탁이라고는 했지만, 황 반장의 말투는 인협을 유력한 용의자로 찍는 분위기가 농후했다.

인협이 집에 돌아와 보니 어느덧 새벽 3시가 넘었다. 잠깐 눈 좀 붙이고 나자 금방 환한 아침이 되었다. 어지러운 비몽사몽에 헤매던 인협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그러고는 창문을 활짝 열고 새벽에 해골 인간을 놓친 버린 지점부터 아파트 뒤쪽으로 돌아가는 소방도로를 찬찬히 살펴보았다. 별로 특별한 것이 없었다.

이윽고 그의 시선이 을씨년스럽게 보이는 맞은편 이 층집 건물의 노란색 벽 앞에 꽂혔다. 그곳에 등교하던 동네 꼬마 녀석들이 옹기종기 모여있었기 때문이었다.

“아니, 저 녀석들이 또, ”

꼬마들이 또 한바탕 낙서질하는 것이 분명했다. 주인 없는 집은 아이들도 금방 귀신처럼 알아본다. 그들은 단지 어리다는 이유로 집이나 학교에서 당한 온갖 서러운 감정들을 죄 없는 벽에다 마음 놓고 마구 쏟아내는 것이다. 그래도 인협은 아이들이 남의 집에 낙서하는 것을 못 참는 성미였다. 한 녀석 잡아다가 본보기로 혼을 내주어야겠다는 생각으로 날쌔게 담장으로 뛰어나갔다.

인협은 도둑고양이처럼 살금살금 다가가 뒷골목에 사는 1학년 영희의 뒤에 섰다.

단발머리를 한 자그마한 영희는 벽 한구석에 뭔가를 열심히 쓰고 있었다. 얼마나 낙서에 열중하고 있는지 다른 아이들이 인협을 발견하고는 사색이 되어 삼십육계를 쳤음에도 영희는 여전히 낙서 삼매경에 빠져 있었다. 인협의 눈길이 하얀 백묵을 단단히 쥔 영희의 작은 손을 따라갔다.

‘엄마 아빠, 돌아오세요. 보고 싶어요!’

삐뚤빼뚤 써진 글귀를 보는 순간 인협은 가슴이 뭉클했다. 영희는 한 달 전 엄마 아빠를 교통사고로 잃어버리고 지금은 친할머니랑 살고 있다. 영희의 부모는 경남 하동에 볼일이 있어 승용차를 몰고 갔다가 그만 승용차가 절벽에서 추락하는 바람에 모두 사망했다고 한다. LPG를 사용하는 승용차는 그 자리에서 전소해 버렸다. 그 결과 차 안에 있던 사람들의 형체가 알아보기 힘들게 되어 유전자 채취로 겨우 신원을 확인했다고 한다. 하여간 부모의 갑작스러운 사망으로 어린 영희는 여전히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한 듯했다.

인협의 인기척에 놀란 영희가 뒤돌아보았다. 슬픔이 가득 찬 영희의 눈망울에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영희의 시선과 마주친 인협은 이미 야단칠 마음을 상실해 버린 듯 딴청을 피웠다.

“어, 이것 봐라? 이건 누구 솜씨야?”

인협은 누군가 어설프게 그린 사람 모양의 그림 하나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물었다. 그림은 중절모 같은 것을 눌러쓴 사람의 몸체와 팔다리는 모두 가느다란 선으로 표현되어 있었다. 그리고 손에는 긴 막대기가 하나 더 붙어 있다. 어디선가 본 듯한 그림이었다.

“영호가 그렸어요.”

“그래? 그런데 이건 뭘 그린 거지?”

“뱀이에요”

“뱀?”

“네.”

잠깐 슬픔을 잊은 듯 어린 영희의 눈망울은 확신에 반짝거렸다.

“무슨 뱀이 이래? 이건 사람 모습이잖아? ”

“만화영화에 나오는 요괴예요. ”

“무슨 만화영화? ”

“이건 ‘요괴 인간’에 나오는 뱀 아저씨예요.”

“아! ”

그때야 인협은 어린 시절에 자신도 흥미진진하게 봤던 ‘요괴 인간’이라는 만화영화를 떠올렸다. 세 명의 요괴가 인간이 되기 위해서 세상의 나쁜 요괴들을 퇴치하여 선행을 쌓아간다는 70년대의 흥미진진한 만화영화였다. 그 세 요괴 중의 리더가 바로 뱀이라는 남자 요괴였다.

“요즘에도 그 만화영화가 나와?”

“그럼요. 유튜브로 어제 영호랑 봤어요. 무섭지만 무척 재미있었어요.”

“그래? 아참, 너도 학교 가야지.”

인협은 큰일 났다는 표정을 지으며 영희를 슬그머니 담장 벽에서 떼어냈다. 그의 재촉에 밀려서 영희는 다시 등굣길에 올랐지만, 자기가 쓴 낙서를 몇 번이고 뒤돌아본다. 깊은 기원을 보내는 순례자처럼,

인협도 짠한 시선으로 영희가 서투르게 쓰고 간 낙서를 물끄러미 다시 바라본다.

‘엄마 아빠 돌아오세요. 보고 싶어요’

“...!”

왠지 그 낙서가 차츰 무섭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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