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최종회):별장(別莊) 지기
“잘했어!”
황 반장은 보고를 하는 형사를 바라보며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네. 틀림없습니다. 올라가 보시죠.”
형사는 자신 있게 말하고는 그에게 길을 터주었다. 옆에서 황당한 표정을 지으며 듣고 있던 인협이 번개처럼 3층으로 뛰어갔다.
3층 현관에 들어서던 인협의 눈에 제일 먼저 그의 방에 가득 차 있는 현금 행랑이 들어왔다. 방안에 있던 두 명의 형사가 행랑의 내용물을 하나하나 살펴보고 있었다.
그가 거실을 단숨에 가로질러가 행랑의 내용물을 보니 그것들은 모두 황금색 오만 원권이었다.
“맙소사! 이게 왜 우리 집에 있는 거야?”
인협은 자기 기억에도 없는 엄청난 현금이 자기 방에 가득 차 있는 것을 보고는 얼굴색이 하얘졌다.
“그 돈의 출처는 정인협 씨 당신이 더 잘 알지 않습니까?”
어느새 그의 방안까지 다가온 황 반장이 그에게 차갑게 쏘아붙였다.
”난 모르는 돈이야!”
“그건 판사 앞에 가서 주장하시고,”
황 반장은 툭 내뱉고는 뒤따라온 형사에게 눈짓했다. 그러자 형사는 인협에게 다가와 수갑을 꺼내 들었다.
“정인협 씨 당신을 현금 탈취 행위로 긴급체포합니다.”
“아니야! 난 아니라고!”
인협은 거칠게 반발했지만, 그의 손목에 차가운 수갑이 인정사정없이 채워졌다.
그 순간 인협은 영희 납치를 들킨 노수현이 자기에게 누명을 씌운 것이라고 어렴풋이 깨달았다.
“빌어먹을 그 자식이 나에게 덤터기를 씌워?”
그는 억울했다.
하지만 인협은 사악한 노수현의 의도 대로 맥없이 당할 수는 없었다.
자기의 누명을 벗는 것뿐만 아니라 앞으로 잠재적인 피해를 막기 위해서라도 노수현을 꼭 잡아 감옥에 처넣어야 했다.
인협은 수갑을 차고 골목으로 내려오는 동안 탈출을 하기 위해서 부지런히 머리를 굴렸다.
“저, 반장님, 뒷집 영희도 행방불명된 것 아시죠?”
형사들이 인협을 형사기동대 차에 밀어 넣으려고 할 때 그는 황 반장을 돌아보며 소리쳤다.
“그래. 어제 신고되었어.”
“그 아이가 어디 있는지 알고 싶죠?”
“그 애 행방을 알아?”
황 반장의 눈이 번쩍 빛났다. 아마 인협이 추가 범행을 자백한다는 뜻으로 받아들이는 눈치였다.
“나를 저 담장 앞에 데리고 가줘요. 제발,”
인협은 통사정했다. 그러나 무슨 까닭인지 황 반장은 머뭇거렸다. 다급한 인협은 그에게 미끼를 던졌다.
“여아 유괴범을 검거하면 반장님도 승진할 것 같은데요.”
인협이 던진 미끼가 주효한 모양이었다. 황 반장은 그를 차 안에서 끌어내며 경고했다.
“좋아. 그 대신 딴짓하면 국물도 없어!”
“그럼요.”
인협은 그에게 씩 웃어주고는 곧장 이 층집 담장을 향해 앞장섰다.
그러나 그가 행하려고 하는 묘수가 제대로 먹힐지 확신이 없어서 마음은 불안하고 초조했다. 하지만 앉아서 당할 수는 없으니까 그냥 해보는 거다. 밑져야 본전이었다.
어쨌든 형사들에게 둘러싸여 담장 앞으로 다가간 인협은 담장 밑을 쓰윽 훑어보았다. 다행히도 그곳에 백묵 조각이 하나 떨어져 있었다.
(휴, 죽으라는 법은 없구나)
그는 허리를 굽혀 백묵을 집어 들고 담장 앞에 묵묵히 섰다. 그는 뭘 써야 하지? 하고 고민했다.
“좋아, 내 마음 가는 대로 쓰자.”
마음의 결단을 내린 듯 그는 담장 위에다 한 줄 써 내려갔다.
‘아수라, 너의 주인이 명한다. 당장 내 앞에 나타나서,’
인협은 거기까지 쓰고는 잠시 머뭇거렸다. 영문도 모른 채 그의 행동을 호기심이 가득한 시선으로 주시하던 형사들도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그 순간 인협은 고민하고 있었다.
(아수라에게 이 골치 아픈 형사들을 다 쓸어버리라고 지시를 내릴까?)
성질 같아서는 모두 몰살시켜 버릴까 했지만, 인협은 잠시 심호흡을 했다.
(아니, 그것은 정도가 아니야)
마음이 갈팡질팡하던 하는 마침내 고개를 내젓고는 냉철하게 낙서를 다시 썼다.
‘아수라는 우리를 당장 영희에게 안내하라!’
번개처럼 그렇게 쓰고는 무서운 듯 백묵을 땅바닥에 내던졌다.
그러고는 아수라의 등장을 기다리는 듯 사방을 두리번거렸다. 형사들도 마찬가지였다.
“...!”
하지만 몇 초 동안은 아무것도 나타나지 않았다. 그러자 형사들은 아수라가 설사 있다 치더라도, 그깟 낙서 때문에 나타나겠어하는 표정을 지으며 어이없이 인협에게 낚였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때 갑자기 쿵! 하고 지축이 흔들렸다.
“어어?”
그들이 얼결에 놀라 주위를 둘러볼 때 그들 앞에 거대한 덩치의 아수라가 예의 그 모습으로 나타났다. 기겁한 형사들은 본능적으로 권총을 뽑아 아수라를 쏘려고 했다.
“잠깐, 총 쏘지 마요!”
인협도 똑같이 겁을 먹었지만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형사들을 만류했다. 형사들은 다행히 그의 말을 고분고분 따랐다. 인협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는 이번에는 아수라를 돌아보며 소리쳤다.
“아수라, 너는 나의 지시대로 영희가 잡혀있는 곳으로 당장 저분들을 안내해!”
낙서에 인협이 주인이라고 못을 박아서 그런지 무섭게 생긴 아수라는 놀랍게도 착한 강아지처럼 인협과 형사들을 영희가 감금된 곳을 향해 쿵쿵 소리를 내며 걸어갔다.
잠시 후 아수라는 인협의 동네로부터 도보로 20분 정도 떨어진 어느 허름한 재개발 구역으로 들어가더니 어느 집 앞에서 우뚝 멈춰 섰다.
3층짜리 허름한 단독주택이었다. 그 집도 모두 이주했는지 빈집이었다.
아수라는 인협과 형사들을 돌아보더니 그 집을 손으로 가리켰다.
눈치 빠른 황 반장이 동행한 세 명의 형사에게 긴급 지시를 내렸다.
“모두 저 집을 급습한다!”
황 반장의 지시가 떨어지기 무섭게 형사들은 그 빈집으로 쳐들어갔다. 잠시 후 그들은 3층 단독의 지하실에서 잠자고 있던 영희와 그 주변에서 불안하게 서성이던 노수현을 발견했다.
“꼼짝 마라! 노수현!”
형사들이 권총을 겨누며 소리치자, 노수현은 화들짝 놀랐다.
“아니, 여기를 어떻게 알았지?”
“노수현, 뛰어야 벼룩이지.”
인협이 이를 부드득 갈며 소리치자, 노수현은 그제야 상황을 파악한 듯 아수라를 쏘아보았다.
“아수라, 네가 감히 배신을 해!”
“저는 주인님의 명을 따른 것뿐입니다.”
“네 주인은 나야! 나라고!”
“하지만 지금은 저분이 나의 새 주인입니다.”
아수라는 인협을 가리키며 나지막이 응수했다. 아수라의 손절에 노수현은 길길이 날뛰었다.
“좋아, 배신자의 말로가 어떤지 단단히 보여주마, 프레타, 저놈들을 모조리 죽여라!”
그의 지시가 떨어지자마자 지하실 어둠 속에 숨어있던 프레타가 몸을 붉게 달구며 서서히 몸을 드러냈다. 프레타의 몸은 여전히 해골만 남았지만, 강철처럼 탄력이 넘쳤다.
“아,”
그의 흉측한 몰골을 보고 질겁을 한 형사들은 앞다퉈 프레타에게 사격을 가했다. 하지만 금방이라도 부러질 것 같았던 프레타의 뼈들은 날아오는 총알을 모두 튕겨냈다.
미친 듯이 총을 쏘는 형사들이 가소롭다는 듯 쳐다보던 프레타가 몸을 비상하여 형사들을 두 손으로 붙잡았다.
그 순간 형사들의 몸은 순식간에 거대한 화염에 휩싸였다. 그 광경을 보고 인협은 아수라에게 돌아보며 긴급히 명령을 내렸다.
“아수라는 당장 저 아귀를 처치하라!”
“녭!”
인협의 지시에 아수라는 두말없이 여섯 개의 검을 빼어 들고 프레타에게 덤벼들었다. 삽시간에 아수라와 프레타는 뒤엉켜서 엄청난 싸움을 벌였다.
그 틈을 타 인협은 잠에서 막 깨어난 어린 영희를 껴안고 지하실 밖으로 튀어나왔다. 그들이 바깥으로 나오자 이미 먼저 지하실을 빠져나온 노수현이 저만치 골목 깊숙이 도망치고 있었다.
“저 쥐새끼 같은 놈!”
황금산 반장이 그 광경을 보고는 주저 없이 쥐고 있던 권총으로 발포했다.
“으윽,”
조그만 더 도망치면 골목을 완전히 빠져나갈 것 같은 노수현은 그만 그 자리에 푹 쓰러졌다. 그리고 죽었는지 살았는지 꼼짝 안 했다.
그로부터 이틀 후 저녁 무렵에 황금산 반장이 은밀하게 이층 별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잠시 주위를 둘러보더니 별장 담장 밑으로 도둑고양이처럼 슬그머니 다가갔다. 그러고는 땅바닥에서 분필 하나를 집어 들고 담장에 열심히 뭔가를 써나갔다.
‘아수라여, 네 주인의 명령이다. 프레타를 당장 잡아와라!’
황 반장은 자기가 쓴 낙서를 훑어보고는 새삼 무서운 듯이 얼른 담장에서 떨어졌다.
잠시 후 쿵! 하는 소리와 함께 아수라가 황 반장 앞에 예의 그 모습을 드러냈다. 아수라는 낙서의 지시대로 프레타를 특수 은박지로 만든 방화복을 입히고 잡아왔다. 그 모습을 보고 황 반장은 팔짝 뛰며 좋아했다.
“프레타 네놈이 화염으로 내 부하들을 불태워 죽이는 바람에 내가 상부에 사건 소명을 못 해서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았는지 아냐? 잘 되었어! 모든 사람 앞에 네 놈을 세울 것이다.”
황 반장은 납치되었던 영희를 구해내는 과정에서 프레타에게 타 죽은 형사 세 명의 사인(死因)을 해명하느라고 그동안 정말 애를 먹었었다. 자칫 잘못하면 그가 책임지고 옷을 벗어야 할 판이었다. 그래서 결국 낙서의 마법을 이용하여 프레타를 체포하기로 결심했던 것이다.
“...!”
그때 황 반장이 프레타를 검거해 가는 과정을 인협은 자기 집 3층 창너머로 모두 지켜보고 있었다. 그러고는 알 수 없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 시각 황 반장은 프레타를 포박한 아수라를 앞세우고 자기를 괴롭히던 상관들 앞으로 끌고 갔다. 물론 트렌치코트를 걸치고 동행한 아수라는 프레타를 조사실에 끌고 가서는 간부들이 나타나기 바로 직전에 모습을 감춰버렸다.
프레타의 방화복을 절대 벗기지 말라고 신신당부하면서,
황 반장은 간부들이 조사실에 다 모이자 의기양양하게 그동안 맺힌 한을 풀 듯이 브리핑을 시작했다.
“이놈이 거대한 화염으로 무고한 여자들과 저의 부하들을 태워 죽인 장본인입니다.”
“저놈이 무슨 재주로 그런 흉악한 짓을 했단 말이요?”
간부들은 황 반장의 브리핑을 곧이곧대로 믿지 않고 의구심을 품었다.
“아니, 그건 그렇고 뭐 때문에 놈의 얼굴을 방화복으로 가리고 있는 거요? 공개해요!”
프레타를 흘끔흘끔 바라보던 한 간부가 황 반장에게 요구했다. 그러자 다른 간부들도 덩달아서 맞장구쳤다. 하지만 아수라의 당부를 떠올린 황 반장은 그럴 수가 없었다.
“공개 못 하는 것을 보니 황 반장 당신, 우리를 감히 속이려는 거 아니야?”
급기야는 간부들의 분위기가 황 반장의 의도를 의심하는 지경까지 이르게 되었다. 결국 한계에 부딪힌 황 반장은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프레타의 방화복을 벗기고 말았다.
그 순간 방화복 안에서 거대한 화염이 쏟아져 나왔다. 화염은 순식간에 황금산 반장의 온몸을 덮쳤다. 그리고 몇 초도 안 되어서 그의 몸뚱이는 완전히 재로 변하고 말았다. 그 광경을 쏘아보던 프레타는 무섭게 포효하더니 갑자기 열린 창밖으로 도망쳤다.
조사실에 있던 모든 간부는 그 불가사의한 광경에 혀를 내두르고는 몸서리를 쳤다.
“모든 게 사실이었어. 그것을 가엾은 황 반장이 몸으로 증명한 거야. 쯧쯧,”
그날 밤 인협은 황 반장이 걱정되어 담장 앞으로 나가보았다. 그곳에 놀랍게도 언제 왔는지 소유천이 양동이를 갖다 놓고 대걸레로 담장의 낙서를 박박 지우고 있었다.
인협은 그의 인기척에도 눈길을 주지 않는 소유천에게 일부러 들으라는 듯이 말했다.
“그나저나 이제 별장을 다른 곳으로 옮겨야 되지 않나요?”
그의 물음에 소유천은 어둠 속에서 침묵을 지키고 있는 2층 별장을 올려다보며 중얼거렸다.
“다른 곳으로 가도 마찬가지야.”
그의 심드렁한 말에 인협의 표정이 확 변했다.
“마찬가지라고요?”
“인간들의 욕심이 끝이 없어. 나로서는 달리 방도가 없네.”
소유천은 양동이와 물걸레를 집어 들고 별장 안으로 들어가다 말고 문득 멈추었다. 그러고는 인협을 뒤돌아보았다. 그를 쏘아보는 그의 눈빛이 매우 날카롭다.
“그런데 어제 아수라를 부를 때 원수 같은 황금산을 죽이지 왜 망설였어?”
“...!”
“그를 살릴지 말지 고민했었나?”
“네. 황 반장은 이 믿을 수 없는 사건을 상부에 있는 그대로 보고를 안 할 거예요. 아무도 믿지 않을 테니까. 대신 제일 만만한 나에게 모든 것을 덮어씌울 것이 뻔하다고 생각했어요. 백수도 서러운데 살인자 누명이라니... 그래서 아수라에게 그를 죽여버리라고 사주를 할까 잠시 고민했어요.”
“그런데 결국 황 반장을 살리기로 했군.”
소유천이 인협의 시선을 응시하며 말했다.
“네.”
그의 대답은 소유천은 희미하게 웃었다.
“좋아, 순리를 따르는 자세가 맘에 들어. 난 자네에게서 희망을 보았네.”
“희망이요?”
“자네는 왠지 이 별장을 잘 지킬 것 같네. 이제부터 노수현이 하던 일을 자네가 하게.”
“네? 나더러 아수라를 또 불러내라고요?”
“그게 아니라 자신의 욕망만을 위해 이 담장을 지저분하게 만드는 작자들을 막으라는 소리지.”
“저같이 별 볼 일 없는 백수가 감히 어떻게 그런 일을 할 수 있죠?”
“별 볼 일 없다고? 아니야. 자네는 세상을 살아가는 데에 있어서 최고의 미덕인 용기를 갖고 있어. 그것만 있어도 충분해.”
“....”
“어렵게 생각할 것 없어. 자네는 그저 별장지기 역할만 하면 돼. 악의 준동을 막는,”
그래도 인협은 선뜻 용기가 나지 않는 모양이었다.
“자네만 잘해주면 이 별장은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계속 사람들 곁에 남아있을 수 있네.”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요?”
“자네 같은 서민들은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꿈을 이루기 어려운 힘든 세상에서 가끔 이 정도의 행운도 때때로 필요하지 않나? 그게 바로 이 별장이 존재하는 이유야.”
소유천은 이층 별장의 노란색 담장을 손으로 소중하게 쓰다듬으며 대답했다.
“그래도 제가 감히 어떻게?”
인협이 반문하자 소유천은 피식 웃었다.
“자네는 참 영악해. 벌써 화이트홀(white hole)의 사용법을 터득했으니 말이야. 자네는 아수라를 좋은 쪽으로 사용했으니까. 자네의 희망대로 화이트홀에는 괴물만 있는 게 아니라 사람들을 도와주는 보살 같은 존재도 있다네. ”
“다행이군요. 사실 프레타나 아수라도 주인을 잘 만났으면 진작에 좋은 일에 쓰였을 텐데요.”
“그러니까 자네가 더욱 필요해.”
“...”
“자네가 수고해 준다면 나도 그 대가를 지불하겠네.”
“대가라고요?”
”그래. 세상에는 공짜가 없으니까. 이 담장에다 딱 한 가지 자네의 소원을 적어보게. 자네도 최소한 먹고는 살아야 하지 않겠나?”
“뭐라도 제 소원이 이루어지는 건가요?”
“이제껏 봐오지 않았나?”
소유천은 사람 좋아 보이는 미소를 지으며 빨리 담장에다 그의 소원을 적으라고 재촉했다.
결국 인협은 못 이기는 체하고 평소 가슴에 한으로 맺힌 것을 벽에 조심스럽게 낙서로 풀어 나갔다. 이윽고 인협은 소유천을 향해 마지막 질문을 던졌다.
“그런데 저 자신은 어떻게 관리하죠?”
“그리 어려운 것은 없어. 부질없는 욕심이 나거들랑 노수현을 떠올리게. 자기 욕심에 져버리면 노수현 꼴 나니까. 하여간 낙서를 관리하는 것도 극한 직업이야. 잘해 보게나. 허허,”
소유천은 인협의 어깨를 가볍게 다독거려 주고는 골목의 긴 어둠 속으로 홀연히 사라져 갔다.
그날 이후 인협은 다시는 소유천을 볼 수 없었다. 하지만 그가 위임한 대로 인협은 담장에 새로운 낙서가 생기면 빠짐없이 낙서를 읽고 위험한 내용이 담긴 낙서는 즉시 지워나갔다.
반대로 간절한 소원을 담은 낙서들은 잘 진행되도록 여러모로 조용히 도와주었다. 그리고 혹시라도 그가 놓친 부분이 있어 무슨 일이라도 생길까 봐 야간 순찰도 계속해 나갔다.
물론 낮에는 새로 취업한 ‘S 전자’ 회사에서 보통 사람처럼 열심히 일하며 살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