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회:사랑도 애인에 목마르다
내 시선을 인식했는지 죽은 물고기 눈알처럼 보이던 렌즈에서 붉은 불빛이 반짝거렸다.
“단 주의하실 점은 활성화가 진행되는 10일 동안은 본 휴대폰으로 통화를 해서는 절대 안 됩니다. 이 기간 중에 통화를 하게 되면 숨겨진 애인을 형상화하는 그동안의 모든 활성화 작업이 수포가 되고 맙니다. ”
(그까짓 10일을 참는 것이 뭐 그리 어렵다고 잔소리야.)
피에로에게 이미 들은 경고였지만 다시 그것을 듣게 되자 나는 미간을 찌푸렸다. 원래 휴대폰 사용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던 내게 10일 정도 참는 것은 별로 큰일도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
내가 계속 렌즈를 쏘아보자, 센서는 마침내 노란색 가느다란 광선을 내 눈 속으로 쏘았다.
그 후 휴대폰 액정 밑의 동그라미 속에서는 번호가 사라지고 대신 차례로 地(지), 畜(축), 餓(아), 隧(수), 人(인), 天(천), 聲(성), 緣(연), 菩(보), 我(아)라는 한자(漢字)가 떠올라와 원을 채웠다. 그 위를 따라 파란 불빛이 검열이라도 하듯 순차적으로 조용히 돌았다.
그리고 잠시 후 청잣빛 바다 같았던 액정 한가운데에 ‘고객님의 마음을 성공적으로 복사하였습니다’라는 메시지가 환한 보름달처럼 떴다. 뒤이어 예의 정감 넘치는 고운 목소리가 다시 흘러나왔다.
“고객님께서는 이제 애인을 호출하는 통화 버튼을 눌러주시겠습니까?”
“까짓것, 밑져야 본전이다.”
이윽고 나는 장난기와 모험심이 발동한 소년처럼 손가락으로 목소리의 요구대로 통화 단추를 꾹 눌러주었다.
“감사합니다!”
나의 선택에 무척 들뜬 듯한 여자의 말이 낭랑하게 방안을 울렸다. 그와 동시에 휴대폰은 내부에서 뭔가 작동하는 듯 기계음과 함께 부르르 몸을 떨기 시작했다,
그리고 잠시 후 휴대폰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이전의 평범한 모습으로 되돌아갔다.
“여보! 이것 웬 휴대폰이야?”
다음날은 일요일 아침이라 늦게 일어나서 화장실에서 느긋하게 면도하던 나는 안방에서 갑자기 들려오는 아내의 앙칼진 물음에 흠칫 놀라며 동작을 멈추었다. 부옇게 김이 서려진 거울 속에서 내 얼굴이 예상치 못한 사태에 파랗게 질려있다.
“뭐?”
내가 미처 질문을 못 들었다는 듯이 고개를 문밖으로 쭉 내밀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아내는 어느새 문 앞에 서 있었다.
아직은 좀 낯선 검은색 휴대폰을 내 코 앞에 쭉 내민 아내의 표정이 영 심상치 않았다.
40대 초반의 주부답게 약간 탄력을 잃은 피부와는 달리 내 눈동자를 깊이 염탐하는 그녀의 눈빛은 무척이나 날카로웠다.
“이것 당신 바지 주머니에 있던데......”
“아, 그 휴대폰!”
짐짓 그제야 휴대폰의 정체를 알았다는 듯이 나는 능청을 떨면서도 본능적으로 지금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순간이라고 직감했다.
나는 떨리려는 목소리를 애써 진정시키고는 최대한 입을 천천히 열었다.
“어제 퇴근하다가 우리 집 앞 골목길에서 주웠어.”
“정말? 당신이 새로 산 것 아니었어?”
나를 살짝 치켜보는 곱지만, 매서운 아내의 눈빛이 다시 한번 카메라의 플래시처럼 번쩍했다.
“사기는...... 나 휴대폰 싫어하는 것 당신도 잘 알잖아?”
“하긴......”
아내의 눈에서 잔뜩 품었던 의구심이 슬그머니 빠져나갔다.
“그런데 어제는 왜 휴대폰 안 샀어?”
난 아내의 관심이 다른 곳으로 쏠리고 있는 것에 일단 안심하고는 그것이 계속 유지되도록 좀 과장된 몸짓을 하며 대꾸했다.
“맘에 드는 게 없었어.”
“하긴, 다 거기서 거기야. 그냥 아무거나 빨리 사요. 그런데 그 휴대폰 주인한테 연락이 왔어요?
“응, 이삼일 내에 찾으러 온대. ”
“그래요?”
아내는 자신이 쥐고 있는 휴대폰의 표면을 이리저리 살피다가 뭔가 이상한 것을 발견한 모양이었다. 길에서 주운 휴대폰치고는 너무 깨끗한 것이 좀 수상한 듯했다. 그래서 나는 한번 더 쐐기를 박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자기가 대신 전해줄래?”
“아니 됐어. 나도 바빠요.”
“그 휴대폰 주인이 남자치고는 목소리 하나 죽이더라고. 또 알아? 휴대폰 찾아주었다고 근사한 답례를 할지도,”
“이 양반이 정말 미쳤나? 됐거든!”
남녀관계에 있어서는 확실한 성격의 아내는 얼른 휴대폰을 내게 떠안기고는 얼른 꽁무니를 뺐다.
정체불명의 휴대폰과 나의 행적에 대한 그녀의 의혹이 완전히 걷히는 순간이었다.
그런데 자신의 안방으로 얌전히 들어갈 줄만 알았던 아내가 갑자기 홱 돌아서서는 나에게 말했다.
“그거 정말 대포폰 아니지?”
여자의 육감은 정말 예리하고도 집요했다. 그녀의 본능은 이미 그 수상한 휴대폰의 정체를 훤히 꿰뚫고도 짐짓 능청을 떨며 나의 반응을 다시 떠보는 것 같았다.
그녀가 아무리 집에서 살림만 하고 산다 해도 수상한 짓거리를 하고 다니는 사람들이 대포폰을 이용한다는 사실 쯤은 충분히 알고 있을 터였다.
“......!”
어느 정도 안도하고 있던 참이라 나는 핵심을 찌르는 아내의 질문에 한순간 숨이 콱 막혀 죽는 줄 알았다.
“그러니까 당신이 직접 전해주라고! 젠장,”
그 순간에 나는 속으로는 벌벌 떨면서도 겉으로는 당신 알아서 하라고 대범하게 아내에게 떠넘겼다. 그것이 다행스럽게 약발이 있었는지 아내는 더 이상 추궁하지 않았다.
제방으로 들어가려던 아내는 마침 거실 TV의 뉴스에 등장한 불륜 남녀의 얼굴을 가리키며 마지막 경고를 내게 날렸다.
“하여튼 당신도 저것들처럼 딴짓하면 내 손에 죽을 줄 알아!”
아내의 협박에 내가 고개를 크게 끄떡이자, 아내는 안심하고는 자신의 일상이 기다리고 있는 방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그녀의 뒤통수에 대고 나는 괜히 공갈을 쳤다.
“젠장, 진짜 나도 애인 하나 있으면 좋겠다!”
아내는 내 협박에 콧방귀도 뀌지 않았다. 그렇게 아내를 안심시켜 놓고서 나는 쿵쾅거리는 가슴을 쓰다듬으며 나만의 공간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다음 날 아침에 아내는 출근하려던 나를 붙잡고 뜬금없이 물었다.
“여보, 어제 그 휴대폰 아직도 갖고 있어?”
아내에게 자수를 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다시 찾아왔다. 그러나 나는 주머니 속에서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며 시치미를 뚝 뗐다.
“아니,”
“벌써 찾아갔어?”
“응,”
“이삼일 후에 찾으러 온다고 그랬잖아요?”
불현듯 의심이 드는 듯 아내의 눈꼬리가 살짝 치켜진다.
“그랬는데 어제저녁에 부랴부랴 다른 사람을 보내서 찾아갔어.”
“그래요? 휴대폰 주인이 고맙다고 안 해?
“나중에 자기가 올라와서 직접 사례하겠대.”
“그냥 말로만?”
“좀 인색하더구먼. 그런데 그 휴대폰은 왜?”
나도 아내의 얼굴을 뜯어보며 되물었다.
“새벽에 내 휴대폰 액정이 깨져서 그것 한번 사용해 보려고.”
“남의 것 좋아하지 마!”
“최신 제품 한번 써보는 게 뭐 어때서?”
“그래도 쓰던 것이 좋은 법이야. 나처럼......”
“에이, 징그러운 농담하지 마.”
아내는 색깔 있는 나의 농담에 질린 듯 얼른 자리를 떴다.
하여간 나는 아내를 그렇게 쫓아내서 나의 입체 휴대폰이 아내에 의해서 사용될 뻔한 첫 번째 위기는 그렇게 잘 넘어갔다.
어쨌든 나는 일단 아내에게 휴대폰을 주인에게 돌려주었다고 거짓말을 했기 때문에 이제는 그 휴대폰은 절대 그녀의 눈에 띄면 안 되었다.
나는 휴대폰을 어디에 숨겨둘까 한참 고민하던 끝에 그것을 회사 사무실의 서랍 속에 감추어두기로 했다. 사무실은 일단 아내의 손이 미치지 않는 안전지대였으니까.
그래도 혹시나 동료 중 누군가 무심코 서랍에 숨긴 휴대폰을 발견할까 봐 외근을 나갈 때에는 난 늘 그것을 몸에 지니고 다녔다.
“......”
그동안 휴대폰의 액정에는 활성화가 진행되는 일수를 나타내는 숫자가 매일 바뀌어 갔다. 그와 더불어 나의 기대감도 덩달아 부풀어져 갔다. 나는 마치 지갑에 복권 한 장을 사서 담고 다니는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뿌듯한 기대감에 하루하루가 즐거웠다.
나중에 설사 꽝으로 판명되어도 그동안 행복했었던 것으로도 좋았듯이 휴대폰도 지금 나에게는 그 역할을 충분히 하고 있었다.
그런데 얼마 후 사무실도 그리 안전지대가 아니라는 것이 곧 판명되었다.
그날 내가 잠깐 화장실에 다녀오자 입사 동기 총무과 김 계장이 내 자리에 앉아 있다가 묘한 웃음을 흘리며 불쑥 말했다.
“이야, 오 계장, 너 휴대폰 언제 마련했어?”
“무슨 휴대폰?”
나는 속으로 뜨악했지만 최대한 능청을 떨었다. 그러자 김 계장은 이상한 눈웃음을 치며 내 책상의 열린 서랍을 슬쩍 열며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거기에는 내가 은밀히 감춰두었던 휴대폰이 민망하게 모습을 드러냈다.
김 계장은 매직펜을 빌리러 왔다가 우연히 그것을 발견했다고 어설프게 변명하고는 히죽 웃었다.
“휴대폰을 새로 샀으면 즉각 신고해야지. 그 전화번호가 뭐야? 아니지. 나한테 한 번 걸어봐라.”
김 계장은 자신의 휴대폰을 꺼내 들고는 나를 빤히 쳐다본다. 어찌할지 몰라 잠시 당황하던 나는 궁여지책으로 대꾸했다.
“이 자식아, 이건 우리 와이프 휴대폰이야.”
“뭐, 와이프 폰?”
“그래.”
“와이프 폰을 왜 사무실에 숨겨두고 있어?”
“......”
동료의 합리적인 의심에 순간적으로 대답이 궁색해진 나는 어색한 웃음으로 그냥 때울 수밖에 없었다.
“너. 수상하다. 바람피워?”
“아니야!”
“그럼 그 번호 말해 봐. 내가 첫 개통식을 해줄게.”
김 계장은 당장이라도 내게 전화를 걸 기세로 자기 휴대폰을 꺼내고는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당혹스러웠다.
“그래. 이거 내 애인 전용폰이다. 어쩔래?”
통화를 허용하면 절대 안 되는 나는 어쩔 수 없이 불륜남이 될 수밖에 없었다. 나의 고백이 뜻밖이라는 듯 김 계장의 두 눈이 주먹만 해졌다.
“자식, 내 이럴 줄 알았어!”
“내 와이프한테는 비밀이다.”
나는 김 계장에게 사슴 같은 눈을 하고 간절히 애걸했다.
그런데 마치 나의 대단한 비밀을 낚아챈 것처럼 의기양양해하던 김 계장은 의외로 쉽게 고개를 끄떡이었다. 물론 야릇한 웃음을 지으면서 말이다.
“알았어. 인마. 걸리지나 말고 잘해 봐라. 크크,”
묘한 웃음과 함께 김 계장은 장난기 어린 경고만 남기고는 훠이훠이 제자리로 돌아가 버렸다. 그 순간 나는 저 자식도 뭐 애인이 있나 하는 의심을 품을 정도였다.
어쨌든 내 비밀 휴대폰을 발견한 김 계장 건은 그렇게 해서 넘어갔다. 그날 이후 나는 다시 휴대폰을 항상 내 몸에 지니고 다녔다.
그러나 며칠 후 김 계장 건보다 더 심각한 사건이 터졌다.
그날도 나는 잠시 밖에 외근할 일이 있어서 사무실을 잠깐 비웠다.
“......!”
그런데 볼일을 보다가 문득 나는 회사의 공유 드라이브에 월말 마감을 위해서 내가 작업한 회계 데이터를 올려놓는 것을 깜박한 것이 번쩍 떠올라왔다.
바쁘게 사무실을 나오는 바람에 멍청하게도 그 중요한 일을 깜박했던 것이다. 더구나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다. 만약 그것들이 오늘을 넘겨 전산실의 메인 컴퓨터에 제 때에 전송이 안 되면 정말 큰 일이었다. 내일 아침 난 김 부장에게 불벼락을 맞고 심지어 사표까지 쓸지도 모른다.
갑자기 가슴이 미친 듯이 쿵쾅거렸다. 하늘이 무너지고 노랗게 변했다. 이제 시간은 10분밖에 남지 않았다.
“빌어먹을! 큰일 났네!”
야차처럼 나를 노려보는 김 부장의 얼굴을 떠올리며 부르르 몸서리를 쳤다. 나는 재빨리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휴, 살았다.”
한숨을 내리 쉬며 서둘러 휴대폰의 번호를 누르려던 나는 액정에 떠오른 ‘6’이라는 숫자를 발견하고는 멈칫했다. 그것은 지금 내 휴대폰이 애인 찾기 명령을 60%까지 활성화했다는 것을 의미했다. “벌써 60%? 그냥 허망하게 버리기에는 너무 아까운데.”
똥줄이 타는 다급한 상황에서도 나는 굳이 휴대폰의 활성화 작업을 방해하고 싶지 않았다.
대신 나는 공중전화 부스를 찾아 뛰었다. 그러나 요즘처럼 휴대폰이 일반화된 시대에 거리에서 공중전화 부스를 찾기란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래도 나는 포기하지 않고 미친놈처럼 이리저리 뛰어다녔다.
하지만 점점 마감 시간이 임박해 오자 나는 휴대폰을 사용하고 싶은 강한 유혹에 다시 시달렸다. 하지만 이를 악물고 간신히 견디어냈다.
마침내 나의 정성이 하늘에 닿았는지 어느 으슥한 골목의 슈퍼 앞에서 낡아빠진 공중전화 부스를 간신히 찾아냈다.
공중전화의 수화기를 움켜쥔 나는 정신없이 사무실 전화번호를 눌러댔다. 마감 5분 전이었다. 나는 신호음이 떨어지는 것을 초조하게 기다렸다. 이윽고 누군가 전화를 받았다. 그는 야차와 같은 오 부장이었다.
“무슨 일이야?”
“저, 제가 공유 드라이브에 자료를 올리는 것을 깜박했거든요”
“뭐, 뭐야? 그것을 왜 지금 이야기하는 거야!”
“공중전화를 찾다 보니까 늦었습니다.”
“너 언젠가 이런 대형 사고 낼 줄 알았어! 너 회사 말아먹으려고 아주 작정한 거지?”
“죄, 죄송합니다. 그보다도 빨리 그 자료를 올려주세요.”
“이미 벌써 마감 시간이 지났잖아! 나도 몰라,”
“부장님, 제발 저 좀 살려주세요.”
“네가 전산실에 직접 이야기해!”
“부장님, 제발,”
나는 거의 울상이었다. 나의 보고를 받으면서 이미 오 부장이 전산실에 손을 쓰고 있으리라고는 추측은 했지만, 극도의 불안감에 빠진 나는 죽는시늉하며 애걸복걸할 수밖에 없었다.
“너 이번에 일 잘못되면 사직서 써!”
“알, 알겠습니다.”
나는 최악의 사고를 막아야 한다는 절박감에 거의 죽는시늉까지 해야 했다.
그날 나는 휴대폰을 제때에 쓰지 않으면 엄청난 재앙을 당할 수도 있는 무서운 시대에 살고 있음을 새삼 뼈저리게 느꼈다.
하지만 그날 이후에도 나는 하루에도 몇 번이나 통화 절대 금지 휴대폰을 무심코 쓰려다 깜짝 놀라서 그만두곤 했다.
요즘 세상에 정말 그건 살을 깎는 듯한 고통스러운 수행이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액정에서 변화하는 숫자를 바라보는 나의 가슴은 마치 아름다운 첫날밤을 맞기 위해서 온갖 유혹을 물리치고 순결을 굳게 지켜온 처녀의 마음처럼 두근거렸다.
(그래 조금만 더 참자.)
고지 점령을 눈앞에 두고 있는 병사처럼 나는 각오를 강하게 다졌다. 하지만 마침내 휴대폰을 사용하지 않으면 내가 별수 없이 죽어야 하는 최악의 상황이 끝내 나에게 발생하고 말았다.