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회:휴대폰 때문에 총 맞아 죽을 뻔했다.
“뭐 10일씩이나?”
“네.”
“아니, 무슨 놈의 활성화가 10일씩이나 걸려요? 잠시도 통화 안 하고는 못 사는 요즘 같은 시대에 그게 말이나 되는 소리요!”
“불편해도 참아야 합니다. 그 조건만 잘 지키면 10일째 되는 날 손님은 고대하고 고대하던 아름다운 애인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그 정도는 어마무시한 결과에 비해 너무 쉬운 일 아닌가요?”
피에로는 단호하게 반문하고는 나의 반응을 긴장한 시선으로 유심히 살폈다.
“하긴 옛날이야기에 여우가 사람이 되기 위해서 100일이나 기다렸던 것에 비하면 훨씬 낫군.”
“그렇죠? 한 번쯤 해 볼 만하죠?”
애인을 본능적으로 갈구하는 남자들의 마음을 자극하는 말을 툭 내뱉고는 나를 빤히 쳐다보는 피에로의 진지한 모습에 나는 그만 풋!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참, 휴대폰 하나 팔면서 여러 가지로 사람을 현혹시키는군.”
“하지만 이 황금 같은 기회를 버리면 손님과 같은 분은 틀림없이 후회하실 것 같은데요.”
피에로는 다시금 내 마음의 깊은 곳을 파헤쳐 본 듯이 내뱉었다. 나는 그런 피에로의 정체가 새삼 궁금해지며 몸에 소름이 돋았다.
“내가 그런 동화 같은 이야기에 현혹되어서 그따위 휴대폰을 살 줄 알았다면 당신은 날 정말 잘못 본 거야.”
“고객님, 이건 동화가 절대 아닙니다.”
“정말 그런 기능이 있는 휴대폰이라면 벌써 온 매스컴에서 난리가 났을 텐데 왜 이렇게 조용할까요?”
나는 피에로에게 심오하게 묻고는 치명타를 먹였다는 듯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었다.
“그건 아직 사람들이 이 휴대폰의 존재를 모르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당신은 무슨 재주로 이것들을 갖고 있소?”
“이것들은 우리의 비밀 조직이 ‘화이트홀’ 사의 창고에서 몰래 빼돌린 것입니다.”
“화이트홀사? 어쨌든 이것 완전 장물(贓物)이네!”
나는 짐짓 더욱 놀란 척하며 피에로에게 맞장구를 쳐주었다.
“날 놀려도 좋아요. 하지만 우리 조직은 차별없는 기술의 자유를 위하여 이 입체 휴대폰을 세상에 미리 선보인 것입니다. 이런 것이 나오려면 앞으로 100년은 족히 걸릴 거요.”
마침내 피에로가 기술의 자유 운운하며 정체불명의 정치색을 드러냈다. 그 바람에 나는 처음에 느꼈던 신비스러움보다 왠지 모를 반감을 느꼈다. 그런 내 속마음도 모르고 피에로는 물 만난 고기처럼 신나게 떠벌렸다.
“어쨌든 고객님이 이 휴대폰을 만난 것은 정말 행운입니다. 값이 좀 비싸서 힘들기도 하겠지만요.”
피에로는 의도적으로 나의 자존심을 살짝 건드렸다. 역시나 나는 그것에 덜컥 반응하고 말았다.
“대체 얼마짜리인데 그러는 거요?”
“1,000만 원.”
피에로의 말에 나는 입을 쩍 벌리고 말았다. 그렇지 않아도 번거로운 정치색에 휘말리고 싶지 않았던 나는 이때다 싶어 만지작거리던 휴대폰을 얼른 제 자리에 내려놓았다. 그러자 매우 당황한 피에로가 얼른 그것을 다시 내 손에 쥐어주었다.
“겨우 그 정도로 놀라는 거요?”
“당신의 입체 휴대폰은 매우 훌륭하지만 난 지금 그런 것을 살 만한 돈이 없네요.”
끈질긴 장사꾼을 떼어내는 데에는 돈 없다는 소리가 약발이 제일 빠른 법이다.
“하긴.”
피에로는 이미 예리한 시선으로 내 바지 속의 지갑 사정을 꿰뚫어 본 듯 미묘한 웃음을 지었다.
“10년 할부를 해주어도 안 살 거야?”
피에로의 끈질긴 회유에도 나는 황당한 휴대폰을 할부까지 하면서 사는 것이 그다지 내키지 않았다.
나는 정색을 하고 휴대폰을 리어카 좌판에 내려놓으려고 했다.
“정말 안 살 거야? 거의 공짜나 다름없는데.”
피에로의 말속에도 슬슬 짜증이 묻어 있었다.
“장난감치고는 할부도 비싸!”
“장난감이라고? 흥, 인류 역사상 최첨단 제품도 알아보지 못하는 안목이라면 차라리 그만둬!”
마침내 피에로는 내게 휴대폰 파는 것을 포기했다는 듯이 불손하게 내뱉고는 돌아섰다. 당황한 나도 갈피를 못 잡고 휴대폰을 든 채 엉거주춤 서 있었다.
“엇?”
그때였다. 나를 외면하고 지하상가 안쪽을 바라보고 있던 피에로가 갑자기 화들짝 놀랐다.
그의 시선이 머무는 곳에서는 검은 양복을 말끔하게 차려입은 두 명의 건장한 사내가 인파 속에서 바삐 걸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그런데 검은 선글라스를 낀 그들은 피에로와 나를 똑바로 주시하면서 다가오고 있었다.
그들의 정체를 이미 파악한 듯 피에로가 입술을 꽉 깨물었다.
“끈질긴 놈들, 여기까지 쫓아오다니......”
한숨을 내쉬며 중얼거리던 피에로는 갑자기 휴대폰들을 가방에 마구 쓸어 담았다.
피에로의 급박한 움직임을 알아챘는지 조심스럽게 걸어오던 사내들도 갑자기 뛰어왔다. 그러자 피에로도 너무 다급했는지 쓸어 담던 휴대폰들을 내팽개치고 나에게 소리쳤다.
“저들은 ‘화이트홀’ 사에서 파견된 단속요원들이야. 물건 사는 사람도 잡아가! 빨리 도망쳐!”
피에로는 내게 그 말만 황급히 내뱉고는 지하상가 반대쪽으로 잽싸게 줄행랑을 쳐버렸다.
“이런,”
심상치 않은 사태에 나는 영문도 모르고 문제의 검은색 휴대폰을 손에 쥔 채 무작정 피에로의 뒤를 따라 도망칠 수밖에 없었다.
피에로는 전에도 이런 경험을 숱하게 겪은 듯 능숙하고도 빠른 걸음으로 벌써 저 멀리 달아나고 있었다. 덩달아 뛰던 내가 건너편 도로로 무단횡단을 하는 순간 날카로운 바람 소리와 함께 뜨거운 불길이 내 귓가를 아슬아슬하게 스쳐 지나갔다.
“어이쿠,”
엉겁결에 비명을 지르며 옆을 보니까 피격을 당한 도로 옆의 철제 쓰레기통이 이미 완전히 녹아버렸다.
검은색 선글라스를 낀 사내들이 도주하는 우리를 향해 영화에서나 보았을 싶은 레이저 총 같은 것을 쏜 것이 틀림없었다. 어쨌거나 혼비백산한 나는 뒤도 안 돌아보고 정신없이 도망쳤다.
으슥한 골목을 한참 정신없이 달리다가 두 명의 사내가 더 이상 쫓아오는 기색이 보이지 않자 난 잠깐 멈춰 서서 숨을 돌렸다.
“젠장, 이게 무슨 꼴이람.”
나는 거친 숨을 내쉬며 푸념했다. 문득 아직도 내 손에 쥐어져 있는 휴대폰을 발견하고는 얼른 땅바닥에 버리려고 했다.
하지만 그때 휴대폰에 뭔가 심상치 않은 사연이 있다는 생각이 들면서 슬며시 욕심이 났다. 최소한 내 돈은 한 푼도 안 썼으니까. 그러나 그것은 완전한 내 착각이었다.
“다행히 안 잡혔군. 후후,”
근처에 잘 숨어있었는지 피에로가 갑자기 뛰쳐나오며 소리쳤다. 나를 향해 그대로 달려오는 피에로의 몸이 내게 닿는 순간, 나는 그의 손이 내 바지 뒷주머니 속으로 재빠르게 들어가는 느낌을 받았다.
그러고는 나를 지나쳐 저만치 가다가 뒤돌아선 피에로의 손에 내 지갑이 들려있었다. 피에로는 싱긋 웃으며 내 지갑에서 만 원짜리 한 장을 보란 듯이 한 장 뽑아냈다. 그리고 손가락으로 지갑을 다시 튕겨 보냈는데 신기하게도 지갑은 크게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와 내 뒷주머니에 다시 정확하게 꽂혔다.
“세상에 공짜는 없는 법이야!”
내가 황당해하고 사이 피에로는 그 한마디를 남기고는 총총히 어두운 골목으로 사라져 갔다.
“이런, 젠장,”
물론 휴대폰을 가졌으니 마땅히 지불했어야 하는 돈이었지만 피에로에게 거의 도둑맞듯이 털리자, 내 입에서 욕이 저절로 튀어나왔다. 하지만 피에로는 이미 사라진 탓에 별수 없이 투덜거리며 골목을 빠져나오던 나는 흠칫 자리에 섰다. 휴대폰을 지니고 있다가 행여나 검은 선글라스들하고 마주치면 장물(贓物)을 매매한 죄로 곤욕을 치를 것이 뻔했기 때문이었다.
“휴대폰을 버릴까 말까? 장물(贓物)이지만 왠지 그냥 버리기는 아까운데.”
잠시 고민하던 나는 휴대폰을 소유하기로 했다. 그리고 집으로 향했다. 이윽고 집에 도착한 나는 아내에게 휴대폰에 대해서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날밤 나는 아내 몰래 문제의 휴대폰을 꺼내서는 마침 비어 있던 아이들 방으로 들어갔다. 휴대폰을 손바닥에 올려놓고 한참을 들여다보았지만 겉으로 봐서는 그저 평범한 휴대폰이었다.
(그런데 이게 1000만 원짜리 휴대폰이야?)
특히 대낮에 벌어진 총격 상황이 자꾸 마음에 떠오르면서 뭔가 기대가 되었다. 인파가 붐비는 시간대에 정체불명의 사내들이 비무장한 민간인에게 마구 총질하다니...... 그건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놀라운 사건이 틀림없었다.
지금 내 손에 얌전히 놓여있는 휴대폰은 어쩌면 선글라스의 사내들에게는 민간인들을 사살해서라도 회수해야 할 만큼 무척 중요한 물건일 지도 몰랐다.
“인류 역사상 최고의 휴대폰이라고 했던 피에로의 말이 어쩌면 사실일 수도 있어.”
휴대폰의 겉모양을 유심히 뜯어보며 내 맘대로 상상하던 나는 마침내 용기를 내서 휴대폰의 전원을 켰다.
맑은 음이 흘러나오면서 휴대폰 제조사의 로고가 LCD창에 화려하게 떠올라왔다.
“저희 입체영상 휴대폰을 구입해 주신 고객님께 감사드립니다.”
마치 숨소리까지 느껴지는 여자의 나긋나긋하고 달콤한 음성이 방안을 감미롭게 울렸다. 사전에 녹음된 목소리가 아니라 누군가 내 옆에 착 달라붙어서 친절하게 설명을 해주는 듯한 착각을 일으키게 하는 매력이 철철 넘치는 목소리였다.
나는 야릇한 흥미에 마른침을 꼴깍 삼키며 휴대폰에서 흘러나올 다음 말을 기대했다.
“본 제품은 고객에게 숨겨진 애인을 찾아 입체로 생성해 드리는 최첨단 입체 휴대폰입니다.”
(......!)
“먼저 전원을 켜고 본 휴대폰에 장착된 초정밀 센서인 렌즈를 향하여 고객님의 눈동자를 비추어 주시면 그것으로 고객님이 하실 모든 절차는 끝납니다.”
휴대폰 매뉴얼 안내가 끝나자마자 그토록 고고하던 나는 우습게도 얼른 휴대폰의 액정 위에 움푹 파여 있는 렌즈에 시선을 정확히 맞추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