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회:애인을 만들어주는 1000만 원짜리 휴대폰
“야, 오 계장, 너 대체 휴대폰 언제 살 거야? 사무실만 나가면 도대체 연락이 안 되니 정말 큰일이야! 너 이번에도 휴대폰 안 사면 정말 모가지다!”
야차(夜叉)와 같은 오 부장이 외근 나가는 나를 가리키며 자기 손으로 목을 내리치는 시늉을 하며 협박을 가했다. 하지만 그래도 나는 끄떡도 하지 않는다. 집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당신은 나하고 떨어져 있는 것이 편해요? 자꾸 연락 안 하면 정말 떨어져 사는 수가 있어요!"
잘생긴 남편이 내심 불안한 아내는 험악한 협박을 해가며 내게 굴레 즉 휴대폰을 안기려고 했지만 나는 교묘히 넘기곤 했었다.
모든 문제는 전에 쓰던 휴대폰을 잃어버리면서부터 시작되었다.
하지만 나는 기다리기라도 한 듯이 휴대폰을 새로 장만할 생각을 전혀 하지 않았다.
물론 나도 처음 얼마 동안은 정말 불편하고 불안했었다. 그러나 차츰 익숙해지자 사방에서 시도 때도 없이 불러내고 화사 업무를 부여하는 상황도 거의 발생하지 않았다. 휴대폰이 없어져서 나만의 시간을 계획하고 즐길 수 있어 정말 좋았다. 그런 탓에 나는 새롭게 선사받은 자유를 반납하고 싶은 생각이 전혀 없었다.
그러나 아내와 직장동료들은 그들의 시야에서 벗어나 있는 나를 이단아 취급하며 어떻게 하든 굴레를 씌우려고 온갖 협박과 비난을 퍼부었다. 그래도 나는 이런저런 핑계를 대가며 꿋꿋이 버텨오던 참이었다.
그랬던 내가 시골에 계신 노모가 갑자기 건강이 안 좋아지신 바람에 어쩔 수 없이 휴대폰을 사야 하는 곤란한 입장에 빠지고 말았다.
노인은 밤새 안녕이라고 했었다.
노모의 건강에 대한 걱정과 불안감에 시달리다 보니 나는 휴대폰이 없이 정말 행복했었던 자유를 다시 반납해야 했었다.
하여간 병든 노모를 은근히 원망하면서 나는 문제의 그날 퇴근길에 전철에서 내리자마자 휴대폰 판매 상가가 몰려있는 지하상가로 발길을 돌렸다.
“......”
그러나 새로운 휴대폰을 선택하는 것은 그리 쉽지가 않았다. 모양이 잘 빠지고 성능 좋은 휴대폰들이 너무나 많아 무엇을 사야 할지 감을 잡을 수 없었다. 더구나 단말기 값도 비싸고 한 달 통화요금도 만만치 않아 쉽게 마음이 동하지 않았다.
어쩌면 애초부터 살 마음이 없었는지도 모른다. 하여간 나는 이리저리 대리점만 기웃기웃 다니며 그냥 시간만 죽였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지하상가의 출구 끝까지 다다르고 말았다.
그때 오늘도 안 사면 정말 마누라한테 주먹질을 당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나는 다시 상가 쪽으로 발길을 돌려야 했다. 그 찰나에 나는 지하상가 출구 밖의 한 모퉁이에 있는 특이한 한 리어카 노점상을 발견했다.
"......!”
알록달록한 비닐 포장지로 앙징맞게 장식한 작은 리어카 위에는 휴대폰 대여섯 개가 예쁘게 진열되어 있는 것이 내 눈에 띄었다.
그리고 리어카 옆에는 피에로의 분장을 한 남자가 붉은색 공과 파란색 공을 가지고 열심히 저글링을 하면서 지나가는 사람들의 관심을 끌려고 애썼다. 그러나 아무도 그 초라한 휴대폰 노점상에게는 눈길 한 번 안 주고 번듯하고 화려한 휴대폰 대리점 속으로 쏙쏙 들어가 버렸다.
나도 그들처럼 피에로 노점상을 무시하고 안으로 들어가려다 잠깐 발걸음을 멈추었다. 리어카의 옆에 붙어있는 선전 문구가 내 시선을 확 끌어당겼기 때문이었다.
'숨겨진 애인을 찾아드립니다. 입체 휴대폰으로!!'
나는 리어카를 향하여 서서히 다가갔다. 나를 이상하고 특별한 세계로 이끌었던 휴대폰과 운명적으로 첫 만남을 갖는 순간이었다.
“애인을 찾아준다?”
내가 잠시 리어카 앞에 서서 수상한 선전 문구를 바라보며 읊조리고 있자, 호객 행위에 정신없던 피에로가 금방 내 옆에 바싹 달라붙었다.
하얀 분가루를 잔뜩 바른 얼굴 위에 붉은 입술을 커다랗게 그려놓은 탓에 정확하게 피에로의 표정은 읽을 수는 없었지만, 자주 사방을 두리번거리며 경계하는 그의 눈길은 왠지 불길하게 느껴졌다.
“왜? 하나 살려고?”
“숨겨진 애인을 찾아준다고? 저게 무슨 소리요?”
내가 손가락으로 선전 문구를 가리키며 묻자, 피에로는 반색하며 눈을 반짝이었다.
“손님도 애인이라는 말에 혹했구먼. 애인! 듣기만 해도 설레는 말이지. 암, 좋지.”
“이제 손님 끌기 위해서 별짓을 다 하는군."
혀를 차는 나의 핀잔에 정신 사납게 공놀이하던 피에로가 돌연 웃음을 거두더니 정색했다.
“별짓이라니? 무슨 소리! 이것들은 ‘화이트홀’(white hole)이라는 회사에서 개발한 최신형 입체 스마트폰이요.”
“입체 스마트폰?”
내가 심드렁하게 묻자 피에로는 리어카 위에 진열된 검은색 휴대폰을 얼른 집어 들어 내 코앞에 들이밀었다.
“그렇소. 이 휴대폰은 보기에는 구식으로 보여도 손님이 원하는 애인을 증강현실(增强現實) 입체영상으로 만들어 손님 눈앞에 불러내는 재주가 있답니다.”
피에로는 딸기코를 벌름거리며 한껏 제품선전에 열을 올렸다.
“에이, 그럴 리가?”
“휴대폰을 그토록 싫어하는 사람이 첨단과학의 엄청난 발전을 알 리가 있나?”
마치 그동안의 내 행태를 훤히 꿰뚫고 있는 것처럼 슬쩍 비꼬는 피에로의 말에 나는 약간 놀란 표정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그러나 피에로는 내게 슬쩍 묘한 미소만 흘리고는 다시 휴대폰 선전에 열을 올렸다.
“어쨌든 그 입체영상 즉 홀로그램에 에너지를 투입해서 진짜 사람처럼 입체감이 생생해. 요즘 유행하는 그 어떤 휴대폰도 흉내를 낼 수 없어.”
“그럼 그게 바로 요즘 유행하는 가상현실과 같은 거요?”
나도 결코 첨단과학에 뒤처진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일부러 과시하려고 어디서 얻어들은 단어 한마디를 툭 내뱉었다.
그 말을 내가 자신의 신제품을 인정하는 것으로 받아들였는지 피에로는 무척 반색했다.
“그래도 안목은 있었네. 하지만 이 휴대폰이 사용하고 있는 것은 정확히 말하자면 증강현실이요.”
“당신 말이 사실이라면 대부분의 남자들이 환장하면서 사겠군, 숨은 애인을 찾기 위해서 말이요. 후후,”
나는 짐짓 남의 얘기처럼 말하며 비웃듯이 웃었다.
“손님도 별수 없을 텐데요. 후후,”
요란한 분장 사이로 피에로의 입꼬리가 묘하게 비틀어졌다. 하지만 그는 내가 기분 상할까 봐 금방 살살거렸다.
“사실 애인이 있다는 것은 그리 나쁜 일은 아니죠. 더구나 그것이 마누라 몰래 사귄 것도 아니고 예전부터 나에게 있었던 애인을 불러내는 것이라면 더욱 그렇죠.”
“예전부터 있었던 애인을 불러내다니? 그게 무슨 뜻이요?”
내가 관심을 보이자, 피에로는 내 눈앞에서 흔들어 보이던 검은색 휴대폰을 내 손에 덥석 쥐어주었다.
얼떨결에 받은 슬라이더형 휴대폰은 전면의 반 이상이 사각형 액정화면으로 구성된 아주 평범한 것이었다. 액정의 바로 오른쪽 위에 자리 잡은 렌즈도 별로 시선을 끌지 못했다.
액정 바로 밑에는 100원짜리 동전 크기 만한 은색 원이 그려져 있고 원을 따라서 10개 정도의 작은 원이 일정한 간격으로 배열되어 있는데 안에는 0부터 9까지의 숫자가 각각 하나씩 붙어 있었다.
원 가운데에 ’十界‘(십계) 그리고 ’互俱‘(호구)라는 한자가 나란히 쓰여 있었고 두 글자 사이에 작은 은색 바(bar)가 걸쳐 있었다. 아마 그 바(bar)를 이쪽저쪽 움직여서 두 개 중 하나를 선택하게끔 만든 모양이었다. 지금은 그 바(bar)가 ’十界’ 쪽에 가 있었다.
그런데 전원을 켠 상태도 아닌데도 파란 불빛이 그 작은 글자 위를 빠르게 돌고 있는 것이 좀 특이했다.
하지만 시큰둥한 내 표정을 읽은 눈치 빠른 피에로는 액정의 왼쪽 아래에 있는 메뉴 버튼을 가리켰다.
“이것은 겉모습만 휴대폰이지 사실은 손님의 마음을 읽고 복사하는 초정밀 복사 기계랍니다. 만약 애인 찾기를 원한다면 이 메뉴에서 ‘숨겨진 애인 찾기’ 모드로 돌려놓고 이 렌즈를 잠시 바라보면 이 휴대폰이 손님의 마음을 정확하게 읽어냅니다.”
피에로는 상단 위의 작은 렌즈를 조심스럽게 바라보며 말했다.
“내 마음을 읽는다고?”
“네. 손님의 성향을 읽는 거죠. 그리고 메뉴 밑에 있는 통화 버튼을 누르면 입체 휴대폰이 어두운 동굴 속 같은 손님의 마음에서 숨어있는 애인을 찾아내어 연결합니다. 그러면 그 애인이 마술램프의 요정처럼 반경 10미터의 공간에 입체영상으로 손님 앞에 짠! 하고 나타난다 이거죠.”
“에이, 믿을 수가 없어.”
“믿든지 말든지 그건 손님의 자유입니다.”
믿어달라고 애걸하지 않고 딱 잘라서 단언하는 피에로의 그 말이 오히려 이상하게 내 마음을 끌어당겼다.
그렇다고 대놓고 피에로의 황당한 이야기를 100% 수긍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런 나의 마음을 이미 꿰뚫어 보았는지 피에로가 묘한 미소를 지으며 나를 바라본다.
“그렇다고 아무나 숨겨진 애인을 찾을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무슨 조건이라도 있다는 거요?”
“그렇게 굉장한 일이 쉽게 이루어진다면 그건 진짜 사기죠. 안 그렇소?”
피에로가 사기라는 말을 유난히 강조하는 바람에 나는 오히려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끄떡이고 말았다.
“하지만 걱정하지 마세요. 숨겨진 애인을 찾기 위한 조건은 단지 처음에 활성화만 한 번 하면 되니까요.”
“활성화?”
피에로가 제시한 조건이 단지 활성화라는 말에 나는 이상하게도 안도감을 느꼈다.
“활성화는 손님의 마음을 모두 복사하고 그것을 입체 휴대폰 속에서 재창조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처음 한 번만 활성화되면 그다음부터는 활성화 없이도 즉각 즉각 입체영상을 만들어 냅니다.”
“말은 그럴듯하게 청산유수군.”
“잘 나가다가 또 삐딱선을 타시네. 하여간 믿든지 말든지 그건 손님 자유입니다. 어쨌든 활성화하는 동안에는 절대로 이 휴대폰으로 통화를 해서는 안 돼요.”
“활성화하는데 기껏해야 한 시간 이상 걸리지는 않을 테니까 별로 어려운 일은 아니군.”
어느새 나는 피에로의 장사 수완에 넘어가고 말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굳이 그것을 거부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런데 피에로는 나의 중얼거림에 즉각 반박했다.
“한 시간? 노! 10일이 필요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